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251화 (251/345)

251화. < Chapter 46. 아프리카 개척 - 4 >

세계랭킹 2위, 스톤 그라운드는 근접특성을 지닌 초인 중 가장 마법사 같은 능력을 지닌 자였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매개로 대지를 다루는 주술적인 능력의 주인이었는데, 바다 한가운데 섬을 만드는 것까지는 무리여도 모래사장을 뭉치고 늘려 임시로 부두를 만드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또한 일반적인 암석보다 그 경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바위로 이루어진 성채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저 정도면 그냥 마법사 아니야?”

“실제로 처음엔 마법을 배웠다고 해. 바보 같아.”

신은아는 스톤 그라운드의 능력 행사로 단숨에 항구와 전진기지를 확보하는 광경을 보면서도 신랄하게 내뱉었다.

“저건 마법보다 훨씬 제한이 많고, 전환도 자유롭지 못해. 애초에 마나가 아닌 신체에 기반을 두는 힘이야.”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법이 아니라는 거네.”

“다만 그래서 유리한 점도 있어. 몸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만들어낸 구조물도 제법 오래 버텨준다는 거.”

스톤 그라운드가 계속해서 힘자랑을 하는 가운데, 온갖 버프 능력자들이 달려들어 스톤 그라운드의 기력을 보조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 진영의 캠프 구축에 도움을 주는 조건일 터였다.

“여기까지 와서 드디어 나라별로 나뉘는구나. 저 사람 캠프 설치하는 거 하나로 치사하게 구네.”

그 어떤 버프 능력자보다 끝내주는 버프를 걸 수 있는 주제에 멀뚱멀뚱 스톤 그라운드의 활약을 지켜보고만 있던 브리짓 폴센이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버프 능력이 있으면서 스톤 그라운드를 거들어주지 않는 것은 강신혁도 매한가지인 터라, 그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이곤 답했다.

“그래도 성벽은 둘러줬잖아요. 나라별로 나뉘고 자시고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면 국적 불문하고 같이 막아야 하니까.”

저번 차원 퀘스트에 스톤 그라운드를 데려갔으면 굳이 금괴를 화로에 일일이 정련할 것 없이 금방 끝났을 텐데, 하는 멍청한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인형사 씨는 성벽 같은 건 못 만들어요? 이것저것 엄청 잘 만들잖아.”

그때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브리짓 폴센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염인도 없는 상황에 그 노가다를 다시 할 자신은 없었던 강신혁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못 만들어요. 내가 건축가도 아니고.”

“괜찮아, 후배가 나설 필요까지도 없어.”

“어라? 저기 저 아저씨?”

놀랍게도 한국 진영에는 건축 계열 특성의 랭커가 있었다!

박무진이라는 하이랭커였는데, 단단한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특기 하나만 가지고 구조물을 이용한 방어나 구조물의 무게를 살린 투사를 비롯한 원거리 공격 등을 자유롭게 해내는 것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이지만 어디까지나 능력의 근간은 건축이었던 것이다.

“와, 아저씨 멋져요! 파이팅!”

“엇, 레드 슈즈……!?”

한국 진영의 캠프를 건축하는 박무진을 보고 눈을 빛낸 브리짓 폴센이 그 근처로 달려가 춤을 추며 버프를 주기 시작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너무 멋져! 힘내라!”

“버, 버프입니까 이거? 흐, 흐히. 감사합니다.”

박무진은 입 꼬리가 느슨해지고 어깨가 덩실덩실 흔들리며 종전의 2배는 빠른 속도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아마도 그녀의 버프 능력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강신혁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초인사회에서는 그리 평판이 좋지 않은 그녀이지만 좌우지간 예쁘고 몸매 좋지 않은가.

글래머러스한 미녀가 자신을 응원하며 춤까지 추는데 기운이 나지 않을 남자는 드물었다.

“조고 여우야.”

“왜 R이 화를 내는 거야.”

“여우야!”

자신에게는 없는 프로포션으로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매혹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브리짓 폴센에게 분노한 엘레노어가 모래사장을 퍽퍽 짓밟으며 화를 냈다.

미안하지만 그런 행동이 그녀의 작은 키와 어우러져 더더욱 초등학생 같은 인상을 주니 그만했으면 하는 것이 강신혁의 바람이었다.

반면 신은아는 뚱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더니 툭 내뱉었다.

“아예 눈치가 없는 건 아닌가봐.”

“그만큼 선배한테 정성이라는 거지, 아야.”

신은아가 강신혁의 등을 퍽퍽 때렸다.

하지만 실제로 브리짓 폴센은 이번 원정에서 빠지는 일 없이 제법 열심히 싸웠고, 한국 초인들은 그녀를 제법 호의를 품은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도 베이스캠프를 건설하는 데서 한껏 춤을 추며 끼를 발산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호감을 얻어내고 있지 않은가.

저게 다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 바로 그녀가 한국으로 귀화하기 위한 포석을 까는 행동인 것이다.

“절대 싫어.”

“친한 언니동생 사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아?”

“방심하면 수작을 부려올 거야.”

“그렇게 무례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아니, 아무 말도 안했어.”

같이 게이트에 들어가 싸우면서 그녀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제법 걷혀 친근감을 갖게 된 강신혁이었으나 그가 브리짓 폴센을 두둔하는 것을 알아차린 신은아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후배도 절대 넘어가면 안 돼.”

“괜찮아. 나는 이미 임자가, 아야. 아야.”

그 뒷말은 절대 못 잇게 하려는 듯 신은아가 울상을 지으며 그의 등을 퍽퍽 때렸다.

동시에 어깨 근처에도 타격감이 전해졌으니, 다름 아닌 엘레노어의 것이었다.

클레어와 사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까지 왜? 아니, 어쩌면 그냥 평소에 쌓인 것을 이때다 싶어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짜 불합리해.”

“매력적인 게, 죄.”

“그 말 어디 다른데 가서 하지 마요. 오그라드니까.”

- 후, 회원님의 죄가 실로 깊습니다. 불여우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말라고 관리자가 그렇게나 얘기를 했는데…….

아니 그럼 다른 여자와는 말도 섞지 말라는 얘기인가.

강신혁이 이 풀 데 없는 억울함을 어디에 토로해야 하나 한탄하고 있는데, 그를 퍽퍽 때리던 엘레노어가 문득 말해왔다.

“영국, 조금 보고 올래.”

“대놓고 구경 가면 이상하니까 헬 타고 공중정찰 한다면서 다녀와요.”

“응. 고마워.”

그의 배려에 엘레노어가 때려서 미안했다는 듯이 어깨를 살살 문질러주고는 떠나갔다.

신은아가 혀를 차며 그녀를 째렸지만 그녀는 깔끔하게 그것을 무시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본 이들 사이에서 인형사 카사노바 설이 조심스레 퍼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강신혁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

성벽을 쌓고 캠프를 건설하는 중에도 전투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결계 지우기에 이은 마법 폭격 콤보로 인해 해안선에서 죽죽 밀려났던 몬스터 부대가, 죽어도 이 땅을 인간들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는 듯 보다 많은 세력을 이끌고 몰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상에 있을 때와 대륙에 진입했을 때와는 초인들의 전력도 달랐다.

선상에서는 어디까지나 원거리 능력자들에게 맡기고 끙끙댈 뿐이었지만, 본디 초인 중에는 근접 능력자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고작 이 정도냐!”

“확실히 초입이라 그런지 A랭크 이하의 몬스터도 상당히 많이 보이는구만!”

“이대로 쭉쭉 밀어붙여! 여기서 회수한 몬스터 사체로만 본전은 건질 수 있을 테니까!”

“이거 사체 값 폭락하는 거 아냐?”

“역시 여기 안 왔으면 망할 뻔 했다니까.”

물론 몬스터 가운데에는 마구잡이 동족포식과 번식으로 인해 태어난 강한 변종이 많았지만, 지금 전투를 치르는 이들 또한 초인들 중에서 강한 자들만 고르고 골라서 모인 것.

단단한 돌처럼 뭉친 인류 최전방의 전사들이 한 마음으로 밀어붙이니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십 년간 진화해온 몬스터들도 별 도리가 없이 밀려났다.

적어도 지금은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슬슬 나라별로 갈라지기 시작하네.”

진입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에너지를 회복할 겸 쉬고 있던 강신혁의 눈에는 전장의 상황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스톤 그라운드가 세워놓은 성벽에 걸터앉아, 어쩌다 초인들의 포위망을 뚫고 성벽까지 접근해오는 몬스터들만 요격하면서 그는 한가로이 중얼거렸다.

“저러다 수준 높은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금세 무너질 텐데.”

“안 그래도 실패할 원정이야. 인간들 입장에선 변명에 한 줄이 추가되었으니 다행이네.”

강신혁과 마찬가지 이유로 그의 곁에 걸터앉아 전투를 구경하고 있던 신은아는 여전히 신랄한 말투를 고수하며 초인들을 평가했다.

“전력을 잃고 도망쳐서는 그것 때문에 또 분쟁이 시작되겠지. 안 봐도 뻔해. 항상 반복되어왔는데 고쳐지지 않아.”

“쌓인 게 많은가봐.”

“초인협회에 들어오고부터 계속 봐온 광경이니까. 인간들은 남의 어리석음을 탓할 줄은 알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은 인정하지 않아.”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닌 신이라도 되는 듯한 말투였다.

하긴 아까 그녀가 내보인 위용을 생각한다면 납득이 간다.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인간도 감히 사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다루는 그녀가 보기에, 저만한 능력으로 아등바등 순위 다툼을 하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 머저리처럼 보일 터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녀의 부모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또 어떨까, 궁금했지만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내 역할은 최대한 피해를 적게 보는 시점에서 인류를 퇴각시키는 것. 아프리카는 군단을 몰고 와서 해결될 게 아냐. 소수정예로 와야 해.”

“계획이 있구나.”

“있어. 아프리카를 가만히 놔두면 언젠가 큰 일이 난다는 건, 히어로 유니버스를 통해서 어릴 때부터 깨닫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그 시점에서 진지한 눈으로 강신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후배 같은 능력자들을 모아서 게릴라 작전을 펼치는 거야. 대륙에서 몬스터 세력을 이루는 구심점만 골라서 파괴하는 것을 반복하면 승산이 있어. 하지만 아직 내 기동력과 무력에 따라올 만한 인재가 얼마 없어.”

“나도 아직 멀었는데.”

“후배는 충분해. 공간이동 능력도 있고, 모든 걸 강화하는 능력도 있고, 본신의 전투력도 뛰어나고, 마력에 우위를 갖는 능력까지 있으니까. 가능하면 조금만 더 공격력을 끌어올린다면……."

역시 세계랭킹 1위의 평가는 엄정했다. 그야 무한한 마력으로 뽑아낸 황금의 번개를 쏘아내는 사람이니 강신혁의 무력도 부족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원정에서야 템빨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였지만, 원초적인 파괴력에서는 신은아에게 한참 못 미친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그런데 후배, 이거.”

신은아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지속적으로 마나를 뽑아내어 극천신주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강신혁이 부탁한 것이다.

“마나 어디까지 들어가?”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아직 한계를 본 적은 없어. 그리고 내 생각엔 아마 한 단계 성장이 가능할 듯 싶어. 이걸 이용해서……."

강신혁은 그 말과 함께 품에서 손바닥만 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꺼냈다.

이전 헤일로가 차원 퀘스트의 보상이라며 내어준 태초의 나뭇가지.

신은아는 그것을 보곤 입을 떡 벌렸다.

“헤일로 아저씨, 나한텐 이런 거 안 주면서.”

“선배도 이제 차원 퀘스트 할 수 있잖아. 헤일로한테 의뢰 없냐고 물어봐.”

“해도 이런 거 안 줄 거야.”

강신혁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르게 둘러댔다.

“퀘스트의 급에 따라 다르지.”

“차원 퀘스트, 나중에 같이 가면 좋겠다.”

신은아와 단둘이 차원 퀘스트라, 신변의 위협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 도저히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줄 수가 없었다.

“맞다, 나 마이 룸도 생겼어.”

은아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며 그에게 살포시 어깨를 기댔다.

“예쁘게 꾸밀 테니까 놀러와. 후배니까 초대하는 거야.”

“클레어는?”

“클레어도…… 초대할 거지만. 그 전에……."

신은아의 목소리가 움츠러들었다.

지금이다, 강신혁은 직감했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놓칠 생각이 없다는 듯 그녀의 손을 세게 붙들었다.

그녀는 인상을 쓰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는 놔주지 않았다.

“아파."

“독립해야 한다고 내가 말했지?”

“독립했어. 했다니까.”

- 기세를 늦추지 말고 공격하세요!

조금 진지한 말을 하려던 찰나 관리자의 개입에 기운이 조금 빠졌다.

역공을 당한 것은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오히려 독립 못한 건 후배잖아.”

“뭐?”

"익!"

어처구니가 없어 눈을 크게 뜨는데, 신은아가 그에게 박치기를 했다.

박치기를 하고도 여전히 코앞에 머무르고 있는 신은아의 얼굴을 마주 보며 강신혁이 반문하려는데, 신은아가 그를 째리며 버럭 외쳤다.

“세상 어떤 고딩이 그런 해탈한 눈으로 여자를 보냐!”

“어……?”

그리곤 극천신주를 강신혁에게 내던지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신은아가 자신에게 저렇게 짜증을 낸 것도 처음이었기에 마냥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아이가 성장한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강신혁은 문득 흠칫했다.

- 불여우, 불여우가아아아아아……!

어쩌면 신은아의 말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