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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 Chapter 41. 균형의 논리 - 3 >

깡! 깡! 깡!

좁디좁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망치질 소리가 이젠 없으면 허전할 지경이 된 어느 날.

늙은 대장장이는 자신에게 일생의 과업을 아무렇지 않게 의뢰한 친구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할배, 모루 할배.

- 일을 시켰으면 진득하니 결과물이 나오기만 기다릴 것이지, 또 뭐가 문제냐.

대장장이는 까칠하게 대꾸하며 눈앞에 놓인 금속 막대…… 쇠에서 검이 되어가는 중인 그 막대기를 가만히 들어올렸다.

방금 그에게 귓속말을 걸어온 친구가 보내준, 도무지 연원을 알 수 없는 금속.

친구가 선물로 보내오는 금속들은 대개 눈이 휘둥그레해질 만큼 귀한 것이 많았지만, 이것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어라, 난 할배한테 문제가 있을 줄 알고 귓속말한 건데.

- 꺼져라.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요즘은 할배가 그렇게 단호하게 욕을 하면 이상하게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묘한 쾌감이…….

- 차단하마.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기다려, 기다려봐 할배! 내가 잘못했어!

깡! 깡! 깡!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변해가는 막대.

그는 그것을 다시 달구며 집게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금속이 보다 그가 두드리기 쉽게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진짜 문제없어? 아니 쇠 말이야, 할배 힘으로 두드릴 수 있어?

- 내가 늙었어도 대장일 할 힘은 남아있다. 네놈이 직접 특별한 불씨까지 줬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냐.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와, 그럼 그게 정말 된단 말이네……. 역시 할배야. 사실 나도 내가 가진 모든 좋은 재료를 일단 다 보내긴 했는데 제대로 완성되리란 기대는 안 했거든.

- 네가 정말 맞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사실대로 말하자면, 무척이나 가공하기 힘든 금속인 것은 맞았다.

만약 자신에게 있는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자극하고 이끄는 힘이 없었더라면 이 금속을 가공하는 일은 불가능했으리라.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고마워, 할배. 사실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이게 꼭 필요하거든. 신을 죽여야 하니까.

- 그놈의 신. 어떤 신을 말하는 거냐?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흠, 할배한테는 이제 괜찮으려나?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는 신이야.

대장장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손의 움직임을 일순 멈추었다.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가? 그러면 무엇이 바뀌는가?

그러나 자신이 미망에 사로잡혔음을 깨닫곤 코웃음을 쳐 생각을 날려버리며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 또 골치 아픈 얘기를 하는구나. 집어치워라.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래. 그놈은 내가 알아서 죽일 테니까, 할배는 오래오래 살기나 해.

- ......흥.

어쩌면 이 귀신같은 친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을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

대장장이는 코웃음으로 대꾸하며 쓴맛이 나는 침을 삼켰다.

- 네놈이나 그 신이라는 놈한테 죽지 마라.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당연하지, 할배가 직접 검을 만들어주는데!

깡! 깡! 깡!

노인은 친우의 칭찬에 작게 미소 지으며, 재차 막대를 내리쳤다.

- 그런데 이 노란 보석은 정체가 대체 뭐냐?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후, 그 얘기를 하자면 내가 처음으로 잡은 용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 됐다, 치워라.

신살검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게이트가 완전히 닫혔다.

자신의 각성의 순간 함께하기도 했던 신살검을 너무나 허무하게 잃어버린 강신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머지 바이크에 앉은 채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츠쿠요?’

가장 먼저 의심한 것은 츠쿠요였다.

그에게 간이든 심장이든 빼줄 것처럼 굴면서도 어딘가 의뭉스런 구석이 있는 아름다운 여자.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게다가 일부러라는 듯이 그에게 보여주었던 ‘적’의 얼굴.

분위기는 어딘가 츠쿠요와 닮은 구석이 있었으나, 그녀 본인이라기에는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모르겠다.’

사실 그보다 먼저 의심이 가는 대상이 있었으나, 강신혁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사고를 정지시켜버렸다.

“하, 할아방!?”

강신혁이 창을 회수하여 바닥으로 내려가니 슈가 기겁하며 달려들었다. 이제야 조금 움직일 기운이 생겼나본데, 타이밍이 늦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무슨 일 당했어!?”

“무기를 뺏겼어. 신살검.”

“신살검? 야누스가 그렇게 자랑하던……."

슈는 그 말을 듣고 스턴이 걸린 것처럼 몸짓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이내 무척 미안해하며 그의 팔을 붙들었다.

“나 때문이야. 난 그 뱀만 잡으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할아방, 미안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해줄게.”

“그래, 좋은 소재 다 내놔.”

“아, 알겠어!”

사실 강신혁은 슈의 책임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멍청하게 신살검을 빼앗긴 자신의 잘못이다. 슈가 나섰더라도 결과는 그리 변하지 않았을 터다.

신살검은 강신혁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그의 영혼을 구체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 영사로 붙들기까지 했는데 빼앗겼다는 것은, 그의 영혼의 격이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딸린다는 증거였다.

그런 적을 상대로 영력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슈가 나서봤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슈가 나섰다가 쓸데없이 다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다.

‘그래도 준다는 건 받아야지.’

슈가 소재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라봤자 그걸 거래 게시판에 파는 정도가 아니겠는가. 그녀에게 팔찌를 만들어준 대가를 받는 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할아방, 뱀 줄게. 아까 잡은 그 뱀.”

“그래. 관리자님, 인벤토리 추가 확장 좀 해주세요.”

- 뱀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추가 확보하려면 인벤토리를 550칸 추가로 구입해야 합니다. VIP 회원 특별 할인가로 도합 2억 3천만 HP에 모시겠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확장할 예정이었겠지? 그랬겠지? 강신혁은 이를 악물며 결제했다.

회원간의 거래는 서로의 인벤토리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금방 그녀가 잡은 뱀의 사체가 부위별로 나뉘어져 강신혁의 인벤토리로 흡수되었다.

“와, 그게 다 들어가? 할아방 돈 되게 많나부다.”

“이젠 아니야……."

그는 쓸쓸하게 답하곤 주위 상황을 확인했다.

비록 마지막 순간 신살검을 빼앗기는 사고가 일어나긴 했지만 전황 자체는 이쪽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애초에 게이트에서 나온 큰 뱀을 슈가 죽이는 순간부터 추가 이쪽으로 크게 기울었는데, 그 놈이 죽고 튀어나온 검은 불꽃, 그리고 그 불꽃을 뒤집어쓴 뱀들을 강신혁이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염인들은 암석늑대나 폭풍거북 따위의 적들만 상대하면 되었으니까.

[전부 쓸어버려!]

[자비를 베풀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덤벼드는 버러지 같으니. 놈들이 주제파악을 하게 해줘!]

[전부 죽이지는 마. 기어오르지 못할 만큼만 남겨놓고 다 죽여!]

염인들 역시 외세와 짜고 덤벼드는 이종족들에게 질릴 대로 질린 것인지, 눈을 번뜩이며 놈들을 상대했다.

그들의 힘은 원래부터 다른 종족들에 비해 강한 편이었는데, 성벽을 세우고 화산의 정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전투를 치르고 있었으니 유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심지어 강신혁이 만들어준 무구까지 들고 있었으니!

“와, 저거 봐봐. 정말 저 불덩이한테는 아까운 무기라니까.”

특히 성벽 위에서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 미터 길이로 와이어가 늘어나며, 와이어에 매달린 검날들이 일대의 적들을 갈아버리는 콰티의 무기는 압도적이었다.

“어차피 저것도 곧 정리될 거야. 그러니까…… 우리 역할은 다 한 거지.”

“응, 저기까지 우리가 나서는 건 오히려 염인들한테 방해가 될 거야.”

슈는 콰티에게 지그시 시선을 주다가는 이내 그 시선을 강신혁의 허리춤에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어떡해, 할아방한테 찰떡인 무기였는데.”

“원래 내가 쓰려고 만든 것도 아니었으니까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더구나 어쩌면…… 아니, 아니다.”

"응."

강신혁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슈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마무리가 이렇게 되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긴 하지만, 갈까.”

“할아방, 정말 고마웠어. 할아방이 나한테 해준 것들 하나도 안 잊어먹을 거야.”

슈가 그의 팔을 붙들고 까치발을 들었다.

그러고 낑낑대다가, 결국 가볍게 뛰어오르며 강신혁의 볼에 직접 입술자국을 남겼다.

- 잘못된 접근입니다!!!

“후, 다음에 볼 땐 점프 안 해도 될 정도로 커 있을 거야!”

“귀여운 녀석.”

볼을 발갛게 물들이곤 콧김을 뿜어내는 슈를 보며 정말 손녀 딸이라도 보고 있는 듯 흐뭇한 감상을 느낀 강신혁은 그제야 신살검을 잃은 충격에서 약간이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슈는 작별의 키스를 하곤 곧장 사라졌다. 그런데 강신혁이 그녀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나려던 그때였다.

[엇, 모루!]

한창 전장을 휩쓸고 있던 콰티가 그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곤 눈을 빛내며 달려온 것이다.

[꼬맹이는 어디로 간 거지?]

“먼저 돌아갔어. 이제 불도마뱀들이 그렇게 많이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야. 설령 쳐들어온다고 해도 여태까지처럼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테고. 차원퀘스트는 여기서 끝이야.”

[그럼 모루도 돌아가는 거야?]

“응. 그동안 고마웠어.”

[우린 민폐밖에 끼치지 않았는데…….]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너흰 정말 민폐스러운 녀석들이었다고 떠들 수는 없으니까.

강신혁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콰티는 멀어진 간격을 채우려는 듯 한 걸음 다가왔으나, 이내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물러났다.

[관리자라는 녀석은 정말 시끄러운 녀석이군.]

“뭐냐, 히어로 유니버스는 언제 가입했냐.”

[불과 조금 전에. 어쩌면 우리가 전쟁에서 이긴 순간.]

과연. 성벽에서 물러나온 건 그래서였나.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불도마뱀들을 상대하는 데엔 전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콰티는 몸에 지닌 기운으로보나 사복검을 다루는 능력으로보나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정면으로 승부하면 강신혁도 확실하게 밀릴 테니 말 다한 셈이다.

[아이디는 화호. 관리자가 추천해준 것이지만 음절이 두 개라 마음에 들었어.]

“응, 아, 그래.”

한자어 같은데, 어떤 한자어인지는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과연 관리자의 집착은 세계제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재차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럼 나도 이만 떠날게. 여기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다 해줬고, 받을 수 있는 것도 다 받았으니까. 네 덕분에 좋은 화로를 얻었어. 좋은 능력도 얻었고.”

[끄응, 불을 다루는 능력은 나도 곁에서 지도해주고 싶었다만.]

“나중에 기회가 또 오겠지. 차원퀘스트가 또 발생할 수도 있고.”

[지구에 차원퀘스트가 발생한다면, 그땐 내가 도우러 가겠어.]

콰티는 씩씩하게 말하며 강신혁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의외로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아주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지구에는 차원 퀘스트가 발생하지 않으리라 막연히 확신하고 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래. 그때가 되면 부탁할게. 불속성의 몬스터들도 때려잡을 수 있게 많이 수련해두고.”

[네가 준 검이라면 문제없어.]

콰티는 강신혁을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성적인 호감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는 강신혁이 불을 다루는데 천부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리라.

종족적인 특성으로 불과 가까운 인간에게는 호감도를 느끼기 쉬운 것이다. 강신혁은 어떤 의미로는 염인들을 제외하고 그 극한에 이른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좋아, 그럼 나중에 봐.”

[그땐 잘 부탁해, 친구.]

강신혁은 화호를 친구목록에 추가한 후, 미련없이 지구로 복귀했다.

- 역시 불여우가 맞군요. 관리자는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가끔은 저도 한숨이 나오네요.”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신살검을 잃은 날, 강신혁은 요르문간드와의 연결이 아주 조금 더 확고해졌다.

그러나 그들과 제대로 부딪치게 될 날은 아직,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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