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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화. < Chapter 46. 아프리카 개척 - 2 >

대략 열여덟 시간이 흘러, 밤이 한 번 지나고 다시 낮이 찾아왔다.

바다를 침식한 몇 개인가의 게이트를 부수고, 하늘에서 날아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강신혁을 비롯한 초인들의 정신은 아주 조금씩 마모되어가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이 모양인데 과연 그곳에서 싸울 수는 있을까?”

“이번 목표는 교두보 구축이다. 위험이 덜한 항로를 개척하고 아프리카를 수복할 가능성을 만드는 것만으로 이번 원정은 성공이야.”

“젠장, 역시 이번엔 빠졌어야 했어.”

“모두가 덤비고 있는데도 이 지경이라니.”

“우리나라는 괜찮을까……."

지금 원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본국을 지킬 병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원정을 기획하면서부터 원정에 나서는 자들과 나라를 지킬 이들을 철저하게 나누긴 했지만, 그래도 방비가 취약해졌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최대한 피해를 억제하기 위해 원정을 비밀스럽게 진행해 요르문간드에 정보가 노출되지 않게 했지만, 제우스 길드가 일찍이 요르문간드와 연결되었음을 알게 된 강신혁은 지금 이 배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나아가고 있는 듯한 감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 빡세네......."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여차할 땐 공간이동해서 지원하면 되니까 괜찮아.”

브리짓 폴센은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고, 애초에 최악을 상정하고 배에 오른 신은아는 침착해보였다.

그녀가 얼마나 큰 각오를 갖고 이 원정에 참여한 것인지 보이는 듯해 강신혁은 숨이 턱 막혔다.

이것이 1위의 무게감인가. 같은 탑 랭커인 자신이 상대적으로 한심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아, 육지가 보이는데!?”

“정말이다!”

“카사블랑카야……!”

바로 그때, 여러 선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환희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들자 정말로 저어기 수평선 즈음에 점 하나가 보였다.

초인들의 안력으로 간신히 육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었으니, 실제로 도착하기까지는 몇 시간이 더 걸릴 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리가 이상해.”

“게이트의 침식이 지구의 지형을 바꿔버려서 그래. 이상한 일은 아니야.”

“만약 침식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원래 지구의 흔적도 남지 않고 변할지도 모르겠네.”

“응,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그들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로도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최소 B랭크에서, 심하게는 SS랭크의 일반 몬스터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다들 아프리카 본토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무리해서 나서지 마라, 힘을 비축해둬!”

“카사블랑카가 코앞이다! 여기서 엎어지지 마라!”

“와이번이다!”

와이번? 지금?

그가 고개를 들자, 하늘에 거대한 날개를 펼친 날렵한 몸집의 비룡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몸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붉은 빛이 도는 데다 머리 위에는 거대한 뿔을, 양 날개 끝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것이 여태껏 관측된 적이 없는 신종으로 보였다.

- 회원님께서 기다리던 놈이군요. SS+랭크의 [헬 스파이크 와이번]입니다.

“이름 엄청 멋지네요.”

놈을 선두로 여러 마리의 와이번이 편대로 비행하고 있었는데, 놈을 따르는 다른 와이번들 역시 가시가 돋아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몸 색은 조금 옅었고, 날개에는 가시가 뾰족뾰족하게 솟아있었지만 머리에는 뿔이 없었다.

- SS-랭크, 스파이크 와이번입니다.

“헬 하나 빠졌다고 좀 많이 약해보이네요.”

이미 여러 초인들이 원거리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지만 SS+랭크라는 경지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선두의 헬 스파이크 와이번이 약 올리듯이 공격을 피하자, 놈의 뒤를 따르던 와이번들도 자연스럽게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곤 놀랍게도 날개를 펄럭이며 날개 끝에 달린 가시들을 쏘아내는데, 그것에 얻어맞은 배의 메인마스트가 부러지자 초인들이 대경하며 그것을 복구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평범한 배도 아니고 자체적인 보호막을 달고 있는 배의 주돛대를 단숨에 부숴버렸으니 그 위력을 알만했다.

“쯔, 저런 거 한 마리 제대로 못 잡고.”

“내가 할게.”

그런데 신은아가 혀를 차며 앞으로 나서려던 때, 강신혁이 그녀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득의한 표정이 걸려있었다.

‘정말 적절한 놈들이네요. 써먹기 좋겠어요.’

- 관리자가 판단하기에도 그렇습니다. 헬 스파이크 와이번은 희귀 변종입니다. 자신보다 급이 낮은 거의 모든 비행 몬스터에 대해 지배권을 가지니, ‘테이밍’한다면 저놈입니다.

그렇다.

그는 이번 원정을 준비하면서 무구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준비했는데, 그 중에는 테이밍 도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몬스터의 힘을 빌어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이전 엘레노어와 함께 들어갔던 게이트에서 와이번 한 마리를 테이밍한 결과 다른 부하 와이번들까지 통솔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혹시 테이밍, 하는 고야?”

그와 마찬가지로 그때 일을 추억하는 것인지, 엘레노어가 어딘가 즐거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여주곤 푸른 소를 불러내어 탔다.

“저거 테이밍하면 알이 타게 해줄게. 헬 스파이크 와이번 라이더, 멋지지.”

“정말?”

그에게 프로포즈라도 받은 것처럼 들뜬 목소리를 내며 기뻐하는 엘레노어.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재미없는지 신은아가 쌍심지를 켰지만,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브리짓 폴센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또 뭐 보여주려고? 혹시 지금까지가 전부 저를 속이려는 인형사 씨의 몰카였던 건 아니죠?”

“가만히 보고 있어요.”

강신혁을 태운 바이크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의 접근을 감지한 헬 스파이크 와이번이 뾰족한 괴성을 지르며 가시들을 투척했지만, 놀랍게도 그의 면전에 이른 가시들이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한 점으로 수렴되어 소멸했다.

“맛있냐?”

- 뀨우우우우!

오닉스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이놈들의 가시도 전부 금속 재질이었던 것이다!

금속을 먹으면 먹을수록 금속에 대한 지배력이 늘어나는 듯, 자신의 금마력을 활용해 와이번들이 쏘아낸 가시를 모조리 흡수한 오닉스가 두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울음소리를 냈다.

- 뀨우, 뀨우우!

“참아. 이것들은 안 돼.”

- 꾸오오오오오오오!

한편 공격이 허사로 돌아간 것을 깨달은 와이번은 광분하며 입을 벌렸다.

아무래도 이번엔 브레스를 쏘아내려는 모양이었지만, 놈의 공격이 이루어지기 직전 강신혁은 공간조율을 발동해 푸른 소로부터 놈의 등 위로 자리를 옮겼다.

“등도 가시 천지네…… 이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거겠지?”

- 키이이이이익!

창졸간에 자신의 등 위를 점유당한 헬 스파이크 와이번이 광분하며 날뛰었다.

등에 박혀있던 가시들을 일제히 강신혁을 노리고 쏘아내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180도로 빙글 돌며 그를 낙하시키려고도 했지만 그 정도로 강신혁을 떼어낼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그런 녀석의 돌발 행동이 놈을 따르던 와이번들까지 당황하게 만들어 공중 몬스터들의 편대를 흩트려놓고 있었다.

“죽음의 인형사가 와이번 등에 올라탔어!”

“족히 SS랭크는 넘는 것 같은데, 잘도 보스급 공중 몬스터를 혼자서 상대할 생각을……."

“기회는 지금이다, 저것들을 쏘…… 이런, 빌어먹을!”

배 위에서 전투를 벌이던 초인들이 강신혁이 헬 스파이크 와이번을 붙들고 늘어지는 틈을 타 공중 몬스터들을 격추하려던 그때, 언제나 그러했듯 다른 상황이 겹쳐서 일어났다.

“해상에 거대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래인가? 일단 저놈들 먼저 막아!”

“공중 몬스터는 당분간 우리를 공격하지 못한다! 일단 바다에서 나타난 놈들 먼저 상대해!”

강신혁은 바다에는 관심도 안 두고 헬 스파이크 와이번의 등 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계속해서 가시가 솟구쳐 날아들고 있었지만 오닉스가 그것을 모조리 빨아들이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180도 회전? 그래봤자 영사로 놈과 자신의 몸을 연결하고 있어 떨어질 일도 없었다.

영사는 고작 자신의 몸을 고정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놈과 강신혁의 전신을 촘촘히 연결한 영사는 강신혁이 영력으로 놈을 깊이 파악하고, 근원의 소통으로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한 연결 고리였다.

놈의 탄생에서부터 성장, 다른 와이번과 공중 몬스터를 지배하는 능력의 발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강신혁의 뇌리로 전달되며 둘 사이에 영력으로 이어지는 끈을 마구 흔들었지만, 강신혁은 영력을 추가로 덧대어 오히려 연결을 강화시켰다.

“으으음, 역시 SS+랭크쯤 되면 제법 까다롭네요.”

- 역시 회원님께선 많이 성장하셨습니다. SS+랭크의 몬스터는 죽이기는 쉬워도 지배하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강신혁의 엄살에 관리자가 기운을 북돋워주길 몇 분, 돌연 헬 스파이크 와이번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 얌전해졌다.

강신혁의 영력이 녀석을 압도하며, 녀석이 그를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테이밍을 한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그는 품에서 이전 플레임 와이번을 길들일 때 만들었던 초커와 비슷하게 생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비교도 안 되게 짙은 검은 색의 초커를 꺼냈다.

[맹신의 성스러운 초커]

[SS랭크]

[특수능력 : 지배, 강화, 진화]

*지배 : 자신이 완전히 압도한 대상에 한해 맹목적인 충성을 부여한다. 초커를 착용한 대상은 주인과 소통이 가능해지며, 이 외의 모든 속박에서 완전하게 벗어난다.

*강화 : 초커를 착용했을 때 한계를 넘어 강화된다. 신체와 마력 및 타고난 모든 특수능력에 적용된다.

*진화 : 주인에 대한 신앙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얻는다.

[만들어내는 자의 손에는 선도 악도 담기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희대의 보물. 주인은 ‘강신혁’으로 고정되어 있어 결코 변경될 수 없다.]

사실 만들 땐 별 생각 없이 만들었지만, 어쩌면 이게 사람한테도 통하는 게 아닐까 싶어 강신혁은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아티팩트에 붙지 않는 설명문구조차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강신혁은 추가로 아티팩트의 권한을 자신에게 한정시키는 수를 쓰고서야 조금 안심했다. 여기에는 이나희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

‘나희 선배가 이걸 착용하려는 듯이 장난을 쳐서 식겁했었지.’

가끔 보면 귀엽지만 또 가끔은 짜증나는 여자, 그것이 바로 이나희다.

그는 이나희에 대한 상념을 접고 자신의 손에 들린 초커를 거침없이 와이번의 목에 채웠다.

- 쿠오오오오오오!

의사가 강제되는 느낌에 와이번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놈의 근원을 탐색하고 있었기에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강신혁은 냉정을 유지했다.

사람을 해치도록 프로그래밍된 몬스터들을 상대로 동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녀석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편에 서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놈들에게 친애의 정을 품을 이유가 생겨나는 것이다.

- 쿠오...... 쿠오오오오오?

강신혁이 미리 영력으로 놈을 짓누른 효과가 있어설까, 아티팩트 효과는 금방 적용되었다.

그 증거로 강신혁의 특성 수호황룡이 곧장 녀석에게 적용되며, 녀석의 전신에 황금의 줄무늬가 내달렸다!

- 쿠오오오오오오!

한계에 도달했던 육신이 새로운 가능성을 얻어 진화하는 순간의 짜릿함에, 녀석은 굴욕감도 잊어버리고 만족감을 담아 포효했다.

놈을 따르던 와이번들은 놈이 변절했음을 깨닫고 눈빛을 바꾸었지만, 놈이 다시 한 번 포효를 했을 즈음엔 다시 놈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있었다.

“좋아, 그럼 넌 네 편을 이끌고 공중을 제압해. 수하로 들일 수 있는 놈들은 들이고. 알겠지?”

- 쿠아아아아!

“그래, 이제부터 네 이름은 헬이다.”

- 성의의 단편조차 느껴지지 않는 회원님의 잔혹한 네이밍에 감탄한 관리자의 600,000HP 보너스!

- 쿠오오오!

그러나 녀석은 그가 붙여준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씩씩하게 대답하곤, 허공에 가득한 공중 몬스터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놈을 따라 열 마리도 넘는 SS-랭크의 와이번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광경은 전율적이기까지 했다.

“좋아, 이걸로 해결.”

그는 헬과 녀석이 이끄는 와이번들을 공중 몬스터들과 붙여놓은 후, 허공에 내동댕이쳐진 푸른 소로 복귀해 다시 해상으로 하강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본대에 합류하는 그의 등 뒤로, 헬 스파이크 와이번이 다른 와이번들을 이끌고 여태까지 공투하던 공중 몬스터들을 향해 가시를 쏘아내는 모습을 본 다른 초인들은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아니 지금, 대체……."

“길들였습니다. 이젠 우리 편이죠.”

날아드는 질문에 짤막하게 대꾸하고, 대낫을 들어 바다 위로 솟구치는 몬스터를 향해 내던졌다.

시크한 그 모습에 브리짓 폴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와……."

“인형사가 와이번을 테이밍했어!”

“뭐? 테이밍의 한계는 S랭크까지 아니었어!?”

“저것 봐, 몸에 황금 줄무늬! 초커까지 달고 있는 몬스터가 다른 공중 몬스터들을 제압하고 있잖아……!”

정신없이 전투를 벌이던 와중에도 공중의 변화를 감지한 초인들이 한두 마디씩 지껄이는 통에, 순식간에 모든 이가 강신혁의 활약을 알게 되었다.

그 전투가 끝날 즈음 공중의 지배권을 확보한 헬이 강신혁이 탄 배로 날아들어 그에게 머리를 내밀며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에, 초인들은 과연 그의 이명에 ‘인형사’가 들어가는 이유를 알겠다며 새삼스럽게 감탄했지만…….

‘생사의 인형사’라는 오그라드는 이명을 새로 붙이는 것만은 제발 봐줬으면 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일행은 공중을 제압한 헬의 도움에 힘입어 순조롭게 아프리카 대륙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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