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232화 (232/345)

232화. < Chapter 42. 게이트 합숙 - 2 >

게이트 상공에 떠 있는 것은 붉은 태양이었다.

“왜 안 푸른 태양?”

“그거 따질 거라고 생각했다.”

심드렁하니 말하는 강신혁 옆에서 이나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덧붙였다.

“히든 클리어 조건이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녀는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아공간 팔찌(스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모양이었다.)에서 드론 몇 대를 꺼내 띄웠다.

드론들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게이트의 히든 클리어 조건이라는 것을 찾아보려는 모양.

이런 숨겨진 조건을 찾는 거라면 또 강신혁이 선수였지만, 이번에 게이트에 들어온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으므로 자제하기로 했다.

“뜨거워.”

“밤에는 엄청 추워져. 데미지가 들어올 정도로.”

“그러니까 그게 환경 데미지라는 거군요.”

“아니."

엘레노어가 바닥을 가리켜보였다.

게이트에 입장한 순간부터 그들은 황금의 모래사막 위에 서 있었는데, 가만히 있어도 발이 푹푹 들어갔다.

문제는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고동과, 미약한 진동이었다.

“이거 설마……."

“중심 잡아.”

엘레노어가 짧게 말한 직후.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한 모래의 늪이 생겨나 일행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뭐야, 유사!?”

“이거 이대로 빨려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 아, 혹시 이게 히든 클리어 조건 아니야?”

“멍청한 소리하지 말고 제대로 저항해요.”

강신혁은 황룡투기를 몸에 둘러 바닥을 박찼다.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오기 힘들어 보이는 이나희를 짊어진 것은 덤이었다.

“꺅."

“괜히 귀여운 척 하지 마요.”

어차피 S랭크 게이트 정도로는 수련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는데, 이나희를 책임진다는 페널티까지 있다면 얼추 괜찮을 것 같기는 했다.

"응?"

펄쩍 뛰어올라 상공의 공기와 접하는데, 사방에서 뭔가 자신을 조여 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직감이 시키는 대로 검에 영력을 담아 휘저었다.

뭔가가 얻어맞고 떨어져나가는데, 그의 눈에는 그것이 모래알 입자로 보였다.

‘……미쳤는데?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지?’

모래알 한 알에 담겼던 힘을 그는 확실히 인지했다. 족히 S랭크 몬스터의 일격에 비견되는 수준이었다.

그는 그 안에서 미약한 마력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평범한 모래알이 아니라는 얘기다.

윈드 마스터리를 이용해 허공에 임시 발판을 만들어내어 디디며 그것들을 좀 더 자세히 살피려는데, 아래에서 엘레노어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가 더 버티기 힘들다고 했어!”

엘레노어가 소리 질렀다.

밑에서는 사막의 늪에 휩쓸리는 일행을 향해, 사막 안에서 모래와 함께 섞여 휘몰아치는 전갈들의 습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전갈들의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다. 정신없이 회전하는 모래에 섞여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것에 대응하기가 어려울 뿐.

실제로 엘레노어는 어떻게든 거기에 맞춰 몸을 놀리며 창을 휘두르고 있었고, 백인하는 그 흐름을 타고 전갈을 사냥할 정도였으며, 오혜나마저 백인하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다.

"그럼 전 위에서 해볼게요!”

“나희는 내가 맡을게!”

엘레노어가 용맹하게 외쳤지만, 이나희를 향하는 그녀의 시선이 곱지 못한 것으로 보아 어째 맡겨주기가 불안했다.

더구나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이 짐짝을 데리고 전갈들을 완벽하게 막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에 고개를 저어주고 말았다.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하여간, 우리 엘리도 참 질투쟁이라니까.”

이나희는 그에게 짐짝 취급을 당하면서도 뭐가 기분이 좋은지 킥킥 웃고 있었다.

강신혁은 어처구니가 없어 그녀를 내던질까 하다가 꾹 참고 좀 더 편한 자세로 그녀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러게 왜 이런 데까지 따라와요, 따라오길.”

“후배랑 둘이 데이트 간다고 자랑하는 게 얄미웠어.”

정말 여러 의미에서 솔직한 여자라는 생각에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만만하지가 않은데.’

강신혁은 재차 검을 휘둘러 그들에게로 날아오는 모래알을 계속해서 잘라냈다.

한 팔로는 이나희를 부여잡은 채, 한 손에 든 검을 연속적으로 휘둘러 사방에서 날아드는 모래알을 차례대로 베어내는 모습은 새삼 그가 검으로 신인왕 자리를 차지한 검수임을 실감케 했다.

“후배, 뽀뽀해도 돼?”

“그냥 이대로 모래밭에 던질까?”

“농담이야, 농담.”

모래알이 날아드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그는 허공에 연속적으로 공기의 발판을 만들어내어 디디며, 그들에게로 날아드는 모래알들을 연속으로 쳐내고 있었다.

사실 그냥 막아내기만 할 거라면 그보다 좋은 수단이 있었지만 이 게이트에는 어디까지나 수련을 위해 들어온 터라, 허공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고, 검으로 모든 모래알을 완벽하게 부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후배, 이것들 뭔지 알겠어?”

“아직 모르겠어요. 워낙 날아드는 숫자가 많은 데다 빠르기까지 해서 분석이 좀 힘드네요.”

“난 좀 알 것 같아.”

의외로운 말이었다.

강신혁은 그의 눈을 노리고 날아드는 모래알을 부순 후 곧장 뒤로 검을 뻗어 휘저으며 산탄처럼 흩뿌려지는 모래알들을 단숨에 파괴하고, 임시로 강한 바람을 만들어내 모래알들을 유인하며 숨을 돌렸다.

“그래서 뭐 같은데요?”

“이거 골렘 아냐?”

다짜고짜 나온 말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뭔 소리야 그게.”

“모래알 입자 하나하나에 짙은 마력이 깃들어 있는 데다, 명백히 우리를 노리고 날아들고 있잖아. 그게 가능하려면 골렘이 가장 유력하지 않아? 게다가 내 특성이 또 룬이잖아.”

정확히는 발아의 룬, S+랭크의 터무니없이 높은 희귀도의 특성이다.

물론 요즘 강신혁 주위에 SS랭크의 특성이 우글거려 조금 흔해 보이는 감이 없지 않지만, 가뜩이나 희귀하고 강력한 마법 계열 특성 가운데서도 룬은 신비도와 강력함 면에서 압도적인 탑을 달리는 특성이었던 것이다.

“이것들, 룬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아.”

"호."

가능성이 있는 소리였다. 왜 골렘이라고 하면 룬이나 인챈트 따위와 관계가 깊은 마법생물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이건 이나희의 전문분야였다.

“어때, 골렘 한 번 잡아보지 않을래?”

“가능할 것 같아요?”

그의 질문에 이나희는 모래알 하나를 생포해달라고 부탁했다.

살아있지도 않은 모래알을 어떻게 생포하느냐 좀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는데, 그는 칼날로 받아낸 모래알을 윈드 마스터리와 물의 보주를 활용해 일시적으로 얼리는 것으로 답을 찾았다.

“너 얼리는 능력은 언제 생겼어?”

“템빨이에요. 나중에 빙수 만들어줄 테니까 지금은 이거나 조사해요.”

“어쭈, 그렇게 귀여운 말도 할 줄 알고…… 흠흠, 그럼 어디.”

이나희의 능력이 발동했다.

그녀의 능력은 대상에 룬의 씨앗을 심어 가능성을 개화시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만약 대상에 다른 룬의 흔적이 있을 경우 그것을 먹어치우거나 자세히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음, 으으음…… 아.”

그때, 이나희의 손에 들려 있던 모래알이 파직, 하며 튀겼다. 강신혁은 잽싸게 황룡투기를 뻗어 이나희를 보호해주었다.

“고, 고마워.”

강신혁은 두 눈을 꿈벅거리는 이나희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때요?"

“응. 잡을 수 있겠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곤, 이나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붉은 태양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후배, 저 위로 올라가야 돼.”

“역시 태양이 답일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지금은 안 돼요.”

강신혁은 여전히 그들에게로 날아드는 모래알들을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완벽하게 쳐내며, 아래에서 전갈들과 투쟁중인 일행을 가리켜보였다.

엘레노어와 백인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적응했는지 상당한 여유를 보여주고 있었고, 오혜나의 움직임도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골렘을 불러내버리면 수련이 끝날 것 아녜요. 우리 여기 수련하러 왔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그랬지. 후배한테 도움 되고 싶어서 좀 급발진했네.”

“지금 기특해 보이려고 그런 말 하는 거죠.”

“응, 좀 예뻐 보이고 그러지 않아?”

노골적으로 귀여운 척을 하고 눈망울을 반짝이며 그런 말을 하는데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결국 강신혁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엘레노어 선배, 여기 나희 선배 던져드릴게요!”

“기다리고 있어쏘!”

“아 잠깐잠깐! 스톱! 미안, 안 할게! 끼 안 부릴게!”

일행은 그로부터 몇 시간 동안 흘러내리는 사막의 모래 속에서 투쟁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사막에 태양이 지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는데, 그것과 동시에 모래의 흐름도, 상공을 휘돌던 모래알의 습격도 사라지고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대신 전갈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기에 완전히 방심할 수는 없었다.

“여기 몬스터는 전갈뿐이에요?”

“응, 날짜가 지날 때마다 전갈의 수준이 높아지다가, 며칠 지나면 S랭크의 전갈들이 나타난데. 굉장히 커다란 전갈도.”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우고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오늘 사냥한 전갈을 구워먹었다.

전갈 중에도 독이 전신에 도는 놈과 꼬리에만 몰려 있는 놈이 있었는데, 일행이 몸통에는 독이 없는 놈을 감정하여 구워먹는 반면 강신혁은 독이 있는 놈들만 따로 모아 구웠다.

“그거 어쩌려고? 설마 먹게?”

“하이랭커는 저항 스킬이 기본인 거 모르냐. 물론 난 그중에서도 특급이지.”

단순한 독 저항이 아니라 영혼에 독을 담아내는 수준까지 발전했으니까.

강신혁이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잘난 척을 하고 있자니, 백인하가 먹고 남은 꼬치로 그의 눈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하이랭커라고 유세 떠는 거 너무 싫다. 부럽지만.”

그렇게 말하는 백인하에게도 분명 독 저항 스킬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미 한 번 확인하지 않았던가.

다만 그는 독물을 구워서 먹을 만큼 저항력이 강하지는 않다는 모양이었다.

“너도 랭크 측정을 제대로 할 기회만 있으면 하이랭커는 할 수 있잖아.”

“방금 그 발언 되게 찐따 같이 들렸는데. 난 힘숨찐 하는 거 아니거든? 보통 학생은 랭킹 측정 안 하는 게 맞는 거거든?”

백인하는 신영에 다니는 3년간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아, 초인사회에 입성하는 그 순간부터 하이랭커로 인증을 받으려는 야심찬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그의 친우가 이중신분으로 먼저 하이랭커가 될 줄은, 심지어는 4위의 탑 랭커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하이랭커......."

반면 낮 시간 동안 내내 모래와 전갈에 시달려 꼴사나운 모습이 된 오혜나는 백인하 옆에 가만히 앉아있다가는 강신혁의 말을 듣고 가만히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나도 줘.”

하고 말하며 강신혁이 굽고 있던 전갈 꼬치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쓸데없는 오기 부리지 마라.”

“아냐, 나도 독 저항 있어.”

강신혁이 쳐내려 했지만 그녀는 굳이굳이 다 구워진 전갈 꼬치를 받아가 깨물어먹었다.

다 구워진 전갈의 껍질은 신체가 강화된 초인들에게는 그저 바삭한 껍데기일 뿐.

강신혁은 혹시라도 그녀가 잘못되면 자신의 영혼독 스킬로 해독할 생각으로 대기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아주 잠깐 괴로워하는 것 같다가도 그것을 꼭꼭 씹어 삼켰다.

“독 안 올라?”

“괜…… 찮아. 독 저항도, 수련하면 오르니까.”

이 전갈은 A랭크 중에서도 독의 위력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걸 버틴다는 것은 과연, 오혜나도 뱅가드 길드 마스터의 외동딸답게 어릴 때부터 많은 투자를 받긴 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이겨내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스킬은 그런 과정에서 성장한다. 무식하지만 효율적인 성장방법이었다.

‘독기는 있네. 그야 당연하지만.’

강신혁은 꾸역꾸역 독 전갈을 먹는 오혜나를 보며 자신도 전갈을 파삭, 깨물어먹었다.

적당한 독이 맛의 악센트를 살려준다는 것은 저번에 슈와 함께 불도마뱀을 구워먹으며 알게 된 것이다. 그땐 독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본 오혜나는 그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전갈을 집어먹었다. 강신혁은 구이에 후추를 뿌리며 말했다.

“그러다 팔찌 내구도 안 상하게 해라.”

“이 정돈 괜찮아.”

강신혁의 말에 오혜나는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그가 준 팔찌는 착용자가 해를 입을 상황에 대신해서 피해를 받아 내구도가 줄어드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스테이터스를 올려주는 등 다양한 부가효과가 있었지만, 슈에게 준 오리지널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한 실험작에 불과했다.

‘생색을 내고 데이터를 회수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지. 그럼 하는 김에…….'

그는 전갈을 다 먹은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검 가르쳐달라고 왔다면서. 한 번 보자, 후배.”

"......큭."

집단수업이 끝났으니, 이제.

두근두근 개인교습의 시간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