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 Chapter 48. 황금용은 무적군단의 꿈을 꾸는가 - 2 >
각국의 대표들은 사흘 후 아프리카를 떠나 본국으로 복귀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 후로 벌어진 탐색은 최대한 안전을 중시하여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베이스캠프는 무척 조용했고, 어딘가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왜 아니었겠는가. 초인 전력의 밑바닥까지 탈탈 털리고 돌아가게 생겼으니.
그냥 털린 것도 아니다.
이제 좀 베이스캠프를 건설하고 탐색에 속도가 붙나 싶은 시점에 대역류가 발생하지를 않나.
심지어는 그와 동시에 업계 1위 용병단인 제우스 길드가 시커먼 속내를 드러내 같은 용병들을 습격하질 않나.
종국에는 초인들은 끼어들 틈도 없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를 끔찍한 힘의 여인네들이 치고 박고 싸우며 천지를 진동시키더니 둘 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번 일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직까지 인류가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며.
심지어는 초인사회 어디에 배신자가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뼈저린 교훈까지 안겨주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인류가 지금껏 쌓아올린 힘이 아프리카 대륙에 어느 정도는 통한다는 것.
인류의 최강자 수준에 이르면,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마음껏 날뛸 수 있다는 것.
내버려뒀으면 초인사회의 암 덩어리가 되었을 배신자들을 빠르게 발견해, 최소한의 피해만을 내고 제압한 것.
[불필요하게 쏟아지는 시선이 너무 많군요. 저 미천한 것들의 눈을 모두 뽑아버릴까요, 모루?]
“부탁이니까 관둬요, 츠쿠요.”
당연하게도 그 모든 일에 강신혁이 연관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에 진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대역류에 휘말린 영국의 가디언들을 구해내고, 그 와중에 베이스캠프에서 발생한 이레귤러 게이트를 감지하고 늦지 않게 달려가 제우스 길드를 문자 그대로 짓밟고 거너즈를 포함한 용병들을 살려낸 것까지.
심지어는 이번 대역류에서 신흥 강자로 떠오른 정체미상의 ‘R’마저, 강신혁이 소속된 비공식 무력집단 마스크드 바커스의 일원이 아니던가.
물론 뇌제, 신은아의 활약도 굉장했다.
대역류를 축소시킨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전장에 흩뿌리던 마력설(雪)을 조율해 인간을 보호하고 대량의 몬스터만을 폭사시킨 것은 대역류 현장에 있었던 이라면 그 누구도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한국이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지.’
공교롭게도 제우스는 한국에서 탄생한 용병단이다.
그런 그들의 배신을 한국의 초인이 알아내고 해결했으니, 여러모로 작년 파리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끔찍한 과(過)를 저질렀지만, 두 번 다 그보다 큰 공(功)으로 덮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한국은 초인 최강국의 자리를 굳건히 하는 데 성공했다.
모두 이번 원정에서 돌아가는 대로 인형사의 랭킹 갱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데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강신혁은 그것보다도, 이번 원정에서 알아낸 자신의 특성의 진정한 가능성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동기들의 특성 발현, 엘리의 특성 진화, 심지어는 헬의 진화까지……. 무생물과 생물을 아우르는 범용성 높은 힘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근원을 진화시키는 힘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전 파리에서 있었던 이나희의 특성 진화 또한 그의 능력에 영향을 받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강신혁과 아티팩트 제작을 함께하는 이나희는 그의 특성에 간접적으로나마 가장 오랫동안 노출된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강신혁의 지나치게 빠른 성장 또한 스스로의 특성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것을, 지금이라면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태까지 이것을 알지 못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강신혁이 줄곧 타인을 상대로 특성의 힘을 유지시켜줄 정도로 영력과 황룡투기가 넘쳐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황룡투기는 무려 SSS-랭크이고, 영력도 SS+랭크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앞으로는 얼마든지 능력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나 자신은 이미 24시간 특성의 영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내게는 더 실험을 할 의미도 없고.’
마지막 한 가지 조건만을 남겨둔 특성의 진화를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의 아군임에 확실한 이를 대상으로 수호황룡을 걸어 유지시키는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우선 엘레노어, 그리고 이번에 각성한 그의 고아원 동기들.
학교로 돌아가면 이나희, 백인하.
신은아에게도 걸어줄 생각이었고, 물론 클레어에게도.
‘……버틸 수 있으려나?’
아니, 이것도 특성을 수련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의욕이 솟았다.
더욱이 황룡투기는 원래 회복속도가 빠른데다, 체력이 회복되면 함께 회복되는 특징이 있어 체력 포션으로도 물론 회복을 시킬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포션을 달고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도전할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모두가 성장해준다면, 신은아가 말했던 ‘소수정예로 아프리카를 공략한다’는 생각도 꿈이 아니게 될 터다.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하나둘씩 받아들여 차근차근, 세력을 늘리는 거야. ……세력?’
확실히, 그의 능력을 살리기에 가장 좋은 조건은 바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오직 몬스터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살아가던 그땐 분명 거대 길드의 수장이 되어 몬스터 집단을 쓸어버리는 꿈도 꾸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생각이 현실적인 계획으로 부상하다니, 그저 실소가 터져 나왔다.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리셨나 봐요, 모루.]
“네. 앞으로 뭘 할지, 좋은 계획이 생겨나서.”
[중요한 순간이네요. 모루가 기뻐하시니 저도 기뻐요.]
- ……슬슬 불여우를 추방시킬 때가 된 것 같습니다만, 회원님. 그 작업은 아직이신가요?
아, 그러고 보면.
강신혁은 품에서 수리 및 개조가 끝난 철선을 꺼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끝났어요. 츠쿠요, 확인해 봐요. 신염의 화로로 단련해서 모르긴 몰라도 성능이 좋아졌을 거예요.”
[아.]
츠쿠요가 나락문의 입구에 선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조금 전, 대지의 정화 작업도 완전히 끝나 그녀가 차원 퀘스트를 계속할 명분이 사라졌던 것이다.
하지만 강신혁에게 자신의 무기를 맡겼으니 그것이 수리될 때까지만 있겠다며 관리자에게 빡빡 우겨 버티고 있던 것인데…….
[너, 너무해요, 모루. 이렇게나 빨리 완성하시다니…… 꺅!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아티팩트가 되었잖아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강신혁을 원망하며 자신의 인벤토리로 철선을 회수한 츠쿠요는 바뀐 아티팩트의 능력을 확인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차피 처음부터 현계한도를 초월한 물건이었기에 아티팩트를 직접 만들어놓고도 성능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강신혁은, 이번에 신염의 화로로 철선을 재가공하면서도 물론 성능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츠쿠요가 서운해 하던 것도 잊을 정도로 기뻐하는 것을 보면 잘 만들기는 한 모양이었다.
- 아주 잘 하셨습니다, 회원님!
[잠깐, 모루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키스를……!]
여우 모습에서 다급히 본체로 돌아오려는 츠쿠요를 관리자가 과감하게 쫓아냈다.
그래도 차원 퀘스트를 진행한다면서 며칠간 붙어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강신혁도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 드디어 시끄러운 것이 사라졌군요. 500,000HP 보너스!
“어디서 관리자님한테는 징계 같은 거 안 떨어지나 몰라.”
- 제게 징계를 주실 수 있는 분은 회원님뿐입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혹시 자신은 VIP 뒤에 있는 VVIP 같은 등급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강신혁은 쭉 기지개를 켰다.
내내 츠쿠요가 차지하고 앉아있던 어깨가 지금은 가벼웠다.
원정대는 이제 아프리카를 떠난다.
적어도 앞으로 당분간 히어로 유니버스와 요르문간드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 일은 없으리라.
“아."
“선배.”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혼자서 근처의 적당한 게이트라도 찾아볼까 돌아서던 찰나 신은아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베이스캠프 전체에 주위 마나를 끌어들여 성능을 유지시키는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마법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전부 마법을 잘 다루는 건 아닌데, 신은아는 어디까지나 마력과 번개를 잘 다루는 특성을 갖고 있을 뿐인데 마법 전반에 능했다.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배운 거야.”
“어쩐지.”
“내가 무지 똑똑하니까 가능했어.”
그녀의 지능이 높다는 건 강신혁도 잘 알고 있다.
아니, 애초에 마법 계열 특성은 신체적 재능이 뛰어난 이보다는 두뇌가 뛰어난 이들에게서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신은아는 두 개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두뇌를 자랑했을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마음을 줄 곳이라곤 히어로 유니버스밖에 없었던 신은아가 그녀를 손녀처럼 귀여워하는 다른 회원들에게서 열심히 마법을 전수받았다면…….
“또, 또 그런 눈으로 봐.”
“방금은 선배 잘못이지. 연상이 될 만한 발언이었잖아.”
“자 봐, 아니야.”
신은아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양손을 꼭 붙잡았다.
어째 저번 선언 이후로 강신혁에게 접근하는 방향성이 확연히 달라진 것 같은데.
더구나 다른 사람의 눈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 실로 무시무시했다.
“이러기야?”
“내 얼굴 똑똑히 봐, 그 얼간이 같은 표정 바뀔 때까지 안 놔줘.”
아무래도 츠쿠요가 신은아에게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고 간 것 같았다.
그에게 짜증을 낼 때만 해도 묘한 체념이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신은아와 시선을 마주하며 그녀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지런히 정리한 앞머리.
새카만 실타래를 올올이 풀어 늘어놓은 듯한 모습에는 츠쿠요의 흑발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다소 눈매가 날카롭지만, 황금으로 물든 그녀의 눈동자는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깊고 아름답다.
더욱이 시원하게 뻗은 콧대며 앙증맞게 맺힌 콧방울, 도톰하고 작은 입술은 동양미의 극치였다.
우유를 찍어 발라도 티가 안 날 것 같은 맑고 하얀 피부도 그렇다.
뭐하면 동양의 미인의 기준을 그녀로 바꿔도 될 것 같았다.
‘흠, 더 예뻐진 것 같네.’
초인은 스테이터스가 오를수록 신체의 모난 부분이 교정되며 몸매도, 물론 얼굴도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상위 랭커쯤 되면 모두가 원판이 어지간히 찌그러져 있지 않은 이상은 미남미녀가 된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물론 원판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깜짝 놀랄 만한 미모가 완성되는데, 신은아는 타고난 미모부터가 훌륭했기에 무한한 마력으로 영육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지금은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이라 해도 새삼스레 놀랄 만한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잠깐, 화장도 한 것 같은데.’
신은아는 본래 화장을 어지간히도 하지 않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문제는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로도 다른 여자들을 미모로 압살하는 탓에 여성 초인들로부터 원망을 사고는 했는데.
지금은 아주 가볍게, 한 든 안 한 듯 매만진 게 느껴졌다.
이유라고 하면 한 가지밖에 없다.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
강신혁이 기쁨과 감탄, 고뇌, 미안함 등으로 가득 차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문득 신은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게 빤히 보면 부끄러워……."
“난리 났네."
- 가이아여, 내게 저 불여우를 한 대만 걷어찰 수 있는 힘을…….
신은아가 먼저 고개를 돌렸으니 승부는 강신혁이 이겼다.
언제부터 눈싸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것으로 면책권을 얻었다.
강신혁은 기왕 손을 잡은 김에 그 손을 통해 자신의 특성을 그녀에게 적용시켜주었다.
“어……?”
“이번에 엘리의 특성이 진화하면서 특성이 SSS-랭크가 됐어. 그 전에 비능력자였던 내 동기들이 각성을 하기도 했고. 내 특성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결론을 냈어.”
“그래서…… 이걸?”
신은아가 고개를 살짝 들며, 자신의 몸에 흐르는 강신혁의 영력과 황룡투기를 마력으로 감지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여주며 말했다.
“응. 앞으로는 계속 두르고 있어. 선배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야.”
“……계속.”
“그래. 특성의 효과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만약에라도 끊어지면 다시 걸어줄게.”
“계속……."
신은아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안겨있는 것 같아.”
“응, 아냐.”
- 이 불여우도 지구에서 추방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신은아의 상태는 심각했다.
나중에 그 현장을 발견한 브리짓 폴센이 신은아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며 강신혁을 귀찮게 했지만, 아직 그녀에게는 확신이 없었던 강신혁은 자신의 특성의 효과에 대해 함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