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 Chapter 38. 첫눈 - 5 >
- VIP 룰렛 보상으로 ‘상급 영력 포션 10개’를 얻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보름달이 뜬 밤하늘 아래.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나타난 검고 희뿌연 안개의 집합체, 타원형의 게이트가 심상치 않은 마력을 토해내며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 대비하세요! SS급 게이트 [기어오는 약자의 박수]가 방출됩니다!
“게이트 네이밍 한 번 죽여주네.”
마스크드 바커스에게 주어진 의뢰로 출동한 강신혁은 코 위를 덮은 마스크의 위치를 바로잡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옆에서 푸른 소에 올라탄 백인하가 썩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SS급…… 시뇩아, 나 이거 괜찮겠냐?”
“그래서 보주에 바이크까지 빌려줬잖아. 원래 강적이랑 싸우면서 더 빨리 성장하는 거야.”
“뒈진다는 걱정만 없으면 그야 그렇긴 하겠지.”
근 몇 달간 마스크드 바커스로 활동하면서 심상치 않은 성장을 겪은 백인하로선 강신혁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반년에 하나 오르면 기적인 스테이터스가 요 몇 달간 무려 네 개나 오른 것이다. 체력과 힘이 각각 두 개씩.
그의 장기인 민첩도 이제 슬슬 성장할 기미가 보이고 있었으니, 이것까지 오르면 3학년 1학기까지 목표로 했던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셈이었다.
“시뇩이 넌 맨날 이러고 아슬아슬하게 싸웠냐?”
점점 팽창하는 게이트를 보곤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백인하가 툭 던지듯 물어왔다.
강신혁은 두 개의 권총 중 뭘 꺼낼까 고민하며 대꾸했다.
“난 클레어 약빨로 싸웠지.”
“아 진짜 커플 뒤졌으면.”
“사실인 걸 어쩌라고. 클레어의 포션이 나한테는 영약이 되거든.”
언제나 그가 위험한 순간엔 클레어가 기적같이 포션을 준비해주곤 했다. 솔직히 이거 치트키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 정말로 어째서 그게 가능한 건지 때론 의문이 든다.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가설이 하나 있긴 했지만 꺼내봤자 그 사람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강신혁이 말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다.
“그렇게 궁합이 잘 맞는 건…… 역시 사랑의 힘인가.”
“조금 재수 업소.”
“그쵸? 이 새끼 재수 없죠?"
“웅."
강신혁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권총을 꺼내던 엘레노어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백인하가 날카롭게 끼어들며 그녀에게 제안했다.
“엘레노어 누님, 그런 의미에서 오늘밤은 시뇩이 버리고 저랑……."
“아, 게이트 열린다.”
"......."
엘레노어가 그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게이트를 향해 진지한 눈길을 보냈다. 강신혁은 툭 건드리면 가루가 되어 파사삭 흩날릴 것 같은 백인하의 모습을 보며 한 손을 들어 경례했다.
“너의 그 끝없는 도전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둘 다 농담 그만! 진짜 열린다!]
귀에 꽂고 있는 리시버를 타고 클레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그녀는 바이크를 타고 상공에서 대기 중이었다.
참고로 예전엔 클레어의 뒷좌석에 타고 함께 움직이던 이나희는, 요즘은 클레어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드론을 타고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 기기긱
- 기긱
게이트가 열리고 안에서 딱딱, 뭔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각진 곤충의 다리가 튀어나왔다.
곤충형 몬스터의 특징은 움직이는 방식이 종잡을 수가 없다는 것. 강신혁은 포이보스를 뽑아들곤 그것을 향해 곧장 발포하며 클레어에게 무전했다.
“보호막이 필요하겠는데?”
[SS급 게이트니까, 어쩔 수 없지. 필드 발동할게.]
게이트를 중심에 두고 사방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방어막이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간격을 메우고 게이트를 중심으로 한 일대를 밀폐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초인들은 이것을 두고 간단하게 ‘필드’라고 했다.
이전처럼 사방에서 게이트가 솟아나는 대형사태에는 필드를 설치해도 헛수고일 뿐이지만, 게이트가 하나만 발생하는 상황엔 피해가 분산되거나 몬스터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몬스터들이 전력으로 이것을 뚫고 지나가자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이게 있으면 뚫렸는지 뚫리지 않았는지는 확인할 수가 있으니 필드를 설치하는 것이다.
덤으로 강신혁은 이 필드를 설치하고 싸운 전투에서 단 한 번도 뚫려본 적이 없었다.
- 탕!
“어라, 한 방에 죽잖아? 물론 마나를 듬뿍 담아 쏘기는 했지만, 그래도 SS급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치곤 너무 약한데……."
“쓸데없이 복선 깔지 마라 개새꺄.”
강신혁은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백인하에게 윽박지르곤 연달아 탄환을 쏘아냈다.
하지만 정말로 놈들이 약한 것은 사실이었다.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고, 방어력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이상하게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기어 나와, 뭔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총에 맞고 쓰러졌다.
다만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사체가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상하다고 생각한 강신혁은 놈들의 움직임을 총탄으로 견제하며 클레어에게 무전을 날렸다.
“클레어, 위에서 보기엔 어때.”
[생명반응이 사라지는 속도가 이상하게 빨라. 한 마리만 붙잡아서 자세히 살펴봐줘.]
영력으로 살피라는 얘기겠지.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다른 총을 꺼내들었다. 빛을 상징하는 포이보스와는 달리, 어둠을 상징하는 총이었다.
[티르소스 No.O- 에레보스]
[SSS+랭크]
[특수능력 - 급탄, 암탄, 잠식, 가호]
*급탄 - 탄을 소지하고만 있으면 일일이 장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탄창에 탄이 장전된다. 탄환의 파괴력이 40% 강화된다.
*암탄 - 어둠의 탄환. 어둠 속에서 속도와 위력이 극대화되며, 그림자를 타고 보다 빠르게, 자유로이 이동한다. 실탄을 장전했을 경우, 소모 에너지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대신 능력의 효과가 반감된다.
*잠식 - 적을 강제로 어둠과 동화시키며, 어둠 그 자체에 지워낼 수 없는 독을 심어 지속 데미지를 입힌다. 적의 어둠 저항력을 극도로 낮추며, 그림자에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실탄을 장전했을 경우, 소모 에너지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대신 능력의 효과가 반감된다.
*가호 - 짙은 어둠의 축복이 깃들어 사용자를 보호하며, 사용자가 다루는 어둠의 능력을 강화시킨다.
[위대한 장인이 시리즈로 제작한 명품 권총의 감추어진 넘버링. 급탄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실탄을 장전하지 ‘않고’ 쓸 때에 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No.0으로 인정받았다. 극도로 희귀한 재료를 완벽히 활용하여 만들었으나 안타깝게도 어둠에 대한 제작자의 이해도가 조금 부족하여 필멸의 한계에 머무르고 있다. 사용자 한정 각인을 찍었기에 주인 외의 인간은 사용할 수 없지만 주인의 손에 들리면 그 위력이 증가한다.]
냉정히 말하면, 이 총은 포이보스보다 급이 한 단계 높았다.
랭크에도 +가 하나 붙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커서, 이 총이 실질적으로 아티팩트의 한계에 이른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이 이상으로 넘어가면 거기부턴 X, 즉 강신혁과 같은 존재에게는 측정되지 않는 스테이터스의 영역.
만약 강신혁에게 [다크 마스터리]처럼 중2병 넘치는 스킬이라도 있었더라면 이 총은 한계를 뛰어넘어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혼돈의 침전물이 남긴 부산물과 마나 스톤을 모두 활용했으니.’
혼돈의 침전물은 랭크는 비록 SS+랭크로 낮았으나(강신혁은 이것을 낮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자신이 무서웠다.) 포텐셜은 감히 X급에 비견될 정도였다.
관리자가 이르길 그것은 처음 태어났을 땐 약하지만, 주위 모든 것을 다 잡아먹고 몸을 일으킨 순간 비로소 인류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괴물.
강신혁이 흑영신주를 적절한 타이밍에 만들어 쓰지 못했더라면 강신혁을 제외한 모두가 놈에게 잡아먹혀 놈의 등급을 올려주는 제물로 화했을 수도 있었다.
세상이 멸망할 즈음에나 한두 마리씩 나타나는 실질적인 요르문간드의 전력 중 하나로, 요르문간드가 강신혁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증거나 마찬가지인 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총의 좋은 재료가 되었지.”
탕! 과감하게 쏘아낸 탄환이 게이트 입구에서 기어 나오던 벌레의 몸통을 관통하고, 놈의 그림자에 박혔다.
그 순간 놈이 정지된 비디오 화면처럼 덜컥 멈추고 말았다.
“하는 김에 다른 놈들도.”
- 탕탕탕탕!
실탄을 장전하지 않고 쏘아내면 포이보스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떤 의미론 포이보스보다 더욱 격하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총이지만 SS급 게이트를 상대하면서 방심할 수는 없다.
일대에 박혀들어간 탄환들이 공명하며 그림자의 영역을 일시에 확장시켰다. 그러자 탄환에 직접 관통되지 않은 놈들도 일제히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와, 몇 번을 봐도 개쩌네.”
“하나하나가 고위특성에 비견되는 옵션을 지닌 아티팩트……."
혹여나 놈들이 필드를 빠져나가지 않을까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탄환을 쏘아내고 있던 백인하와 엘레노어가 기막혀하며 중얼거렸다.
물론 그들도 강신혁이 만들어준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의 권총은 급이 확실하게 높았다.
“새로 기어나오는 놈들만 상대해줘. 이 자식들 왜 이렇게 빨리 죽는 건지 알아봐야겠어.”
“오케이.”
그는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자신의 영력을 흘려보냈다. 그림자를 타고 흘러간 그의 영력이 탄환이 형성한 그림자 영역에 스며들어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벌레들의 근원과 접촉했다.
"큭......."
자신과는 개념부터가 다른 생물, 그것도 인간에게 적의를 품은 생물의 근원을 탐색하는 순간은 언제나 기분이 더럽다.
그는 욕지기가 솟는 것을 꾹 눌러 참으며 계속해서 놈들을 탐색했다. 놈들의 생명력, 방어력, 특수능력, 기분 나쁘게 딱딱거리는 소리의 목적…….
그리고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다.
“그만, 사격중지.”
자신에게 남은 영역을 모조리 권총에 때려 박아 탄환을 한 방 쏘아냈다.
밤의 어둠을 타고 가속한 탄환이 게이트 정중앙을 관통하는 순간, 탄흔을 중심으로 검은 반구 형태의 영역이 펼쳐져 그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벌레들과, 게이트 밖으로 막 몸을 내밀던 벌레들이 모두 일시정지했다. 허공에 부유하는 먼지마저 멈춰 하나하나 집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와, 미친…… 존나 멋져.”
“둘 다, 지금부터 권총 버리고 제 무기 들고 최대 위력으로 맞춰서 한 마리씩 죽여. 무슨 소린지 알지?”
“여태까지 죽인 놈들은 제대로 못 죽였다는 말이네?”
“엉.”
룰렛에서 나온 상급 영력 포션을 하나 입에 물었다.
강화 룰렛을 돌리려고 계속 코인을 모아도 이상하게 모이지가 않길래 홧김에 룰렛을 한 번 돌렸다가 포션 10개가 튀어나왔을 땐 정말로 실망했는데, 급속도로 회복되는 영력을 느끼고 있자니 이게 정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클레어?”
[알아냈구나. 일단 게이트 요격 준비는 하고 있는데…….]
“중지해. 이 자식들 충격을 받으면 텔레포트해. 죽는 게 아니라 허물 벗듯이 마력만 조금 희생하고 텔레포트하는 거야.”
[와…….]
다행히 강신혁에게 적을 묶어두는 능력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대참사가 났어도 났을 것이다.
[잠깐만, 그런데 이동하는 기색은 못 잡아냈는데? 못해도 SS급 몬스터일 텐데 그게 가능해?]
“게이트 안으로 텔레포트해.”
[다시 말해줘.]
“인근에 위치한 게이트 안으로 텔레포트한다고.”
[미치겠네. 무슨 이런 지뢰 같은 능력이 있어!]
클레어가 급하게 초인협회 본부에 연락했다. 그러는 사이 강신혁은 백인하, 엘레노어와 합을 맞추어 정지한 벌레들을 찔렀다. 어둠으로 묶어 이동을 막고 탄환의 능력이 해제되기 전에 죽이는 것이다.
“이거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인근 게이트 다 뒤져야 돼.”
“이동범위는 파악햇소?”
“네, 다행히도. 게이트 200개 정도만 뒤지면 될 것 같아요.”
“망해쏘……."
셋이 탄식하면서도 어떻게든 게이트 안의 벌레들을 모조리 헤집어 죽이던 그때, 저 멀리서 쾅! 하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클레어?”
[직선거리 20킬로미터, C급 게이트가 위치한 곳이야. ……그 몬스터 혹시 폭발하는 능력도 있어?]
“……내가 살핀 놈은 주위 적을 잠시 얼어붙게 하는 능력이었는데.”
[혹시, 개체마다 능력이 다른 거 아냐……?]
클레어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강신혁은 동료와 시선을 마주치곤, 이를 악물며 게이트 안으로 검을 내질렀다.
게이트가 발발하고 텔레포트를 실시한 벌레의 숫자는 총 33마리.
지옥과 같은 밤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