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 Chapter 40. 성숙해진다는 것 - 1 >
그것은 언뜻 보기에 큰 원통형 기둥으로 보였다.
하지만 잘 보면 그 뒤로 세로로 길쭉한 손잡이가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선명하게 튀어나온 원통 첨단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서 주체할 수 없는 양의 어둠이 피어나고 있었다.
[저, 건 뭐지……?]
[마법인가? 설마 살아있는 생물?]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은 전투력 수준은 높아도 아티팩트, 마법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무지했다.
그렇기에 그것을 보면서도 자신들의 마력으로 뭘 어찌한다는 발상을 하지 못하고, 당황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한편 강신혁은 슈에게서 빌려온 힘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느끼며 신비로운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이렇게 되는 건가. 단순히 총을 거대화시키는 게 아니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놈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공격할 수단을 원한 결과, 그 수단으로 선택된 총이 거대해진 거야.’
거기에는 원리도 마법도 없었다. 단지 이렇게 하면 모두를 공격할 수 있기에 그렇게 된 것뿐.
단지 이것은 강신혁의 생각보다, 심지어 슈의 생각보다도 뛰어난 결과이기는 했다.
왜냐하면 강신혁이 슈의 능력을 영력으로 깊숙이 이해했으면서, 동시에 여태껏 아티팩트를 거대화하는 경험을 많이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로잉 사이드에도 비슷한 능력이 있고, 비록 메커니즘은 다르지만 키엘론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겪었으니까.’
그는 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겪었던 일들을 재현하는 것은, 아예 모르는 일에 도전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라는 사실을.
그 덕에 슈 본인이 구사하는 것만큼이나 훌륭한 능력의 활용을 할 수 있게 된 것.
‘게다가 지금 써먹기에 매우 적절한 무기.’
아무 맥락도 없이 허공에 나타난 저 거대한 권총의 정체는 바로 그가 지닌 가장 높은 등급의 무기, 에레보스다.
[티르소스 No.0 - 에레보스]
[SSS+랭크]
[특수능력 - 급탄, 암탄, 잠식, 가호]
*잠식 - 적을 강제로 어둠과 동화시키며, 어둠 그 자체에 지워낼 수 없는 독을 심어 지속 데미지를 입힌다. 적의 어둠 저항력을 극도로 낮추며, 그림자에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실탄을 장전했을 경우, 소모 에너지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대신 능력의 효과가 반감된다.
*가호 - 짙은 어둠의 축복이 깃들어 사용자를 보호하며, 사용자가 다루는 어둠의 능력을 강화시킨다.
총구가 지상을 겨누었다. 한순간, 황금룡이 총신을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듯한 환상이 보였다.
자신의 모든 능력이 발현되었음을 확인한 강신혁이 검지를 당기자, 그것은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곧장 - 지상으로 어둠의 탄환을 쏘아냈다.
- 콰아아아앙
그것은 마치 낮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에 밤이 강림하는 것만 같았다.
하늘로부터 추락한 어둠이 삽시간에 대지를 잠식하니, 염왕벽으로 보호받고 있던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가 그 어둠에 허리까지 깊숙이 파묻히고 말았다.
그것은 하늘에 떠 있던 폭풍거북도, 대지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암석늑대들도, 물론 늪돼지들도, 성벽에 미친 듯이 달라붙고 있던 불도마뱀들도 전혀 예외가 아니었다.
[큭!?]
[아, 아파. 이 어둠이 날 붙들고 있어!]
[모, 몸이 아파. 독, 이 어둠에 독이……!]
[케에에에엑!]
순식간에 강림한 재앙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슈가 날리던 로켓 펀치보다도 끔찍한 결과물이었다.
엄밀히 말해 슈는 자신의 능력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녀석은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힘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니까.
능력의 페널티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맨손만을 사용한다. 그것도 직관적인 방식으로.
강신혁이 건네준 아티팩트의 능력을 굳이 확인하지 않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력으로 완벽에 가까운 이해도를 이끌어낼 수 있어.’
그렇기에 그는,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에 한해서일 뿐이지만.
슈의 능력을 슈보다 강력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모루, 방금 무엇을…….]
“아직 안 끝났어.”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권총을 회수한 강신혁은 지그시 눈을 감고는 자신의 양손을 확 펼쳤다.
슈의 능력을 빌려 담은 두 번째 아티팩트는 소울 커넥터였다.
[소울 커넥터]
[SS랭크]
[특수능력 - 영사, 영주(靈主), 영화(靈化), 난쟁이의 손]
*영사 - 영사(靈絲)이며 영사(影絲). 영혼의 힘을 물리력을 가진 실로 빚어내 사출한다. 실은 영혼의 힘이 소실되지 않는 한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실은 그림자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
어둠을 타고 이동하며, 영혼의 힘을 담는 실을 뿜어내게 해주는 아티팩트.
단순한 등급으로만 따지면 이제 그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 중에서는 위계가 그리 높지 않지만, 지금 상황에 써먹기에는 이 이상 찰떡일 수 없다.
‘사실 대상이 한 명이었다면 신살검에 흑영신주를 박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어둠에 잠식된 적을 대상으로 강력한 일격을 먹일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약한 - 최소 SS랭크의 적들이지만 - 다수의 적이 대상이니, 그림자를 통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소울 커넥터에 힘을 부여한 것이다.
- 샤아아아
- 스르륵
그 결과, 소울 커넥터는 열 가닥이 아니라 수백, 수천 가닥의 영사를 뽑아내게 되었다.
그것도 그의 손끝에서가 아니라, 이치를 무시하고 성벽 바깥의 어둠 속에서부터 곧장.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어둠에 잠식된 적들의 급소를 꿰뚫고 영혼독을 분사해 뇌와 심장을 녹여냈다.
[카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강신혁은 그것을 무시하며 오직 영사를 조종하는 데에 집중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보다도 선명하게 적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슈의 능력을 담은 소울 커넥터로 실을 뻗어낸 순간 그는 사방의 적을 모조리 꿰어 죽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나, 그 안에서 아직까지 집요하게 버티는 놈들이 있었다.
[외인들의 힘을 빌렸구나, 찢어죽일 년!]
[진즉 네놈들을 죽였어야 했는데!]
[염인, 이 배신자 놈들 같으니……!]
바로 각 세력의 우두머리였다. 놀랍게도 처음 발사된 어둠의 탄환에 잠식되어 데미지를 입고, 그 상태에서 영사로 급소를 관통당해 영혼독이 주입되었음에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슈였더라면 이렇게 단숨에 수만 마리의 적을 죽이지는 못했더라도, 적어도 힘이 부족해 우두머리를 죽이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능력 발현이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빌렸을 뿐인 능력을 이렇게 소화한 것도 기록적인 일입니다!
‘아뇨, 그래도 상당히 강화된 공격이었는데 죽이지 못했잖아요. 이해력과 화력 모두 부족한 거예요.’
강신혁은 새삼 자신은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이를 악물고 영사를 조종했다.
슈의 능력을 계속해서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수천 가닥의 영사를 조종하는 정도라면 아직 아슬아슬하게나마 가능했다.
[이 정도로 나를, 끅……?]
먼저 거대하고 단단한 암석늑대의 몸을 수백 겹으로 감싸 조르고, 바위가 갈라진 틈새로 실을 집어넣어 마구 휘저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영혼독이 뒤늦게 효과를 발휘해 놈의 근원을 약화시키고, 한순간 거세게 쥐어짜니 놈의 몸통이 박살나며 사방으로 암석 조각이 튀었다.
[암석늑대의 우두머리가…… 키에에엑!?]
다음은 어둠에 몸의 절반 이상이 파묻혔음에도 어떻게든 그 안에서 벗어나려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폭풍거북의 우두머리.
놈은 오히려 쉬운 편이었다. 다른 폭풍거북은 영사의 절삭력에 껍데기의 내구력이 버티지 못해 곧장 죽어버렸지만, 놈은 잽싸게 껍데기 안에 몸을 감추고 보스다운 튼튼한 방어력으로 영사를 버텨냈을 뿐이니까.
[어떻, 나의, 몸이……!]
그러니 등껍데기는 전혀 건드릴 필요 없이, 투명하게 감추고 있는 여린 속살에 파고들어 강력한 영혼독을 주입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키히이이익! 안 돼, 모두 죽을 거야!]
한편 늪돼지의 우두머리는 암석늑대와 폭풍거북의 우두머리가 연달아 죽어버리자 자신의 깜냥으로는 염인들을 죽이기는커녕 그림자의 실에 걸려 죽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그나마 놈의 몸을 뒤덮으려는 어둠을 몸에서 흐르는 끈적한 물로 흘려내며 저항하며, 어떻게든 영사에 사로잡히기 전에 튀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놈의 몸통을 뭔가가 물어뜯었다.
[뀌이이이!]
바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마리의 불도마뱀이었다.
놈은 망설임 없이 늪돼지의 우두머리의 머리를 잡아 뜯더니, 놈을 통째로 씹어 먹었다.
놈에게는 어둠이 접근하지 못했다. 놈이 뿜어내는 불꽃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던 탓이다.
"쯧."
강신혁은 영사의 컨트롤을 멈추고 성벽 위에 올라서 놈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하곤 혀를 찼다.
“어째 이대로 안 끝날 것 같더라니.”
아마도 이 넓고도 좁은 세상의 세력을 움직여 단숨에 염인들의 숨통을 끊을 요량이었던 것이겠지.
이전의 습격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독 밝게 빛나는 불꽃을 뿜어내는 불도마뱀이 그곳에 있었다.
[쿠우, 쿠우우우]
늪돼지 우두머리의 사체를 포식한 놈은 아직 어둠에 잠식되어 있는 다른 사체들을 향해 다가가며 불꽃을 뿜어냈다.
놈의 불꽃을 두려워하듯 물러나는 어둠. 놈은 사체에 남은 어둠을 불사르고 다른 몬스터의 사체를 포식했다.
그럴수록 놈의 힘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몬스터가 다른 몬스터를 포식해 마력을 키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 놈의 힘이 늘어나는 정도는 이상했다.
아마도 요르문간드가 직접 손을 대었을 것이다.
[모루, 놈에게는 네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
벌벌 떨면서도 놈의 동태를 살피던 콰티가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어둠의 바다 속에서 파도치듯 움직이고 있던 수천 개의 영사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슈의 능력을 구사하는 것이 완벽히 한계에 이르러, 영사가 자연스럽게 해제된 것이다.
“차라리 잘 됐지 뭐.”
강신혁은 놈이 어둠이 덜 묻은 사체를 찾아내 차례대로 포식하는 것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슈의 능력의 페널티 탓에, 전체적으로 몸이 나른해지는 것은 둘째 치고 저 많은 숫자를 잡아들인 데에 대한 보상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능력이 끝났고, 순수한 능력으로 상대해야 하니 저 불도마뱀을 잡고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기대해도 좋을 터였다.
[협력하겠어. 저 불도마뱀이 다루는 것도 결국 불꽃. 적어도 네가 상처를 입는 것만은 막아낼 수 있을 거야.]
“오, 진짜? 일이 더 쉬워지겠는데. 그러면 내가 신호할 때 한순간만 놈이 불꽃을 통제하지 못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
[물론.]
드디어 염인이 활약할 장소를 찾았구나, 라는 시선을 보내주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염인들의 능력이 진짜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괜찮겠어? 내 불꽃은 아마 놈에게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할 테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적의 기운이 강해지고 있는데……. 아까 보여준 기묘한 능력이 아니라면 네가 놈을 상대하는 건 어려울 수도 있어.]
“그야 맨몸이었다면 안 덤볐겠지만.”
강신혁은 영력 포션을 꺼내 물었다. 슈의 능력을 연달아 구사하며 소모된 체력과 영력을 모두 회복시키는 것은 욕심일 뿐이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검 한 번 휘두를 기력은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직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 사방에 깔려 있으니까.”
그것이면 충분했다.
- 우우웅
강신혁은 신살검을 꺼내들었다. 매번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며 칭얼거리는 신살검을 툭툭 두드려주고, 흑영신주를 빼내 녀석에게 박아 넣었다.
- [흑영신주]와의 융합으로 인해 신살검이 본래 지니고 있지 않았던 가능성을 일시적으로 개화합니다. 신살검이 SS+랭크가 되었습니다. 검의 단단함과 예기가 증폭되며, 모든 특수능력의 위력이 극대화됩니다!
- 흑영신주의 특수능력 [흑영]을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특수능력 [영검]이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
[성검]과 [영검]이 융합되어 특수능력 [혼돈의 검]이 개방됩니다. [혼돈의 검]과 [살의제어], [수호]가 융합되어 특수능력 [여명]이 개방됩니다.
- 능력이 부족하여 특수능력을 발현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발현하게 될 경우 죽음에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여명은 아직도 사용할 수 없다.
추측컨대 강신혁의 스테이터스가 필멸자의 한계를 벗어나면…… 그러니까, 측정불가, 확인불가 영역이라 불리는 X-등급 정도가 되면 이것을 다루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이란 게 정말 끝이 없네.’
- 어른이 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겁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언제까지고 아이 같은…… 앗, 회원님은 이제 어른이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까 그거 복수하는 거죠 지금.’
하지만 괜찮다. 그가 구사하려는 능력은 이번에도 [여명]이 아닌 [흑영]이니까.
모든 어둠을 빨아들이며, 어둠으로 인해 강화되는 능력.
“간다!”
[쿠우우우우우우!]
지금도 동족들과 다른 몬스터의 시체를 먹어치워 몸집을 불리고 있는 주제에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는 불도마뱀을 향해, 강신혁은 단숨에 몸을 날렸다.
놈의 덩치가 실시간으로 거대해져가는 것이 보인다. 8미터, 9미터, 10미터…… 놈이 커질수록 놈이 뿜어내는 불꽃도 밝아지고, 대지에 남아있던 어둠이 사그라진다.
그것을 놓칠 수는 없다.
강신혁은 검을 앞으로 뻗었다.
에레보스로 만들어낸 어둠의 바다.
불도마뱀 한 마리의 불꽃으로는 미처 지워낼 수 없는 거대한 암흑의 파도가.
모조리 그의 검으로 빨려들어왔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
[모루!?]
“콰티, 지금!”
강신혁은 아주 짧은 공간도약을 펼치며, 신살검을 있는 힘껏 내질렀다.
그 끝에 모인 어둠이 극점에 이르러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