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 Chapter 45. This Is Africa - 4 >
강신혁은 곧장 클레어가 챙겨준 포션을(아프리카에 가는 거라면 족히 다섯 개는 챙겨 보내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던 클레어는 재료가 부족해 끝내 두 개밖엔 만들지 못하곤 살짝 울상을 지었다.) 꺼내 언제든 마실 수 있게 준비했다.
‘지금 당장 마시면 오히려 나중에 힘들어질 수 있으니 참자.’
가능하면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저지하는 게 최선인데, 그러기 위해선 저기 저 봄버걸의 활동을 최대한 억제해야 했다.
아니, 가능하면 죽여 버리는 게 좋겠지. 인류의 배신자를 죽이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 회원님의 하드보일드한 대사에 감동한 관리자의 700,000HP 보너스!
“이거 받아 봐요.”
관리자의 하드보일드한 보상을 뒤로 하며 잠시 생각해본 강신혁은 최적의 결과를 위해 극천신주를 대뜸 브리짓 폴센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저 할머니 공격 막아주는 보물.”
“또 할머니라고 불렀겠다!”
봄버걸은 귀를 뚫고 들어오는 할머니 소리에 광분하여, 상황도 잊고 재차 자신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화력을 담아내 강신혁과 브리짓 폴센 주위의 마나를 폭발시켰다.
물론 이번에도 그 마나가 모조리 극천신주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거 제법 괜찮은데요? 그냥 마나는 빨아들이는 데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더 많아서 효율이 없는데, 봄버걸이 마력을 바꿔주니까 아주 그냥 고농도 에너지가 쭉쭉 흡수되네요.’
- 하지만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이젠 단순한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겁니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봄버걸은 마력을 다른 식으로 변형해 공격해보더니, 뒤로 물러서며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이다.
브리짓 폴센 역시 자신의 손에 들린 구슬이 일대 마나를 모조리 빨아들여 저장하는 것을 느꼈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거 혹시 무적 아니야?”
“무적은 아니고요. 이미 형태가 완성된 마법을 상대로는 완벽하게 들지 않아요. 다만 마력 자체를 변질시켜 공격하는 적에게는 하드 카운터라고 할 수 있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지구를 대표할 수 있는 보물 수준이라고 브리짓 폴센은 생각했다.
그런 귀한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내어주는 강신혁에게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보아하니 이런 물건이 한두 개도 아닌 모양인데…….
“인형사 씨는 보물고블린이구나? 뭐가 계속 나오네.”
“이거 들고 돌격해요. 저 사람은 당신을 못 해치니까.”
“아, 고마운 마음 취소.”
고맙다고 한 적도 없으면서.
그녀가 샐쭉한 표정을 짓든 말든,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브리짓 폴센이 봄버걸을 맡아 견제해주어야만 했다.
강신혁의 태도는 단호했고, 그가 말을 물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혀를 차면서도 그의 판단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할머니, 나랑 놀자!”
“큭, 크으으으윽!”
할머니라는 말에 잔뜩 약이 오른 봄버걸은 자신이 전력을 다해 브리짓 폴센을 공격하고 싶어도, 그녀의 손에 들린 구슬 탓에 자신의 장기인 마나 원거리 조작은 봉인되었음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자신의 임무는 저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가 자신의 체내 마나 흐름을 조작해 튀어 오르자 그 뒤를 브리짓 폴센이 맹렬히 뒤쫓았다.
“어딜 도망가!”
“애송이가!”
“그야 할머니 나이에 비하면 애송이기는 하지.”
“끄으으으으!"
브리짓 폴센의 가볍지만 짜증나는 도발에 봄버걸은 기어이 그 자리에서 멈추어서고 말았다.
브리짓 폴센은 ‘어라? 고작 이 정도로?’하고 생각하면서도 발끝에 가볍게 힘을 모아 전방으로 통, 하고 뻗어냈다.
한 점에 응축된 파동이 봄버걸을 덮쳐들자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팔을 뻗었다.
그녀의 특성 [마력변질]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마력을 대상으로도 어김없이 발휘되어, 브리짓 폴센이 발한 진동의 상당부분을 와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탑 랭커라고 들었는데 고작 이 정도? 그 가슴으로 흔들어대며 다른 탑 랭커들을 유혹한 거 아냐?”
“질투하는구나, 할머니? 가슴이 커봤자 좋은 것도 없어. 어깨도 결리고 스타일도 제한되고…… 아, 그런데 할머니가 입은 그 수트는 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벗어볼래?”
“질투? 난 스스로 원해서 소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야!”
“그래그래, 가슴 작은 소녀 말이지.”
“너 죽일 거야!”
브리짓 폴센은 아주 잘해내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존재 자체가 봄버걸의 트라우마였던 것이 주효했다.
봄버걸의 대부분의 공격은 극천신주가 받아냈고, 브리짓 폴센의 공격 또한 봄버걸의 마력변질에 의해 무효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어느 한쪽이 방심하여 한눈을 팔면 그 순간 승부는 가려질 터였다.
즉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좋아, 잘하고 있어.’
강신혁은 그녀가 봄버걸의 행동을 봉인하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쳤다.
우선적으로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인간들을 모조리 붙잡았다.
놈들은 벌들이 죽고 나자 봄버걸의 지휘를 따르려다 그녀가 브리짓 폴센에게 붙들리니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다가 알아서 자멸한 수준이었다.
당장 죽여도 별 상관없었겠지만 저들에게서 정보를 얻어내야 제우스 길드를 확실히 족칠 수 있기에 그는 놈들의 팔다리를 꺾어 완벽히 제압하고는 선박 한쪽에 던져두었다.
‘상황을 개선하려면 일단 여기서 나가야 돼.’
가장 간단한 것은 게이트를 폭파하는 것인데, 그 조건을 파악하기 위해 사방으로 영사를 뻗어 게이트 내 공간을 장악하고 근원을 파악했다.
게이트 탈출 조건 중 드물게 있는 ‘일정 시간 버티기’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그쪽은 아니었다.
벌들이 날아온 화산의 정중앙, 그 안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게이트를 묶어두고 있는 그것을 해소하면 자연스럽게 풀려날 수 있을 터다.
‘보스 처치…… 관리자님, 그동안 저 게이트가 안 열릴까요? 만약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이 게이트를 폭파하고 밖으로 나간다면 저 게이트는 어떻게 되는 거죠?’
- 회원님의 당초 예상대로 게이트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저 이상한 계집이 지닌 마력변질 능력으로 게이트를 완성, 소환 시기를 앞당기려던 것으로 보이나…… 저기 저 불여우가 훌륭히 붙들어두고 있는 지금, 자력으로 완성되기를 기다린다면 족히 10분 이상은 걸리겠죠.
‘10분도 충분히 짧은데요.’
- 회원님이라면 3분 컷도 가능합니다. 800,000HP 보너스!
‘겜방 BJ한테 미션 주냐!’
그는 한숨을 쉬면서도 계속 손을 놀렸다.
그가 영사를 사방에 날리고 있던 것은 물론 게이트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보스를 잡는 동안 배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수한 구조물을 만들어내려던 목적도 겸하고 있었던 것.
한 차례 벌들을 쓸어버린 후 몬스터의 습격은 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보스가 나타나면 일대 환경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오닉스, 할 수 있겠지?”
- 뀨!?
난데없이 맡겨지는 막중한 책임에 눈을 희번덕거리는 오닉스의 몸통에 영사를 빙빙 둘러 갑옷처럼 감아주었다.
예전엔 영력이 부족해서 못하고 있던 짓이지만, 본래 소울 커넥터의 능력은 이렇게 뽑아낸 영사로 자신 혹은 아군을 강화하는 데에 있었다.
*영화(靈化) - 대상을 영혼의 실로 감싸 한층 강화한다.
강신혁 본인은 이 영화의 효과를 항상 받고 있어 스테이터스가 증가되는 것이고, 그가 이렇게 영사의 갑옷을 씌워주면 대상도 영화를 적용받게 된다.
거기에 더해 황룡투기를 끼얹은 수호황룡으로 재차 강화하기까지 하면, 오닉스는 슬슬 SS랭크를 뛰어넘는 수준의 괴물이 된다.
- 뀨우, 뀨우웃!?
“어때, 해볼 만하겠지.”
- 뀨우우우…… 뀨우!
영력을 인지하는 오닉스라면 강신혁이 두 선박 사이에 마구잡이로 쳐놓은 영사의 그물을 활용해 적을 잘 막아낼 수 있으리라.
그는 오닉스를 토닥여준 후 곧장 선박에서 점프했다. 허공에서 푸른 소를 소환해 곧장 화산으로 돌진하는 그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봄버걸, 미즈시마 엘라 유키가 눈을 부릅떴지만 브리짓 폴센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 진짜 죽인다!”
"그렇게 열정적인 눈으로 봐도 안 돼, 난 이미 임자가 있거든!”
푸른 소의 돌진은 터무니없이 빨랐다.
순식간에 화산 분화구 부근에 도달한 강신혁은 그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을 보며 잠시 다른 세계의 추억에 잠겼다.
“바로 시작해야겠어.”
그가 꺼내든 것은 신풍의 보주와 물의 보주.
두 개의 구슬의 힘을 최대한도로 끌어내어, 분화구 안에서 끓는 용암을 향해 냉기의 바람을 쏟아 부었다!
- 캬아오오오오오오오오!
그 순간, 용암 안에서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오는 괴물이 있었으니 바로 용암이 줄줄 흐르는 몸뚱이를 지닌 거대 곰이었다!
- 이레귤러 게이트 제23 전진기지의 보스 몬스터, 마그마 자이언트 베어(SSS-)가 출현합니다! 조심하세요!
“와, 직빵이네.”
- 바로 불러내는 데 성공하셨군요. 300,000HP 보너스!
본래는 벌들을 지휘하는 여왕벌을 잡은 후에야 놈을 불러낼 수 있지만 지금 그럴 여유는 없다.
해서 두 보주의 능력을 합쳐 화산을 통째로 얼려버릴 만한 냉기의 폭풍을 만들어낸 결과 마그마 자이언트 베어가 광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여왕벌을 비롯해 무수한 숫자의 벌들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 사방으로 퍼지는 바람에 섬 전체가 위험해졌지만, 잠시라면 오닉스가 일행을 보호해줄 수 있을 터였다.
- 쿠아아아아아아아!
놈이 양팔을 번쩍 들어 올리자 분화구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용암이 솟구쳐 강신혁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단순한 용암이 아니라, 마기가 섞인 마나에 의해 강화된 용암이었다.
“그래, 전력으로 나와주면 나야 고맙지!”
다만 강신혁 역시 이젠 평범한 능력자가 아니다.
그의 품에서 두 개의 구슬이 더 굴러 나왔다.
바로 대지의 보주와 신염의 보주가!
대지와 불의 힘이 합쳐지니 그를 덮쳐 녹이려던 거대한 용암의 와류가 일순 허공에 정지하더니, 오히려 방향을 돌려 마그마 자이언트 베어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 쿠워어어어어!
놈은 우습다는 듯 그것을 맨몸으로 받아냈지만 직후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대지의 보주와 신염의 보주에 의해 이미 용암은 강신혁의 영향권에 들어온 바, 제아무리 용암속에서 살고 있는 괴물이라 해도 데미지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후, 간단하군.”
- 회원님, 그냥 구슬들의 힘을 다루고 있을 뿐이 아닌지.
“구슬들의 힘이 저의 힘이죠!”
허리춤의 벨트에 신풍의 보주를 끼워넣은 강신혁은 물의 보주의 잠재력을 모조리 끌어내 거대한 냉기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적대하는 용암에 덮쳐져 상처입고 괴로워하던 마그마 자이언트 베어의 전신을 난도질하는 냉기의 폭풍!
용암으로 이루어진 놈의 몸통이 잘게 굳어 바스라지는 광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제 다크 마스터라고 불릴 일은 없겠죠?”
- 대신 엘레멘탈 마스터라는 별명이 붙을 것만 같군요.
강신혁은 관리자의 말을 무시하고 놈을 몰아붙였다.
대지의 보주와 신염의 보주를 이용해 놈의 용암을 약화시키고, 신풍의 보주와 물의 보주를 이용해 놈의 몸통을 믹서처럼 갈아낸다.
그 환상적인 조화에 놈은 그저 맥없는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릴 뿐이었다.
- 쿠오오오오오오오!
“화산이 붕괴한다!”
“으아아아악!”
단지 싸우고 있을 뿐인데 섬 아래에 있던 선박에선 난리가 났다.
하지만 곰이 죽기만 하면 그 순간 게이트에서 벗어나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별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려던 때, 하필이면.
거너즈의 마스터 틸로 카우베가 그의 친구들을 향해 덮쳐가는 것이 보였다.
“뭐?”
- 뀨우우우웃!
다행히도 오닉스가 늦기 전에 그를 막아서 친구들은 무사했지만, 그 탓에 영사의 그물망이 뚫리고…….
- 퀴이이이이이!
- 퀴이이이이!
“어, 어!?”
“지금!”
보스의 등장과 함께 전 지역에 나타난 벌들이 그 기회를 노려 선박을 덮치고, 브리짓 폴센이 본능적으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리고, 미즈시마 엘라 유키가 잽싸게 게이트를 향해 돌진하는 광경이 연달아 펼쳐졌다.
“와."
강신혁은 삽시간에 활성화되는 게이트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용병들 중에 배신자가 없다 했더니 대가리가 배신을 때리네.”
전투가 제2 국면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