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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화. < Chapter 39. 성 쌓기 - 5 >

“뭐야, 어떻게 된 건데!?”

“뭐긴, 방금 내 주먹을 날렸잖아.”

슈가 할아방은 이거 못해? 하고 묻는 표정으로 강신혁을 바라보았다.

아니,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농담이야, 할아방.”

강신혁의 황당한 표정을 본 슈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녀석의 거대화한 손은 주먹을 펼쳐 커다란 손바닥의 형태가 되어, 산을 기어 올라오는 도마뱀들을 무슨 빗자루라도 되는 것처럼 쓸어버리고 있었다.

“이건 우리 종족 특성이야.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를 낳는 거야.”

“미안, 너무 어려운 말이라서 잘 못 알아듣겠어.”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내가 할아방한테 뽀뽀를 하고 싶다고 하면……."

- 그 예시는 적절치 못합니다.

오, 드디어 관리자가 끼어들어 태클을 걸었다.

슈는 킥킥 웃고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악수.”

"응?"

강신혁은 악수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슈 역시 상큼하게 웃으며 손을…….

“으어어어.”

그녀의 손만 강신혁의 손에 철썩 달라붙어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솔직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이렇게, 목적한 행동을 공간을 격하고 바로 수행하는 거야. 내가 중간에 이동하거나 팔을 뻗거나 하는 과정 없이 말이야. 이해 가?”

“그러면 본인의 사고능력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거 아냐?”

“오오!"

벌써 거기까지 파악했어? 하며 슈가 박수를 쳤다.

몬스터들을 밀쳐내고 다지고 있던 주먹과, 강신혁의 한 손을 붙잡고 흔들고 있던 손이 모두 한 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그녀의 팔에 달라붙어 박수를 치는 그 광경이란!

“역시 할아방은 뭐가 달라도 달라.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에너지의 총량이 중요해. 우리 종족이라고 다 저런 로켓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건 아니니…… 까!”

기껏 주먹을 회수했는데 곧장 두 발째의 로켓 펀치를 날리는 슈.

이번엔 아까보다도 규모가 조금 더 컸는데, 도마뱀들이 터져나가며 흘러나온 불꽃이 검은 장갑에 부딪혀 허무하게 튕겨 나오며 산화하는 것이 보였다.

“와, 할아방 진짜 대박이야. 하나도 안 뜨거.”

[확실히…… 기술은 인정할 수밖에 없군.]

염인 또한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작스러운 주먹의 확장이나 도마뱀이 죽으며 터져 나온 불꽃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음에도 장갑에는 흔적 하나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험하게 쓰면 찢어지긴 할 거야. 자동수복 기능이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걱정하진 않아도 되지만.”

“최고야, 할아방! 여태까지 제대로 된 무구를 착용해본 적이 없는데, 할아방 덕분에 내 전력이 단숨에 두 배 이상으로 는 것 같아!”

슈는 기뻐하며 강신혁을 얼싸안았다.

이건 원격으로는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일까.

적어도 겉보기엔 그저 10살 아이에 불과했으므로 강신혁 역시 별 생각 없이 녀석과 포옹할 수 있었다.

“이거라면 놈들의 본진에 쳐들어가도 될지도 몰라!”

“그건 그만둬.”

“오, 방금 할아방 좀 할아방 같았어!”

강신혁의 진지한 목소리에 장난스럽게 대꾸한 슈였으나 강신혁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무구는 결국 무구일 뿐이야. 거기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언젠가 다칠 거야.”

“와왁, 할아방!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슈가 몸을 배배 꼬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주먹은 여기저기 워프하며 여기서 쿵, 저기서 쿵, 도마뱀들을 작살내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알겠지만, 우리 염인은 저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기가 어렵다.]

“응? 아.”

갑작스레 염인이 말을 걸어왔다.

사실 슈의 주먹만 보고 있었지만, 그는 최대한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뒤늦게 염인들은 어찌하고 있는가를 살폈다.

잘라 말하면 가관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설프게 깎은 쇠창 따위를 들고 분지의 경계선에 서서 올라오는 도마뱀들을 찌르고 있었는데, 그 동작이 모두 어설픈 것은 둘째 치고 내재된 힘은 무척 강해 보이는데 결과가 영 별로였다.

[놈들이 우리의 불을 흡수하기 때문이야. 우리의 능력은 대부분이 불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에 대해 놈들은 완전히 면역. 그래서 잘 다루지도 못하는 무기를 들고 저렇게 찔러 퇴치하는 수밖에 없어.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분통 터지는 사태라는 건 대충 알겠네.”

그렇다고 슈가 언제까지고 이 세상에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

처음엔 도마뱀들을 후딱 해치워주고 갈 생각이었던 슈는 도마뱀들이 끊임없이 솟아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대로는 퀘스트에 실패한다고 생각해 마침 연락을 하고 있던 강신혁에게 SOS를 쳤다는 얘기다.

“그래서 성벽을 쌓는다는 얘기가 된 건가.”

“맞아, 할아방.”

강신혁이 상황설명을 듣는 사이, 슈는 기어이 도마뱀들을 완전히 쓸어버리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분지는 언제 도마뱀들이 침범해왔었냐는 듯 고요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라면 강신혁이 여기 불려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근원지를 부수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할아방, 그건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적대하겠다는 뜻이야. 여기가 넓어보여도 세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거든. 우리가 이 분지 외의 공간에서 크게 날뛰면, 그 목적이 무엇이든 다른 세력이 여길 공격하려들 거야.”

“그것들 전부 요르문간드야?”

“그게 아니라는 점이 제일 짜증나지.”

그러고 보면 염인도 요르문간드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던 것으로 보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염인들을 비롯한 이 세상의 종족들은 요르문간드와 크게 관련되는 일 없이 저마다의 영역을 갖추고 살아오다가 이제야 그들과 적대하게 된 모양이었다.

“요르문간드는 아직 이쪽에만 적의를 돌리고 있어. 할아방도 대충 예상하고 있겠지만, 이 세상의 다른 종족은 요르문간드를 경계해야 한다는 이쪽의 말에 귀를 전혀 기울이지 않아. 협조할 생각이 없어.”

“그러다 염인이 멸망하고 다른 종족이 타겟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겠지.”

[우린 멸망할 수는 없어!]

“예시가 그렇다는 거야, 예시가.”

빽 소리를 지르는 염인에게 인상을 쓰며 대꾸하던 강신혁은 아직 그녀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라고 불러야 되지? 불덩이?”

[****]

“뭐?”

[아…… 콰티라고 부르면 된다, 모루.]

그래도 슈가 착용한 장갑의 위력을 확인해서인지 아까보다 제법 얌전해진 염인.

강신혁은 그녀와 인사를 마친 후, 서서히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는 염인들에게 한 번씩 시선을 주었다.

네오러스트의 외계인들처럼 인간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느낌은 안 들었기에 별 거부감은 없었다.

[그래서 정말 성벽을 부탁할 수 있을까? 재료라면 잔뜩 있어.]

“그것 자체는 쉬운 일이지만.”

대충 둘러보기만 해도 성벽의 둘레가 1,2km 선에서 끝날 것 같지가 않다는 건 큰 문제다.

그렇다고 이 세상이 사실 모든 존재가 작아지는 키엘론과 같은 세상이라, 영력 해방으로 작았던 벨트를 커다란 성벽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묻고 싶은 게 있어. 당신들은 도마뱀이 나타나지 않을 때면 평소 이 아래로 내려가곤 하나?”

[우리가 내려갈 일은 없어. 먹을 건 다 있으니까.]

어디에? 라고 눈치 없이 묻지는 않았다.

염인의 주식이라면 뭐 불이겠지.

분지 밑에서 뜨끈뜨끈하게 느껴지는 열기는, 이 화산이 단순한 사화산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럼 그냥 여기서 계속 살아가는 건가. 물론 엄청 넓긴 하지만, 심심하지 않나……?”

[지금은 전시야. 평시엔 조금 달라.]

과연 얼마나 달라질지 궁금했지만 이것도 굳이 묻지는 않았다.

강신혁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슈에게 돌아섰다.

“측량 먼저 하자.”

- 관리자가 끝내놓았습니다. 이 분지의 둘레 길이는 65킬로미터가 조금 안 됩니다.

“원이라고 치면 지름이 20킬로미터 조금 넘는단 얘기네요.”

- 원주율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괜찮아요.”

과감하게 관리자의 설명을 끊어낸 강신혁은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65킬로미터 둘레를 완벽하게 커버하는 성벽을 만들라니.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건 대장장이가 아니라 중국 진시황제를 불러다놓고 얘기해야 되는 것 아냐?’

- 회원님께선 일반적인 대장장이가 아니시니까요. 이것이야말로 히어로 유니버스의 스케일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여태까지 제가 물건을 만들던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만은 일단 잘 알겠어요.’

관리자와 대화를 나누며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강신혁은 수천, 수만에 이르는 숫자의 염인들을 보며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성벽을 쌓는 것은 아티팩트 제작처럼 정교한 작업이 아니다.

수만 명이라는 인력을 동원해 좌우지간 외적을 막을 수 있는 방벽을 쌓을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방어력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겠지. 적이 도마뱀으로 끝나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높은 성벽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성벽을 직접 쌓는 것은 저들. 저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단단한 성벽이지만, 정작 그들은 재료의 가공 기술이 턱없이 부족해.’

그 사실은 저들이 다루는 허접한 무기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스토리는 뻔하다.

염인은 원래 싸움도 맨몸으로 하는 종족이겠지. 그러니 무기를 다루는 능력도 허접하고, 무기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허접한 것이다.

슈의 말마따나 좋은 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불을 활용할 능력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신혁이 지금 만들어야 하는 것은…….

“콰티, 너희가 공급할 수 있다는 그 재료가 뭔지 우선 보자.”

[음.]

콰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더니 분지의 붉은 흙을 퍼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불을 피워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자 흙이 우수수 떨어지고, 그 안에서 아까 그들이 다루던 창과 같은 빛의 금속질의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신혁이 그것을 받아들어 확인하니, 세상에. 그 어떤 금속보다도 귀한 물건이었다.

[폭화금]

[SS+랭크]

[영원히 폭발하는 화산에서만 나는 흙을, 염인의 불꽃으로 가공하여 만든 금속.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폭화금은 탄생하지 않는다. 한 번 형태가 굳어지면 재가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극한에 가깝게 온도가 낮추어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폭발력, 그리고 불에 끔찍한 저항력을 갖는다.]

“과연, 너희가 어째서 이걸로 도마뱀들을 상대했던 건지는 잘 알겠어.”

[재료를 보는 눈이 탁월하군. 한눈에 알아봤나?]

“우리 할아방을 대체 뭘로 보는 거야?”

콰티가 경악하고 슈가 우쭐해했다.

하지만 강신혁은 콰티나 슈에게 태클을 걸어주고 있을 틈이 없었다. 폭화금을 영력으로 살피고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놀랍게도 그의 손에 들려있던 폭화금이 제 형태를 잃고 다시 붉은 흙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와, 할아방 뭐야뭐야!?”

“재료와 소통한 거야. 아니, 미안. 나도 농담한 거야.”

그는 말을 하다 말고 험악해지는 슈의 인상에 사과했다.

아니, 사실 그게 맞지만.

하지만 이것으로 가야 할 길은 찾았다.

그가 만들어야 할 것은 성벽이 아니라.

성벽을 쌓을 금속 자재를 만들어낼 아티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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