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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화. < Chapter 40. 성숙해진다는 것 - 2 >

오늘도 서울의 밤은 밝다.

초인상가의 모든 건물에 불이 휘황찬란하게 들어와 있었다.

고등급 게이트 발생률이 높아지면서 초인상가는 초인시대 개막 이래 최고의 활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클레어가 운영하는 바는 그런 사회의 빛을 피하려 전력으로 몸을 비트는 듯한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나, 그녀의 명성(덤으로 서버인 신은혁의 명성도)이 워낙 높아 오늘도 만석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라, 오늘 은혁 씨 없어요?”

딸랑, 도어벨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 초인이 대뜸 내뱉는 소리였다.

칵테일을 만들고 있던 클레어는 그 말을 듣곤 눈을 치켜뜨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없어.”

“와, 안 뺏어가니까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지 마세요, 언니.”

생각보다 감정조절이 안 되는 상태였던 걸까, 그녀의 시선을 받은 초인…… 임하연이 킥킥 웃으며 대꾸했다. 클레어의 눈빛은 더 날카로워졌다.

“마음만 먹으면 뺏어갈 수 있는 것처럼 말하네?”

“아니 언니, 농담인데 죽자고 달려들면 무섭잖아요. ……두 분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바에 개근도장을 찍을 만큼 자주 찾아오는 단골이니 한 번만 봐주기로 했다.

클레어는 완성한 칵테일을 손님에게 내주고는, 마침 카운터석에서 자리를 비우는 손님의 자리를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무슨 일 없으니까 신경 끄고 술이나 주문해. 오늘 사냥 가?”

“아뇨, 그냥 마시러 왔어요. 은혁 씨가 타주는 프렌치 키스 마시고 싶었는데.”

칵테일 이름은 정말이지 성희롱을 하기 좋은 것들만 가득이다.

그녀가 맨날 찾는 신은혁, 즉 강신혁이 아직 미성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임하연은 어떤 반응을 할까?

클레어는 한숨을 내쉬며 술들을 꺼내 늘어놓았다.

“넌 담부터 은혁이랑 대면 금지야.”

“어, 언니? 그냥 농담인데…… 진짜 무슨 일 있으셨어요? 두 분 잘 안되가요?”

“엄청 잘 되가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너무 순조로워서 문제가 될 정도니까.

럼에 말리부, 시럽…… 재료를 다 붓고 섞어내 잔에 따른다.

진한 핑크빛으로 완성된 칵테일을 임하연 앞으로 밀어주자,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며 괜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클레어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전 첨부터 은혁 씨한텐 뇌제 님보다 언니가 더 잘 어울린다 생각했어요.”

“당연하지, 걘 내 꺼야. ……은아한테 말하지는 마.”

“저도 일찍 죽고 싶진 않아요. 아, 맛있어.”

인형사 신은혁과 연금술사, 뇌제의 삼각관계 스캔들은 진실로 굳어 이젠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특히 바를 자주 찾는 손님들은 셋이 같이 있는 것을 자주 보고, 셋 사이에 감도는 미묘한 분위기를 흥미진진하게 관찰해왔기 때문에 그 소문이 진실을 오히려 축소시킨 수준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뇌제와 연금술사 중 연금술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도 대부분의 손님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면 뇌제에게 죽을지도 몰랐기에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언니도 연애 한 번 화려하게 하시네요.”

“또 왜?”

임하연은 술을 홀짝이며 또 클레어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그녀의 분위기가 이상해서 괜히 더 건드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첨엔 삼각관계 같은 거 TV에나 나오는 건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심지어 베프가 엮인 삼각관계라니까.”

“삼각관계 아니거든? 이미…… 아니, 그게 아니고.”

가볍게 엄청난 말실수를 터트릴 뻔했던 클레어가 잽싸게 수습했으나 상대 역시 오감이 발달한 초인. 클레어의 반응을 보고 눈빛을 날카롭게 했다.

"이미, 그 다음 뭔데요? 언니 혹시 은혁 씨랑......."

"쫓아낼까?”

“앗, 아녜요. 죄송해요!”

바에 설치된 방어용 아티팩트를 발동시키려는 클레어의 모습에 임하연은 다급히 사과했다. 클레어는 그녀의 입에 기본 안주로 준비되어 있던 젤리를 던져 넣었다.

보드카에 절인 곰 모양 젤리. 새콤달콤한 젤리가 알코올을 머금은 것이 별미였다.

“우물우물....... "

“먹으면서 조용히 들어.”

“넵.”

클레어는 말을 하기 전 카운터석에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들은 조용히 마시던 잔을 비우고 계산을 치른 후 사라졌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연하 남친 사귀어 본 적 있니?”

“언니 지금 혹시 남친 자랑하려고 시동 거시는 거예요? 부르릉……."

“나 지금 좀 진지하거든?”

그녀는 임하연의 입 안에 젤리를 하나 더 던져 넣었다.

임하연은 그것을 부지런히 씹어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하 남친, 그야 있죠. 저 연상보단 연하가 좋아요.”

“남친이 연하면, 내가 연상이니까 좀 더 확실히 해야 될 것 같고 그런 느낌 있잖아.”

“전 그냥 막 애교 부리는데?”

“상대를 잘못 골랐네.”

혀를 차며 돌아서는 클레어를 임하연이 잽싸게 붙들었다.

“아아 언니, 아니에요, 그 느낌 알아요! 저도 전남친이 초인학교 학생이었는데, 그땐 잠깐 그런 생각 했어요!”

클레어는 초인학교 학생이라는 말에 몸이 움찔하려는 것을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이런 별 볼 일 없는 일로 강신혁의 실제 나이를 들킬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미성년이니까 좀 신경 쓰였죠. 괜히 켕기기도 하고.”

“그러게, 학생은 좀 심했다.”

“제가 좋다는데 어떻게 해요. 솔직히 요즘 세상에 열여덟 살이면 어른 아닌가?”

조금이나마 클레어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말이었다. 강신혁은 아직 열일곱 살이지만!

“뭐, 그건 그렇지. 애초에 성인의 기준은 매 시대마다 달랐기도 하고.”

“그건 좀 많이 간 것 같은데…… 암튼! 그래서 문제가 뭔데요?”

큼큼, 클레어는 괜히 헛기침을 몇 번 더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 요즘 같이 있으면 점점 자제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어른스럽고 여유롭게 대하고 싶은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아, 남친 자랑 맞잖아.”

임하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국제초인랭킹 4위인데다 연하이기까지 한 남친 자랑 얘기를 내 돈 주고 술 마시면서 듣고 있어야 하다니!

“자랑 아니거든? 엄청 자괴감 들거든?”

“기분 좋았으면 됐죠 뭐.”

임하연은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말을 하고는 클레어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언니, 혹시 은혁 씨 아직 급식......."

“그럴 것 같아?”

클레어는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겉으로는 쿨한 척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과연 현역 중2병다운 연기력에 임하연 역시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리가 없죠. 그래도 언니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생각보다 진짜 많이 어린가보다.”

“우리보다 연하면 엄청 어린 거야.”

“응…… 그래서 은혁 씨 어때요? 쩔어요? 아야!”

술에 취한 곰돌이 젤리가 이번엔 임하연의 마빡을 강타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임하연에게 클레어는 준비하고 있던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 한 잔을 내주었다.

“상담료는 이거 한 잔으로 땡쳐.”

“엥, 이걸로 상담이 됐어요?”

솔직히 전혀 안 됐지만, 그래도 다들 그러고 산다는 건 알았으니까.

“마음은 좀 편해졌어.”

“언니, 은혁 씨 많이 좋아하나 보다.”

"응."

젤리 하나를 집어먹으며, 클레어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곤 대꾸했다.

“너무 좋아서 바보가 될 것 같아.”

그래서 점점 곤란해진단 말이지.

도어벨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 안으로 들어오는 신은아의 모습을 보며, 입 안에서 구르는 젤리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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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서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존재를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66,000,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로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99,000,000HP를 얻었습니다!

- 민첩이 SS랭크로 성장합니다!

- 혼염의 심장을 얻었습니다!

- 불포식자의 뿔을 얻었습니다!

- 불포식자의.......

강신혁의 예상은 정확했다. 슈의 능력이 완벽하게 해제된 덕분에, 오히려 불도마뱀을 처치하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능력을 구사해 사냥한 몬스터들은 HP도, 스테이터스에 추가되는 보너스도, 심지어 시체에서 수확할 수 있는 부산물조차 조금은 줄어든 반면 불도마뱀 우두머리를 사냥한 대가는 실로 달콤했다.

‘드디어 민첩까지 SS랭크가 됐구나.’

모든 스테이터스가 SS랭크에 이르렀다. 심지어 황룡투기는 SS+랭크이니, 정말이지 세계랭킹 4위에 걸맞은 스테이터스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살검을 얻고 히어로 유니버스에 접속한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

그의 이런 비정상적인 성장속도를 다른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기함할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차원 퀘스트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

차원 퀘스트가 아니었으면 그가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위의 몬스터들을 안정적으로 사냥하는 업적을 쌓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차오르는 만족감을 주체하지 못해 웃으며 바닥에 착지했다.

이미 주위에 살아있는 적은 없었으므로, 남은 일은 미처 회수하지 못한 몬스터 사체들을 회수하는 것뿐이었다.

“할아방!”

“어라, 슈. 벌써 일어났어?”

“덕분에.”

몬스터 사체를 회수하고 있자니 어느덧 슈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안색이 멀쩡했다.

“할아방이 내 능력으로 이것들을 쓸었잖아. 나한테도 보상이 조금씩이나마 들어왔거든.”

“그런 것도 되는구나.”

“하지만 놀랐어. 앞으로 하루는 꼬박 뻗어있게 될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하면 내 능력을 그렇게 완벽하게 구사한 거야?”

“영력 덕분이지. 가르쳐줄까?”

“으응, 아마 무릴 거야.”

슈는 그의 말에 순진하게 웃곤 그의 허리춤에 매달렸다.

“그래도 엄청 기분 좋았어! 우리 종족을 그렇게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긴 힘들거든! 뭐, 할아방이라면 이해해줄 거라고 처음부터 믿고 있었지만.”

“근원의 접촉 말이지. 아무데서나 말하고 다니지는 말고.”

“우리 한 번만 더하면 안 돼? 응?”

“……조금 이상하게 들리니까 그만두렴.”

아무리 성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어린아이의 외관을 취하고 있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하면 굉장히 불법적인 뉘앙스로 들리는 것이 문제다.

둘이 전장정리를 대충 끝내고 성벽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선 콰티가 혼자 여기저기 쓰러진 염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쟤네는 언제 깨어나는 거야?”

“으응, 내 부담을 최대한 전가했으니까 아마 앞으로 사흘은 걸릴 거야.”

“슈는 아무렇지 않게 굉장히 나쁜 짓을 하는구나.”

“도와주려고 한 거니까 괜찮겠지. 힛.”

하긴 염인들도 일어나서 성벽이 완공된 것을 보면 오히려 슈에게 감사해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분지를 보호하고 있는 성벽은 결코 사흘 만에 완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모루!]

“아, 콰티.”

염인들을 대충 편하게 눕혀놓은 콰티가 둘에게로 다가왔다.

[정말로 혼자서 그걸 사냥해버릴 줄은 몰랐어.]

놈을 해치우고 얻은 HP의 양으로 미루어보면, 확실히 강신혁이 홀로 놈을 상대해 쉽게 물리친 것이 대단한 일이긴 했다. 물론 슈의 능력이 해제되기 전에 쏘아둔 어둠의 탄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신혁은 미소로 화답했다.

“콰티 너도 고생했어. 나이스 타이밍이었어.”

단 한순간이긴 했지만 콰티는 확실하게 불도마뱀의 불꽃을 사그라지게 만들었다.

만약 그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기껏 검에 응집시킨 어둠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리라.

[우리 염인들이 끝까지 짐덩이로만 남을 수는 없었으니까.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야.]

“상대가 안 좋았던 거지.”

굳이 덧붙이자면 염인들이 너무 다 똑같은 능력만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속성과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다보니 불도마뱀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몰린 것. 그들 개개인이 품고 있는 에너지만 따지면 이렇게 쩔쩔 매는 것이 이상한 수준이었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오명을 확실하게 반납하겠어.]

“이제 끝 아닐까? 이만한 성벽을 세워줬으니 다음부턴 알아서 좀 막아봐. 안 그래, 할아방?”

“그렇긴 하지.”

슈의 무신경한 말에 강신혁이 아무렇지 않게 긍정하자 콰티가 순간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강신혁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피식 웃곤 덧붙였다.

“하지만 기껏 성벽을 만들었으니까, 돌아가기 전에 공성에 쓸 만한 무기도 같이 만들어줄게.”

[모루!]

지나치게 감격한 콰티가 그를 덥석 껴안았다.

그녀의 가슴팍을 보호하고 있는 암석이 몸에 부딪쳐 조금 아팠다.

“아, 달라붙지 마. 아파.”

[미, 미안하다.]

- 어딜 가나 불여우가 새로 생겨나는군요……!

“관리자님은 얘도 불여우로 카운트하는 거군요, 그러니까.”

“할아방, 모루 할아방.”

관리자의 반응에 강신혁이 기막혀 대꾸하던 그때, 문득 슈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무기 만들기 전에 나랑 먼저 얘기 좀 해.”

“무슨 얘긴데?”

“중요한 얘기.”

슈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방이라면 날 어른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도 몰라.”

- 잘못된 접근입니다!

“관리자님, 그건 인터넷 오류 메시지.”

- 잘못된 접근입니다!

- 잘못된 접근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관리자의 접근이 가장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신혁은 혼자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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