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 Chapter 44. 원정 준비 - 2 >
히어로 유니버스 자유게시판에선 모루, 즉 강신혁이 새로 만들어 시험판매하는 물건을 보며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로키 - 녹음, 기록재생? 이런 게 무슨 필요가 있는 거야?]
[헤일로 - 쯔쯔, 발달이 끝나지 않은 인간의 사회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있지. 완전한 힘의 지배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도덕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 말이야. 이건 그 사회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물건이지.]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 모루 할아방은 대체 얼마나 낙후된 사회에 살고 있는 거야? 물건만 잘 만들면 어디 살든 상관없지만. 히.]
[은아 - 체크.]
[로키 - 나 이제 알았어. 은아 저거 모루 물건 받아간 놈들 보일 때마다 저 소리하더라.]
[헤일로 - 그 숫자만큼 체크했다가 나중에 모루한테 자기 몫도 만들어달라고 하려는 것이 아닐까.]
[은아 - 아니야.]
[츠쿠요 - 어머나, 어머나……. 모루가 정말로 재미난 물건을 만드셨군요. 후후, 어쩜. 하찮은 인간들이 모루를 귀찮게 하는 모양이지요.]
[은아 - 내가 다 해결할 거니까 괜찮아.]
[츠쿠요 - 당신 능력이 부족하니까 모루가 직접 나선 것이 아니고요? 후, 이래서 제가 직접 그분 곁에 있어드려야 하는데.]
[은아 - ……너 죽일 거야.]
[로키 - 치정싸움은 언제 봐도 꿀잼이지. 팝콘 안 파냐, 팝콘?]
[헤일로 - 이제 좀 성숙해져라, 로키.]
[슈퍼 울트라은하계주먹1짱 - 할아방 아이는 내가 낳을 건데?]
[바텐더 - 풋.]
강신혁은 고개를 들어 자기 눈앞의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막 ‘풋’이라는 댓글을 입력한 클레어가 흥, 코웃음을 치며 히어로 유니버스를 닫고 있었다.
“어딜 꼬맹이가, 넘볼 사람을 넘봐야지.”
“꼬맹이는 맞는데 엄청 쎈 꼬맹이니까 너무 심하게 도발하지는 마.”
“여자가 도망쳐선 안 되는 승부가 있어. 그게 바로 이거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는 클레어와 짧게 입맞춤하곤 물었다.
“언제까지 있을 수 있어? 난 아무래도 원정 전까지 여기 머무르게 될 것 같은데.”
“계속 여기 있을게. 어차피 당분간 바 영업도 불가능하니까.”
왜 불가능한가 하니, 이번 아프리카 원정 탓에 그녀에게도 어마어마한 양의 포션 의뢰가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조국인 미국에도 대량으로 보내야 하고, 지금 머무르고 있는 한국에도 예의를 차려야 한다.
그 외에도 유럽연합이나 중국, 러시아 따위의 강대국들도 ‘연금술사의 포션’에 지대한 가치를 두는 탓에, 공평한 수준으로 맞춰서 제작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뒷말이 나오기 쉬웠다.
“다들 유치하게 노는구나.”
“그래도 어쨌든 다들 좋은 취지로 가는 거니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노력해야지. 마음 같아선 원정에도 같이 가고 싶지만......."
“안 돼.”
“응. 안 갈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무사히 돌아와.”
강신혁이 그녀를 잡아먹을 듯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녀는 그 반응에 만족했다는 듯 작게 웃곤 그에게 입맞춤했다.
둘이 입술을 떼며 미소를 교환하는데, 뒤에서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보면 지금 떠나는 줄 알겠다.”
“영화 같아쏘.”
그래.
문제는 이 두 사람이란 말이지.
강신혁은 둘의 방에 난입해온 두 여자, 이나희와 엘레노어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두 사람은 왜 온 건데요?”
“언니가 도와달래서 왔어. 나 요즘 언니한테 포션 배워.”
“나희가 몰래 어디 가려고 해서 따라왔어.”
엘레노어의 말은 일단 무시하고 이나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클레어를 돌아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맞아, 내가 불렀어.”
"그게 다른 누구한테 가르칠 수 있는 거야?”
“연금은 학문이니까. 룬을 익힌 나희라면 제법 잘 따라올 거라고 생각해서 가르쳐봤는데 역시 내 예상이 맞더라고.”
클레어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룬과 연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생산 계통 사이에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언제까지고 나 혼자서만 전 세계의 포션을 담당할 수는 없잖아. 나희는 재능이 뛰어나니까 충분히 내 뒤를 이을 수 있을 거야.”
“아니…… 나희 선배는 나랑 아티팩트 가게 차리기로 한 거 아녔어요?”
“아티팩트야말로 매일 팔아먹는 게 아니잖아. 난 우리 가게의 재정을 생각해서 타협을 본 거라고.”
이나희가 우리 가게라고 말하는 순간 클레어의 눈이 조금 꿈틀거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포션을 더 잘 만들게 되면 그냥 혼자서 포션 가게 열어도 되는 것 아니겠니? 까놓고 말해 신혁이도 네 도움 없이도 좋은 아티팩트 잘 만들고.”
“에이, 그건 아니죠 언니. 제 능력이랑 후배의 능력이 합쳐져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영역도 있다구요.”
이상하다, 둘이 마력을 끌어올린 것도 아닌데 마주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전기가 파직파직 튀는 것만 같았다.
강신혁이 그 광경을 보며 문득 아까 히어로 유니버스 자유게시판에서 로키가 말했던 팝콘을 떠올리고 있는데, 뒤에서 조심스럽게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는 이가 있었다.
물론 엘레노어였다.
“부단장…… 아니, 신혁.”
신학기에 곧 입학하게 될 신입생들을 의식하는 건지 요즘은 부단장이라는 호칭을 정착시키려고 노력하는 엘레노어인데, 지금은 굳이 ‘신혁’이라고 고쳐 부른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네. 무슨 일인데요?”
그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엘레노어의 얼굴을 보며 어쩌면 그녀가 그냥 이나희 뒤에 따라붙어 온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담하고 싶은 일이, 이쏘.”
“그래요…… 저 둘은 저러라고 놔두고, 밖에서 얘기하죠.”
그는 싸우던 도중에 이상하게 낯부끄러운 화제로 넘어가 열띤 언쟁을 펼치는 클레어와 이나희를 지그시 보다가는, 이내 엘레노어와 함께 방을 나섰다.
“이쯤이면 괜찮겠네. 무슨 일인데요? 새로운 무기가 갖고 싶다든가?”
“실은, 그게 ”
엘레노어는 답지 않게 무척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만약 멀리서 누군가 본다면 지금부터 그녀가 강신혁에게 고백이라도 하려는 줄 알 터였다.
……아, 마침 저 너머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이진석이 둘의 모습을 발견하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친구?”
“무시해도 돼요. 이쪽 말은 안 들릴 테니까.”
그는 한숨을 쉬며 품에 있는 작은 큐브 형태의 물건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그가 만들어낸 집음기로, 주위 소리를 모아 저장하는 단순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순수하게 영력으로 작동하는 만큼 영력을 모르는 이는 그것이 작동하는 것도 깨달을 수 없고, 소리가 주위로 퍼지지 않게 해주는 기능도 첨부되어 있었다.
“신기하네.”
“소형버전과 원격버전도 개발 중이에요. 개발되는 대로 초인특허 등록하려고요.”
“이게 있으면, 딱히 방음결계를 만들 필요가 없겠네.”
“중요한 자리에서 쓰기도 좋겠죠?”
잠시 자신의 신제품을 홍보하던 강신혁이 나직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렇게 뜸을 들여요?”
“아프리카…… 원정.”
그녀가 그 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
간신히 그 한 마디 내뱉고는 다시 입을 다무는 그녀의 모습에, 강신혁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영국 왕실도 이번에 참여하나요? 아, 초인을 통솔하는 게 영국 왕실이랬으니까 당연히 참여하겠구나.”
“응. 게다가 왕실은, 요르문간드에 원한이…… 좀 이쏘.”
“요르문간드에 원한이 없는 단체가 어딨겠냐마는……."
“황태자의 아들이, 죽어쏘.”
이런.
그가 알기로 이런 뉴스가 나온 적은 없었다.
즉 왕실 내의 비밀이라는 얘기였다.
“엘레노어 선배한테는.”
“사촌동생이야. 착한 아이였는데.”
엘레노어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가득했지만, 그 안에서 한 줄기 의지가 선명히 빛났다.
강신혁은 멀리 돌아갈 것 없이 바로 핵심을 짚기로 했다.
“선배가 이번 원정에 따라가고 싶다는 얘기로 해석해도 되는 거죠?”
"......응."
엘레노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하고 싶어.”
“적대하려는 건 아니죠?”
“그들이 날 미워하지 않는다면.”
하여간 이 사람도 가정사가 복잡하다니까.
강신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죠. 마스크 쓰고 가면 괜찮을 거예요.”
“응. 고마워.”
엘레노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홍보한다면 올해 미스 신영은 이나희가 아니라 엘레노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야, 강신혁! 거기 그 미녀는 또 누구……!”
“시끄러운 거 오네.”
“친구 맞아?”
“역시 아닌 것 같은데요.”
강신혁은 집음기를 끄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엘레노어는 물론이고 이나희까지 강신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 이진석은 분노하여 빡센 수련에 돌입했다.
반드시 강신혁을 꺾고 그에게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을 구출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늘어놓으면서.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강신혁은 용병 친구들의 장비를 마력이 없는 이가 다뤄도 족히 신체능력을 C랭크 이상으로 끌어올려주는 수준으로 재단련했고, 특히 그들의 총기에는 이나희의 도움까지 받아 특별한 기능을 부착했다.
“난전일 때만 써라. 알지?”
“알지알지.”
정말로 못 미더웠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단 이상한 아티팩트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는 쪽이 낫다.
그는 그런 마음을 담아 친구들의 몸도 더욱 단련시켜주었다.
“나 죽어, 죽어 신혁아!”
“안 죽으니까 걱정 마.”
“너 우리 혜나한테 무슨 짓이야!”
“곧 너한테도 똑같이 해줄게.”
“혀, 형! 신혁이 형!”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큰 곡소리를 낼수록 더욱 훌륭한 육신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강신혁은 정말 죽기 직전까지 그들을 굴렸다.
하지만 그들은 평소 훈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강도로 구르고 있었음에도 단지 고통스러울 뿐 몸이 퍼지지 않는 것에 경악을 느꼈는데, 그것도 전부 강신혁이 그들에게 영력과 황룡투기를 퍼부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특성이 이럴 때 써먹기 좋네요.’
그의 특성은 자신과 모든 아군의 힘을 강화한다.
그 힘에는 체력과 완력, 심지어는 이해력이나 암기력과 같은 능력도 포함되기에, 수련 효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 회원님은 능히 대군을 이끌 장군의 재목이십니다. 500,000HP 보너스!
‘안 할 거예요.’
- 쳇.
그 사이 이강율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그때 있었던 일로 지레 그에게 협박은 먹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혹은 그에 대한 대응방식을 고려하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상관없다.
한 번 이빨을 드러낸 놈들이니 언제 또 물자고 덤벼들지 모르는 것이다.
그는 멍청하게 가만히 앉아서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은아 선배 : 장소랑 시간 정해졌어. 포르투갈로 모일 거야.]
[나 : 볼만하겠네. 그때 봐.]
[은아 선배 : 응. ……미안해.]
[나 : 신경 쓰지 마.]
[은아 선배 : 응…….]
용병 3인방을 가르쳐주고 남는 시간에 자신의 무구도 한 번씩 신염의 화로에 재단련하고, 엘레노어와의 일대일 대련으로 실전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재수 없지만, 그 못지 않은 근접전의 재능을 지 니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엘레노어는 매우 좋은 스파링 파트너였다.
“이상해, 신혁.”
그러던 중 하루는 엘레노어가 기묘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신혁과 겨루고 있으면 내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아.”
“칭찬해줘서 고마운데 그건 그냥 비슷한 실력의 상대방이랑 맞붙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런 게 아닌데.”
엘레노어는 뭔가 말하고 싶지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는 표정으로 창을 들었다.
“그런 은근한 성장이 아니라 확실하게 신체랑 마력이 가다듬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선배가 성장기라 그런가 봐요. 자, 한 판 더 하죠.”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땀을 흘리며 한데 뒹구는 모습을 보고 이나희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곤 클레어에게 말했다.
“언니, 저도 근접전이나 배워볼까요?”
“넌 포션이나 만들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원정날 당일이 되었다.
인류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뒤로 성큼 후퇴할 것인지 그 여부가 결정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