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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화. < Chapter 48. 황금용은 무적군단의 꿈을 꾸는가 - 5 >

3월 2일, 신영의 입학식이 열리는 날.

강신혁은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에서 엘레노어와 함께 의자를 배치하고 있었다.

평소엔 학생들에게 시키지 않는 일인데, 입학식과 졸업식만은 학생들이 의자를 배치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내가 왜 입학식에 동원되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비룡기사단 간부니까.”

“이런 건 학생회 업무 아냐?”

“그래서, 학생회도 있잖아.”

엘레노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그곳에 왁자지껄 떠들며 일을 하고 있는 학생회 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안의 중심인물은 어딜 봐도 백인하다.

신영 사람들은 전부 그의 주접을 싫어하는 줄만 알았는데, 학생회 임원들은 전부 그를 중심으로 두고 깔깔 웃으며 그를 장난스럽게 터치하거나 눈웃음을 치는 등.......

“뭐야, 저 새끼 빼고 전부 여자잖아!? 게다가 어째……."

굉장히 만화 같은 상황이라 역겹지만, 학생회 임원 전원이 백인하에게 지나치게 친근하게 구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다들 많든 적든 그에게 호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강신혁은 살짝 배신감을 느꼈다.

저 자식 맨날 여자 만나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더니……!

엘레노어 역시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알아봐쏘. 앞으론 반경 3미터 이내 접근금지.”

“팀 활동해야 하니까 그건 참아.”

“내쫓아도 되는데……."

“귀중한 전력인데.”

“내가 쟤 몫까지 할게. 웅?”

특성이 SSS-랭크라는 전대미문의 영역으로 진화하면서(물론 신은아의 마나의 지배자보단 못한 수준이지만 엘레노어는 그것을 모른다.) 엘레노어는 다소 과하게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었다.

강신혁은 어울리지도 않는 윙크를 하면서까지 백인하를 내쫓자고 주장하는 그녀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입학식 끝나고 한 판 해?”

“어? 응!”

그녀가 큰 실수를 하게 되기 전 그녀의 콧대를 꺾어놓으려는 생각이었으나 대련광인 엘레노어는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마도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흐흣......."

“에휴, 이 사람이 신영의 투왕이라니.”

아직 날씨는 겨울에 가까운데 강신혁의 옆에서만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부디 비룡기사단에 입단할 신입생들이 그녀를 보고 실망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강신혁은 의자를 놓았다.

작업은 여유롭게 진행되었고, 학생들은 식이 시작되기 전 옷을 단정히 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시뇩!”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강신혁은 백인하가 던진 두 개의 캔커피를 보기 좋게 받아내 하나를 엘레노어에게 건넸다.

건네주는 순간 맞닿은 손가락에 엘레노어가 소년만화처럼 부끄러워하며 볼을 붉혔지만, 강신혁은 그것이 의도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카렌인가.”

“응!? 카렌 없는데!”

“두 분 사이 좋구만, 엉?”

엘레노어의 빤한 반응에 강신혁이 캔을 따며 작게 한숨을 내쉬는데, 둘에게 캔커피를 던진 당사자인 백인하가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며칠 전 ‘애칭’에 대해 알아버린 그였으니 저런 태도도 당연했다.

“엘레노어 누님, 이거 완전 클레어 누님에 대한 배신 아니에요 배신? 아니 어떻게 시뇩이한테 그렇게, 억.”

“반경 3미터 이내 접근금지.”

“으응?”

엘레노어의 날카로운 기세에 백인하가 애매한 미소를 짓자 강신혁이 설명해주었다.

“네 학생회 하렘을 보고 너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

“아, 학생회? 혹시 들어오고 싶어졌냐?”

“안 돼!”

순간 엘레노어가 새되게 외치며 강신혁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물론 그녀의 키가 턱없이 작은 탓에 그녀가 바둥거리며 강신혁의 등에 매달리는 꼴이 됐지만 표정만은 필사적이었다.

“부단장은 못 데려가!”

“겸임하면 되지, 겸임.”

“안 돼!”

빽 소리 지르는 엘레노어의 말에 덧붙여 강신혁이 말했다.

“안된다네. 더구나 들어보니까 역사상 학생회랑 비룡기사단이 손을 잡은 적이 없다던데?”

“허, 그러니까 올해부터는 좀 서로서로 좋게 가보자는 얘기지. 겸임하는 사람이 나와도 별 문제될 것 없잖아. 교칙으로 막힌 것도 아니고.”

백인하는 청산유수처럼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눈은 강신혁을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엘레노어가 강신혁에게서 떨어져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눈을 꼭 감고 강신혁에게 매달리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귀여웠지만, 외부인들은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고 끝내지 않으리라.......

“엘리, 좀 진정해.”

“아!”

“내가 보기엔, 시뇩아. 이미 늦었다.”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말하는 백인하.

과연 맞는 말이었다.

학생회 임원들, 신영마도학회에서 나온 간부들은 물론이고 장내에 있던 교사들, 심지어는 이제 막 웅성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기 시작하는 1학년 신입생들조차 그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엘레노어 누님, 너무 쉬운 거 아니에요.”

“흥, 뭐. 우리 친한데.”

“오, 자신감.”

평소였으면 부끄러워하며 폭주했을 텐데 오히려 정색하는 엘레노어의 모습에 백인하가 작게 박수를 쳤다.

“하긴 남녀가 친할 수도 있죠.”

“물론.”

“하지만 수상해보이니까 클레어 누님에겐 이를 거예요.”

“아, 안 무서어.”

백인하의 급선회에 당황해 혀를 깨문 그녀가 황급히 덧붙였다.

“우린 친한 선후배니까!”

“엘레노어 누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괜찮은데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감출 수 없는 흑심이……."

“별명 부르는 정도로 오버하지 마라.”

강신혁은 그쯤에서 백인하를 단속했다.

이미 강당에 신입생이 가득했다.

그 안에는 백인하와 어울리고 있는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오혜나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순간 이번 원정에서 마주쳤던 오주영에 대한 생각이 다시 나 살짝 골치가 아파졌다.

‘하지만 괜찮겠지? 이미 머리통은 없앴고 남은 건 검뿐이니까…….'

지금 강신혁에겐 오주영 본체가 다루던 ‘엑스칼리버 - 디스페어’가 온전하게 있고, 그와 몸을 트레이드한 갑주 괴인이 다루던 용암 대검…… ‘엑스칼리버 - 라스’의 힘이 담긴 파편이 있다.

물론 오혜나에게 이것을 전해줄 생각은 없다.

나중에 엑스칼리버를 구현화하는 능력을 제대로 깨닫게 되면 그때 새로 괜찮은 검을 하나 벼려줄 생각은 있지만.

아빠한테 받은 게 많으니 딸한테 뭐라도 보답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씁, 갑주도 회수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대검 능력의 폭주로 전부 녹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갑주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었다면, 그가 갑주를 야누스에게 선물한 이후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부단장? 왜 그래?”

“아, 단장님.”

사적인 자리에서는 친근하게 불러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단장, 부단장으로 부르기로 약속한 터라 자연스레 그렇게 말한 것인데, 엘레노어는 자신도 먼저 부단장이라고 부른 주제에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곧 식 시작이야. 똑바로 앉아 이쏘.”

“네."

둘은 단상에 마련된 좌석에 나란히 앉아 애써 정숙을 가장했다.

하지만 신입생들은 이미 둘을 묘한 눈으로 보고 있었고, 그것은 식이 진행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조금 과도하게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 같기도 했다.

“뭐지, 왜 이러는 건데.”

“부단장, 조용.”

교장 신윤학을 비롯한 다른 교사들도 아니고, 하다못해 저번 방학부터 백양의 후계로 정식 활동을 시작한 백인하도 아니고, 콕 집어 강신혁과 엘레노어에게만 집중되는 시선이 부담되기 짝이 없었다.

‘설마, 혹시?’

자신들의 정체가 인터넷에 풀리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신은아의 부모가 협회 초인관리부로 잡혀갔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그들이 작정하고 정보를 풀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당장 이 신영으로 각국의 초인들이 뛰어 들어와도 시원치 않으니,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어……."

그러나 곧 자신의 옆에 앉은 엘레노어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을 보아 그녀가 사태를 파악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항상 카렌과 상호 연락이 가능한 무선 통신기를 귀에 꽂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방금 그걸 통해 카렌이 보고를 해온 모양이다.

“뭔데. 뭔데요.”

“기사, 떴대.”

“뭔 기사.”

“영국의 막내공주가 신영 3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기사……."

그건 엘레노어 얘기잖아.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생각하다가, 강신혁은 문득 그것이 대외비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냈다.

“아차……."

“어, 언니가……!”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올리비아란 여자의 뒤끝이 생각보다 심한 모양이었다.

자신들 쪽에서 일부러 감추고 있던 사실을 공개해버릴 정도면, 앞뒤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엘레노어를 곤란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했던 모양

혹시 이것으로 그녀를 영국에 속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라면 실로 어리석다 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리고 거기에다.”

엘레노어가 몸을 묘하게 꼼질거리는 것이, 귀엽기는 한데 이러다 의자가 넘어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강신혁은 어쩔 수 없이 의자 뒤로 손을 뻗어 그녀의 의자를 붙들었다.

다행히도 그것을 알아챈 엘레노어의 움직임이 멎었다.

“뭔 얘기든 들어줄 테니까 식 끝나고 말해.”

“그런데 나, 좀 있다 기사학과 대표로 인사해야 하는데……."

“허이고.”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일단 단상에 올라선 엘레노어는 이전까지의 모습이 거짓이었다는 듯 지극히 당당한 모습으로 기사학과에 대한 소개를 했다.

그러고 보면 작년엔 그 자리에 더글러스 페인이 있었던가, 강신혁은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련히 그 시절을 추억했다.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아마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 더한 변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진심 예쁘다.”

“눈 좀 봐. 빠져드네 , 그냥.”

“키 엄청 작은데.”

“3학년 맞아?”

“저 뒤에 앉은 사람이 약혼자래.”

“뭔 개소리야, 영국 공준데 무슨 한국인이랑 약혼을 해.”

“아니거든? 타임스고 가디언이고 저 둘이 데이트하는 사진이 1면이라니까!”

뭐라고?

타임스랑 가디언지 1면에 실렸다고?

강신혁과 엘레노어가!?

엘레노어가 왜 부끄러워했는지 단박에 그 이유를 알았다!

“고아라던데. 특성이 진화했단 얘기가 있더라.”

“와, 그럼 빽도 없이 순수능력빨로 영국 공주한테 장가드는 거?”

“어, 개쩐데. 협회에서 진즉 침 발라놨다는데 이걸 공주가 인터셉트를.”

“아모른직다, 도장 찍기 전엔 나도 꼬실 수 있다……!”

“설득력이…… 있어!”

신입생들은 제 딴에는 들리지 않게 한다며 조그만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었지만 강신혁의 귀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들려왔다.

아마 선생들 중 감각이 예민한 이들도 다 듣고 있으리라.

물론 지금 단상에서 가슴 쭉 펴고 인사를 하고 있는 엘레노어의 귀에도 들리겠지.

안 그러면 얼굴은 태연한 가운데 양쪽 귀만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모습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올리비아…… 나중에 한 번 손을 봐야겠어.’

하필이면 엘레노어와 강신혁이 사귀고 있는 것처럼 보도를 했다는 뜻은, 그녀가 강신혁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얘기.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기에 경고를 해둔 것인데, 설마 인형사라는 사실을 밝히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그건 쏙 감춘 채 엘레노어와 자신의 스캔들을 터트려버리다니.

인형사가 아닌 자신은 그저 작년도 신인왕을 달성한 평범한 소년일 뿐인데 공주와 약혼이라니 말이나 되는가!

‘그 사실 자체는 오해니까 별 일 있겠느냐마는…… 더 피곤해지겠네.’

누가 자신의 연애사정에 신경 쓰겠냐 싶어 여태까지 별 말 안 하고 다녔지만, 이젠 아예 외부에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딱 잘라 말하고 다니는 것이 클레어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오늘 못 보면 나 울 거야ㅜㅠ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보고 잔뜩 뿔이 났을 클레어로부터 곧장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어지간하면 쓰지 않는 히어로 유니버스의 귓속말 시스템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녀가 어떻게든 지금 자신의 심정을 강신혁에게 전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식 끝나는 대 로 갈게.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내가 네 방으로 갈래. 가도 돼……?

- 그래, 와.

강신혁이 클레어와 아무도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엘레노어의 인사가 끝났다.

그녀에 뒤이어 신영마도학회장의 인사 및 마법학과 소개가 시작되자, 엘레노어는 한숨을 내쉬며 자기 자리에 착석했다.

“……들어쏘?”

“응.”

“미안, 우리 언니가…… ”

“괜찮아.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니까. 게다가 이건 엘리도 당한 거잖아.”

“나는…… 응.”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입학식은 무사히 끝났다.

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분기탱천한 이나희가 달려드는 바람에 신입생들 사이로 강신혁의 나쁜 소문이 퍼지는 작은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강신혁은 무사히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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