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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 Chapter 45. This Is Africa - 1 >

원정 기념식은 무척 화려했다.

물론 원정 전날까지만 해도 대중에 공개되지 않고 은밀히 진행된 프로젝트였지만, 당일 협회가 동원한 행사는 정말 으리으리했다.

강신혁은 무려 오케스트라가 원정 행사를 뛰는 모습을 보며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을 느꼈다.

“요르문간드 측에 한 방 먹이는 느낌이려나.”

“그래봤자 협회 중심에 첩자라도 있으면 바로 빠져나갔겠지만.”

“대체 인류의 미래를 어디까지 암울하게 만들 셈이야?”

“하지만 정말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걸.”

신은아는 무척 음울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마도 지금 그녀의 표정이 음울한 것은 아까부터 계속 그녀에게 달라붙는 레드 슈즈 브리짓 폴센 때문일 것이었다.

“선배 좀 그만 괴롭혀요. 친해지고 싶어도 제대로 스텝을 밟고 나서 하라고.”

“스텝을 밟으면 은아 언니랑 더 많이 친해져도 된단 얘기죠? 어디까지, 응? 어디까지?”

“선배 신체 부위를 가리키면서 말하는 것 그만둬줄 수 있을까? 지금 되게 무례하거든?”

“……뇌신의 숨결이여.”

자신이 타인을 사냥했으면 했지 타인에게 사냥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신은아는 브리짓 폴센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속삭임을 들은 강신혁은 그것이 그녀가 부릴 수 있는 가장 강대한 마법의 사전주문임을 바로 파악했다.

“적당히 안 하면 아프리카 들어가기도 전에 집에 돌아가게 될 줄 알아요.”

“아핫.”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브리짓 폴센을 자신이 담당하려는데, 그에게 조금 강하게 손을 붙들린 브리짓 폴센이 볼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나 남자도 괜찮은데. 인형사 씨는 특히 좀 취향이야.”

“아 진짜 무적이네 이 사람!”

그는 기겁하며 브리짓 폴센의 손을 놓아버렸다.

엘레노어가 잽싸게 튀어나와 브리짓 폴센과 강신혁 사이를 가로막자, 그녀는 기막혀하며 말했다.

“인형사 씨, 사각이 아니라 오각이었어?”

“그때 걔는 저 안 좋아해요.”

“……방금 무슨 말 했는지 알아?”

“아."

강신혁은 자신이 대형 사고를 쳤음을 깨달았다.

쭈뼛쭈뼛 돌아보니 신은아는 얼굴이 붉어진 채 슬그머니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엘레노어는 가면 너머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당황하며 고개를 붕붕 젓고 있었다.

차라리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으면 모르되 고개 회전으로 비행이라도 할 것처럼 맹렬히 저어대고 있으니 더 수상해보였다.

강신혁은 말실수가 굳어지기 전에 다급히 변명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동료로써.”

“알겠어, 알겠어. 인형사 씨 되게 나쁜 남자라는 거 알았어. 내 취향이야. 역시 우리 셋 잘 맞을 것 같아. 침대에서는 어떨까?”

“날 은근슬쩍 끼워 넣지 말아줄래요?”

“나도 안 들어가!”

두 사람에게 연달아 튕긴 브리짓 폴센은 그러나 오히려 더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거절당하면 더 오기가 나고 불타오르는 타입은 현실에선 별로 볼 수 없는데, 브리짓 폴센은 초인사회에서의 신분으로 보든 슈퍼모델 겸 배우라는 일반사회에서의 지위로 보든 남들에게 거절당한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더 심하게 달라붙으면 정말로 공격할 거야.”

“알았다니까요, 언니.”

그때 마침 배가 출항했다.

많은, 정말로 많은 인간들이 부두로 나와 손을 흔드는 모습에 저들과 별 연고도 없는 강신혁에게도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들은 초인들이 아프리카를 정벌하고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리스본엔 아프리카 사람도 많을뿐더러, 포르투갈 본토도 많이 위험하니까. 스페인 접경 쪽은 지금도 싸우고 있어.”

“지브롤터.”

신은아의 말에 엘레노어가 가만히 말을 보탰다.

“지브롤터는 1차 게이트 대역류를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침식되어 이계화한 후, 영국의 지원을 기다릴 틈도 없이 전멸해쏘. 이번 원정에 나서는 영국군의 최대 목적은 지브롤터의 복구일고야.”

“아, 과연…… 그렇구나. 지브롤터는 영국령이지.”

"응."

그래도 영국의 왕족이라고 엘레노어는 지브롤터의 탈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이번 아프리카 원정을 두고 영국군의 참가를 확신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스페인이 지브롤터 가져오려고 애쓰고 있지 않았던가?”

덴마크 사람이라 그런지 무신경하게 언급하는 브리짓 폴센.

그녀의 말을 듣고 엘레노어는 그저 코웃음만 칠뿐이었고, 강신혁이 한숨을 내쉬며 대신 설명했다.

“스페인은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걸요. 오히려 지브롤터가 아프리카와 맞닿는 영역이라, 영국이 그곳을 수복하면 스페인 본토를 지키기 수월해지니 따지고 들지도 못하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영국이었으면 지브롤터는 포기했을 거야. 그냥 스페인에 떠넘기지.”

“영국은 포기 안 해.”

단호하게 선언하는 엘레노어의 모습에선 왕족의 품격마저 느껴졌다.

그녀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력에 순간 압도되어 몸을 움찔한 브리짓 폴센은 이내 그녀의 억양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응원할게.”

“지브롤터라.”

“……이번에 지브롤터 수복은 무리야. 아니, 당장 지금 가는 모로코도.”

은아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비록 강신혁 앞에서는 철부지 꼬맹이가 되지만, 지금 아프리카 원정에 대해 논하는 신은아의 모습에선 충분히 세계랭킹 1위의 위엄이 느껴졌다.

“인류 전력이 최고조였을 때도 아프리카 정벌은 요원한 얘기였어. 그런데 하물며 게이트 대폭주로 아프리카의 몬스터 수준은 높아지고, 초인 전력은 줄어든 이 시점에...... ”

“그러면 왜 아프리카로 가는 거예요? 언니 말 대로면 엄청 위험한 거잖아요. 다들 바보라서 모르나?”

신은아와는 정반대로 탑 랭커로서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스케줄이 바쁘지 않을 때 부르면 달려가서 몬스터를 해치우고 돌아올 뿐인 브리짓 폴센의 질문이었다.

“지금 안 가면 나중에 더 위험해지니까.”

신은아는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듯 안색을 흐렸다.

“게이트는 좁은 지역에 중첩되면 중첩될수록 위험도가 가파르게 높아져. 어쩌면 그곳엔 이미……."

그녀는 그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강신혁의 손을 붙잡았다.

같은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으로서, 강신혁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 대충 파악했다.

그녀는 아마 현계한도에 대해 논하려던 것이겠지.

SSS+랭크를 넘어서는, 일반적으로는 측정되지 않는 난이도의 괴물들.

지구는 다른 세상과 비교하면 평균적인 몬스터 수준이 낮은 편이었지만, 아프리카에 한해서 말한다면 특급으로 취급될 만큼 위험했다.

“위험해지면, 후배는 돌려보낼 거야.”

“선배, 나 세계랭킹 4위야.”

스스럼없이 신은아에게 반말을 하는 강신혁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엘레노어가 가면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며 신은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엘레노어의 예리한 시선을 과감하게 무시하며 강신혁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나한테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돌려보내면, 절대 돌아오지 마.”

“언니, 저는요?”

"?"

“와, 상처받았어.”

아무래도 신은아는 위험하다 느끼면 정말로 강신혁만 돌려보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아프리카에 들어갔던 적이 있는 것일까?

그녀가 세계1위로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쩌면 그녀는 일상적으로 터무니없는 위험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마. 안 죽으니까.”

"응.”

"내 말 안 듣고 멋대로 나만 돌려보내지도 말고."

"......응."

강신혁은 진지하게 말했지만 신은아는 그에게 제대로 대꾸하지 않고 시선을 슬쩍 피했다.

아주 못된 버릇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건 나중에 그녀가 만날 남자친구가 고쳐주겠지.

강신혁이 아니라.

“둘만 꽁냥대지 말고 나도 좀 끼워줘요, 응?”

“앞이나 봐요. 공중 몬스터 습격이 언제 있을지 모르니까.”

리스본에서 모로코의 항구도시 카사블랑카까지, 터무니없이 짧은 거리를 어째서 항공기가 아닌 선박으로 이동하고 있는가.

바로 하늘에 터무니없이 많은 숫자의 공중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침식형 게이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게이트가 현실을 완전히 침식해 이계의 공중요새가 건설되었고, 항공기로는 ‘절대’ 항로를 개척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바다에도 못지않게 위험한 게이트나 침식 지형 따위가 널려 있었지만, 그래도 공중보다는 쉽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아, 인형사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브리짓 폴센이 그를 원망하는 목소리를 냈다.

고개를 드니 정말로 하늘 저편이 새까맣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후방에 있는 선박의 용병들은 벌써부터 중병기를 꺼내 사격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신은아 역시 전신으로 스파크를 파직거리며 마법을 쏘아낼 준비를 했다.

“흠, 사격 좀 멈추면 돌격해야지. 인형사 씨는 원거리 공격수단 있죠? 알 씨는?”

“......응원.”

알 씨가 자신을 말하는 것임을 깨달은 엘레노어는 입술만 삐죽거렸다.

그녀는 철두철미한 근접 공격수인 것이다.

“아."

그때 강신혁은 자신의 인벤토리가 멋대로 열리려는 것을 느꼈다.

오닉스가 나오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닉스가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이유는 보통 하나밖에 없었다.

‘금속이냐?’

- 뀨!

오닉스가 맹렬히 긍정했다.

워낙 여러 종류의 금속을 먹어 치워가며 성장해 이제 어지간한 하급 금속에는 눈도 주지 않는 오닉스의 눈이 뒤집어졌다는 것은 저 공중에서 날아드는 놈들이 모르긴 몰라도 제법 괜찮은 금속을 갖고 있다는 것.

‘부리려나? 아무튼 몸에 지니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강신혁은 영력으로 오닉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오닉스, 이번에 연습했던 거 한 번 해볼까?’

- 뀨웃!

오닉스는 완전히 몸이 달아있었다.

하긴 요즘은 새로운 금속을 얻을 일도 없었고, 그가 만든 무구들은 전부 거래 게시판에 올려버리니 녀석에겐 무척 불만족스러웠을 것이다.

그 녀석을 강신혁이 어떻게 꼬드겼는가 하면, 바로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가면 여태껏 없었던 금속을 잔뜩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한 것이다.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아프리카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녀석을 동하게 만드는 몬스터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와, 총 멋지네요.”

“나도 알아요.”

그가 꺼낸 것은 에레보스였다.

은신 상태로 나온 오닉스가 조용히 그의 어깨에 안착하자 뭔가를 느낀 브리짓 폴센이 어?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몬스터?"

“아니에요.”

그래도 탑 랭커라고 오닉스의 은신을 알아채는구나.

하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다.

곧 오닉스는 이 배를 떠날 테니까.

강신혁은 용병들이 쏘아내는 탄환이며 포탄, 여러 원거리 공격수들이 저마다 마력을 방사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탄환을 쏘아낼 타이밍을 골랐다.

그리고 한순간, 하늘 위의 태양을 몬스터 무리가 가려 바다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그때에 맞추어…….

탕, 암탄을 쏘아냈다.

“어라, 느낌이 사라졌어요. 혹시 탄환에 무슨 정령이라도 깃들어 있던 거예요?”

“비슷하네.”

강신혁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곤, 연달아 몇 발인가의 탄환을 더 쏘아냈다.

빠르게 날아가 먼저 쏘아낸 탄환을 따라잡은 후속 탄환들이 공중 몬스터들이 나타난 일대에 그림자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 갇힌 공중 몬스터들이 일제히 괴로운 비명을 질러댄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 뀨우우우우우!

“후배, 설마……."

“대충 맞아.”

하늘에 갑작스레 형성된 어둠의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유추한 신은아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둠 속으로부터 날개를 잃은 몬스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날개 부분이 통째로 금속이었구나.”

답을 얻은 강신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림자와 동화한 오닉스의 활약은 상상 이상이었다.

적의 몸이 금속질인 이상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전략이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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