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216화 (216/345)

216화. < Chapter 39. 성 쌓기 - 3 >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신혁은 늘 생각했다.

그래서 오혜나에게 오주영과 싸웠을 때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전달해주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 오혜나가 울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울지 새꺄!”

“아니 검으로 대화하자는 뜻 아니었어? 그래서……."

“검은 꺼내지도 않았으면서……."

“주먹을 맞대면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한다, 뭐 이런 뜻으로 사용한 말이었지.”

“한 대 때려보지도 못했어……."

오혜나는 극도로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백인하라는 방패 뒤에 숨어 꿍얼거리며 클레어가 타준 차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을 뿐.

백인하는 오혜나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혜나야, 얘가 나쁜 애는 아냐. 그러니까 그……."

“알아.”

“알아?”

“그냥……."

오혜나가 말을 하다 말고 다 마신 찻잔을 스윽 앞으로 내밀었다.

클레어가 차를 새로 따라주자 그녀에게 아주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곤, 그것을 다시 자기 앞으로 끌어오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백인하의 건너편에 있을 강신혁을 한 번 쏘아보곤, 이 자리에 자신과 백인하밖에 없는 것처럼 스스럼없이 말했다.

“직접 한 번,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우리 아빠 죽인 사람 얼마나 강한지. 정말 이 사람이 우리 아빠 죽인 사람 맞는지.”

“……아저씨가 돌아가신 이유를 물으러 온 거 아냐?”

“그건, 됐어. 이미 납득, 했으니까.”

오혜나는 거기서 다시 입을 꾹 다물고 찻잔을 입가에 옮겼다.

강신혁은 불과 1년 전까지 자신도 같은 나이였지만, 역시나 중딩이 하는 생각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도 차를 마셨다.

“그런데…… 정작 알고 싶었던 건 알지도 못하고.”

아, 또 울먹이기 시작했다.

“개쳐발렸어……."

“그래도 오늘 보니까 엄청 강해졌던데. 검도 늘었어.”

그대로 땅굴을 파고 들어갈 것 같은 오혜나를 보다 못한 백인하가 애써 그녀를 칭찬했으나, 그녀는 외려 백인하를 째리며 말했다.

“오빠는 검술 허접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

“이 땅콩 같은 게 실드를 쳐줘도.”

“이제 땅콩 아냐, 키 컸어.”

강신혁은 자신을 놔두고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녀석들을 보곤 클레어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응, 뭐 괜찮은 거 아냐? 둘이 잘 어울리네.”

“그럼 이제 얘네 둘이서 놀라고 하고 쫓아내도 되겠지?”

마음을 굳힌 강신혁이 둘을 쫓아내려는데, 그 직전에 오혜나가 다급히 말했다.

“거, 검.”

“역시 검 들고 싸우자고?”

그녀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그녀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결착이 나는 것이 앞선 두 번의 대련보다 더 빨랐다.

그녀가 휘두르는 대검의 궤적에 대고 검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

-챙!

스테이터스를 과시할 필요도 없다.

별 힘없이 휘두른 검도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가기만 하면 공격을 빗겨내고 상대의 급소를 찌를 수 있었다.

물론 그의 검은 오혜나를 곤죽으로 만들기 전, 그녀의 미간에서 멈추었지만.

"......."

영혼 없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는 오혜나.

강신혁이 그녀의 눈앞에서 휘휘 손을 흔들어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평범한 시체인 모양이다.

“어떡하지?”

강신혁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 시체…… 아니 오혜나가 갑자기 손을 들어 백인하에게 까딱이며 손짓을 했다.

백인하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순순히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스스슥 일어나 그의 등 뒤에 숨었다.

처음 바에 들어왔을 때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나 갈래.”

“이제 만족했어?”

“오빠 죽어.”

“만만한 게 나지, 이 땅콩아.”

그녀는 백인하를 방패로 내세운 채 뒷걸음질을 쳐 입구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문을 열더니, 백인하의 등 뒤에서 고개를 내밀어 강신혁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간신히 그 말을 내뱉고는 백인하를 끌고 도망쳤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강신혁은 고개를 갸웃하곤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녀도 가면을 벗고 있었다.

“뭐가 고맙다는 거지?”

“저번에 게이트에서 구해줬다며? 그래서 고맙다는 거 아냐?”

“……그럼 설마 그 말 한 마디 하려고 여태 이 난리를 피운 거라고?”

“아마도?”

강신혁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처음부터 강신혁을 적대시하기는 했으나, 그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따지려 하지는 않았다.

그건 그녀가 아버지의 죽음을, 그러니까 그녀의 아버지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이미 납득하고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그녀가 강신혁과 만나려 했던 것은, 그야 물론 친아버지를 죽인 강신혁에게 원망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아버지를 죽인 사람한테 순순히 고개를 숙일 수는 없잖아. 그래서 일단 시비를 걸었던 거 아냐?”

“사고회로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내 생각엔, 좀 더 격렬한 전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클레어의 중2 회로가 가열차게 회전하고 있었다.

“서로 진실한 감정을 쏟아내면서, 왜 있잖아. 검과 검을 맞부딪치면서 서로 소리 지르는 거.”

“아, 그거. 주인공하고 친구였던 라이벌이 피터지게 싸울 때 나오는 전개지.”

“그럴 때 꼭 속에 있던 말들을 다 토해내고 서로 후련해지잖아.”

“서로 오해도 풀리고 말이야. 완벽하게 납득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존재했다.

오혜나는 자기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좌절해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인생 되게 피곤하게 사네.”

“원래 저 나이 땐 그래. 온 세상이 내 적이잖아.”

“그랬지.”

하지만 그래도 기어이 감사인사는 하고 가는 것을 보면,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원래 성격이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울던 모습을 보면 살짝 허당인 것 같기도 하고.

“후, 어쨌든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오주영은 어차피 죽여야 할 놈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

“응, 하지만 가족에게는 죄가 없으니까. 무사히 잘 풀려서 다행이야.”

이 정도면 아마 내년에 신영에 들어와서도 그를 볼 때마다 칼 들고 덤벼들지는 않겠지.

이건 오혜나가 앞으로 그와 연관될 일 없는 타인이라면 몰라, 백인하의 절친한 지인이면서 동시에 신영의 신입생이라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오혜나는 생각보다 성숙한 아이였고, 자신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아이이기도 했다.

‘행동방식은 여전히 좀 미숙하긴 하지만, 인간 죽을 때까지 미숙한 건 다 마찬가지니까.’

나머진 백인하한테 모두 맡기면 되겠지.

안도한 강신혁은 바 테이블 위에 길게 엎드렸다.

그것을 본 클레어가 무슨 생각에선지 머들러 하나를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며 장난을 쳤다.

“되게 예쁘던데?”

“응, 저 정도면 백인하한테도 안 꿀리지.”

“흐으으으음. 그게 다야?”

“그럼?”

간질간질, 장난을 치던 그녀가 머들러를 싱크에 옮겨놓고는 그와 비슷한 자세로 엎드렸다.

엎드린 두 사람의 시선이 한데 맞물렸다.

강신혁은 괜히 뒷목이 간질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이성으로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고?”

“저런 꼬맹이가? 전혀. 그건 클레어한테 백인하가 남자로 느껴지냐고 묻는 거랑 똑같은 수준의 질문이었어.”

“와, 자신감 뿜뿜하네.”

그러나 말과는 달리 클레어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강신혁과 달리 백인하가 애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

만약 강신혁이 오혜나에게 자신이 백인하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그런 감정을 느꼈다면, 클레어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불안했어?”

강신혁의 질문에 클레어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턱을 위아래로 당겨 긍정했다.

솔직히 놀라웠다.

그녀만큼 자신만만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싶었는데, 그녀에게도 불안감이 존재한다니.

하지만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루의 기억이 그렇게 말해주어, 강신혁도 담담할 수 있었다.

“이래서 나보다 잘난사람을 좋아하면 안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레드 슈즈 처음 봤을 때도 솔직히 좀 불안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느끼는 게 맞아. 설마 은아 선배를 노리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그 여자한테도 매력은 못 느꼈다?”

“매력적이라고 생각은 했지.”

“이봐."

하지만, 하고 강신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난 클레어만 좋아. 사귀고 싶다고 생각한 건 클레어 뿐이야.”

“응…… 그럼 손 줘봐.”

손을 뻗었다.

그녀는 느릿느릿 자신의 손을 뻗더니 강신혁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입가로 가져갔다.

입술을 자그맣게 벌려, 그의 약지를 앙 깨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강신혁의 입가에 내밀었다.

꼭 해야 되냐는 눈빛을 보냈더니 꾹꾹 밀어붙여왔다.

강신혁은 별 수 없이 그녀의 약지를 살짝 물었다.

클레어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사귀는 거야.”

“여태까진?”

“연인(진).”

“뭐야 그거. 클레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은아한테 배웠어.”

신은아는 그걸 또 어떻게 알았을까.

강신혁이 픽 웃고 있자니 클레어가 말했다.

“졸업까지 앞으로 2년 남았네.”

“그러게.”

“시간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 아아앙.”

장난스러운 말투로 투덜거린 클레어가 다시 그의 손을 끌어당겨 앙앙 물어댔다.

거기서 묘한 에로스를 느낀 강신혁은 그녀의 입에서 손을 빼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치킨이라도 먹을까?”

“돈 없을 땐 내가 사주는 맛이 있었는데, 귀엽지가 않네.”

“그럼 시킨다? ……아, 근데 영업해야 되나. 끝날 때까지 괜찮겠어?”

“아니, 나 배고파서 더는 못 참아.”

클레어는 완강하게 고개를 젓더니, 자리에서 느릿느릿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영업 안 할래. 둘이서 2학년 진급 기념 파티하자.”

“2학년 진급이야 다 하는 건데?”

“그냥 진급이 아냐. 수석이니까 특별하잖아? 상장도 있겠다.”

“그건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클레어는 강신혁이 내놓은 상장을 보고 킥킥 웃더니, 이내 그 뒤로 얼굴을 숨기며 말했다.

“그…… 가게 문은 계속 Close로 놔둬야겠네.”

@@@

신영 1학년생들은 원래 방학 기간 동안 많은 과제를 수행한다.

대부분은 실습 과제로, 길드에 수습으로 들어가 실제 게이트 대처를 배우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학교와 협회의 협력 하에 집단출동도 겪어보고, 학교와는 다른 환경에서 실전으로 실력을 다지는 것.

그런데 이번 년도는 2학기에 이미 그걸 질릴 만큼 해서, 방학 과제는 반대로 나왔다.

2학기 때 미처 배우지 못하고 넘어가거나 미진했던 부분을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영상 강의로 보충하고 과제를 수행하는 것.

학생들은 이게 무슨 방학이냐며 절규했지만 신영측은 알 바가 아니었고.

강신혁은 방학이 시작된 후로 일주일 만에 모든 과제를 끝마치고, 새로운 차원 퀘스트를 받았다.

- 회원님께 정말로 어울리는 퀘스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고 늠름한 성을 건축하는....... “시끄러워욧.”

-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님의 귓속말 : 할아방, 어디쯤이야!? 이제 다 와가!?

지구보다 모든 의미에서 거대한 세상에서 성을 쌓는 퀘스트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