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 Chapter 45. This Is Africa - 2 >
몬스터들이 갑자기 우수수 떨어져 내리자 당황한 것은 아군도 마찬가지였다.
날개를 잃은 놈들은 그대로 놔둬도 바닷속으로 떨어져 죽겠지만, 그걸 먹어치우고 다른 몬스터들이 더 강해질 우려도 있을 뿐더러 용병들 입장에선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의 사체가 소중한 돈!
저 먼 하늘까지 사격할 만한 장비가 없었던 용병들은 얼씨구나 좋다하며 수면으로 떨어져 내장이 터지거나 모든 힘을 잃고 바동거리는 몬스터들의 숨통을 끊고, 부지런히 작살을 던져 몬스터들을 회수했다.
“미친, 날개가 통째로 뜯겨나갔잖아? 죽음의 인형사가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난 알았어. 저 탄환에 죽음의 인형사가 부리는 인형이 깃들어있는 거야.”
다들 오닉스의 실체를 알지도 못하면서 어째 유추만은 그럴듯하게 해내는 것이 신기하다.
“으으, 정말 끔찍해…… 절대로 적으로 돌려서 안 될 사람이로군.”
“야야, 화내시기 전에 먼저 가서 말씀드려.”
용병들은 강신혁이 거의 다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몬스터를 자신들이 훔쳐간다고 그가 오해할까 두려워, 알아서 전리품의 5할을 상납 하겠다고 보고해왔다.
사실 강신혁이 원하던 것은 금속 날개뿐이었고 그건 이미 오닉스가 다 먹어치웠으니, 저들이 막타를 치건 남은 신체부위를 가져가건 아무 관심도 없었지만 돈을 준다하니 그건 나중에 받기로 했다.
“계속해서 떨어지네.”
“대체 마력이 얼마나 되는 거야?”
“마력 안 느껴지는데……?”
“저 정도면 다크 커튼이 만들어내는 어둠보다 강한 것 같은데? 왜 아직 랭킹 4위인 거야?”
“멍청아, 다크 커튼한테는 애초에 저런 공격능력이 없다고.”
“이거 계속 이런 식이면 공헌도 제대로 못 해보고 끝나겠는데.”
본래는 원거리 집단의 단체 공격 후, 지상을 공격해오는 공중 몬스터들에게 맞서 근접 공격수들이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중 일대에 어둠의 영역을 만들어 몬스터를 모조리 처리해버리는 강신혁의 위용 앞에 다들 몸만 풀고 말아야 했다.
오랜만에 거하게 포식을 한 오닉스와, 사실상 전력으로 취급되지 않는 용병들만 계를 탄 셈이었다.
“떨어진 것들, 내가 잡으려 했는데.”
엘레노어가 샐쭉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어림을 매만졌다.
그녀가 입은 칠흑의 롱코트(물론 마스크드 바커스 전용 유니폼이었다.)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는 강신혁은 작게 웃을 따름이었다.
“궁니르는 고작 마무리용으로 나서긴 아깝지. 아껴둬, R.”
“궁니르라니 그거 엄청 굉장한 이름이네요, 뭔데? 그것도 총이야?”
에레보스의 위용을 본 브리짓 폴센은 엘레노어의 품에도 뭔가 대단한 것이 잠들어 있겠거니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하긴 마스크드 바커스로 활동하며 제법 자주 노출된 편인 강신혁의 총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엘레노어의 권총에 대해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는 그저 곧 알게 될 거라 말하며 픽 웃곤 하늘을 향해 연달아 탄환을 발사했다.
- 탕! 탕탕탕!
그림자가 많이 드리워지면 많이 드리워질수록 그가 쏘아내는 탄환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탄환을 쏘아낼 때마다 하늘에 어둠의 영역이 늘어났다.
자연히 어둠과 동화한 오닉스의 활동력도 늘어났고, 일단 그 검은 운무에 사로잡힌 공중 몬스터들은 모두 날개를 잃고 떨어져 내렸다.
삽시간에 수백 마리 이상의 몬스터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이미 마법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다크 마스터……."
“다크 마스터다!”
“풉.”
권총으로 어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듯한 그의 모습에 급기야는 나와선 안 될 별명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강신혁은 참지 못하고 옆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브리짓 폴센을 째려보며 오닉스에게 의념을 보냈다.
‘어떤 것 같아?’
- 뀨우뀨우, 뀨뀨웃!
오닉스의 정직한 보고에 따르면 공중 몬스터들은 A+랭크에서 S랭크 사이의 강함을 갖추고 있으며, 보스 몬스터는 꽁꽁 숨어있어 그 놈을 사냥하려면 족히 사흘 정도는 더 먹어치워야 한다고.
금속은 무척 맛있었지만 이제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으니 주인의 몫을 적당히 챙겨 귀환하겠다는 보고였다.
‘그래도 내 몫을 챙겨준다니 이걸 고맙다고 해야 돼?’
그는 한숨을 쉬며 권총을 거두었다.
총을 쏘아내기를 멈추고도 그림자의 구름은 한동안 하늘의 일부분을 점유하고 있었고, 오닉스는 그 안에서 한껏 날뛰다가 시야 내의 모든 몬스터를 끝장낸 후 유유히 귀환했다.
- 뀨우!
“그래, 배불러서 좋겠다.”
그는 임무를 마치고 그의 어깨 위에 앉아 귀엽게 트림을 하는 고슴도치를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새로운 전술의 성공적인 데뷔와는 달리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아직 입구조차 들어서지 못했는데 S랭크라 이거지.’
승리를 자축하는 초인들의 함대를 돌아보며 그는 긴장감에 얼굴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
신은아의 말이 이제야 조금씩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나한테 강화된 장비를 받기 전의 동기 녀석들의 한계가 C랭크라고 했었지.'
사실 C랭크 몬스터도 비능력자에게는 상대하기 쉬운 적이 아니다.
놈들의 빠른 반응속도나 신체능력을 쫓아가기 위해 최대한 강화장비로 스펙을 끌어올리고, 특수한 동체시력 단련을 하고, 몬스터의 육체에 확실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마탄으로 무장한 끝에야 비로소 C랭크나마 도전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도 강신혁의 동기 3인방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예의 재능을 타고난 강신혁에게 철저히 단련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
‘정말 위험하겠는데.’
용병들은 물론 전면전에 나설 생각 따윈 없겠지만, 베이스캠프 정도는 자신들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베이스캠프는커녕 제대로 아프리카 대륙에 진입도 못하게 생겼다.
“생각이 바뀌었어? 돌아갈까?”
“안 돌아가.”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물어오는 신은아에게 단호히 대꾸해준 후, 강신혁은 하지만, 하고 덧붙였다.
“베이스캠프의 규모를 축소하고 용병들을 돌려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네. 만약 사건이 조금만 더 크게 터진다면 그때는 정식으로 건의를…… 응?”
그때였다.
아까 제우스 용병 길드의 서브마스터 유준만에게 붙여놓았던 초소형 집음기 겸 송신기로부터 예사롭지 않은 반응이 있었다.
[대응이 너무 빠르군요.]
[저 꼬맹이…… 대체 무슨 능력을 각성했는지 감도 안 잡혀. 저걸 붙잡을 수 있다면 최고일 텐데.]
[무리다. 본토 안으로 들어가서야 엄두를 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전에 일반 용병들이라면…….]
[지금 상황에선 힘듭니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면 침식 지형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를 노린다면 충분히 빼낼 수 있을 겁니다.]
[조금씩 대열을 바꾸지. 거너즈 놈들, 아무것도 모르고 좋다고 쏴대고 있군.]
강신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자식들 혹시 지금 악역 전용 대본을 읽고 있는 건가?’
- 이미 꿍꿍이가 있을 줄 알고 집음기를 붙여놓으신 것 아닙니까. 새삼스러운 척 연기하는 회원님께 400,000HP 보너스!
‘하지만 너무 단박에 걸려주니 의심스러워서요.'
- 슬슬 회원님의 능력을 자각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육안으로도, 마력으로도, 다른 어떤 장비로도 확인할 수 없는 도청기는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덤으로 그걸 몰래 남에게 붙이는 영력의 실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도 말이다.
강신혁은 티가 나지 않게 뒤를 확인했다.
용병들은 다섯 개의 선박에 나누어 타고 있었는데, 그중에 각각 한 척씩을 제우스와 거너즈가 점유하고 있었다.
과연 세계 1, 2위다운 위용이라 할 수 있으리라.
‘놈들이 용병을 노린다 이거지. 근데 왜?’
저들은 말 그대로 무능력자들인데.
하지만 이전 신은아의 부모가 인공초인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을 떠올리곤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능력이 없는, 하지만 신체가 발달되고 정신력이 뛰어난 용병들이라면 실험의 피험체로 제격이리라.
겸사겸사 업계 2위인 경쟁자를 무너트릴 수 있다는 것도 저들을 노리는 이유일 테고.
‘게다가 침식 지형이 있다는 건 우리도 모르고 있던 건데, 저들만 알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요르문간드와의 연결고리가 있을 가능성이 있네요.’
- 회원님의 경악스러운 추리력에 감탄한 관리자의 500,000HP 보너스!
아무리 봐도 놀리는 것 같지만 관리자는 진심으로 박수를 치고 있으니까 문제란 말이지.
강신혁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투를 마친 후 인상을 팍 쓰고 있는 신은아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날렸다.
- 이 앞에 침식 지형이 있다는 모양이야.
- 은아 님의 귓속말 : 응? 그야 이제 아프리카의 해역이니까 있겠지만…… 응?
그녀는 갑자기 귓속말로 별 것 아닌 말을 진지하게 해오는 강신혁에게 놀랐는지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강신혁은 그것을 모르는 척 무시하며 메시지를 이었다.
- 제우스 서브마스터를 도청했어. 침식 지형이 나오면 그때 거너즈가 탄 함선에 수작을 부리겠다는데.
- 은아 님의 귓속말 : 그건, 그러니까.
신은아는 그 말에 심각한 얼굴이 되어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서 자신은 끼어들 수 없는 모종의 교감이 있음을 느낀 브리짓 폴센은 샐쭉한 얼굴이 되어 대신 엘레노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지금 밝힐 수는 없겠지.
- 일단은 모르는 척 하는 게 좋겠어. 보다 결정적인 순간 터트려야지.
- 은아 님의 귓속말 : 그러면 거너즈는…….
- 내가 갈게.
그가 그렇게 답한 순간 신은아가 무척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신혁은 침착하게 답했다.
- 위험하면 바로 선배를 부를게. 워프로 바로 올 수 있잖아.
- 은아 님의 귓속말 : 차라리 내가.
- 선배는 쉽게 움직이면 안 돼. 알잖아?
- 은아 님의 귓속말 : 그럼, 그럼…….
신은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뭔가 생각하는 것 같다가, 엘레노어에게 영국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 공세를 퍼붓고 있던 브리짓 폴센을 대뜸 붙잡았다.
“얘라도 데리고 가.”
“어, 언니? 아무리 그래도 톱스타인데 이렇게 짐짝 취급하시면 저 흥분되는데요!”
“흥분되는구나……."
사실 탑 랭커 4위와 7위가 함께 움직이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지만, 놈들이 자그마치 함선 하나를 상대로 수작을 부리겠다고 했으니 그 정도 대비는 하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좋아요, 그럼 데려가죠.”
“뭔데? 날 어디로 데려가서 뭘 하려는 건데요?”
“일단 기다려 봐요. 오닉스?”
- 뀨?
“먼저 가 있어. 신호를 주면 바로 갈 테니까.”
- 뀻!
만족스럽게 포식하고 충성도가 오른 오닉스가 용맹하게 경례를 올려붙이고는 그의 어깨에서 점프했다.
은신한 채 사방의 그림자와 동화되어 내달린 녀석은 순식간에 선박 몇 개를 뛰어넘어 후방에 있는 거너즈의 함선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가뜩이나 은신 능력부터가 사기인 녀석인데 그림자에 동화해 빠르게 움직이는 방법까지 터득했으니, 조만간 현계한도를 뛰어넘는 괴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 회원님은 이미 인지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만……. 무언가를 포식하여 끝없이 성장하는 개체는 도중에 죽지 않는 한은 대부분, 늦든 이르든 현계한도를 뛰어넘게 되어 있습니다.
‘부작용은 없을까요?’
- 야생이었더라면 위험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아무리 몸에 나쁜 것을 많이 먹어도 회원님이 만들어내시는 보약으로 몸을 달래주고 있으니 빠르면서도 균형 잡힌 성장이 가능하겠죠.
그런가, 그가 만들어내는 무구는 오닉스에게 보약 취급이었단 말인가.
그가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데 옆에서 오닉스의 이동을 눈치 챈 브리짓 폴센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WA, 그림자 마수! 다크 마스터!”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탄환을 쑤셔 박아줄 줄 알아요.”
“어디에? 응? 어디?”
“아, 이 사람 진짜 감당 안 되네……."
그가 오닉스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신은아는 자신이 이끄는 특무부 대원들에게 침식 지형을 대비하라는 짤막한 지시를 보내고는 눈을 부릅뜨며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항로에서의 첫 전투, 기분 좋은 완승에 조금 풀어져버린 다른 초인들을 믿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은 머지 않아 찾아왔다.
“침식! 침식 지대입니다! 젠장, 모든 배의 보호막을 발동시켜!”
“배가 멈췄습니다, 나아가질 못하고…… 온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바다에 갑자기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가 몰아쳤다.
그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수중 몬스터들,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다시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공중 몬스터들까지!
“배를 보호해! 초인들은 모두 지시를 따라 협공합니다!”
“배 단단히 붙들어!”
혼란이 찾아왔다.
앞선 전투를 너무 압도적으로 이겨냈기에, 찾아오는 혼란이 더했다.
강신혁은 그 와중에 오닉스가 보내오는 신호를 깨닫곤 고개를 들었다.
전방의 초인 함대가 모두 전투에 집중하는 가운데, 용병 함대 중 뒤에 있던 두 척의 배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