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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 Chapter 38. 첫눈 - 7 >

마스크드 바커스가 담당하게 된 SS급 게이트에서 나타난 최악의 몬스터, 한국 초인협회는 임시적으로 그것을 ‘게이트 점퍼’라고 칭하기로 했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드는 몬스터.

이미 C급 게이트로 넘어간 점퍼가 마나 대폭발을 일으켜 3명의 사망자를 낸 직후 협회에는 비상이 걸렸다.

초인협회의 특급 게이트 상황실은 그 혼돈의 중심에 있었다.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은 모두 투입하세요!”

“다행히도 대기상태에 있던 대형길드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뱅가드에서는 여유전력을 모두 투입했습니다.”

“뱅가드도 참 열심이군. 실추된 이미지를 복구하려면 그야 이럴 때 뺑이를 쳐야지.”

SS급 게이트 [기어오는 약자의 박수]가 발생한 근원지를 중심으로 반지름만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영역 내부에 있는 200개의 게이트가 모두 게이트 점퍼가 나타날 수 있는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이미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는 이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에, 협회는 우선적으로 사람이 들어간 게이트를 중심으로 초인들을 파견하고 있었다.

“마스크드 바커스 팀원들은 빠르게 움직여 벌써 다섯 마리의 점퍼를 해치웠다고 합니다.”

“하, 이번 사태는 마스크드 바커스 탓인데 당연히 열심히 움직여야지.”

"그게 무슨 헛소리야? 저 게이트를 담당한 게 마스크드 바커스가 아니었으면 이미 한국 전역의 게이트에서 점퍼가 넘쳐났을걸?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말고 작업해!”

“해외 랭커 지원은…… 역시 힘든가요? 알겠습니다만, 그러면……."

갑작스러운 지원 요청을 해외에서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뭣보다 이번 사건은 발 빠른 대처가 최우선. 해외의 랭커들이 건너올 시간이면 이미 사태가 종식되고도 남을 것이다.

‘부를까? 아니…….'

신은아는 상황실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자신의 왼쪽 귀에 꽂힌 무선 이어폰을 매만졌다.

탑 랭커들끼리 나누어 가진, 텔레포트가 가능한 통신기.

하지만 이번 사태는 탑 랭커 개인의 위기가 아닌 나라의 위기이기에, 이런 일로 그들에게 요청을 하면 큰 빚을 지는 셈이 된다.

나중에 자신의 힘이 한국에 절실히 필요할 때, 이번 사건을 빌미로 자신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묶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역시…… 안 돼.’

신은아는 이를 질끈 악물었다.

이어폰에 가져다대었던 손을 가슴께로 되돌리며 그녀가 선언했다.

“상황파악은 얼추 끝난 것 같으니 제가 직접 출동하겠습니다. 상황 지휘는 소라 씨한테 넘기죠.”

“잠깐만요, 조장님.”

상황 보고를 취합하던 대원 중 한 명이 손을 들며 말했다.

“게이트의 보스가 잡힌 것 같습니다! 확실합니다, 게이트 반응 소멸했습니다!”

“벌써!?”

“역시 신은혁…… 진짜 탑 랭커는 탑 랭커구나.”

“젠장,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고!”

강신혁이 게이트를 해결했다는 소식에 상황실 내부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닫기에는 그로부터 10초면 충분했다.

[게이트 심부에서 벌레 발견! 생존자들도 발견했는데…… 아직 죽은 사람은 없나봐!]

“……클레어?”

통신기를 통해 자신에게만 전해져온 클레어의 보고에 신은아의 눈썹이 크게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클레어. 지금?”

[기다려봐, 한 방에 잡으려고 내가 지금…… 잡았어! 한 방에 죽였어!]

“그러니까 지금 잡았다고?”

[응, 왜 그래? 난 빨리 다음 게이트로…….]

“방금 너희가 담당했던 SS급 게이트가 소멸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몬스터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고?”

[신혁이가 벌써 게이트를 처리한 거야? 역시 내 남…… 아니 잠깐만.]

신은아는 지금 급한 상황 탓에 클레어가 원래 하려던 말을 캐묻지 못하는 것이 매우 짜증났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레어가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냈다.

[보통은 게이트가 소멸되면 그 게이트에 속한 모든 몬스터도 함께 소멸하는 법인데 그렇지 않다는 건, 정말로 몬스터들이 게이트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네. 그럼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너도 부탁해, 끊어!]

“잠깐만, 그렇게 간단히 납득하고 넘어갈 일이……."

통신이 끊어졌다.

신은아는 미간을 팍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지금은 이리저리 궁리하기보다 일단 움직일 때였다.

“출동하겠습니다. 좌표 주세요.”

“네, 넵!”

눈치를 보던 담당관이 조심스레 그녀에게 게이트 좌표를 건넸다.

그런데 그녀가 막 텔레포트를 실시하려던 찰나, 그녀의 이어폰이 재차 진동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통신 요청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브리짓 폴센인데요.]

"......."

얼마 전 새로 7위의 탑 랭커로 선정된 덴마크 출신의 여성 초인, 레드슈즈 브리짓 폴센.

신은아보다 훨씬 빠르게 하이랭커에 입성했지만, 본업인 모델과 배우에 충실해야 한다며 평소 소극적으로 활동하던 탓에 초인계에선 제법 밉상인 여자였다.

다만 그녀를 탑 랭커로 받아들인 이유는 그 포텐셜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 그리고 후보 중 인류를 배신할 가능성이 가장 낮다는 점에서였다.

“죄송하지만 지금 바쁩니다. 사소한 일이라면 나중에 하죠.”

[지금 한국 얘기 들었어요. 제가 도와드리려고 하는데요.]

“탑 랭커 개인의 위기가 아닌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습니다.”

신은아는 딱 잘라 대꾸하며 자신이 건네받은 좌표로 텔레포트를 실시했다.

게이트 전체로 자신의 마나를 퍼트려 SS랭크의 몬스터를 찾아내고 이동을 개시한다.

게이트 내부에서는 텔레포트가 훨씬 힘들어지기에 고속이동으로 대체했다.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요. 딱히 대가를 바라는 건 아녜요!]

“당신이?”

[네!]

“영화 찍어야 한다고 게이트 출동요청도 거절했던 당신이?”

[네!]

“어째서?”

[진짜 바라는 거 없으니까 도와드리면 안 될까요? 이거 써서 바로 갈게요!]

신은아는 이 여자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엔 그녀가 인류의 배신자일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 탑 랭커로 뽑았지만, 한국에 비상사태가 발생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을 해와선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수상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와주시죠.”

[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이 여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꿍꿍이가 있다면 자신이 대처하면 된다. 그녀를 받아들여 최소한 지금 상황에 손해가 날 일은 없다고 믿었다.

“와, 이거 진짜 엄청나네요!”

브리짓 폴센은 정말로 바로 왔다.

심지어 패션쇼라도 나가기 직전이었는지 라인을 드러내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뇌제님. 다시 뵙네요!”

자신을 보며 싱글벙글 웃는 브리짓 폴센의 모습에 신은아는 어째선지 몸에 오한이 나는 듯했다.

자신보다 객관적으로 약한 것이 분명한데 이런 긴장감을 주다니, 이 여자는 역시 위험하다. 신은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낯빛을 굳혔다.

“상황이 급한 것 같으니까 빨리 가죠!”

“미스 폴센은 여기로 가주시면 됩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응? 우리 같이 움직이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

브리짓 폴센은 몹시 실망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혹시 함께 움직이며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건가? 신은아는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정말 이런 여자에게 구조 작업을 맡겨도 될까? 아니, 그렇다면 지금 사람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게이트를 담당하게 하면 돼.’

그녀의 생각이 복잡해지려던 찰나였다.

브리짓 폴센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는 신은아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래도 열심히 할 테니까 다 끝나고 나면 데이트 한 번만요!”

“……네?”

“그게 안 되면 차 한 잔이라도! 그럼 약속한 걸로 알고 먼저 움직일게요!”

“잠깐, 누, 누구랑 데이……."

그러나 이미 브리짓 폴센의 모습은 그곳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신은아는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약 3초간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느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곤 전율했다.

‘저 여자 역시 위험해……!’

@@@

- 공간조율(SSS)의 스킬 스톤을 얻었습니다.

“……관리자님.”

강신혁은 지금 상황이 무척 다급한 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스킬 희귀도의 한계는 SS+랭크 아니었던가요? 그것도 이런 스킬이 스킬 스톤으로.”

- 이미 스킬스톤을 통해 영혼독을 익히신 회원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관리자는 회원님의 유우머 감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100HP 보너스!

“이런, 별로 재미없는 유우머였나보네.”

희귀도 SSS랭크의 스킬스톤. 그것도 공간과 관련되는 스킬스톤이라고? 단언컨대 이건 히어로 유니버스 거래 게시판에 올려놔도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을 것이다.

아까 잡은 루인 드러머 같은 녀석이 요르문간드에 얼마나 많이 포진해있는지는 몰라도, 그런 놈을 잡는다고 무조건 스킬스톤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는 아주 잘 알았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 그가 어떻게 해야 할까.

“적성을 고려할 여유는 없겠죠?”

- 적어도 나쁘진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응원 고마워요.”

강신혁은 관리자의 메시지에 엷은 미소를 짓곤, 망설임 없이 그것을 삼켜버렸다.

“끄윽……!”

그 즉시 심각한 고통이 뇌리를 덮쳤다.

마치 뇌가 강제로 확장되는 듯한 기분.

하지만 그의 뇌는 무척이나 연약하다. 이대론 스킬스톤을 잃어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뇌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조차 있었다.

강신혁은 본능적으로 황룡투기를 운용해 자신의 뇌로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수호황룡의 힘을 발휘해 스스로를 보호했다.

만물을 강화하는 데 특화된 이 힘이라면 어떻게든 그의 뇌를 지켜내줄 것이라 믿으며.

- 스킬스톤의 정수를 흡수합니다. 고유스킬 [공간조율(SSS)]을 각성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보답 받았다. 순간적으로 한계를 넘어 강화된 그의 뇌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성공해, 그의 몸에 새로운 스킬을 새긴 것이다.

더욱이 변화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 황룡투기가 큰 자극을 받아 SS+랭크로 성장합니다!

- 특성 [수호황룡(SS)]이 진화의 조건을 하나 충족합니다. 나머지 세 개의 조건을 충족하는 순간 특성이 진화하게 됩니다.

정신을 차린 강신혁은 망막에 나타나는 메시지를 확인하곤 두 눈을 크게 떴다.

얼마 전 헤일로를 도와 거인을 사냥했을 때도 황룡투기가 성장했었는데, 설마 벌써 랭크가 오르다니.

이젠 심지어 영력보다 황룡투기의 랭크가 더 높았다. 훨씬 나중에 얻은 힘인데도 말이다!

‘더구나 어째선지 몰라도 진화의 조건까지.’

특성이 수호황룡으로 성장하고 나선 한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메시지다.

그 위가 있음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 메시지에 아직 자신에게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침울했었는데, 설마 이런 일로 그 한계를 돌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비록 세 가지나 되는 조건이 남아있다지만, 조건이 세 개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찬찬히 자신을 되짚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바로 방금 각성한 고유스킬, 공간조율로 인해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겨났으니까.

- 이 능력은…… 말 그대로 공간을 주무르는 힘이군요! 굉장합니다, 한 가지 마법특성의 극한에 이른 자라도 흔히 맛볼 수 없는 힘입니다!

“아직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일어난 공간이동의 흔적을 더듬고……."

그 흔적을 쫓아 단거리 공간이동을 펼치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 얘기는 무슨 뜻인가, 즉 강신혁이 이 자리에서 사라진 33마리의 벌레의 행적을 모두 잡아낼 수 있고, 그것을 곧장 추적해 잡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얘기였다.

- 바로 움직이시죠! 공간이동에 필요한 계산은 관리자가 대행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일단 이것 먼저!”

강신혁은 관리자의 도움을 받아, 생애 첫 공간이동을 실시했다.

공간이동을 하자마자 당장 그의 눈에 검고 징그러운 거대 벌레가 사람을 덮치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전력으로 검을 찔러, 벌레가 다시 공간이동을 할 여유도 없이 놈을 죽였다.

“무사합니까?”

“더, 덕분에 살았…… 아.”

벌레의 시체를 회수하는 강신혁과, 목숨을 잃기 직전이었던 여성 초인이 얼굴을 마주했다.

어째선지 그 순간 낯빛이 딱딱하게 굳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여성.

아니, 멀리서 보기엔 성인이었으나 아직 얼굴에는 앳됨이 남아있으니, 소녀라고 보아야겠지.

그녀의 쪽빛보다 푸른 두 눈을 보며, 강신혁은 아, 나직이 탄식했다.

자신의 정체를 확인한 여성은 두 눈을 시리게 빛내며 이를 악물었다.

“……신은혁.”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바라보는 눈은 아니네, 강신혁은 가만히 생각했다. 관리자가 투덜거렸다.

- 역시 관리자가 그때 죽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다.

강신혁은 그녀, 오혜나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며 동시에 그녀의 아버지, 뱅가드의 전 길드 마스터 오주영을 죽인 사람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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