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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화. < Chapter 47. 비와 여우 - 5 >

탑 랭커들이 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대역류는 그 범위를 크게 확장하고 있었다.

다크 커튼이 다급히 마력을 빨아들여 아군을 지키는 보호막으로 전환하는 마법을 펼쳤고, 스톤 그라운드는 생존자들의 눈앞에 드높은 석벽을 세우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십자낙인도, 울트라포스도, 레드슈즈도.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랭커들이 필사적으로 몬스터의 파도를 막아서고, 거슬러 오르려 애썼다.

“빌어먹을!”

다크 커튼이 외쳤다.

“대체 왜 이런 심부까지 탐색대를 보내서 이 사달을 만드는 거야!”

“시끄러워, 사태를 해결하고 나서 투정을 부리든 국제고소를 하든 하라고!”

“언니, 언니 어디 있어!”

레드슈즈 브리짓 폴센은 전에 없던 다급한 기색으로 전장을 활보했다.

언제나 여유를 부리듯 움직였던 - 그래서 초인들에게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던 - 그녀가 지금은 있는 힘껏 진동을 퍼트리며 날뛰고 있었다.

힘껏 외치는 고함만으로 최소 SS랭크에 달하는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허공을 딛는 발걸음에서 퍼져 나온 진동이 그런 몬스터들의 체내를 진탕시켜 무릎 꿇렸다.

여느 대마도사 못지않은 활약에 사람들은 여태껏 그녀가 과소평가되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년, 진즉부터 힘을 쓸 것이지……."

“큭, 안쪽에서 마기의 파동이 온다! 다크 커튼!”

“알고 있다고!”

“은아 언니이이이이!”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어떻게든 대역류를 여기서 막아내야만 한다는 일념에 초인들은 편제 구분을 할 틈도 없이 무질서하게 뛰쳐나왔고, 뒤에 남겨진 용병들 따위는 솔직히 알 바가 아니었다.

“뒤쪽에도 게이트 반응, 정확히 한국 베이스 캠프가 있는 방향이다! 이레귤러 게이트인데……!”

“젠장, 무시해! 지금 장비 날아가는 거 걱정하게 생겼어, 여기서 전부 무덤에 들어가게 생겼는데!”

“빌어먹을, 저 악마 같은 놈 좀 막아봐!”

붉게 물든 대지 위로 수 개체씩이나 모습을 드러낸 SSS랭크의 몬스터, 크림슨 솔져의 위용은 탑 랭커가 아니고선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세계랭킹 5천 위 안에 드는 하이랭커들이 죽어나갔고, 탑 랭커라고 해도 1대1로 상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빌어먹을, 그런데 저 괴물 새끼는 어떻게 저놈들을……!”

대역류의 근원, 영국군이 고립된 곳에서 악마들을 상대로 대낫을 휘두르며 돌진하는 인형사의 모습을 뒤늦게 달려온 초인들이 모두 보았다.

그의 능력을 연금술사의 포션 덕이라며 과소평가하는 이도 많았지만, 아프리카 원정을 오면서 그런 오해는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랭킹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밀려나게 될 현 랭킹 3위의 다크 커튼은 여태 이를 악물며 그것을 부정해왔다.

‘젠장, 이래서야……."

하지만 지금은 감히 그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탑 랭커 둘이 달라붙어야 간신히 무릎 꿇릴 수 있는 괴물들을 혼자서 몇 마리씩이나 손쉽게 해치우고 있는 인형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그가 어떤 의미에선 현 랭킹 1위 뇌제보다도 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 대중화민국의 속국에서 나온 것들이……!’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초인으로 인정받으며 수십 억 인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이 불쾌한 현실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저 소국에서 나온 두 명의 초인 덕분이라는 사실을.

“젠장…… 젠자아아아아앙!”

다크 커튼, 장진명은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며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동했다.

전장 곳곳에서 그처럼 능력의 한계까지 쥐어짜내는 이들이 속출했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대역류의 확산은 마치 미리 계산이라도 해둔 듯 치명적이었고, 뇌제가 그것을 틀어막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미 대륙 끄트머리에 설치된 베이스캠프까지 집어삼켜졌을 터였다.

만약 여기서 인류를 대표하는 초인이 몰살이라도 한다면? 그런 섬뜩한 상상을 몰아내려 애쓰며, 초인들은 악을 쓰며 마력을 쥐어짜내는 것이었다.

한편 하늘에서 헬과 함께 공중 몬스터를 이끌며 지상의 몬스터 숫자를 줄이고 아군의 희생자를 막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하고 있던 엘레노어는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강신혁의 전투를 지켜볼 수 있었다.

‘신혁…….'

그는 자신을 비롯해 무려 영국군 전원에게 강대한 버프를 걸어주고도 쌩쌩한 모습으로 악마들과 맞서고 있었다.

심지어 악마들이 모두 쓰러지고 나타난, 힘의 끝을 감히 파악할 수 없는 용암의 괴인과 당당하게 맞서 싸우기까지.

‘도와줘야 해. 하지만 내가? 가능할까?’

둘의 전투는 격렬하고 극적이었으며, 감히 그녀가 끼어들 틈이 없어보였다.

그녀 또한 근접전투의 묘리에 대해서는 강신혁만큼이나 재능이 있다고 자신했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앞으로는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없을 것 같았다.

단순히 거대한 힘만이 아니다. 저들 사이에서 오가는 것은 아득히 높은 검리를 담은 궤적.

자신이라면 한 번 걸려드는 순간 블랙홀에 붙잡힌 빛처럼 붙잡혀 비틀리고 소멸하게 될, 잔혹한 멸망을 담은 궤적이다.

‘가야 해! 내가!’

그 와중에 기어이 강신혁이 부상을 입었을 때, 그녀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창을 들어올렸다.

부상으로 인한 틈을 메꿔주는 정도는 자신이 할 수 있으리라.

비록 블랙홀에 붙들려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지라도,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은…….

하지만 그녀의 목숨을 건 각오가 무색하게도, 강신혁은 홀로 괴인을 쓰러트려버렸다.

“어……?”

그런데 그 직후 일어난 광경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괴인이 쓰러진 자리에 암흑의 게이트가 열리며 생전 처음보는 아름다운 여성이 급소만을 가리는 경갑옷을 착용한 채, 검을 쥐고 나타난 것.

강신혁은 그 여자를 보며 눈을 부릅떴지만, 직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쪽도 또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동양풍 복장의 여성.

‘이게, 무슨……?’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엘레노어는 절로 긴장하며 창을 꼭 쥐다가, 자신이 어째서 긴장감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게이트 안에서 나타난 여성이든 강신혁을 대신해 그녀와 대치한 여성이든, 감히 자신은 바라볼 수도 없는 영역에 이른 무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보냈어? 보고 싶었는데…….]

게이트 안에서 나타난 여성이 눈썹을 기울이며 애석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맞서는 여성이 품에서 꺼낸 철선을 들어 입가를 가리며 까르륵 웃곤 대꾸했다.

[후후, 역겨우니 관둬요.]

[정말로 보고 싶었는데…….]

[자,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죠. 아직 이 세상은 우리를 견뎌내지 못해요. 아무리 당신이 어둠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그 정도 이치는 알 것이라 믿어요.]

[나는 파괴를 위해 왔으니, 결과물은 알 바가 아니야.]

[나중에 반대편에서 후회하겠네요. 하긴 언제나 그래왔죠?]

둘에게서 오가는 대화가 무슨 의미를 띠고 있는지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사실은 그녀가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부터가 본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엘레노어가 타고난 고귀한 자질, 그리고 그것이 눈을 뜨게 도와준 강신혁의 영력과 특성의 버프.

[그러면 시작할까.]

갑옷을 입은 여자가 검을 들자, 돌연 하늘에 먹구름이 맺히더니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기상변화에 놀랄 만도 했지만, 엘레노어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확히는 여자가 들고 있는 검에서.

‘신혁의 검……!?’

분명했다.

지난 1년 내내 강신혁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바로 그 검이, 여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다만 평소 구멍이 뚫려 있던 가드 부분에 시커먼 무언가가 틀어박혀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어쩜, 모루의 역작을 그렇게 천박한 꼴로 만들어놓다니. 드래곤 하트를 스스로 분지른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나요?]

[임시조치일 뿐이야. 대신 네 심장을 뽑아 박으면 그럴듯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저 검은 벌레와 같은 방을 쓰라니…… 사양이에요!]

여자가 철선을 거칠게 휘둘렀다.

부채로부터 피어난 불꽃이 그녀를 감싸고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며 일대에 내리는 눈을 날려버렸다.

허공에서 펑펑 터져나가는 마력의 잔재를 보며 비로소 그 눈이 단순한 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두 여자가 본격적으로 충돌했지만 지금은 둘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엘레노어는 뒤늦게 공중 몬스터들을 떠올리곤 뒤돌아보았으나 이미 늦어있었다.

그녀가 타고 있는 헬을 비롯한 스파이크 와이번들은 섬세한 기동력으로 그것을 피해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공중 몬스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피하지 못해 터져나가고 있었다.

“유, 유도. 유도해야 해!”

- 가오오오오오!

이대론 전장의 초인들도 위험해진다.

엘레노어는 헬과 스파이크 와이번들에게 부탁해 거센 바람을 만들어냈다.

어떻게든 내리는 눈의 방향을 틀어 초인들을 보호할 생각이었는데, 평범한 눈처럼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것들이 품고 있는 짙은 마력은 쉽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헬, 부탁이야……!”

- 구아오오오오!

헬이 이끄는 스파이크 와이번들은 결국 중간에서 가시를 쏘아내 눈송이들을 일일이 터트리는 방법을 생각했다.

눈을 조종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이었지만, 문제는 그렇게 일일이 터트리기엔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 돼, 이대로는…… 아아!?”

구원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대역류의 확장을 막고 있던 뇌제, 신은아가 전장에 내리는 눈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지간한 초인의 능력으로는 감히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은아는 감히 그것들의 마력 권한을 빼앗아와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여자가 아무 생각도 없이 만들어낸 눈송이들이 신은아의 통제를 따라 재배열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인간을 피해 오직 몬스터에게 날아들어 목적한 몬스터 무리만을 터트리는 눈송이는, 누가 보면 처음부터 몬스터를 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착각할 지경!

휘몰아치는 눈과 불꽃의 폭풍 속에서 싸움을 벌이던 여자들도 그 변화를 곧 알아차렸다.

[음..?]

[후후, 재밌는 짓을 하지요. 어쩌면 저 아이가 전장에 있는 것을 안 당신이 꾀를 낸 것일까요?]

[그럴 리가. 나는 거울의 앞면을 파괴해!]

[그렇겠죠! 하지만 결국 모두 무너질 거예요!]

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끔찍했지만 두 여자의 격돌만큼 참혹하지는 않을 터였다.

신은아의 활약으로 간신히 한 숨을 돌린 엘레노어는 뒤늦게, 둘의 격돌에 정면에서 타격을 받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언니.”

두 여자는 자신들의 전투가 가져올 결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맞부딪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서로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패배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탓에 둘의 근처에 있던 영국의 초인들에게 위해가 닥쳐오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거기서 멀어지려고 애썼지만 둘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마력폭풍이 그들의 몸을 마비시켜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엘레노어는 부채를 든 여자가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완전히 착각이었다.

그녀는 단지 갑옷을 입은 여성을 막아내고 물리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인간들을 지키는 데엔 조금도 흥미가 없었다.

“안 돼.”

이러다 정말로 위험해진다.

둘의 싸움에서 발생하는 충격파 하나하나가 그들에게는 목숨의 위협이 되었다.

특히 검을 든 여자에게서 끊임없이 발생하며 주위를 휘도는 눈송이, 그 파편 하나라도 잘못 닿았다가는 그녀의 언니, 올리비아 공주는 덧없이 죽음을 맞이하리라.

“안 돼!”

강신혁이 다쳤을 때는 반응이 조금 늦었지만, 이번엔 늦지 않았다.

엘레노어는 거창을 들어 지상을 겨누고는, 거부감을 보이는 헬을 이끌고 유성처럼 낙하했다.

“비켜어어어어어!”

- 쿠아아아아아!

주인이 마음에 들어 하는 암컷이니 한 번만 봐주지, 헬이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자신이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지금 그런 잡생각 따위에 매달릴 겨를이 없었다.

정면으로 창을 겨누고, 저 여자들이 만들어내는 마력의 수렁에서 오직 한 명 언니를 구할 생각으로.

“하아아아아아압!”

그녀는 하강했다.

전신에 강신혁이 불어넣어준 황금의 용을 휘감은 채로!

-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켜, 특성 [게 볼그(SS)]가 한계를 돌파해 [게 볼그(SSS-)]로 진화합니다!

- 모든 스테이터스가 한 단계씩 성장합니다. 힘과 민첩, 마력이 추가로 한 단계 성장합니다!

- 새로운 특수능력 스테이터스의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조건을 추가로 만족시킬 경우 획득이 가능합니다.

만물을 성장시키고 진화시키는 강신혁의 특성이, 그 화려한 본질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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