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 Chapter 45. This Is Africa - 3 >
그것은 분명 게이트였다.
일대의 모든 것을 끌어들여, 클리어되기 전까지는 결코 내보내지 않는 악랄한 개미지옥.
문제는 일단 발동되어 일정 수 이상의 희생양을 끌어들인 게이트는 닫혀버려, 외부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래서 흔히 방출형 게이트를 테러현장, 흡수형 게이트를 공동묘지로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흡수형 게이트가 이 타이밍에, 그것도 용병들이 탄 배만 골라서 집어삼키고 닫혔다고? 공교로운 것도 정도가 있지.’
기가 차 헛웃음이 나올 일이다.
거너즈와 다른 용병 연합이 타고 있는 배까지 총 두 척이 소실되자 다른 용병들이 탄 배에선 난리가 났고, 특히 제우스 길드는 눈을 부릅뜨며 여기저기 고함을 지르고 난리가 났지만…….
영력으로 사람의 본질을 살필 수 있는 강신혁에겐, 저들 중 연극을 하는 이가 섞여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요르문간드와의 연합은 확실해진 셈이네. 용병 업계 1위 길드가 인류의 배신자라니 시나리오가 지독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아니, 그러고 보면 전 세계랭킹 1위도 배신자였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차분해졌다.
오혜나 앞에서 이 얘길 꺼냈다간 그 울보가 또 울어버리겠지만.
‘하지만 이번엔 상대를 잘못 골랐네.’
강신혁은 이미 과거 프랑스에서 한 번, 닫힌 게이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적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흡수형이 아닌 침식형 게이트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게이트에 뒤늦게 침입했다는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알고서 그를 도발하는 것인지…….
어느 쪽인지 몰라도 모두 결과는 동일하다.
사형이다.
“아니아니아니, 이건 진짜 중2병이잖아. 진정하자……."
“왜 그래요? 헐, 배 사라졌다!”
다른 초인들은 모두 수십 미터 이상 솟구치는 파도나 그 안에 섞여 덤벼오는 몬스터 따위를 대적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브리짓 폴센은 강신혁이 시선을 두는 곳에 고개를 돌렸다가 비교적 일찍 그 이변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뀨우우우뀨웃!
‘SS+급 게이트인데다 심지어 그 안에 인간으로 보이는 놈들까지 있다고.’
점입가경이다. 이전에도 게이트 안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요르문간드 놈들이 있어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게 세간에 알려진 계기가 바로 처음 자신이 게이트 실습으로 들어갔던 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임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했다.
“SS+급 게이트, 가능하죠?”
“그야 어느 정도는…… 응? 설마 게이트 안에 들어간 거야? 입구 안 보이는데?”
“닫혔으니까. 지금부터 들어갑니다. 그럼 선배, R. 여긴 잘 부탁해. 특히 제우스 길드를 경계해줘."
“응.”
“SS+급 게이트면 아직 좀 힘드로……."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빠득 가는 신은아, 자신의 입지를 브리짓 폴센에게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엘레노어를 놔두고 곧장 공간조율을 발동했다.
이전엔 게이트 안에 침입하기 위해 영혼독을 구사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게이트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면 공간조율 스킬로 바로 도약하는 게 가능한 것!
강신혁이 오닉스를 미리 용병들 쪽으로 보내둔 이유이기도 했다.
- SS+급 이레귤러 게이트 ‘제23 전진기지’에 진입합니다!
“어!?”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사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었다.
강신혁의 손에 이끌려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 공간이동을 마친 브리짓 폴센은 눈앞에 보이는 완벽하게 다른 환경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공간이동! 마법사였어!?”
“일일이 반응이 크네.”
- 뀨!
오닉스의 자취를 더듬어왔기에 그들이 도착한 곳도 당연히 오닉스가 있는 곳이었다.
건강하게 울며 달려드는 오닉스를 받아 안고 보니 그들이 있는 곳은 선상.
바다를 달리다 갑자기 육지 위로 소환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배 위에 모여 있던 거너즈 소속의 용병들이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의 초인을 보며 경악했다.
“죽음의 인형사!?”
“레드슈즈도 같이 왔어!”
“멍청한 놈들, 지금 한눈팔 때냐! 총 갈겨!”
“갈겨도 끄떡도 없는데 쏴서 뭐할 건데!”
현장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섬 중앙에 있는 산으로부터(아마도 화산이겠지) 계속해서 벌 형태의 몬스터가 날아들고 있었는데, 거너즈도 다른 용병들이 탄 배도 놈들에 맞서 마구 사격하고 있었다.
문제는 오닉스의 보고처럼 몬스터 무리 가운데 사람들이 섞여 있다는 것.
제 딴에는 정체를 감추려는 듯이, 그러니까 1년 전쯤 게이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요르문간드 소속 빌런들처럼 흑색의 로브를 두르고 있었지만 영력을 다루는 강신혁에게마저 정체를 감출 수는 없었다.
이강율이 두르고 있던 기분 나쁜 기색, 그것이 놈들에게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다.
‘물증은…… 있으려나? 내가 이 안에 들어오는 걸 상정했다면 어떻게든 전부 감췄을 것이고, 내 존재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하나쯤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은 우선 저들보다 먼저 날아드는 귀찮은 벌들을 치워야겠지.
놈들은 대략적으로 측정해보건대 한 마리 한 마리가 SS-랭크에 준하는 수준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날갯짓이 빠르고, 몸통도 의외로 단단한 탓에 용병들의 공격은 거의 먹히지 않는 반면 붉게 달아오른 침으로 한 방 쏘이면 무조건 한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동기 녀석들은 멀쩡하고.’
오닉스에게 동기들을 지켜달라고 한 보람이 있다.
그는 근처로 날아드는 벌 한 마리를 영사로 붙들어 영사 자체의 절삭력으로 해체해보려고 했으나, 영혼독을 제법 많이 담지 않으면 힘들었다.
그런 괴물이 수천, 수만 마리가 날아들고 있으니 용병들 입장에선 재앙 외의 그 무엇도 아니리라.
‘그렇다면…….'
강신혁은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배틀 사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그로잉 사이드였다.
성장, 증폭, 분열의 능력을 지닌, 이 시대 모든 농부가 원하는 핫 템!
그는 그것에 자신의 영력과 황룡투기를 잔뜩 불어넣고, 그 모든 힘을 윈드 마스터리로 치환시켜 있는 힘껏 내던졌다.
- 키이이이이이!
- 키이이익!
“와!”
그 결과는 실로 경악스러웠다.
허공중에서 일단 한 번 거대해진 대낫은 직후 수십 개로 분열되었는데, 그 대낫들이 거센 바람을 머금고 빠르게 회전하며 전방의 벌들을 모두 갈아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그 와중에 한 차례 더 분열해 수백 개로 늘어나기까지 했다.
"쓰으으읍."
강신혁은 몽땅 빨려나가는 영력을 느끼곤 너무 거하게 벌렸나, 살짝 후회하며 로그인 보너스로 얻은 영력 포션을 입에 물었다.
소중한 포션이다.
원할 때마다 구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닌 만큼 되도록 아껴 쓰고 있었다.
- VIP 회원 권한을 모두 되찾으시면 상급 단계까지의 영력 회복 포션을 구입하실 수 있게 됩니다!
‘그거 땡기는 말이네요.’
동화율을 100%로 끌어올린다는 것에는 어딘가 모를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
강신혁은 포션을 깔끔하게 비우고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번엔 다른 마스터리 스킬을 발동했다.
수백 개의 대낫을 감싸고 있던 바람의 힘이, 한순간 격렬한 불꽃으로 치환되어 거대한 불꽃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 화르르륵
- 끼이이이이이이이!
“헐……."
대낫 투척부터 화염폭풍에 이르기까지, 한순간에 족히 수천 마리 이상의 벌을 도륙하는 강신혁의 모습에 브리짓 폴센은 눈이 뒤집어졌다.
“대체 능력이 몇 가지야?”
“당신도 좀 싸워. 특히 저놈들 경계하면서.”
“헤, 그럼 이번엔 제가 보여드리죠! 반해도 괜찮아요!”
브리짓 폴센이 자신이 신은 붉은 구두를 몇 번 짝짝 부딪히더니 곧장 하늘로 점프했다.
과연 탑스타다운 화려한 움직임이었다.
그녀가 하늘을 사뿐히 밟으며 발을 크게 뻗자, 전방으로 강력한 에너지의 칼날이 형성되며 벌들의 날개를 찢어놓았다.
한 번 시동을 건 그녀는 허공을 사뿐히 디디고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날려댔다.
“랄라, 랄라라.”
- 키히이이이!
강신혁의 공격처럼 한 방에 벌들을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놈들을 저지하고 날개를 찢어 무력화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더구나 춤사위가 격해질수록 충격파도 커져갔는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벌의 날개뿐만 아니라 벌의 몸통까지 찢겨나가고 있었다!
- 굉장한 특성입니다. 지구의 다른 탑 랭커들은 가망이 없지만, 저 불여우라면 언젠가 히어로 유니버스에 입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하게 지구에는 인재가 넘쳐나네요. 가능하면 저 여자는 히어로 유니버스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지만.”
- 관리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회원님께 500,000HP 보너스!
브리짓 폴센의 능력은 특이하게도 그녀의 행동, 특히나 그녀의 춤을 기반으로 발현된다.
아마도 바드나 특수한 사제 계통의 능력일 가능성이 컸는데, 중요한 것은 그녀의 능력이 그녀의 자질에 큰 영향을 받아 별 노력 없이도 파격적인 결과물로 나타난다는 것!
이러니 초인 업계에서 그녀를 싫어하는 인간들이 많을 만도 하다. 강신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했다.
‘후, 그럼 난 영력을 회복하면서…… 수비 모드로 바꿀까.’
그녀를 배웅한 강신혁은 영력과 황룡투기를 조절하며 대낫의 숫자를 열 개 정도로 줄여, 정밀한 조종을 바탕으로 선박에 날아드는 벌들을 토막 냈다.
“우린 이제 살았어.”
“레드 슈즈 엄청 강하네! 괜히 탑 랭커가 된 게 아니었어!”
“저 대낫은 대체 뭐지? 저 단단한 벌의 몸통을 아무렇지 않게 갈라버리고 있잖아……!”
어차피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화력으로는 벌의 날개에 구멍조차 낼 수 없었던 용병들은 어느 순간인가부터 대놓고 관람모드로 전환해 강신혁과 브리짓 폴센을 향해 딸랑이를 흔들고 있었다.
“인형사님!”
거너즈의 마스터, 초인이 아닌 용병 가운데서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축에 들 남자, 독일인 틸로 카우베가 곧장 그에게로 달려왔다.
“혹시 지원입니까? 감사합니다!”
“상황파악은 됐습니까?”
“그것이 아직…… 아무래도 요르문간드 같습니다!”
그나마 요르문간드의 개입이라도 알아냈으니 다행이다.
그는 자신이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은근슬쩍 그들 쪽으로 이동하며 싸우는 동기 3인방에게 가볍게 시선을 주고는 틸로 카우베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어에 주력하세요. 인간들을 더 경계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요르문간드 놈들, 어째서 우리들을 표적으로 삼고……."
틸로 카우베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만약 여기서 제우스 길드의 이름을 입에 낸다면 그의 분노를 행동력으로 바꿔줄 수 있겠지만 벌써부터 밝힐 일은 아니었기에 참았다.
모두 물증을 먼저 얻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한 일인 것이다.
‘그럼 슬슬 사람 사냥을 시작해볼까.’
몬스터를 이용해 용병들을 몰아붙이고, 그 사이 접근하려던 속셈이었을 검은 로브의 인간들.
난데없는 탑 랭커들의 등장에 주춤하는 그 인간들을 보며 권총을 꺼내들었다.
‘어디, 이쪽을 얼마나 예상하고 움직인 건지 알아볼까…… 응?’
그런데 그가 인간사냥을 시작하려던 그때, 돌연 허공에서 펑! 폭발음이 났다.
“꺅!"
춤을 잘 추고 있던 브리짓 폴센이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강신혁 쪽으로 도망쳐오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발밑에서 뭐가 터졌어!”
“뭐가 터져? 아니, 잠깐.”
예전에 분명 그런 능력을 본 기억이 있는데.
기억을 더듬던 강신혁이 답을 깨닫곤 눈을 빛내는 것과, 일대의 마력이 무거워지기 시작한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안녕!”
발랄한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마력을 이용해 원거리로 목소리만을 쏘아낸 것이다.
“널 다시 만나기만 기다리고 있었지! 생각보다 반응이 빨라서 희생이 좀 있었지만?”
“봄버걸.”
“정답!”
주위 마나가 일제히 폭발을 일으키려는 그 순간, 강신혁은 허공에 극천신주를 던졌다.
폭발성의 마나가 모조리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다.
한순간에 일대가 고요해지고 시야가 뚜렷해진 시점에야, 대담하게도 선박 위로 올라탄 어린 소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너, 내 지배하에 들어온 마나를 어떻게……."
그녀는 방금 일어난 기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는데,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스판 재질 수트를 입고 가녀린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굉장한 개성을 느끼게 했다.
과거 프랑스에서 요르문간드 편에 붙어 인류의 중요 인사를 죽이고, 강신혁이 나타나자마자 못 이길 것을 직감하고 도망쳤던 인류의 배신자, 전 세계랭킹 6위.
봄버걸 미즈시마 엘라 유키였다.
강신혁의 곁으로 복귀해 폭발로부터 몸을 지켜낸 브리짓 폴센이 두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봄버걸? 50대 할머니라고 들었는데 어리네?”
“50대 맞아."
“와, 젊은 할머니네!”
“죽여버릴 거야!”
브리짓 폴센의 도발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강신혁은 눈앞에서 달려드는 그녀보다도 그녀의 뒤에 생겨나는 게이트를 주시했다.
저 안에서 일렁이는 기운이 그녀보다도 압도적으로 위험했다.
- 그녀로부터 받은 포션을 준비하세요, 회원님.
관리자가 담담히 메시지를 보내왔다.
- 아무래도 그들 본진의 지원이 올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