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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 < Chapter 44. 원정 준비 - 1 >

“이진수!”

“어? 강신혁!”

이진석은 밤늦게 귀가했다.

용병 장비를 잔뜩 짊어진 채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돌아오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강신혁보다 한 발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그 사이 얼굴이 많이 삭았다는 얘기다.

“강신혁 너 이 새끼, 협회에 그런 짱짱한 뒷배가 있었으면 진즉…… 아, 안녕하세요!”

“안녕. 신혁이 친구구나?”

“그, 네, 넵."

강신혁을 보자마자 흥분해서 달려들던 이진석은 강신혁 옆에 서 있던 클레어의 모습을 보자마자 급격히 얌전해졌다.

클레어는 여전히 조신하고 단아한 컨셉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녀가 살포시 짓는 미소에 이진석은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받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 이진석 옆으로 꺼져. 안녕하세요, 저도 신혁이 친구예요!”

그때 이진석을 옆으로 밀치고 나타난 아이가 클레어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또래에 비해서도 한결 작은 체구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

긴 머리를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땋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때 별빛 고아원의 아이돌이었던, 강신혁과 동갑의 소녀 유혜나가 바로 그녀였다.

“아까 수녀님께 들었어. 네가 혜나구나?”

“네! 언니 너무 예뻐요!”

“어머, 고마워. 너도 엄청 예쁜걸. 피부도 곱고.”

“에헤헤, 용병 일 하느라 실시간으로 망가지고 있는데요. 언니야말로 피부 완전 타고나신 것같아요, 어떻게……."

친화력 무엇? 강신혁은 순식간에 깍깍거리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두 여자를 보며 살짝 공포에 질렸다.

마침 뒤에서 나타난 커다란 덩치의 남자애가 강신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형.”

“아, 운형아. 잘 지냈어?”

“네. 형도, 잘 지내셨죠.”

그들보다 한 살 어리지만 학교를 빠르게 때려치우고 용병 일로 나섰다는 남자아이, 조운형이었다.

녀석이 몸 쓰는 일에 뛰어들려고 다짐한 것은 바로 이 우월한 체구 덕분이기도 했는데, 강신혁이 그에게 체구를 살려 적을 제압하는 격투술을 전수한 이래 별빛 고아원에서는 녀석을 당해낼 자가 없었다.

조운형은 그에게 무술을 배우면서부터 그를 무슨 무협소설에 나오는 스승님 섬기듯이 했다.

뭐라도 맡겨놓은 것처럼 용병 길드를 주선해달라고 떼쓰던(그랜절이 동반되긴 했으나) 동갑내기 친구에 비하면 훨씬 인성이 바른 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야 너 진짜 연금술사랑 그렇고 그런 관계인 거 아니냐, 연금술사가 저렇게 꾸미고 너랑 같이……."

바로 그 동갑내기 친구는 유혜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클레어를 힐끔거리며 강신혁에게 속삭였다.

얼굴이 붉어진 녀석을 보며 강신혁은 쯧쯧 혀를 찼다.

유혜나 일편단심인 것처럼 굴더니 이 녀석도 클레어의 매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물론 그만큼 괜히 자신이 뿌듯해지기는 했지만.

“원정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아, 엄마가 얘기했어? 하여간 걱정도 많다니까. 이거 이번에 완전 큰 규모로 이뤄지는 거거든? 좀 위험하긴 해도 성공하기만 하면 단숨에 인생역전이야.”

“아프리카에 얼마나 끔찍한 괴물들이 있는지는 알고 하는 얘기지?”

“너, 너 아프리카로 가는 건 어떻게 알아!?”

이진석이 놀라 고함을 치다 다급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엄마한테 말한 건 아니지? 아프리카라고 말하면 엄마가 못 가게 하려고 기를 쓰고 말릴 텐데!”

“하, 이 새끼 알고 가는 거였네.”

처음엔 용병 길드에 속아 아무것도 모르고 사지에 내던져지는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아프리카인 줄 알면서도 자원한 것이었다니.

강신혁은 기가 막혀 말했다.

“제정신이냐 진짜? 어지간한 하이랭커도 들어가길 꺼려하는 곳에 초짜 용병인 네가 들어가겠다는 게 말이야?”

강신혁은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는 설마 이번 일에 이진석이 끼어들 거라고는 차마 상상하지도 못했다.

사이즈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야, 우리는 위험한 곳으로 투입 안 돼. 그냥 진지 구축이나 하고 짐 지키고 있으면 된다니까.”

“그러다 무슨 일 터지면 제일 먼저 죽어나가는 게 용병인 거 몰라?”

“그건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신혁아.”

이진석은 비겁하게 안면에 철판을 깔았다.

“운형이랑 혜나도 동의했어. 어차피 위험하다면 가장 보상이 큰 곳에 들어가자고. 용병은 어차피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잖아. 위험할 것 알고 시작한 거니까 너무 그렇게 정색하지 마라. 이거 우리 일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형. 형 덕분에 강해졌으니까, 할 수 있어요.”

“맞아, 신혁아.”

언제 클레어와의 대화를 끝내고 온 건지 그의 뒤에서 불쑥 나타난 유혜나가 그렇게 말하며 헤헤 웃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우리도 이제 애 아니잖아?”

“애거든?”

초인특별법이 없었으면 이 녀석들은 총 들고 설칠 수도 없는 나이다.

게이트가 열린 이래로 수없이 생겨나고 개정된 헌법의 틈, 결정적으로 고아라는 특수한 신분이 이 어린 나이에 그들을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현장으로 내몬 것이다.

그들이 자청해서 뛰어들었다는 점이 가장 비참한 일이었지만.

“또또 혼자 다 늙은 것처럼.”

“어머, 신혁이 예전부터 그랬니?”

“정말 그랬다니까요, 언니! 초딩 때부터 이상하게 애늙은이마냥 얌전해가지고……."

클레어는 유혜나의 말을 받아주며 강신혁에게 눈으로 사인을 보냈다.

아무래도 말리는 건 텄으니 플랜B로 바로 들어가라는 사인이었다.

“그럼 나머진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

“이 얘기는 그만두자. 그보다 너랑 여, 연금술사 누님 얘기나 해봐.”

“그것까지 포함해서 안에서 하자고.”

그는 일행을 끌고 안으로, 그러니까 이야기가 혹시라도 외부로 퍼져나갈 일이 없는 방음이 잘 된 방으로 들어갔다.

클레어에게 주어진 방이었다.

“우리 치킨 먹을까? 언니가 쏠게.”

“감사합니다!”

클레어에게 있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곧 치킨이었다.

그녀는 고아원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 치킨을 주문하고는 강신혁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럼 난 치킨 올 때까지 나가 있을게. 혼자서 말하는 게 편하지?”

“응. 고마워.”

“그 말은 나중을 위해 아껴둬.”

클레어는 강신혁에게 다가와 쪽, 입술을 맞추고는 방을 나갔다.

방 안에 있던 이들은 모두 그것을 보고 얼어붙었다.

“어, 어, 너, 지, 진짜……."

“맞아. 근데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중요하지 새꺄! 어라? 그런데 연금술사는 분명 신은혁이랑 사귄다고……."

“역시 네가 신은혁이었구나!”

이진석이 혼란스러워하며 어버버거리는 반면 유혜나는 범인을 밝혀내는 코난처럼 당당하게 외쳤다.

“엄마가 자주 그랬어, TV에 나오는 거 너 같다고!”

“그게 진짜였다고? 난 엄마가 너 너무 보고 싶어서 환각을 보는 줄 알았는데……."

과연, 에스델 수녀는 이미 그때부터 짐작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가 클레어와 사귀는 사이라고 추측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아."

“헐…… 죽음의 인형사? 내 친구가?”

“어."

“뇌, 뇌제 실제로 보면 어떰? 예쁨?”

“개예쁨."

자신이 신은혁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던지는 질문이 이런 거라니.

이진석은 아마 지금 유혜나가 자신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는 것도 모를 것이다.

그에게 모든 기대를 버린 유혜나는 강신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신혁아? 신은혁은 성인이잖아.”

“그거 위조야.”

“어떻게 위조했는데!?”

“뇌제 빽으로.”

“아!"

이진석이 깨달음의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럼 혹시 우리 거너즈에 넣어준 게……."

“뇌제야.”

“미친……."

거너즈는 대표적인 업계 2위 용병단이었다. 업계 평판도 좋고, 초인 중에도 거너즈에 가입해 활동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았다.

특히 무모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이미지가 괜찮았는데 설마 그런 거너즈도 아프리카 원정에 참여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협회가 그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하지만 비밀이다.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외부로는 흘러나가면 안 돼.”

“물론.”

“믿고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왜 굳이 지금 말해주신 거예요?”

생각이 깊은 조운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강신혁은 역시 이 녀석이 제일 믿음직하다고 생각하며 대답해주었다.

“아프리카 원정, 나도 가거든.”

“헐!”

“와, 세계랭킹 4위도 가는구나! ……그러고 보니 신혁이 세계랭킹 4위구나! 진짜 개쩐다.”

강신혁을 보는 유혜나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중학생 시절 그녀와 잠깐 사귀었을 때는 많이 받았던 시선이었다.

“나 임자 있다.”

“아, 그렇지. 클레어 언니는 못 이기겠다.”

“너, 너?”

“넌 오늘 네 이미지를 너무 많이 깎아먹었어.”

“병신.”

배신당한 표정의 이진석에게 강신혁은 엄숙히 선언했다.

그 옆에서 유혜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후, 나도 어디 좋은 남자 없나. 신혁아, 소개시켜줄 사람 없어?”

“한 놈 있긴 있는데.”

“야!?”

까불기는 이진석처럼 까불지만 능력은 이진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 녀석에 대해 얘기를 해줄까 고민하고 있자니 이진석이 강신혁에게 달라붙어 그를 탈탈 흔들었다.

“하지 마, 어지러워. 아무튼 너희가 죽어도 아프리카에 가야겠다면, 거기서는 가능하면 내 주위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뜻에서 미리 말해주는 거니까 고마워해라.”

“형…… 진짜 대단해요. 고맙습니다.”

조운형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더니 슬며시 고개를 들며 물어왔다.

“혹시 원정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좀 봐주실 수 없을까요?”

“해줄게.”

“형…… 고맙습니다.”

“아, 나두! 헤헤, 신혁이한테 배우는 거 오랜만이네.”

“야 나도! 나도 봐줘!”

“알았다니까. 한 명 봐주나 셋 봐주나 다를 거 없지.”

그는 뛸 듯이 기뻐하는 세 명의 어린 용병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아직까지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지만, 이 녀석들의 말대로 용병이 어딜 가나 위험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쉽게 죽지 않게 생존에 도움이 될 기술이라도 그 몸에 때려 박아주는 것이 강신혁이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아, 그리고 너희 장비 내놔봐. 개조해줄 테니까.”

“너 그런 것도 되냐!?”

이쪽이 본업이다.

그는 셋의 장비를 수거해 일단 대충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전부 동일한 규격이었고, 거너즈의 마크가 박혀있는 것으로 보아…….

“보급품?”

“어. 등급 올라가면 더 좋은 거 줌.”

“반납해야 되고 그런 거 없지?”

“없어. 우리 완전히 주는 거래.”

과연 업계 평판이 제일 좋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용병 길드는 장비를 판매상이랑 선만 이어주고 알아서 해결하게 시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통으로 해결해줄 줄이야.

강신혁은 장비들을 꼼꼼히 뜯어보며 몇 번이고 몰래 설치된 장비나 하자가 있는지 확인해보고는, 영력을 가볍게 불어넣어 근원을 완벽히 분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겉으로는 티 안 나게 고쳐야겠네.”

“신혁이 멋지다아……."

“야!?"

그때 마침 두 손 가득 치킨박스를 안은 클레어가 방 안으로 돌아왔다.

강신혁이 그것을 받아들자, 클레어는 방 안의 분위기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충 얘기했나보네?”

“응, 하나는.”

“하나?”

조운형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신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 제우스에 대해서 아는 거 있으면 있는 대로 토해봐.”

“제우스.”

유혜나가 눈을 빛냈다. 그 시선이 강신혁이 뜯어놓은 치킨 박스로 향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우리 아는 거 많아.”

“세뇌교육 받거든. 제우스는 적폐고 블랙인데다 뒤가 구린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닌다고.”

“거의 반공교육 수준.”

“언제적 말이냐 반공교육.”

“앉아 봐요.”

조운형이 닭다리를 들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팩트만 짚어드릴게요.”

보통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은 구라를 치던데.

강신혁은 못미더워하면서도 자리에 앉았다.

클레어가 내민 닭다리를 받아들고, 한 입 왕 깨물었다.

“부부 같다.”

“혜, 혜나야. 닭다리 먹을래?”

“내가 알아서 먹을게.”

“신혁이 형, 제우스가 뭔 짓들을 하냐면요……."

그로부터 장장 2시간 동안, 반공교육…… 아니, 제우스의 실태를 까발리는 고발이 이어졌다.

하나같이 팩트라기엔 증거가 부족한 것들뿐이지만, 정황은 대충 알 수 있었다.

강신혁은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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