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 Chapter 41. 균형의 논리 - 1 >
[운명막이의 팔찌]
[SSS랭크]
[특수능력 - 운명막이, 운명회피]
*운명막이 - 착용자에게 닥쳐올 운명을 대신해서 받아낸다. 그 대가로 격한 내구도의 소모를 겪는다.
*운명회피 - 착용자에게 응당 닥쳐와야 할 부정적인 운명을 지극히 낮은 확률로 회피하게끔 한다. 한 번 회피에 성공할 때마다 착용자는 영구적으로 운이 상승한다.
[난쟁이 현자라고 불리는 종족 세퀠라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팔찌. 그들의 능력 구사에 따른 부작용을 대신 받아내게끔 천재적인 영력술사가 설계했다. 그 섬세한 구조는 분석하더라도 결코 따라할 수 없을 것이다. 머리카락의 주인만이 효과를 볼 수 있다.]
“와아, 이건……."
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섬세하게 엮어 만든 팔찌를 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처리가 능숙하지 못했더라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 팔찌는 정말 예쁜 실을 엮어 만든 것처럼 미려한 외관을 자랑했다.
더욱이 강신혁의 영력과 황룡투기가 듬뿍 담겨 주기적으로 황금빛을 분출하는데, 그것이 무척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할아방, 나 이런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야……."
“뭔 소리래, 의뢰했으면서.”
- 아주 좋은 대답이었습니다, 회원님. 추가점수 300,000HP 보너스!
슈의 말에 픽 웃으며 대꾸했더니 어째선지 관리자가 좋아했다.
대체 관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채점하는 것인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니 슈가 강신혁과 비슷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예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그러니까 이건 상상도 못했던 고마운 선물이야. 그렇게 생각할래.”
“뭐 그러든가.”
어쩌면 대가를 받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들켰는지도 모른다.
아티팩트의 구조를 궁리하느라 상당히 애를 쓰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여기에 들어간 재료는 슈의 머리카락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야금술도 거의 쓰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묶고 꾸미는 데 쓴 금속실을 뽑아내고 장식한 정도일까.
그 외에는 전부 영력을 활용한 소울 크래프트였다.
“가이아 시스템은 못 믿지? 착용하고 몇 번인가 시험해보면 효과를 알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신혁은 사실 이것이 결함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고작 며칠도 걸리지 않아 결함품이나마 그럭저럭 효과를 볼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낸 것이 기적이었다.
그는 처음 슈에게 받았던 머리카락의 반절을 아직 보관해두고 있었고, 완성된 팔찌를 슈가 쓰다가 고장 나면, 그것을 데이터로 삼아 보다 완벽한 팔찌를 만들어낼 셈이었다.
그런데.
"으으응......?"
팔찌를 착용한 직후, 슈가 묘한 신음을 냈다.
“왜 그래, 혹시 무슨 부작용이라도 있어?”
“아니, 이게…… 와……?"
뒤늦게 강신혁의 눈에도 보였다.
팔찌가 에너지를 뿌려내며……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게 왜 이래?”
“알 것, 같아.”
슈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내 인과를…… 업을 가져가고 있어. 아티팩트의 격이 높아지고 있는 거야.”
“미안,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그러니까!”
슈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가, 강신혁의 눈이 동그래진 것을 보고는 스스로도 놀라 그의 옷깃을 붙들었다.
"미안해, 할아방. 그러니까…… 내가 과정을 생략해버리는 것으로 인해 미래를 늦추는 그 힘이, 업이, 여기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물론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또 꾸준하게.
강신혁은 슈의 말을 듣고 아티팩트의 첫 번째 특수능력, 운명막이가 제대로 발동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역시 능력의 방향성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슈가 화들짝 놀랄 만큼 많은 ‘업’을 가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찌가 파손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하네. 특수능력에 붙은 그 제한 때문에 결함품이라고 판정한 건데.’
운명막이. 착용자에게 닥쳐올 운명을 대신해서 받아내는 대신 내구도의 격한 소모를 겪는다. 운명이라는 단어의 모호함, 그리고 뚜렷한 결점 탓에 소모품은 될 수 있어도 계속해서 착용할 수 있는 장비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팔찌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슈의 말마따나 실시간으로 아티팩트의 격이 높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 생생해지고, 보다 많은 기운을 뿌려내고 있으니까.
“할아방도 참, 간단한 거잖아.”
그런데 강신혁의 의문점을 들은 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업으로 인해서, 내구도가 줄어든다는 인과가 늦추어지고 있는 거야.”
“……아."
그 순간 강신혁의 뇌리에 번개가 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착용자의 운명을 대신해서 받아들이는 대가로 내구도의 소모를 겪는 운명막이의 팔찌.
만약 강신혁이 자신을 위해 이런 아티팩트를 만들어냈더라면, 분명 그 아티팩트는 소모품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에게 닥쳐올 운명…… 예를 들어 그가 검에 찔린다거나, 마법에 맞는다거나 하는 일을 운명막이의 팔찌가 대신해서 받아내고, 심지어는 능력 자체의 부작용으로 내구도가 추가로 소모되는 탓에 금세 파괴되고 말았을 테니까.
그러나 슈의 머리카락을 활용해 만든 이 팔찌는, 경악스럽게도 주인으로부터 받아들인 운명의 인과로 인해 내구도가 소모된다는 미래가 한참이나 뒤로 늦추어지게 된 것이다.
슈의 업을 받아들일수록 소모되는 내구도도 격해지겠지만, 그럴수록 미래는 더더욱 늦추어진다. 즉…….
“이게 말로만 듣던 무한동력인가……?”
- 동력은 아닙니다만, 뭐 얼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과연 회원님이십니다.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회원의 능력까지 염두에 두고 이런 보물을 만들어내시다니, 세퀠라 족이 듣고 찾아오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할아방은 정말 천재야. 당장에 이런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그래도 결함이 언제 터져 나올지 몰라. 벌써부터 너무 좋아하지는 말고.”
강신혁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슈의 모습에 괜히 거북해진 강신혁이 그녀의 기대치를 낮춰보고자 했으나 슈는 이미 팔찌에 무한한 신뢰를 품고 있었다.
“할아방, 어때? 나 키 좀 커진 것 같아?”
“어…… 응.”
놀랍게도 팔찌를 착용하고 얼마 시간이 지나자 슈의 키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자라났다.
그래봤자 1센티미터 정도였지만, 슈에게 있어서는 ‘무려’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역시 연속적으로 빨아들이는 건 힘든가보네.”
“충분해. 아티팩트가 힘을 잃은 게 아니니까. 앞으로는 느긋이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대로 슈가 쑤욱 자라나 성인이 되었다면 공포였겠지만 다행히도, 어쩌면 아쉽게도 그러진 않았다.
아무리 아티팩트의 격이 높아졌다고 해도 쭈욱 능력을 발동하고 있기란 힘든 일이었다. 특수능력이 관장하는 것이 무려 운명인 만큼 더더욱 그러했다.
“할아방, 설마 이렇게 간단하게 내 고민을 해결해줄 줄은 몰랐어……."
“언제 망가질지 모른다니까.”
“그렇게 쑥스러워하는 게 진짜 할아방 같아.”
“그럼 언젠 가짜 같았냐.”
“헤헤.”
기분이 좋아졌다는 말로도 미처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만개한 미소를 지으며 슈가 강신혁의 허리춤에 달라붙었다.
“나 쑥쑥 커서 어른 되고 나면 첫 아이는 할아방하고 낳아줄게!”
“마음은 고맙다만 난 임자가 있으니까 포기하렴.”
강신혁은 단호히 거절했다.
게다가 첫 아이라니, 두 번째 아이는 다른 사람과 낳겠다는 것인가. 꼬맹이 주제에 벌써부터 무척이나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치, 나 좋다는 사람 많은데.”
“그 사람들은 전부 사회에 존재해선 안 되는 위험한 사람들이니까 나중에 조용히 주소만 알려주렴. 내가 알아서 신고할 테니까.”
옛 현인이 말하길 로리콘은 병이라고 했다. 슈가 다 자라났을 때도 아니고 지금의 슈를 보고 접근한 놈이라면 전부 때려죽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할아방, 임자라면 츠쿠요? 그 여자는 좀 상대하기 버거운데……."
“그 여자 얘기는 꺼내지 마.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아서 무섭단 말이야.”
“하하하, 할아방이 츠쿠요를 무서워한다니 우습네. 그 여자가 제일 무서워할 텐데.”
[이봐, 꼬맹이. 모루를 너무 귀찮게 하지 마라.]
그때였다. 근처에서 사복검을 다루는 연습을 하고 있던 콰티가 그들에게로 다가오며 슈에게 인상을 썼다.
슈는 그녀를 보곤 고개를 갸웃하더니, 강신혁을 돌아보며 ‘얘는 아니지?’하고 눈빛으로 물었다.
“응, 내 여친은 지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
“할아방을 독점하다니 나쁜 여자네. 하지만 불덩이가 아니라면 일단 그걸로 됐어. 야, 불덩이! 나 기분 좋아졌으니까 같이 놀자!”
[뭐? 언젠 함부로 능력을 쓰지 않는…… 꾸엑!]
하필이면 팔찌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때 그녀를 건드린 콰티가 잘못한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정말 저걸로 됐나.”
- 관리자는 아티팩트를 보는 눈이 부족하지만, 계산해보건대 적어도 수백 년은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그 정도 기간이 지났을 즈음이면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회원은 성인 여성이 되었을 테죠.
“그러면 그걸로 됐다고 치죠, 뭐.”
남은 머리카락은 버릴까? 아니, 하지만 이건 슈가 능력의 부작용을 감수하고 길러낸 소중한 머리카락이다.
그녀의 격이 워낙 높은 탓인지 머리카락이 자체적으로 품고 있는 에너지도 무시 못 할 정도. 당장 어디에 쓴다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당분간은 킵해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을 보관해둘 겸 인벤토리를 열었더니, 그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던 것에 시선이 멈추었다.
“아, 이거.”
새카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강신혁이 불도마뱀 포식자를 잡고 얻은 놈의 부산물이었다.
포식자의 뿔, 가죽, 뼈, 피, 그리고 무엇보다…… 놈의 마력 거의 대부분이 담겨 있는 혼염의 심장.
강신혁은 그것을 집어 감정해보았다. 역시나 측정불가라는 메시지가 나타날 따름이었다.
“몬스터의 수준보다도 몬스터의 심장의 수준이 높다니.”
- 이 몬스터에 요르문간드의 저열한 수작이 추가로 가해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러고 보면 그 외에도 미처 쓰지 못하고 남겨두고 있던 전리품도 있었다.
바로 이전 다른 세상에서 빛의 힘을 다루는 라이트 바실리스크를 잡고 얻은, 빛의 볏(SSS)을 포함한 특수 전리품이다.
“……빛의 볏과 혼염의 심장을 같이 다루면 재밌는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 지금 바로 착수하시겠습니까?
“아뇨, 둘 다 아직 제가 다루기엔 버거운 소재라서요.”
대신 포식자의 뿔과 피를 활용해 만들 수 있을 만한 것이 있었다.
“저번에 만든 창은 만들자마자 엘레노어 선배한테 줘버렸으니까.”
- 목숨으로 갚게 해야겠지요.
“아니, 왜 자꾸 그렇게 급발진을 하는 거예요.”
강신혁도 자신이 쓸 만한 창을 하나 갖고 싶었다.
평범한 창이 아니라, 포식자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창.
“그럼 벼려볼까.”
곧장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우선 포식자가 남긴 피를 적당히 끓이고, 이것만 쓰기엔 심심했으므로 이전 바실리스크가 남긴 독혈을 추가로 부었다.
여기에 물의 보주를 담가 성분을 극대화시키기까지.
- 회원님……?
“물의 보주는 괜찮아요. 액체류에는 타격을 입지 않거든요.”
더구나 물의 보주가 더해줄 수 있는 것도 있지.
강신혁은 물의 보주가 지닌 다양한 능력을 떠올리며 히죽 웃곤, 본격적으로 뿔을 다듬기 시작했다.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날카롭게, 길게, 손잡이 부분은 정성껏 깎아 놈의 가죽으로 감았다.
그리고 그것을 아까 끓여둔 핏물에 푹 담갔다.
그 후 꺼내어 화로 안에 던져 넣었다가, 다시 그것을 꺼내어 핏물에 담근다.
- 담금질이군요.
“금속도 아닌데 무슨 담금질이에요. 그냥 이건…… 소울 크래프트라고 해두죠.”
- ……점점 닮아가시는군요.
누구를 닮아간다는 건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신혁은 그저 작게 웃곤 답했다.
“그래요?”
- 관리자에게 보다 친절해지셨다는 점을 제외하면요. 500,000HP 보너스!
“대체 저한테 보너스로 주는 HP는 어디서 나오는 거죠?”
- 1,000,000HP 보너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처음 불도마뱀을 본 순간부터 구상하고 있던 무구였기에, 완성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것이 완성된 직후, 하늘이 열리고 요르문간드의 본대가 비로소 쏟아져 나왔다.
실로 다행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