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 Chapter 42. 게이트합숙 - 1 >
사정은 간단했다.
원래부터 엘레노어는 강신혁과 함께 게이트 탐사를 하려고 벼르고 있었고, 그녀와 협정을 맺었다느니 뭐라느니 하며 이나희가 난데없이 거기에 끼어들었다.
차라리 엘레노어와 둘이서만 들어가는 거라면 안심할 수 있는 강신혁이었으나, 엘레노어를 이나희와 붙여놓으면 엘레노어까지 묘하게 적극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근 몇 달간 깨달은 강신혁은 이대로는 곤란하게 될 것을 확신했고.
어차피 백인하가 오혜나를 맡기고 싶어한다면, 여기에 끼어들게 하는 쪽이 자신에게도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시뇨기 너 웰케 웰케임.”
“저 사람은 왜 여기 있는 건데, 오빠?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대충 사정을 파악한 백인하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 두 여자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약속을 잡고 있었던 강신혁에 대한 원망과 이런 어색한 자리에 동생을 끌고 와버린 것에 대한 후회를 담아 그를 째려보았다.
한편 오혜나는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일행을 둘러보며 눈만 끔벅이고 있었는데, 강신혁과 시선이 마주치면 찌릿 노려보는 것이 저번에 한 감사인사와는 별개로 그와는 적대적 태도를 유지하려는 모양이었다.
“너 어떻게 여기 우리를 끌어들일 수가 있어.”
“조용히 해. 아, 너도 와야 되는 거 알지?”
“미친놈아, 나는 빼라고.”
“익.......”
강신혁이 백인하까지 끌어들이려 수작을 부리는 사이, 엘레노어는 세상의 모든 악이 강림한 표정으로 백인하를 째려보고 있었다.
백인하는 자신이 그녀에게 오해를 사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 누님? 제가 혜나를 데려온 건, 그 뭐냐. 시뇩이한테 검술 강습을 받게 하려고……."
“우리 부단장을 왜, 마음대로 부려머고?”
엘레노어는 ‘우리 부단장’이라는 부분에 굉장히 힘을 주어 말했다.
아무래도 평소 이나희에게 ‘우리 동아리’라는 단어로 많이 괴롭힘을 당했던 반동으로 보였다.
“마음대로 부려먹는 게 아니라 부탁을……."
“그것도 하필이면 예쁜 여자애를 데리고 와소.”
엘레노어의 원망어린 시선이 오혜나를 향하자, 전후사정 모르고 다짜고짜 이곳에 끌려온 오혜나도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전 강신혁과 만났을 때에 비하면 한결 씩씩한 모습으로 선배들 - 그것도 신영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 - 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뱅가드 오혜나예요. 올해 3월에 신영에 입학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응응, 그건 알아. 그나저나 뱅가드라는 건……."
엘레노어 대신 이나희가 그 말을 받았다.
오혜나는 여전히 당당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 수습이지만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좋아좋아, 멋있어. 너 같은 타입 맘에 들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 이곳에 인하 오빠 때문에 왔어요. 뭘 한다는 건지도 듣지 못했는데…… 돌아갈까요?”
“응? 아니……."
사실 자신부터가 그리 환영받는 손님이 아니었던 이나희는, 객이 늘어나면 엘레노어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빠르게 마친 후 입가에 미소를 띠며 오혜나를 반겼다.
“괜찮은데? 어차피 대형 게이트잖아. 그치? 엘리, 괜찮지?”
“대형은 대형인데…… 에휴, 돼쏘. 다들 이리로.”
엘레노어는 미련이 남는 말투로 투덜거리다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일행을 한 자리로 불러 모았다.
지금 일행이 위치한 곳은 서울 외곽에 있는 야산의 공터. 주위에는 사람도 한 명 없고,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것은 영국 왕실의 인물이었다.
엘레노어가 끈 떨어진 연이니 뭐니 해도 역시 그녀의 권력은 머나먼 이국에서도 확실하게 유효한 것이다.
“지금부터 들어갈 곳은 S랭크 게이트야.”
“S랭크!? 이 근처에 있는 게이트 중 S랭크면…… 아!”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오혜나가 기겁했다.
S랭크 게이트쯤 되면 어지간한 유명 길드에서도 소규모로는 진입하지 않는, 철저한 공략계획이 기초되어야 하는 장소.
결코 학생들 몇 명이 모여서 가볍게 논할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혜나를 제외한 전원은 편안한 얼굴이었고, 그녀 역시 곧 어째서 이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지 깨달았다.
“전원, 마스크드 바커스......."
그들은 요즘 S랭크 이하의 게이트는 아예 맡지를 않았다.
단기간에 강도 높은 실전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레 실력이 성장하고 덩달아 간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오혜나는 백인하로부터 마스크드 바커스의 일원에 대해 대충 들었기 때문에 이들의 자신감을 자연스레 납득할 수 있었다.
“까놓고 말해 우리 팀 무력의 절반 이상은 시뇩이랑 클레어 누님이지만.”
“뭔 소리야, 요즘 언니는 어지간하면 무기 안 꺼내거든.”
“일단 나희 누님이 제일 약해.”
“후배야, 네 친구 좀 때려줘.”
이나희의 말을 순순히 들을 생각은 없지만 백인하는 때려둘 수 있을 때 때려두는 주의였으므로 일단 녀석을 때렸다.
그런데 맞은 백인하 대신 오혜나가 벌컥 성질을 냈다.
“인하 오빠 왜 때려!”
“원래 깐족거리면 맞는 거다.”
강신혁은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오혜나를 밀어냈으나, 그 장면을 본 이나희와 엘레노어는 오호라, 눈을 빛냈다.
“어라, 얘는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응, 환영. 혹시 비룡기사단, 관심 이쏘?”
“어, 네?”
오혜나는 어째서 자신이 선배들에게 호감을 샀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제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비룡기사단은 이전부터 꼭 들어가고 싶었어요.”
오혜나의 능력이라면 어차피 비룡기사단에 입단할 능력은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말로 비룡기사단장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는 최대한 얌전히 대꾸했다.
강신혁은 자신을 대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그녀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지만, 그녀는 강신혁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학생회나 들어오지.”
“나 부회장 안시켜준다며.”
“그건 시뇩이 몫이니까.”
“난 안 한다고.”
강신혁은 하나마나한 부정을 했다. 오혜나가 비로소 그를 돌아보았는데, 눈에 원독이 차 있었다. 아무래도 백인하를 그에게 뺏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엘레노어가 크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지방방송이 모두 꺼졌다.
“게이트의 이름은 [푸른태양사막]. 지속성 게이트, 즉 던전이야. 시간의 흐름이 외부보다 빠른 편이고, 환경 페널티가 상당해소 수련하기 좋아.”
“역시 그 게이트였군요……."
“혜나 너도 알고 있어?”
“응, 거기 유명해.”
게이트 중에는 외부와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이 있다.
분명 다섯 시간 만에 공략을 끝내고 나왔는데 외부에서는 열 시간이 흘러 있거나, 반대로 2시간만 흘러 있는 경우가 간혹 가다 있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단발성 게이트인 와중, 몇 번이고 클리어할 수 있는 지속성 게이트가 그런 옵션을 갖고 있는 경우 가치는 매우 높아진다.
외부보다 시간의 흐름이 빠른 던전. 즉 던전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와도 현실에선 그것보다 적은 시간이 흘러 있는 던전.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자원이고, 초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게이트는 한 번 입장할 권리를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대략 50% 정도 이득을 볼 수 있어. 굉장하지.”
그런 대단한 게이트를 잡아온 자신을 칭찬해달라는 듯 큰 눈을 깜박이며 웃는 엘레노어.
무척 귀여웠다. 꼭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에 꼭 초를 치는 것이 관리자였다.
- 고작 1.5배 정도로 유세라니, 허접한 불여우답게 수준이 낮군요.
‘히어로 유니버스 부심을 부릴 생각은 없지만…… 확실히 별 거 아니긴 하죠.’
- 관리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회원님께 400,000HP 보너스!
‘아니, 이 타이밍에 보너스를 주면 저까지 엘레노어 선배를 씹고 있는 것 같잖아요.’
강신혁은 차원 퀘스트를 통해 지구와의 시간비율이 차이나는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많다. 하다못해 이젠 마이룸에만 들어가도 지구보다 세 배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고작 1.5배의 시간을 얻었다고 크게 기뻐할 마음이 들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게이트, 인기가 없죠.”
"응?"
놀랍게도 관리자 말고도 초를 치는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신입 오혜나였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와중에도 그녀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시간으로 이득을 보는 게이트는 주로 수련장으로 사용되는데, 이 던전은 환경 페널티가 너무 지독한 데다 끊임없이 몬스터가 나타나는 구조라서 실질적으로 S+급 판정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서 수련을 하려면 SS랭크…… 즉 하이랭커 정도가 아니면 의미가 없는데. 하이랭커들은 대부분 스킬이 완성되어 있으니 따로 이런 데를 찾아와서까지 수련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녀의 조리 있는 설명에 강신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하이랭커들의 스킬이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수련을 따로 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다 허접이던데.”
“시뇨기 닥쳐.”
“넌 수련 열심히 하고 있냐?”
“열심히 하거든!? 보여줘? 내 바람 보여줘?”
“맞아, 요기 인기 없어.”
강신혁이 백인하를 놀리던 중 엘레노어가 오혜나의 말을 긍정했다.
하지만 직후 덧붙였다.
“그래도 나랑 부단장에겐 좋은 곳이야. 수련, 할 수 있어.”
"......."
엘레노어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오혜나는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활약상은 뱅가드의 일원인 그녀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희는 지금이라도 빠져도 돼.”
“괜찮거든요? 안 그래도 나도 드론 조종 연습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저도 뭐 이제 S랭크 게이트 정도는 무섭지도 않네요.”
“저도…… 윽.”
과연 마스크드 바커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일행의 대담한 선언에 섞여 자신도 오기를 부려볼까 하던 오혜나였으나 이전 강신혁에게 제대로 콧대가 부러진 뒤인지라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오혜나를 돌려보내면 강신혁은 악마라고 불릴 것이다.
“너도 괜찮을 거야. 좀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강신혁은 미리 준비해온 검과 팔찌 하나씩을 오혜나에게 건넸다.
그녀는 그것을 받지 않고 눈을 멀뚱히 떴다.
“뭐야?”
“아티팩트.”
“아티팩트라면 나도 많아. 한두 개 추가된다고 등급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으면 하이랭커는 전부 템빨 싸움이었을걸.”
“잔말 말고 받아. 너도 저 게이트 안에서 수련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오혜나는 썩은 표정으로 그것을 받더니, 정보를 확인하고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검은 S+랭크, 팔찌는 이전 슈에게 만들어주었던 팔찌의 정보를 토대로 마이너카피해 만든 것으로 무려 SS-랭크였으니까.
“무슨, 이런…… 이게 뭐야, 목숨이 여벌로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게다가 스테이터스, 스테이터스가 전체적으로 오른다니 듣도 보도 못했는데……."
강신혁은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능력을 모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안형주 씨가 제대로 홍보를 못하나 보네.”
“그 사람이 가져온 아티팩트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야 당연하지, 이런 걸 어디 뚝딱 만들어내는 줄 아나. 곱게 쓰고 반납해.”
사실 뚝딱 만들어낸 게 맞지만 그쪽이 더 문제가 되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오혜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왜 세계 모든 아티팩트 장인이 떠받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초인학교 따위에 다니고 있는 건데?”
“전투력도 뛰어나니까. 오빠 친구가 이 정도다.”
“와, 재수 없어……."
백인하의 설명에 오혜나가 강신혁을 바라보는 눈에 더한 짜증이 깃들었다.
분명 강신혁은 그녀에게 아티팩트를 대여해줬을 뿐인데 어째서 인식이 더 나빠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후배 또 혼자서 작업했지. 나는 장식이냐? 왜 맨날 혼자 하는데, 어? 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나만큼 실력 좋은 인챈터가 어디 흔해? 마구 부려먹으란 말이야. 마구마구.”
“같이 작업할 때마다 선배가 수작을 부리니까.”
“윽……. 그야 나도 안 된다고는 생각하는데, 너 작업하는 거 보고 있으면 엄청 꼴, 읍읍!”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하는 이나희를 적당히 단속해준 후, 강신혁은 엘레노어에게 어서 게이트에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엘레노어는 괜히 감정을 담아 이나희의 어깨를 한 대 때리고 일행을 이끌었다.
아티팩트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출발이 늦은 오혜나는, 그들보다 앞서가는 강신혁과 두 여자 사이에 형성된 분위기를 캐치하고는 백인하에게 조용히 물었다.
“오빠, 저 사람 혹시 다른 여자도 있어?”
“내가 알기론 네 명이 끝인데 또 모르지. 현지처라도 두고 있을지.”
“백인하 닥쳐.”
- 예리한 추측이었습니다. 관리자에게 권한이 있다면 저 인간에게 보너스 포인트를 주고 싶군요.
‘시끄러워요.’
- 700,000HP 보너스!
‘왜!’
그렇게 외부생 1명, 신영 학생 4명에 의한 합숙 훈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