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 Chapter 38. 첫눈 - 2 >
- 위대한 존재의 일부를 가공하여 정해진 미래를 개변하는 도구 ‘심판의 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영력이 SS랭크로 성장합니다!
- 오랜 기간의 노력 끝에 대작을 완성시켰습니다. 야금술 스킬의 숙련도가 SS-랭크로 성장합니다. 힘이 SS랭크로 성장합니다.
- 동기화가 크게 가속합니다. 현재 동화율 68.6%
우습게도 그 순간 강신혁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SS랭크 개꿀……!’이었다.
각 스테이터스가 SS-랭크로 성장한지 제법 되었는데, 과연 하이랭커의 관문이라고 몇 달이 되도록 성장하지 않고 있었는데.
족쇄를 완성한 순간 영력과 힘이 SS랭크로 성장했으니!
‘근육이 보다 강화되는 게 느껴져. 영혼이 덩치를 불리는 것 또한.’
랭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실제 성장폭이 커진다.
지금 강신혁은 소울 커넥터 덕에 황룡투기를 제외한 모든 스테이터스가 한 단계 증폭되는 상태이므로, 실제로 그의 영력과 힘은 SS+랭크 수준이 되었다.
탑 랭커라 해도 쉬이 이르지 못하는 수준의 스테이터스를 달성했으니 자랑스러울 수밖에.
다만 그의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 쿠아아!
거인의 발이 족쇄 위로 떨어지는 그 순간.
나무뿌리가 꿈틀거리며 그의 발을 휘감았다.
- 쿠어어어? 쿠어어어어어!
아직 헤이스트의 쿨 타임이 끝나지 않은 것인지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그것을 떼어내려 하는 거인이었으나, 나무뿌리는 놈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놈의 몸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기이하게도 녹색으로 빛나는 나무뿌리가 스멀스멀 몸을 늘려 거인의 발등, 발목을 감싸고 한 바퀴 휘감아 종아리를 타고 기어오른다.
나무뿌리는 빠르게 거인의 무릎을 타고 그 주위를 몇 번인가 빙빙 감고는, 허벅지를 빠르게 질주하여 놈의 사타구니 주위를 재차 칭칭 감았다.
그리고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놈의 나머지 다리로, 하나는 놈의 허리 위로 향했다.
- 쿠오오오오오오오!
“오우야……."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족쇄에 휘감기며 거인이 질색하여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나약한 존재라면 그 가벼운 일성만으로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거인의 사자후는 나무뿌리에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강신혁은 순식간에 거인의 몸을 휘감는 나무뿌리를 보며 어째선지 자신까지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건데.”
- D드라이브의 신영 고등학교 입시 대비 괴수 생태 파일의…….
"쉿."
어째서 관리자가 그걸 알고 있지!? 분명 자료는 예전에 다 처분했을 텐데!
강신혁은 관리자의 월권을 사전에 차단하며 잠자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 사이 거인의 헤이스트를 다시 시전하여 어떻게든 족쇄를 짓밟아 부수려 했지만 무리였다. 이미 놈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나무뿌리는 놈의 발도, 손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으니까.
- 구우윽……! 켁, 케헤엑!
이미 놈의 두터운 가슴팍을 감싸고 목까지 뛰어오른 나무뿌리는 놈의 성대를 압박해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게 했다.
지난 오랜 세월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연약한 생물들을 학살해온 거인의 목소리가 비로소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와, 이렇게 간단한 걸 왜 여태까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 헤일로 님께서 직접 움직이실 수 없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르문간드 역시 과도한 개입을 할 수 없었기에 거인의 손을 빌렸던 것이기도 하죠.
그런 사정이 있을 것이라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족쇄를 만들어주자마자 이렇듯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고는 그도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은 거인의 움직임을 묶어 멸망을 유보하거나, 족쇄를 활용해 헤일로의 ‘원래 세상’으로 놈을 끌어들이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건…… 그의 시선이 대지에 깊게 뿌리를 박은 족쇄를 향했다.
‘설치형 족쇄. 단순한 나무뿌리처럼 보이는 이건 사실 한쪽 뿌리를 대지에 박고, 나머지 한쪽을 가지처럼 적에게 뻗어 구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이 족쇄의 핵심은 적을 구속하는 가지가 아니라, 바로 대지로 파고 들어가는 뿌리다.
족쇄가 완성되는 순간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이것은 ‘끝없이 샘솟는 에너지의 원천’으로부터 무한한 에너지와 의지를 공급받아 고스란히 가지에 내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본디 등급으로 따지면 거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족쇄가 어렵지 않게 거인을 속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구르륵…… 그윽……!
강신혁이 자신이 만든 족쇄를 영력으로 살피는 사이, 나무뿌리는 기어이 거인의 입을 벌려 그 안으로 가지를 집어넣고 있었다.
놈의 입 안을 가득 메운 나무뿌리는 놈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완벽하게 막고, 내장으로 침입하여 놈의 속을 가득 채웠다.
겉으로 보기에 놈은 이미 나무로 만들어진 미라가 되어 있었다.
“헤일로, 무서워……."
[이런 건 내 힘이 아니네. 난 단지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수단으로 이 대지에 내 힘을 뿌려주고 있을 뿐이지. 이 세상이 생겨났을 때부터 그러했듯이.]
그리고 헤일로의 나무뿌리로 만들어낸 이 족쇄 ‘심판의 뿌리’는 세상 전체로 퍼져나가야 할 기운을 모조리 자신에게로 수렴시켜 뿜어낸다는 단순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말하자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거리지만, 그것은 요르문간드의 힘을 받아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던 저 거인도 마찬가지였다.
- ......!
그때 거인이 끝내 땅바닥으로 엎어졌다.
거대한 그림자가 흔들리며 대지가 진동하니 강신혁의 입장에선 정말 하늘이라도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질겁하여 다급히 바이크를 소환, 그것에 타고 날아오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 어떻게 정면에서 이겨.”
[정면에서 이길 필요 있겠는가. 이건 영감의 승리야. 직접 만든 족쇄를 직접 설치하여 거인을 잡았으니 자네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하지만 놈을 죽이고 있는 건 헤일로의 힘이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구만.]
서로 다 알고 있는 주제에 헤일로가 능청을 떨었다.
강신혁은 피식 웃곤 다시 시선을 거인에게로 돌렸다.
기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대지에 몸을 눕힌 거인.
그러나 나무뿌리는 이제야 시작이라는 듯이 녹광을 뿌리며 놈을 더욱 꽁꽁 감쌌다.
거인이 몸에 지닌 거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사이에도 그것은 더욱 기세를 불리며…….
비로소 족쇄의 진정한 능력, ‘에너지 드레인’을 실시했다.
[나무는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여 비축하지. 에너지를 잘 흡수하고 잘 비축하려면 뿌리가 부실해도, 몸통이 연약해도 안 돼. 에너지의 흡수부터 저장과 활용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야. 잘 보게, 모루. 저것이 한계를 벗어나 성장하는 비법의 일부일세.]
“전 봐도 모르거든요.”
족쇄는 있는 힘껏 거인의 몸을 조이며 놈의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그것은 다시 대지에 깊이 박힌 뿌리로 흘러들어가, 일부는 저장되고 일부는 대지로 퍼져나갔다.
생명력을 잃은 세상에 거인의 에너지는 새로운 자극이 되어주었다.
이미 원천을 잃은 세상은 거인의 막대한 생명력을 받아들여 미약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틔웠다.
그것을 가공하는 것은 나무인 헤일로의 일이었으며, 그는 기꺼이 그것을 수행해낼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인이 점점 말라가고 있어……."
- 만족스러운 광경이군요. 이게 바로 요르문간드에 완승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홀로 능히 세상을 멸할 수 있는 거신과도 같은 존재가, 절대자의 의지를 조금 나누어받았을 뿐인 족쇄에 붙들려 쇠약사하고 있었다.
목구멍이 나무뿌리로 가득 차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미약한 숨을 내쉬는 것뿐인데, 그 숨결에 대지의 일부분이 썩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지금 저 상태의 거인과 자신이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글쎄, 신살검을 한 20미터 길이로 늘려 그것을 최대한 깊숙이 놈에게 찔러 넣는다 해도, 놈에게 있어선 모기에게 물린 것과 별 다를 바 없을 터다.
네오러스트에서 고작 인조인간 한 명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고 우쭐대던 자신이 한심했다.
‘스테이터스가 SS랭크로 올랐다고 만족스러워할 때가 아니었어.’
히어로 유니버스와 관련될 때마다 누누이 생각하는 것이지만.
지구의 초인기준은 그저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그는 아직 전투초인으로서의 자신이 스타트라인에도 서지 못한 애송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풀이 죽는 한편, 비록 헤일로의 지원을 받았다고는 해도 자신이 만들어낸 아티팩트에 의해 저런 거대한 존재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장장이로서의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졌다.
이런 감정은 모루로 살아갈 때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기에, 새롭고 또 반가웠다.
[끝났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헤일로가 흡족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흘린 직후, 끝까지 발버둥을 멈추지 않던 거인의 몸이 한순간 축 늘어졌다.
나무뿌리는 찬란한 녹광을 뿌리며 거세게 거인을 조였는데, 그 순간 거인의 몸이 가루로 빚은 상처럼 파스스 부서졌다.
이어서 나무뿌리 또한 일시에 가루가 되어 흩날리니, 거인과 족쇄가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그 거대했던 존재가 사라지니 순식간에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강신혁이 아연해져 입을 딱 벌리고 있자니 헤일로가 친절하게도 설명해주었다.
[일부는 내가 받아왔고, 일부는 이 세상에 가능성으로서 뿌려졌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다니.”
[아니, 흔적은 남았네.]
그때, 강신혁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위대한 존재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로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555,000,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로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832,500,000HP를 얻었습니다!
- 사악하고도 거대한 존재에게 종말을 선사했습니다. 막대한 에너지의 원천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체력과 황룡투기가 SS랭크로 성장합니다.
“……진짜 남았네.”
설마 자신이 잡은 것으로 취급될 줄은 몰랐는데.
아니, 저만한 존재라면 HP 보상이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으니, 아무래도 헤일로와 자신의 공동 승리로 계산된 것일까.
HP 보너스뿐만이 아니라 체력과 황룡투기 또한 SS랭크로 성장했다.
그동안 상당히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잡아왔음에도 스테이터스의 상승이 없었는데, 단숨에 두 개의 스테이터스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역시 클래스가 달랐다.
‘민첩만 오르면 모든 스테이터스가 SS랭크…….'
비록 족쇄를 완성시키기까지 굉장한 시간과 정성이 들었지만, 그 대가는 이것만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는가, 모루. 내가 말한 흔적이란 저걸 말하는 것인데.]
강신혁은 헤일로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아깐 족쇄와 거인이 있던 자리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족쇄가 설치되었던 바로 그 자리에, 그의 주먹 크기만 한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밝은 황토색으로 빛나는 구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