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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화. < Chapter 48. 황금용은 무적군단의 꿈을 꾸는가 - 3 >

베이스캠프의 철거가 완벽하게 끝났다.

신은아는 마법진을 설치해 베이스캠프 일부를 보이지 않게 하고 보호하며 자연적으로 보강까지 하는 결계를 만들어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나라는 신은아 같은 대마도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신은아가 만들어낸 것은 말하자면 소규모 전진기지. 언제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와도 정예인력이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고, 유리한 환경에서 적을 맞이할 수 있도록 구축해놓은 비밀기지였다.

그러니까 정말로 그녀는 언젠가 정예부대를 구성해 아프리카를 정복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제 그것은 강신혁에게도 현실성을 띤 꿈이 되었지만.

“출항합니다!”

그렇게 초인들과 용병들이 탄 배는, 비록 제우스 길드가 통째로 전멸한 덕에 배 한 척이 사람 대신 몬스터들과의 전투에서 거둔 전리품으로 가득차기는 했지만, 왔던 때와 같이 열 척 그대로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항을 떠났다.

밤바다로 출항하는 배 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끔찍했어.”

“배들은 무사해서 다행이야……."

“빌어먹을 아프리카, 나 살아있을 땐 다시 오는 일이 없기를……."

“우리의 이번 원정이 의미가 있기는 했을까?”

“적어도 이번에 얻은 전리품으로 초인 무구는 잔뜩 만들어낼 수 있겠지……."

무척 짧은 기간 동안 머무른 곳이었지만 이만큼 강렬한 경험을 한 곳이 또 있었을까.

특히 대역류는 탑 랭커들조차 몇 번이고 목숨의 위기를 느꼈을 만큼 위험했다.

더욱이 전장 한복판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강력한 미지의 존재, 그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도 못 냈던 두 존재의 싸움은 그들을 한없이 위축되게 만들었다.

홀가분하게 떠나야 하는 순간임에도 얼굴에 온갖 시름이 묻어나는 초인들의 모습에, 강신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래서야 당분간 전 세계적으로 침체 무드가 되겠네……."

“한국만 빼놓고요.”

그의 혼잣말에 맞장구를 치는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레드슈즈 브리짓 폴센이었다.

그녀는 강신혁에게 윙크를 하며 다가와 은근슬쩍 그와 팔짱을 끼려다가 딱밤을 맞고는 튕겨나갔다.

“아우, 지독한 남자. 은근슬쩍 빈틈을 내줄 법도 하지 않나? 여자친구한테 안 이를 건데?”

“당신이 더 지독해. 내가 당신을 내 여자친구한테 이를 거야.”

클레어라면 이 여자가 사흘밤낮을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설사약을 만들어줄 수 있으리라 강신혁은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의 뇌리에서 방금 사악하기 그지없는 계획이 탄생했음을 모르는 브리짓 폴센은 새침한 표정을 만들어내며 그에게 또 투정을 부렸다.

"흥, 자꾸 이렇게 매정하게 굴면 나 한국 안 갈지도 몰라.”

“오지 마.”

“꺄하하하하! 정색하는 것 봐, 웃겨!”

진심으로 말한 건데 그녀는 요란하게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진짜 미친 여자 같았다.

더욱이 점점 이 여자의 강신혁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짜증났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이 여자의 원픽은 확고하게…….

“그래두 우리 언니가 있으니까 가야지.”

“무슨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아니, 진짜 귀화라도 하려고?”

“응, 들어봐요.”

귀화라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표정에 강신혁이 경악하고 있자니, 브리짓 폴센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왜 여태까지 초인 활동을 많이 안 했을 것 같아요?”

“본업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아냐?”

“그것도 있는데.”

“그것도 있구나.”

실소하는 강신혁의 어깨를 괜히 손바닥으로 탁탁 때리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러니까 덴마크는 초인 전력이 너무 약해요.”

그건 강신혁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사실 덴마크는 게이트 사태 발발 이후로 변해가는 사회에 적응을 그리 잘 하지 못한 케이스였다.

제대로 된 초인양성시설을 초기에 길러내지 못했고, 이는 인재의 외부 유출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

이 사태의 근원에는 덴마크와 그들이 속한 유럽연합의 반목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으나 이것은 또 다른 문제.

“우리나라도 영국 따라가려고 많이 애썼으니까.”

“그러지 말지……."

“그래서 초반에 많이 꼬였지. 암튼!”

아무튼 브리짓 폴센이라는 돌연변이가 어느 날 갑자기 최상위 특성을 개화하며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녀를 제외하고는 세계랭킹 5천 위 안에 드는 하이랭커조차 한 명 없는 수준이었으니 알 만한 일이다.

“인형사 씨도 알잖아. 나 혼자 아무리 뛰어나도, 옆에서 같이 춤 춰줄 사람 한 명도 없으면 활약하기가 힘들다니까?”

“조국에 애국심 같은 건 없어요?”

“있었지만, 뭐랄까.”

과거형이었다.

“난 그냥 어쩌다가 능력을 각성했을 뿐인데 나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나도 처음엔 강한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게 좋았고 나라도 지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부담을 주는 거야, 짜증나게.”

“과연.”

비록 자신이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그는 대충이나마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쏟아졌을 기대의 시선이나 그녀에게 요구되는 책임, 짊어지길 원하지 않았던 십자가는 그렇게 겹겹이 그녀의 등에 쌓였을 터다.

“좁쌀만 했던 애국심은 진즉 바닥나고, 이대로 가다간 내가 망가지겠다 싶어서 빠르게 책임감을 놔버린 거야. 그러니까 편하더라고요."

“거기서 책임감을 놔버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을 텐데, 대단하네.”

비꼬는 것이 아니라, 강신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국가와 개인이라는 가치를 저울로 쟀을 때, 비록 자신이 그 개인이라 한들 국가를 버리고 개인을 택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무수한 사람들의 원망, 바람, 기대 따위를 깡그리 무시하고 꿋꿋이 제 길만을 가는 것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길인가.

처음부터 도덕심과 보편적 사회관이 없었던 인간이라면 차라리 괴롭지 않았겠으나, 들어보면 그녀는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어라? 잠깐만. 혹시 우리 지금 분위기 좀 좋은가? 얘기가 좀 진지해질 것 같은데 장소 좀 옮겨서 얘기할래요?”

“전혀 아니니까 안심해요. 더구나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소리 바깥으로 안 퍼져.”

그가 개발해낸 집음기는 그 어떤 결계보다도 확실하게 소리의 외부 유출을 차단시켜주는 것이다!

“후……. 과거를 팔고도 남자를 방으로 끌어들일 수 없게 되다니, 비참해라.”

브리짓 폴센은 흑흑 우는 시늉을 했지만 강신혁은 그것이 머쓱함을 얼버무리기 위한 행동임을 파악하곤 웃었다.

“뒷얘기나 해봐요.”

“뒤로 하고 싶다고요?”

“계속 말 돌리면 나 간다.”

“내가 잘 돌려서 가버린다고……!?”

“당신 죽일 거야.”

“내가 그렇게 죽여준…… 미안, 미안해요! 농담!”

브리짓 폴센은 진심으로 분노한 강신혁에게 싹싹 빌어 용서받은 뒤에야 본론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힘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믿을 만한 동료들하고 같이 싸워보니까 너무 좋더라구.”

그 말에 강신혁은 몇 번인가 자신과 신은아와 함께 전장에서 활약했던 브리짓 폴센의 모습을 떠올렸다.

과연, 그때 그녀의 모습만 놓고 보면 어째서 악명이 퍼졌던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였었다.

하지만 그것은 옆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가 있어서 그랬던 건가,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믿을 만한 동료를 원하는 거라면…… EU 정예수호군 있잖아.”

“EU는 싫어.”

“응, 덴마크 사람이라 이거지. 노르딕 연합은 어때?”

“으으응, 취지는 좋은데 이런 쪽으로는 잘 뭉치질 못해. 그리고 사실 다른 북유럽 국가도 덴마크랑 비슷한 상황이라.”

그리고, 하고 브리짓 폴센이 덧붙였다.

“정말로 세계를 지키고 싶거든, EU도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아닌 당신들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번에.”

“아……."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명한 진심.

아니, 강신혁이 눈동자에 비친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터득했을 리는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영력으로, 그녀의 근원으로부터 선명히 뻗어 나오는 열기를 감지하고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귀화하겠다고.”

“아직 귀화까지는 아니지만, 생각중이에요. 당분간 한국에 머무르는 건 확정이고. 이미 초인협회에 협력신청까지 했는걸.”

“은아선배를 통해서 말이지.”

“응. 좋아서 죽으려고 했다니까. 언니도 차암.”

싫어서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강신혁은 생각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마음은 알겠으니까, 조금만 더 두고 볼게요.”

“시누이!?”

“한국 문화 벌써 익숙해졌구나.”

“드라마랑 영화 많이 봤어.”

하지만 방금 강신혁이 말한 두고 본다는 의미는, 그녀가 신은아와 어울리는 것을 두고 보겠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이 여자가 내 팀에 속할 생각이 있다면 수호황룡을 걸어주지 못할 이유도 없지.’

직접적으로 그의 팀에 속할 일이 없는 동기 3인방에게도 수호황룡을 걸었는데, 사지를 함께 넘어온 브리짓 폴센에게 특성을 걸어주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그녀가 어디까지 진심인지 모르고, 그녀와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당분간, 당분간은 그녀의 활동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야 그럼?”

“아니, 밤에 외로우니까 꼬셔보려고 왔는데.”

“돌아가.”

“쳇……."

@@@

이번 원정의 가장 큰 의의는 바로 아프리카로 향하는 바닷길을 다시 개척했다는 것이다.

물론 언제고 다시 게이트가 생길 수 있겠지만, 수십 년간 쌓여온 바다, 공중 몬스터를 정리했다는 것은 큰 소득.

언젠가 다시 아프리카로 진출할 날을 위해서라도, 인류는 이 바닷길을 꾸준히 청소하고 개척하리라.

“그러면 돌아가죠.”

“출발할 때와 달리 참 쓸쓸하네.”

“뉴스로도 안 나올지도 몰라.”

“곧 터지겠지. ‘아프리카 원정 실패, 아직 인류에게는 일렀다!’ 뭐 이런 식으로 헤드라인 넣고.”

“상상 가니까 그만둬라.”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정식으로 브리짓 폴센이 함께하게 되었다.

덴마크 정부는 그녀를 붙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 모양이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EU 또한 어떻게든 그녀를 회유해보려 여러 가지 떡밥을 던졌지만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길은 없었다.

사실 탑 랭커가 활동국가를 옮긴다는 것이 이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니었으나, 애초에 막가파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해오던 브리짓 폴센이기에 갑작스러운 한국행도 ‘씁, 어쩔 수 없지’ 정도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나중에 그녀가 한국으로 귀화까지 한다면 또 한 번 큰 난리가 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다.

“비행기 안 타고 뭐해요.”

“아, 잠깐 인터뷰.”

카메라 좋아하는 직업인답게 비행기에 타기 전 자신들을 쫓아온 기자들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인터뷰를 하던 브리짓 폴센은 강신혁의 부름에 쫄래쫄래 다가와 그의 곁에 붙었다.

정확히는 강신혁과 신은아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가."

“아니, 그 위치 좋네.”

“미워……."

“언니의 그 시선 정말 참을 수가 없네요!”

그때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기자 중 한 명이 브리짓 폴센이 강신혁과 신은아 사이에서 둘의 팔짱을 끼고 웃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죽일까?”

“사진 찍은 정도로 사람을 죽이지는 말고. 탑 랭커 한 명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인데 이 정도는 용납해줘요.”

“흐으으으..!"

한 명의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신은아는 정말이지 브리짓 폴센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지 않았지만 초인협회의 일원으로서 판단하자면 그녀는 결코 놓쳐선 안 되는 인재였다.

더욱이 이번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활약으로 십자낙인을 비롯한 몇 명의 탑 랭커는 랭킹 하락이 확정되었고, 그 자리를 레드슈즈, 즉 브리짓 폴센이 비집고 올라갈 것 또한 확정적이었으니…….

“앞으로 사이좋은 탑 랭커 트리오로 활약해보자고요!”

“너무 싫어……."

“……어째 예감이 안 좋은데.”

강신혁의 예감은 적중했다.

세 사람이 나란히 팔짱을 끼고 찍힌 사진이 각국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탑 랭커 정예팀 결성!?’ 따위의 헤드라인이 나붙었으니.

심지어 브리짓 폴센은 ‘한국의 탑 랭커와 좋은 인연을 맺었다.’, ‘장래적으로는 결혼하여 귀화하는 것이 목표.’ 따위의 발언을 마구 날려 인형사 신은혁의 안 좋은 유명세를 또 한 번 높이고 말았다!

실제로 그녀의 목표는 강신혁이 아닌 신은아일 텐데, 이 교묘한 여자는 강신혁을 위장으로 쓴 것이다!

“수호황룡 걸어주나 봐라……!”

“설명해. 처음부터 끝까지.”

“넵, 마님.”

한국에서 오매불망 강신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클레어는 츠쿠요의 지구 방문 소식과 더불어 브리짓 폴센의 발언을 듣고 고요히 분노했고, 강신혁은 하룻밤 내내 노력해 간신히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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