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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화. < Chapter 50. 러스티드 랩소디 - 2 >

그들은 팀을 나누어 움직이기로 했다.

사실 이것은 신은아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마나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는 신은아는 마기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유독 튀는 존재였다.

그 탓에 은밀기동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신은아는 아예 시선을 끌기 위해 정면으로 나서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 참, 왜 그렇게 돌격하고 싶어 하는 거야.”

강신혁 역시 돌격조의 필요성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한쪽에서 시선을 끌어줘야 다른 이들이 잠입하여 저항군이라는 자들을 구해낼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신은아가 보이는 강건한 태도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

“그냥, 이곳 마음에 안 들어. 전부 부숴버리고 싶어.”

“은아는 원래 마기를 싫어하니까. 후, 그럼 내가 은아 쪽으로 붙을게.”

“뭐!? 안 돼!”

위험천만한 역할을 나누어지겠다는 말에 기겁한 강신혁이었으나, 클레어는 자신을 말리려 드는 강신혁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이젠 그냥 내가 애로 보이지? 요즘 누나 노릇 안 했더니 아주 품에 끌어안고 안 놓으려고, 응?”

“그게 문제가 아니라 클레어 약하잖아.”

세계랭킹 500위 안에 드는 하이랭커를 약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는 얼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차원 퀘스트를 하며 무력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지금의 강신혁은 서슴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입장이 정반대였는데. 클레어는 그를 째렸다.

“넌 이거 끝나고 죽었어.”

“그래도 클레어……."

“클레어는 도움이 돼. 둘이서만 움직인 적도 많고.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역시나 평소였으면 둘이서만 꽁냥거리지 말라며 볼을 부풀렸을 신은아가 지금은 담담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이미 전투 스위치가 들어가 있는 상태. 이렇게 되면 말릴 수 없다.

강신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쪽으로 붙고 싶은데, 빌딩 안도 위험할 것 같아서 비타 옆에서 빠질 수가 없겠네.”

“잘 생각했어. 아마 더 위험할지도 몰라. 지금의 후배라면 믿고 보낼 수 있지만.”

“맞아. 신혁이 엄청 세졌으니까.”

“믿기지 않을 정도야.”

“성장세도 놀라웠지만 이젠 절대수치로 봐도……."

“알았어, 칭찬 그만해.”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는 두 여자가 쏟아내는 칭찬 세례에 손을 내저으며 한 걸음 물러선 강신혁이 자신의 귀에 달린 통신기 겸 텔레포트 아티팩트를 두드려 보이며 말했다.

“위험하면 바로 연락해. 달려갈게.”

“후배도 마찬가지.”

“그래, 그럼 출발하기 전에……."

강신혁은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한 손씩 붙잡고는 자신의 특성을 발휘했다.

그의 눈이 찬란한 금빛으로 반짝이는 동시에 신기하게도 그가 붙잡은 두 사람의 손을 향해 황룡이 꿈틀거리며 나아가 흡수되었다.

평소에도 24시간 동안 특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연히 그 강도는 투입하는 황룡투기의 양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그는 지금 거기에 영력까지 더해 특성의 힘을 최고로 끌어올려 두 사람에게 부여한 것이다.

이전에는 차마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고, 영력과 황룡투기가 성장한 지금 기준으로도 무려 절반에 가까운 양을 전환해 시전한 버프였다.

“으으, 점점 강력해지는 것 같은데.”

“봐봐, 여기.”

강신혁의 손에서 태어나 두 사람의 몸으로 스며든 황룡은 그녀들의 신체에 자리 잡고 똬리를 틀었다.

예전엔 그가 힘을 쓸 때 무기에나 순간적으로 어리던 황금룡이 이젠 사람에게도 새겨진 것이다.

“요즘 힘을 많이 쓰면 이렇게 돼. 아마 나쁜 일은 없을 거야.”

“역시 성장형 특성이었구나. 점점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거야.”

“신기하네…… 기분 좋은걸. 꼭 후배가 날.”

볼을 붉히며 뭔가 말하려는 신은아를 강신혁이 멈추게 했다.

“그건 저번에 들었으니까 됐어. 비타, 이제 출발하자.”

“예, 포위망이 좁혀오는 것을 보면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비타가 한쪽에 마련되어 있던, 아마도 저항군 조직원들에게 마기저항 칵테일을 타줄 때 이용했을 바텐더 테이블을 무너트리자 벽면 한쪽이 열리며 비밀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죠, 신혁 님.”

“그냥 반말하면 안 돼?”

“안 돼요. 하지만 아빠라고 부르게 해주시면 저도……."

“안 돼.”

둘은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며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장소에 남은 신은아와 클레어는 자연스레 시선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볼에 새겨진 황금룡 문신을 물끄러미 살폈다.

“예쁘네.”

“그러게.”

“그럼 우리도……."

"응."

그런데 곧장 빌딩으로 돌격할 것 같던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반쯤 무너진 소파에 걸터앉았다.

출발 전에 풀고 가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아야, 너 아까 한 얘기 무슨 의미?”

“으극, 그으……."

무슨 ‘얘기’를 말하는 것인지 신은아는 물론 알아들었다.

차원 퀘스트를 같이 가달라는 클레어의 말을 듣고 자신이 내보인 반응.

오해도 그런 오해가 없었고, 만약 둘이 절친한 친구 사이가 아니었으면 분위기는 수습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해졌을 것이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두 사람의 사이가 끈끈하다는 얘기도 될 수 있겠지만…… 그런 두 사람의 우정도 시험을 받을 만큼 큰 실수였다.

사실 차원 퀘스트가 급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바닥을 구르며 실수했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울부짖고 있었을 것이다.

“그, 그냥 넘어가줄 수는…… 없지?”

“응.”

“화, 화났어?”

“그걸 말이라고…… 음……."

클레어는 당연히 화가 났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살짝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그러다 돌연 신은아에게 재차 창끝을 돌렸다.

“넌 어떤데?”

“뭐, 뭐가?”

“그걸로 만족할 수 있겠어?”

“만족이라니, 그게 무슨……."

클레어가 다짜고짜 하는 말에 신은아는 볼을 붉히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클레어는 그녀를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은아 네가 곁다리 되는 건데? 보통 사람이면 다른 짝을 찾을 거야.”

“나, 나는.”

설령 세 사람만의 독특한 관계가 완성된다 해도 자신이 중심에서 밀려날 일은 없으리라는 굳건한 믿음.

어찌 보면 얄밉게 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신은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

“그야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내 마음, 이해해?”

한없이 울적한 표정으로 말하는 신은아에게 클레어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응, 원래 모쏠찐따가 하는 생각이 다 비슷하잖아. 첫사랑이 끝사랑이 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거.”

"큭."

클레어의 가차 없는 말에 신은아가 침몰했다.

하지만 강신혁을 자신의 ‘끝사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클레어도 마찬가지였고, 특히나 신은아에게 있어선 이게 이런 어설픈 첫사랑 따위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게 엮인 신은아와 강신혁의 관계는 ‘좋은 추억’으로 깔끔하게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클레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재차 입을 열어 말했다.

“은아야. 좀, 진지하게 생각해봐.”

“뭘?”

“네가 그이의 첫 번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느끼게 될 심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응......?”

얘기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느낀 신은아가 눈을 크게 떴다.

클레어는 그녀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말을 이었다.

“방금도 말했지만 나는 안 밀려날 자신 있어. 그럼 네가 계속 두 번째가 되는 거잖아.”

“응, 응......?”

“나도 은아 네가 아니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네가 소중하니까.”

그것은 한 치의 의심의 여지도 없는 진실.

각자가 답답한 청춘을 보내고 있던 그때 히어로 유니버스를 통해 연결되는 것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나치게 특수하고 특별해, 감히 그 어떤 사람도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것이 이젠 한 명의 남자로 인해 변화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오히려…… 클레어는 두 사람이 같은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때마저 있었다.

이전부터 조금씩,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 그렇게 혼자 땅 파고 있는 것도 보기 힘들고.”

“응!?"

“그러니까 은아야. 정말로 깊게 생각해보고, 그래도 전부 감당할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클레어……!?”

클레어의 말에서 감지되는 믿을 수 없는 가능성의 편린에 신은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클레어는 얘기는 여기서 끝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며 선언했다.

“그럼 이제 출발하자. 애들 잠입하려면 우리가 날뛰어야지.”

“클레어!”

“미친년아, 껴안지 마!”

“클레어어어어!”

“아직 허락해준 거 아니라고! 아직 신혁이랑은 말도 안 했거든!”

“사랑해!”

-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얄밉네요. 봐줄 만한 건 능력뿐인데 계속 놀고 있을 건가요?

신은아의 감정이 격해져가던 가운데 관리자가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신은아는 차마 관리자의 메시지에 뭐라 불만을 표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튼 지금은 싸워야 할 때였다.

@@@

강신혁과 비타는 그녀가 저항군 시절 이용하던 비밀통로를 통해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외부의 적은 모두 신은아 님이 있는 쪽에 몰릴 겁니다. 빌딩에 잠입할 때까지는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노골적인 미끼 역을 부탁하고 나온 것 같아 마음에 좀 걸리네.”

신은아는 무한한 마나의 지배자다.

제아무리 갈무리를 잘 한다고 해도 마기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는 흑돌로 가득한 바둑판 위에 딱 하나 놓인 백돌처럼 존재감이 강렬해지는 것이다.

신은아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에 정면에서 쳐들어가겠다고 말한 것이지만, 과연 그녀가 이곳의 특이한 적들을 상대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특히 그녀와 함께 있을 클레어는 더욱 걱정이다.

“신혁 님의 능력이 두 분을 지켜줄 거예요.”

“아, 너한테도 해줄까?”

“부탁드려도 될까요?”

강신혁이 신은아와 클레어를 대상으로 능력을 발현하는 것을 보며 내심 부럽게 생각하던 비타는 그가 말을 꺼내자마자 크게 반응하며 달라붙었다.

꼬리가 있었더라면 맹렬히 흔들고 있었을 것이다.

“저는 신혁 님의 영력을 받아 탄생할 수 있었으니…… 아마 버프의 효과도 훨씬 좋을 거예요.”

“그렇게 되나.”

강신혁은 특성을 발휘해 비타에게 버프를 주며 내심 실례되는 생각을 했다.

지금 비타를 강화하고 있는 자신의 특성은 사람을 강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물건을…….

‘아니,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수호황룡은 생물이든 비생물이든 가리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그늘 아래에서 크게 강화시켜주는 능력.

머릿속에 그런 이미지가 떠올라, 강신혁은 순간 조금 멍해졌다.

어쩌면 그는 이제야 자신의 특성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마주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특성의 진화가 머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났다.

“신혁 님? 아빠?”

“아빠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이제 괜찮아지셨네요. 곧 도착입니다.”

뭐? 강신혁은 그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하긴 어차피 이 도시가 그리 큰 것도 아니었고, 강신혁이나 비타나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은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으니 몇 분 되지 않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당연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전방 200미터 앞에 비밀통로가 막혀 있는 것이 보였다.

막혔다고는 해도 널빤지나 드럼통 따위를 쌓아놓았을 뿐이라 금세 부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는데…….

“저 안으로 진입하면 빌딩의 지하 2층입니다. 이전 한 번 몰래 진입하려다가 가이아의 첨병이 급습해와 다급히 물러난 적이 있는데, 일정 영역을 넘어서자 추적해오지 않아서 바리케이드를 쳤어요.”

“아무래도 일정 영역 안에서만 활동하는 놈들인가 보네.”

빌딩에 침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 비밀통로가 존재하는 목적이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저항군이라니, 비타가 10년간 홀로 정체모를 집단에 소속되어 활동해왔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조금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떠나와 놓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우스운 일이겠지. 그는 상념을 정리하고 말했다.

“돌격조가 시선을 끄는 사이 움직이자.”

“네, 그런데 바로 나오실 줄 알았는데 저희보다 이동이 늦는 것 같네요.”

응?

생각해보니 그랬다.

강신혁은 뒤늦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까 있었던 일 때문에 클레어가 신은아를 탓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이지 최악인데…….

-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회원님.

‘제 마음이라도 읽었어요?’

- 관리자는 예정조화의 신비를 실감하며 깊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득도한 관리자에게 회원님의 마음을 읽는 것쯤은 간단한 일입니다.

관리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말이 오가기는 한 모양이었다!

강신혁은 당장이라도 둘에게 달려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둘 중 한 명에게 귓속말을 날리기도 전에 쾅! 하는 소음이 통로 전체를 진동시켰다.

- 다 나와! 모조리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부숴줄 테니까!

보기 드물게도 흥분한 신은아의 샤우팅이 비밀통로를 진동시켰다. 아무래도 곧장 빌딩 앞으로 날아오며 마력을 폭주시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분이 좋으신 것 같네요. 혹시 지구에서의 신은아 님의 직업은 폭탄마인가요?”

“응…… 뭐, 그 비슷해.”

빌딩이 거대한 진동을 일으켰다.

비타는 건물 내부에 머무르고 있던 기계반응이 외부로 대량 유출되는 것을 감지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폭탄마 님 덕분에 바로 진입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 응. 그래, 가자. 친구들 구하러.”

대체 클레어와 신은아가 무슨 얘기를 나누었기에 신은아의 기분이 저렇게 좋아 보인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마이너스의 극에 이른 감정이 플러스처럼 보이는 것뿐일까?

둘 중 어느 쪽이라 해도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강신혁은 각오를 다지며 비타와 함께 눈앞의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마기로 가득찬 빌딩의 지하로 잠입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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