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 Chapter 39. 성 쌓기 - 7 >
[폭염 도마뱀 구이를 먹었습니다. 레지스트 파이어 스킬로 인해 페널티가 사라집니다.]
[레지스트 파이어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고기가 소화될 때까지 화염저항 능력이 20% 늘어납니다.]
슈가 요리에는 자신 있다며 다짜고짜 불도마뱀의 피를 빼고 가죽을 뜯어내 손질할 때까진 강신혁도 무척 불안했지만, 꼬치로 꽂아 화로 안에 들어갔다 나온 구이는 굉장히 맛있었다.
다만 레지스트 파이어 스킬로 인해 사라졌다는 페널티가 원래는 뭐였을지가 상당히 신경 쓰였다.
“슈는 괜찮아?”
“속에서 뭔가 타는 것 같긴 한데 괜찮아. 바로 소화시켜버리면 되니까.”
현대 인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하도 먹어대느라 볼록하게 튀어나와있던 슈의 배가 쏘옥 들어가는 것을 보니 실제로 한 순간에 소화 작업이 끝난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결과만 얻는 능력으로 하는 거야?”
“응. 그래서 단시간에 에너지를 많이 섭취할 수 있어. 짱이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소화시켜버리면 금방 배고파진다는 단점이 있지.
슈는 그런 말을 하며 배시시 웃곤 그새 또 도마뱀을 한 마리 꼬치에 끼워 화로에 집어넣으려다, 화로에 흙을 붓고 있던 염인들에게 저지당해 울상을 지었다.
[방해하지 마라.]
“힝, 하지만 저 화로에 구워야 맛있는데.”
그야 최소 X-등급에 이르는 것이 분명한 화로니까. 저 안에 지금 강신혁의 보주가 세 개나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금속만이 아니라 꼬치구이도 맛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거겠지.
……강신혁은 잠시 저 화로를 이용해 지구에서 꼬치구이 장사를 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건 화로에 대한 모욕이었다.
- 하지만 정말로 기적과 같은 결과물입니다. 냉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은 여전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대장장이도 탐을 낼 화로이지요.
‘그렇죠. 이 화로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만으로 여기에 온 보람은 있었어요.’
- 모든 세상의 역사에 남을 물건을 만들어낸 회원님께 500,000HP 보너스!
더욱이 냉기에 취약하다고는 해도, 화로 안에 박힌 물의 보주는 어지간한 수기, 냉기로부터 화로를 지켜내 줄 것이다.
SS랭크 이상의 능력자가 작정하고 화로를 부수겠다고 덤벼들면 그야 힘들겠지만 그렇지 않은 한은 파손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화로는 이대로는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게 왜 측정불가 등급이 나왔느냐며 코웃음을 칠 여지도 있었다.
‘불꽃이 없으니까.’
이 화로는 높은 열을 견뎌내고 살려줄 수 있는 화로일 뿐, 그런 불꽃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없다.
현대에서 판매되는 대다수의 화로 형태 아티팩트는(애초에 화로 아티팩트가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모두가 스스로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불의 둥지이며 불을 생산해내는 태양이 되는 것이다.
강신혁 역시 가능하면 그런 화로를 만들어내고 싶었지만, 그의 장인으로서 지닌 자세 탓인지 몰라도 결과물은 철저히 화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물건이 나왔다.
그런 물건으로 측정불가가 나왔으니 이걸 좋다고 박수를 쳐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불꽃을 얻어가야 하는데.”
그런고로 지금도 강신혁은 화로에 끊임없이 ‘특별한 불꽃’, 즉 광염기를 뿜어내고 있는 염인들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불꽃 자체를 제가 익히는 건 무리가 있겠죠?’
- 염인들만의 능력입니다. 더욱이 회원님께선 이미 특수능력을 두 가지나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 염인들이 아무리 애써 봐도 강신혁의 특성에서 비롯된 기운 황룡투기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처럼, 강신혁이 용을 쓴다고 저 불꽃을 따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저 불꽃을 대량으로 저장할 수 있는 매체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불의 보주’ 같은?
‘무리겠지. 보주가 뭐 만든다고 뚝딱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무려 다섯 개나 되는 보주를 가지고는 있지만 무엇 하나 쉽게 만들어진 것이 없다.
심지어 물의 보주는 그 세상에서 제일가는 보물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렇다면, 슈는 어째서 강신혁에게 ‘불꽃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일까.
자신이 처음부터 담당한 차원 퀘스트가 아니기에 보상에 관해선 그도 아직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관리자에게 물어보면 설명을 해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일찍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때까진 자기 나름대로 궁리해보기로 했다.
“할아방, 어떡해? 화로 하나만 더 만들어줄 수 있어?”
“나도 원래 화로를 두 개 이상 만들려고 했는데, 보주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그냥 도마뱀의 불꽃으로 구워보는 건 어때?”
“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
더없이 잔인한 발상이었으나 슈는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불도마뱀을 몇 마리 추가로 손질해놓으며 다음 웨이브가 언제 오나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태평해서 좋겠군.]
“뭐 어때, 도마뱀들만 잘 막아내면 되는 거지. 귀엽잖아.”
총괄 지휘를 맡고 있던 콰티가 옆에서 투덜거렸으나 강신혁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오히려 여태까진 염인들이 제일 쓸모가 없었지 않은가.
물론 강신혁은 그런 말을 실제로 입에 담지는 않았다.
[부어! 더 부어라!]
[벌써 지쳤다고? 아직 한 바퀴도 못 둘렀어, 좀 더 힘차게 불꽃을 뿜어보란 말이다!]
지금 염인들은 3개조로 나뉘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분지 전체에서 고르게 퍼낸 흙을 거대한 화로에 끊임없이 쏟아 붓고, 화로에 광염기를 쏟아 폭화금 벽돌을 만들어내고, 완성된 벽돌이 쌓일 틈도 없이 부지런히 날라 성벽을 쌓는 것이다.
물론 작업을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난 지금도 완성도는 1%에 못 미쳤다. 처음 염인들을 부려먹는다는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역시 60킬로미터 이상가는 둘레의 성벽을 세운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높이를 조금 낮춰……?”
[아니, 당초 계획대로 50미터로 하지. 그 정도는 되어야 어떤 적을 상대로도 완벽히 막아낼 수 있을 거다.]
[벽돌 하나당 2미터에 조금 못 미치니까. 오히려 100미터로 높여도 될 것 같아.]
“아니, 그러진 말자. 부탁이야.”
겨울방학을 여기서 통으로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지금도 위험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시간비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 7대 1입니다. 상황에 따라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건 지금 이 세상이 본격적으로 위험해지고 있다는 뜻 아닌가요?”
관리자의 반박이 없다는 것은 긍정이라는 뜻. 강신혁은 삽시간에 썩은 표정이 되었다.
어쩌면 이번 퀘스트가 끝나고도 이 세상에 올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그런 불길한 생각이 씨가 되었던 것일까? 오후에 다시 덮쳐온 불도마뱀 무리가 뿜어내는 불을 이용해 동료의 사체를 완벽하게 구워내던 슈가 어느 순간 소리를 질렀다.
“콰티, 다른 놈들 오는데?”
“다른 놈들?”
[다른 놈들?]
슈의 말에 화로를 제어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던 강신혁이 멍하니 따라 중얼거리자, 그 옆에서 콰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모루, 잠시 지휘를 맡아줘.]
“아니 난 염인도 아닌데……."
[폭화금을 다시 흙으로 되돌리는 능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잠깐만!]
콰티가 냅다 업무를 그에게 떠맡기곤 앞으로 달려갔다. 안 그래도 화로의 제어에 적잖은 기운을 소모하고 있던 강신혁은 난감해졌으나 별 수 없이 지휘를 맡았다.
“다들 좀만 더 힘내자. 작업속도를 조금만 더 높이는 거야.”
[어라? 갑자기 기운을 움직이는 게 편해지는데…….]
우선적으로 자신의 특성, 수호황룡의 힘으로 작업에 참여하는 모든 염인들을 강화했다. 그리고 자그마한 영력의 실을 둘러 같은 작업을 하는 이들의 호흡이 맞도록 배려했다.
아까부터 했어도 되지 않았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화로를 만들었을 뿐인 장인이 멋대로 나서는 것과 콰티에게 정식으로 지휘를 부탁받은 이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것도 설마 장인의 능력이야?]
[신기하네, 분명 우리 종족이 아닌데 어떻게 우리 종족을 이렇게 잘 이해할 수 있는 거지……?]
다행히 그의 조치는 염인들에게도 환영받는 듯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썩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암석늑대? 너희가 어째서?]
[크르르…… 이유는 네년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불도마뱀에 비해도 덩치가 족히 열 배 이상 큰 거대한 늑대가 - 그것도 온몸이 둔탁한 광택을 발하는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 건설되고 있는 중인 성벽으로부터 불과 100미터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와 으르렁거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하기에 빌어먹을 도마뱀들이 우리의 땅을 헤집고 다니는 것인가.]
[그걸 몰라? 우리도 그들을 대적하고 있는데. 놈들에게 땅이 더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 늠름한 이빨로 깨물어 죽이면 될 것을.]
[놈들이 오직 네년들만 노리고 움직이고 있는데, 네년들의 잘못은 없다고?]
[물론.]
놈과 대치중인 콰티는 어디까지나 당당하게 말하며 코웃음을 쳤다.
[우린 짓지 않은 죄에 책임을 질 생각은 없어. 도마뱀들이 싫다면 일어서서 싸워라. 우리를 찾아온 것에는 네놈들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어.]
[나는 생각이 다르다.]
가장 거대한 암석늑대, 아마도 대장으로 보이는 그놈이 쇠를 긁는 소리로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해왔다.
[단지 네년들을 치워버리면 되는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이 화산을 저 도마뱀들에게 내주면 우릴 귀찮게 하지 않겠지.]
[어리석은 생각이다, 다음은 네놈들의 차례가…….]
[아니, 우리도 그에 동의한다.]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하늘로부터였다.
그곳에 거북이가 날고 있었다.
강신혁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 정말로 거대한 거북이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다만 몸이 투명해 영력을 구사하지 않으면 정확히 볼 수조차 없다는 점, 그런 와중에 보랏빛으로 불길하게 반짝이는 껍데기만은 훤히 보이는 점이 특이했다.
아마 영력이 없는 이가 본다면 저 등껍데기만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냄비다!”
“응, 뭐 그런 반응을 예상했어.”
그리고 강신혁의 곁에도 무지막지하게 센 주제에 감각만은 이상하게 둔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강신혁은 슈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콰티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무척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폭풍거북……. 우스운데, 여태껏 우리 앞에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염인계집……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모양인데, 그러면 곤란하지……!]
[늪돼지까지?]
늪돼지라고.
돼지라고!
“할아방……!”
가장 늦게 참전한, 저 아래에서부터 느릿느릿 기어 올라오고 있는 거대한 돼지들(몸에서 녹색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 역겨웠지만 그 아래로 실한 몸통이 드러나 있었다.)의 무리를 보며 슈가 잔뜩 신나 외쳤다.
“저거 화로에 구워먹으면 짱짱 맛있겠다!”
[우릴 먹겠다고!]
강신혁은 영력을 발해 늪돼지라는 것의 신체 성분을 대충 파악하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진흙이 줄줄 흐르는 게 기분 나쁘지만…… 뭐 진흙 통구이도 있으니까.”
[통째로 구워먹겠다고!]
늪돼지들이 무척 분노하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던 중 밑에서 올라오던 다른 무리…… 그러니까, 불도마뱀의 새로운 웨이브에 치여 치익, 치이익, 군침 도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이런 때에 불도마뱀까지.]
콰티가 혀를 찼다. 이젠 그녀도 저 불도마뱀들이 나타나는 타이밍이 작위적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 뒤에 있을 요르문간드의 음습한 악의를 읽어내고 이를 갈았다.
“어떻게 할 거야? 대화로 풀 수 있을 것 같아?”
[하.]
강신혁은 물어보면서도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콰티 역시 대화라는 말에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저것들이 나타난 데로 가서 깽판을 칠 걸 그랬네.”
“슈 넌 어떻게 생각해.”
“고민 좀 해볼게. 어떤 게 비용이 제일 적게 들까……."
슈는 잠시 아래에서 올라오는 적들, 위에서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는 냄비들, 그리고 아직 완성까지 한참 먼 성벽과 열심히 움직이는 염인들, 분지 중앙에서 광염기를 받아 타오르고 있는 화로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굳게 결심했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을 먼저 완성시키자. 무리 가니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응?"
“뒷일은 부탁해, 할아방. 그리고 콰티.”
성벽을 무슨 수로 완성시키겠다는 거냐, 그렇게 질문하려던 그때였다.
- 우드드드드
분지의 높이가 갑자기 낮아졌다.
그와 동시에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던 폭화금의 성벽이 50미터 높이 이상으로 솟구쳤다.
마치 분지를 균등하게 퍼내 곧장 폭화금 벽돌로 변환, 성벽을 쌓은 것처럼.
“성, 후우……."
그리고 슈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작업을 하고 있던 염인들도 함께 쓰러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 회원님, 성벽을 완성하셔야 합니다!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던 강신혁은 눈앞을 가득 채우는 관리자의 메시지에 본능적으로 성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에게서 솟아난 황룡투기와 영력이 한데 섞여, 기분 탓일까 평소 그가 다루던 것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성벽에 쏟아졌다.
[놈들이 이상한 짓을 했어. 공격해!]
[저런 벽 따위 무너트려버려!]
갑자기 높은 성벽이 솟아나자 가뜩이나 염인에게 적의를 불태우고 있던 이종족 연합은 기회라는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고, 불도마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달려든 폭풍거북이 분지에 폭격을 가해오려던 그 순간, 늦지 않게 성벽 전체에 퍼져나간 강신혁의 영력이 불완전하던 성벽을 완전히 거듭나게 했다.
황룡투기에서 피어난 거대한 황룡이 울부짖으며 성벽을 크게 한 바퀴 휘돌았다.
금색의 섬광이 터져 나오며, 폭풍거북 무리를 단숨에 튕겨냈다.
- 성공입니다!
“……아니, 진짜 뭔데!?”
-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회원의 종족능력입니다! 성벽을 건축한다는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을 남겼습니다!
“아니 무슨, 킹 크림슨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50미터 높이 성벽 위로 반투명한 붉은 에너지의 돔이 생성되었다.
폭풍거북들이 튕겨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리라, 생각하는 강신혁의 망막 위로.
완성된 성벽의 정보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