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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자마자 VIP-215화 (215/345)

215화. < Chapter 39. 성 쌓기 - 2 >

약속장소는 어디였는가 하면, 초인상가에 있는 클레어의 바였다.

“여기 완전 네 홈그라운드 아니냐, 비겁하게.”

“그럼 넌 내가 가면 쓰고 뱅가드 본부 건물로 찾아가기라도 하라는 거냐?”

어차피 바를 열 시간은 되지 않았기에 가게 문에는 Close 간판을 달아놓고, 강신혁도 가면을 벗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클레어는 강신혁과 반대로 평소 바에서 쓰지도 않던 가면을 쓰고 테이블 너머에서 마른 천으로 묵묵히 글라스를 닦고 있었다.

이 자리에 빠질 수 없어 함께한 백인하는 그런 클레어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야 클레어의 바텐더 유니폼은 정말 매력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누님은 왜 이러시는 거?”

“보면 몰라? 클레어는 지금 ‘비밀을 감추고 있지만 믿을 만한 바텐더’ NPC 흉내를 내고 있는 거야. 주인공이 누군가와 바에서 만날 때 꼭 한 명씩 있는 그런 캐릭터.”

강신혁의 명쾌한 해설에 클레어가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여 수긍했다.

백인하는 이 둘이 어째서 마음이 맞을 수밖에 없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인생이 컨셉이구나.”

“백인하 너도 얼추 비슷하잖아.”

“어, 그러네? 그럼 나도 누님이랑 잘 어울리는 거 아니냐?”

“그건 아냐. 넌 내가 만만하니?”

흘려 넘길 수 없는 말이었는지 클레어가 컨셉을 깨고 즉답했다.

백인하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고꾸라졌다.

“맨날 시뇩이한테만 친절하지……."

“솔직히 지금은 네가 나빴어.”

“아, 커플들 폭발해버려라. 내 편이 하나도 없냐 어케.”

차라리 혜나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고 백인하가 중얼거린 그때.

딸랑, 종이 울리며 출입문이 열렸다.

등에 비스듬히 푸른 대검을 메고 있는 블랙 롱 코트 차림의 소녀가 나타났다.

“왔구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주제에 백인하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적지에 홀로 잠입한 폭탄병 같은 얼굴이던 소녀는 백인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조금 표정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강신혁의 모습을 발견하자 곧 다시 인상이 험악해졌다.

“와서 앉아.”

“거기 앉기 싫어. ……그리고 인하 오빠는 이쪽으로 와.”

아무래도 편을 가르고 싶은 모양이다.

백인하는 강신혁을 보았지만, 그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쩝, 입맛을 다시곤 일어나 오혜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백인하가 자신에게로 오자 오혜나는 그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그것을 보던 강신혁과 클레어의 얼굴 위로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혜나야, 뭐해?”

“본색을 언제 드러낼지 몰라. 나한테 맡기고 오빤 나가있어.”

오혜나는 백인하가 당장에라도 고맙다고 말하며 뒷문으로 빠져나가야 할 것 같은 멋들어진 대사를 내뱉으며,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뽑아 강신혁과 대치했다.

“미안한데 혜나야, 쟤 내 친구다. 너를 믿는 것처럼 난 쟤도 믿거든?”

“그럼 이제 난 몰라. 오빠가 다쳐도.”

강신혁은 어처구니가 없어 말했다.

“백인하 너 진짜 쓸모없구나. 중재역 하려고 있는 거 아니었냐?”

“얘가 내 말을 안 듣잖아 지금!”

“인하 오빠는 관계없어. 당신은 나랑 얘기해.”

강신혁이 입을 열자 오혜나는 더더욱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가리듯이 앞으로 나섰다.

강신혁은 정말로 자신이 악역이 된 기분을 맛보며…… 이 험악한 분위기를 맛보고 있는 클레어가 너무 흥분한 것 같아 조금 걱정이었지만, 애써 그녀를 무시하고 오혜나에게 대꾸했다.

“나와 만나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왜 날붙이부터 꺼내드는 건지 모르겠는데.”

“당신…… 안심할 수 없으니까.”

오혜나가 툭 뱉은 말에 클레어가 닦던 컵을 놓칠 뻔했다.

마스크 아래로 입이 벌어지는 것을 보니 방금 그 말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지금 저 소녀는 이제 막 중학교 졸업을 앞둔 여자애.

중2 감성이 한창 살아 숨 쉬고 있을 때인 것이다.

“당신, 신은혁 맞지? 여기까지 와서 변명할 생각은 하지 마.”

“그래. 보여줄까?”

부정하기는커녕 강신혁은 그 자리에서 슬롯에 저장한 죽음의 인형사 세트를 불러내는 묘기까지 선보였다.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이 아닌 이들이 보기엔 놀라운 스킬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

순식간에 그 자리에 죽음의 인형사 신은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오혜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나보다 한 살밖에 안 많잖아……."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은 듯했지만, 그녀는 모든 의문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검으로 강신혁을 겨눴다.

“당신 나랑 싸워.”

“얘기가 복잡하지 않아서 좋긴 한데…… 싸움이 안 될 텐데?”

오혜나도 눈이 있다면 알 것이다.

이전 게이트 안에서 그의 실력을 간접적으로나마 겪기도 했고.

하지만 거기서 침묵하거나 곧장 신문사에 쪼르르 달려가 그의 정체를 제보하는 대신, 그녀는 그와 만날 것을 결심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런 건 상관없어!”

“과연, 본인이 납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큭…… 하아아앗!”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녀는 일순 낯빛이 굳어졌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점내의 테이블이나 의자를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솜씨 좋게 달려오는 것이, 걷는 법과 달리는 법에 대해서 확실히 기초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감각은 아직 떨어지는구나.”

“꺅!?"

잘 달려오던 오혜나가 여태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던 강신혁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뭔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러나 바닥에 얼굴을 찧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몸이 허공에 걸려 멈추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강신혁이 방금 손가락만을 움직여 쏘아낸 영사의 그물이었다.

“이게, 무슨……?”

“내 밑천을 가르쳐줄 수는 없잖아. 자, 검을 놓치면 안 되지.”

그녀가 넘어지면서 놓친 대검을 위험하지 않게 중간에 잡아낸 강신혁이 그것을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

오혜나는 무척이나 굴욕적인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강신혁이 빙글거리자 오혜나는 푸른 눈과는 정반대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주장했다.

“실수였어.”

“그래. 그럼 이거 치우고 다시 해볼까?”

"......."

강신혁은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아주 조금 기대되었다.

사실 그녀와 만나고 ‘우리 아빠를 왜 죽였어’로 시작되는 저주를 들을 각오를 하고 왔던 그는, 자신과의 전력 차이를 알면서도 거침없이 검 먼저 뽑아들고 보는 오혜나의 모습이 그리 기분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녀가 오주영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에 굉장한 의문을 품고 있음을 강신혁은 대충 파악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대해 입을 놀리는 대신 검을 들었다.

무협 같은 데 보면 흔히 나오는, ‘상대의 검을 알면 상대의 마음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해. 같은 수엔 안 당해.”

“정말 안 치워줘도 되겠어?”

"......."

그녀는 인상을 콱 쓰며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재차 달려들어 왔는데, 놀랍게도 몸 주위로 은은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과연, 그것으로 영사를 얼려보겠다는 건가.

아니면 냉기에 노출된 영사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것을 피하겠다는 건지도 모른다.

‘으음, 사실 이 정도론 영사가 끊어지거나 모습을 드러낼 일은 없는데.’

오혜나가 뿜어내는 냉기, 즉 속성력은 확실히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한 수준이었지만, 그래봤자였다.

강신혁의 영력은 소울 커넥터의 효과를 받아 SS+랭크에 이른 수준이며, 저 정도의 냉기는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냉기를 흘리는 과정에서 오혜나에게 노출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관건인데, 그 정도로 영력을 다루는 게 미숙했으면 모루가 전 차원 최고의 대장장이라 불릴 일도 없었을 터다.

하지만.

‘뭐 이건 이미 한 번 썼던 수법이니까.’

봐주기로 했다.

오혜나가 진실을 알면 화내겠지만 알 바 아니었다.

그의 의도에 의해 냉기에 노출된 영사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오혜나는 굳어있던 얼굴에 미약하게 희색을 띠며 빠르게 몸을 놀려 그것을 피해 전진했다.

확실히 몸놀림 하나는 이미 어지간한 초인을 뛰어넘는 수준.

속도 역시 신경계열 특성을 지닌 카렌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었는데, 그 속도를 고스란히 싣고 강신혁에게 내리쳐지는 대검 또한 훌륭했다.

‘이래서 재능도 수저빨이라니까.’

강신혁은 속으로만 그렇게 투덜거리며 영력을 움직였다.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대검이 중간에 멈추었다.

"윽......!? 읏, 으으으!"

갑자기 대검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된 오혜나는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두 손으로 대검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지만 그것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거, 어떻…… 큭!? 또 실이야!?”

“아니."

강신혁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대검이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와 허공을 유영했다.

그 광경에 오혜나뿐만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던 백인하마저 입을 딱 벌렸다.

강신혁은 대검을 마치 물고기라도 된 것처럼 허공에서 움직이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혜나의 눈앞으로 내려주었다.

그리고 담백하게 물었다.

“또 할래?”

"......."

오혜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검 손잡이를 붙잡고는, 강신혁이 영력의 통제를 풀어주자 그것을 껴안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끅, 흐으아아아……."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아아 울렸대요.”

“백인하 네가 달래주면 되잖아. 아니, 너한테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되지. 클레어?”

“응. 바텐더랑은 안 어울리지만 차라도 끓일까.”

“난 연금술사 같은 클레어도 좋아.”

“그래? 맛있는 차 얻어 마시려고 아부하는 거 아니지?”

“아니, 이럴 땐 좀 꽁냥거리지 말라고요.”

바보커플을 한심한 눈으로 쏘아본 백인하가 오혜나에게 다가가 잡고 일어나라는 뜻에서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탁- 쳐냈다.

“인하 오빠 미워!”

“난 왜!?”

"흐으으......."

“에휴.”

백인하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오혜나를 뒤에서 양팔로 안아 들어올렸다.

오혜나는 그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양손으로 대검을 껴안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백인하가 낑낑거리며 그녀를 끌고 다가와 의자에 앉혔다.

백인하의 손에 잡힌 순간부터 모든 저항을 포기한 오혜나는 대검을 끌어안은 채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강신혁과의 사이에 백인하를 배치하고 그를 경계하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강신혁은 그 모습을 보며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을 터트리려다가 필사의 의지로 자제했다.

“자, 마셔. 바텐더 특제 허브티야. 제정신을 찾는 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흐으…… 이미 제정신이야……."

오혜나는 훌쩍이면서도 순순히 찻잔을 받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시자 그제야 긴장감이 조금 빠져나간 것일까, 녀석의 입이 열렸다.

“아빠도 그렇게 죽였어?”

“꼭 그걸 들어야겠어?”

“응.”

“그래.”

"......."

당분간은 차를 홀짝이는 소리만 났다.

강신혁이 침묵을 참지 못해 먼저 말했다.

“물어보고 싶은 거 또 없어?”

“있어.”

찻잔을 내려놓은 오혜나는 우느라 팅팅 불은 눈으로 그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신살검을 흘겼다.

“아빠랑 싸울 땐 검 들었어?”

“응.”

“난?”

“아…… 그러면 이번엔 검 들고 싸울까?”

“흐으으으으으으.......”

아, 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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