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205화 (205/345)

205화. < Chapter 37. Terran In Neo Rust - 5 >

“한 바퀴 돌아봐. 반대 방향. 점프. 엎드려. 그대로 섹시 포즈.”

“알겠습니다.”

클레어의 이어지는 주문에 이블 안드로이드…… 아니, 이젠 사기(邪氣)도 사기(死氣)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안드로이드가 순순히 움직였다.

마지막 섹시 포즈에서 매력적인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깜박이는 것이, 제작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협조했던 강신혁마저 혹시 이거 안에 인간이 들어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응, 완벽해.”

“감사합니다.”

클레어의 칭찬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꾸하는 안드로이드.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인간의 성대 기관을 완벽하게 카피해, 거기에 최대한 아름답고 순수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클레어가 심혈을 기울여 튜닝한 덕이었다.

그녀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최고 수준의 설계자이기도 한데, 정밀부품을 완벽하게 가공할 줄 아는 하드웨어 제작 전문 강신혁이 협조하기까지 했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태가 좋고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과는 별개로, 강신혁은 클레어의 말에 빠르고 정확하게, 나아가 생기 있게 반응하는 안드로이드의 모습에 일종의 공포감을 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인공 자아에 대해 묻는 거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반응 패턴을 입력하면 돼.”

“그런 건 불가능하잖아.”

“물론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상황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지. 그렇기에 학습을 시키는 거야.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상황과 비교하며 분석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패턴을 만들어내는 거지. 그렇게 데이터베이스를 쌓아가다 보면, 결국엔 인간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존재가 되겠지.”

“아니 무슨 알파고도 아니고……."

아직 이세돌 씨가 이 AI를 이길 수 있을까? 혹시 모르니 망치로 깨부숴볼까?

“물론 제로에서 이 정도 수준의 AI를 만들어내는 건 내 수준, 그러니까 지구 수준으로는 불가능하지. 그래서 코어에 남아있던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했잖아. 말하자면 이건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과 내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

“여태까지 내가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었던 거잖아?”

“그랬던 거구나……."

얘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식이 드러날 뿐이니 그는 더 이상 안드로이드의 기술적 원리에 대해 묻지 않기로 작정했다.

“클레어도 완성했다니 이제 돌아갈 때가 온 것 같네. 기다려봐, 나도 세부 부품들 제작 끝났거든, 여기에…… 어디 뒀더라.”

“신혁 님, 혹시 이겁니까?”

“아, 그래. 고마…… 워어어어.”

“우리 신혁이 늑대 소리도 잘 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의 눈앞에 내밀어진 ‘세공된 나무뿌리 파편’을 받아들며 미소를 짓다가, 자신을 마주보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이 클레어가 아닌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직되었다.

“클레어, 혹시 얘 안에 인간 하나 집어넣었어……?”

“그런 거 없다니까? 인공 자아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해줄까?”

“아니야, 괜찮아. 난 그냥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그야 내 마스터피스니까. 얘 완성하고 내 연금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솔직히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라는 녀석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기는 했지만!”

클레어는 뿌듯한 얼굴로 안드로이드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 안드로이드는, 얼굴만은 전날 강신혁과 클레어를 습격해왔던 그 날의 그 얼굴 그대로였다.

다소 과하게 여성성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몸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그대로.

다만 그 내부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거래 게시판에서 구입한 재료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질감과 완벽히 같은 대체품이었고, 구성비율로 따지면 인간보다는 슬라임에 가까울 것이다.

검은 캣 슈트를 입고 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클레어의 예비 바텐더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는데, 그때의 비인간적인 느낌과 비교해 지금은 너무나 매력적인 커리어 우먼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많이 무서운데......."

“불쾌한 골짜기를 뛰어넘어 만들었다는 자신이 있는데?”

“너무 완벽해서 무서운 거야. 이런 거 막 양산할 수는 없는 것 맞지?”

“그랬으면 내가 바텐더 안 하고 기계왕국 세웠지.”

하지만 기계왕국의 여왕이 된 클레어도 제법 볼만할 것 같았다.

강신혁이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미소를 짓는데,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쿡쿡 찔렀다.

안드로이드였다.

“신혁 님, 제게 이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렇지. 하나 지어줘야지.”

“죄송하지만 전 신혁 님께 이름을 받고 싶습니다.”

“뭐?”

만들자마자 주인에게 반항하는 안드로이드의 모습에 클레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신혁이 거 보라며, 역시 자아의 수준이 이상하지 않느냐며 따지려 들던 그때 안드로이드가 볼을 붉히며 말했다.

“클레어 님이 어머니라면 신혁 님은 아버지이시니, 아버지께 이름을 받고 싶습니다.”

“……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제 안에 들어가는 부품을 가공한 것은 대부분 신혁 님이시기도 하고, 재료도 많이 보태어주셨을 뿐더러…… 뭣보다 두 분은 연인이시니.”

안드로이드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솔직히 손을 길고 날카로운 칼날로 변형시켜 휘두르던 이블 안드로이드의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었던 만큼 녀석의 그런 모습에 아직까지 움찔하고 마는 강신혁.

그러나 클레어는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어쩜 이렇게 기특한 말을 다 하니! 역시 내 프로그래밍은 완벽했어!”

그저 강신혁과 연인이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조금 좋아졌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거 정말 프로그래밍 맞냐니까? 뒤틀린 황천의 가이아 시스템의 자아 같은 거 아냐? 진짜 괜찮은 거야?”

“저는 괜찮아요. 가이아 시스템에서 발아한 것은 맞지만, 두 분이 저를 올바르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오염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분명하게 말하니까 더 걱정이 되는 거라는 사실을 어째서 이 녀석은 모르고 있단 말인가!

강신혁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안드로이드를 째려보며(안드로이드는 그의 그런 시선에 조금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더더욱 의심스럽게 느껴졌다.) 관리자에게 확인했다.

‘이거 괜찮은 것 맞아요?’

- 지극히 괜찮습니다. 영력을 풍부히 갖추고 있는 두 명의 제작자가 함께했으니 이만한 결과물은 나와주어야 정상입니다.

‘여기에도 영력이 관계하는…… 아아, 네.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네요.’

당장 신살검과 처음으로 소통한 순간을 떠올려낸 강신혁은 모든 의심과 우려를 깔끔하게 지워냈다.

영력이 짙은 물건에는 감정이 깃든다는 사실을 영력을 다루는 대장장이인 그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던가.

하물며 처음부터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에게 마음이 깃든 것을 그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름이라.”

“한국어는 안 돼. 서양인 얼굴이니까.”

안드로이드에 인종이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마는, 처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의 얼굴 골격은 분명 서양 여성의 그것에 가까웠다.

눈이 깊고 콧대가 높으며 입술도 큰 편이다. 머리는 검은데, 무척 커서 인상적인 눈이 금색으로 반짝이고 있어 매우 매력적…….

“눈색 원래 안 이랬잖아?”

“난 금색 눈이 좋더라. 은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씁, 이래서야……."

이래서야 정말 우리 딸 같잖아.

라는 말은 속으로 꿀꺽 삼키고, 그는 자신을 강아지처럼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안드로이드를 보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인조인간, 안드로이드, AI, 호문쿨루스…… 그때 그가 알고 있는 게임기의 이름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밖에 없다.

“비타(vita)라고 하자.”

라틴어로 생명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였다.

게임기에 붙기에는 다소 거창한 이름이지만, 인간의 손에 의해 태어난 인조생명인 안드로이드에게는 이 이상 어울리는 이름도 없을 것이다.

“완전 괜찮은 네이밍이네.”

“비타, 비타…… 지구의 언어로 생명이라는 뜻이군요. 감사합니다, 신혁 님.”

안드로이드, 비타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순간.

강신혁은 자신에게서 대량의 영력이 그녀에게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비타의 몸 속 깊숙이 파고들어 그녀의 근원을 성장시키고 동시에 변화시키는 것을, 강신혁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 이름은 함부로 지어주는 게 아닙니다, 회원님.

‘알려줘서 참 고맙네요.’

- 소중한 교훈을 얻은 회원님께 관리자의 400,000HP 보너스!

어째 요즘은 보너스를 주는 목적이 그를 약올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까 말리든가!

하지만 영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 관리자도 그게 괜찮다고 생각해서 말리지 않은 것이리라.

“아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절대 안 돼.”

“아쉽습니다……."

비타가 또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번엔 넘어가지 않는다.

클레어도 싱숭생숭한 모양. 비타를 바라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우리가 이곳에 다시 올 때까지 이 바를 맡아.”

“저를 두고 가시는 건가요……?”

만들자마자 버리는 거야? 라고 그녀의 순수한 두 눈이 말하고 있었다.

클레어는 심장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으나 그렇다고 물러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어. 우리가 사라지면 이 지역 사람들은 영력을 품은 칵테일을 마시지 못하게 되거든. 자판기를 만들어 넣어두고 가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그래서야 다들 용법과 용량을 준수하지 않게 되겠지.”

“이곳에 남겨질 사람들까지 생각하는 거야?”

“그래야 우리가 다시 이곳에 왔을 때 원활하게 차원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에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강신혁은 괜히 그녀가 말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차라리 너를 남겨두고 가기로 결정한 거야. 지금 넌 이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되어서 어지간한 사태에는 파괴될 걱정도 없고, 사람들에게 적당히 칵테일을 나눠줄 수도 있으니까.”

“과연, 그래서 얼마 전에 칵테일을 대량으로 생산했던 거구나.”

물론 그녀는 이제야 간신히 칵테일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영력을 녹여내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연금술이 성장할 때마다 영력 역시 성장해온 탓에 품고 있는 영력 자체는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아무튼 그 덕에 수백 리터의 칵테일을 단번에 만들어내는 미친 짓도 가능했다. 그 짓을 반복하느라 어찌나 영력이 부족했으면 강신혁이 애용하는 고영력 에너지바를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그렇다면 제가 두 분의 뜻을 잇는 거로군요.”

“그래. 버리고 가는 거 아냐.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치, 신혁아?”

“당연하지.”

관리자는 차원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는 전생의 자신이 만든 무구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만약에라도 자신이 만든 무구 탓에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면 알겠어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째서 클레어가 자신에게 바텐더 정장을 입힌 것인지 알겠다는 듯, 자신의 몸을 괜시리 쓸어보며 비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고개를 드는 비타의 얼굴이 무척이나 늠름해보였다. 역시 사람이 아닐까…….

“아, 껄떡거리는 남자는 전부 거시기를 터트려버려.”

“알겠습니다.”

“터트리지는 말고! 그냥 경고만 해!”

“네, 알겠습니다.”

다소 잔혹한 지시를 내리는 클레어와 넙죽 그것을 수용하는 비타의 모습에 강신혁은 다급히 끼어들어 정정하고 말았다.

“예쁜 여자를 보면 괜히 말 한 마디 붙여보고 싶은 건 모든 남자의 본능이라고. 범죄로 치닫는 녀석이 아니면 봐주자.”

“그래, 그러면 일단 내 기준으로 범죄에 들어가는 것들을 알려줄 테니까 모두 외워뒀다가 대처할 때 써먹어. 알겠지?”

“네, 클레어 님.”

강신혁은 둘의 대화를 듣다가 무심코 입이 미끄러졌다.

"클레어, 근데 비타는 혹시 성……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여성형 안드로이드에 성행위 기능을 넣는 건 제작자로서 당연한 로망 아냐?”

“그럴 줄 알고 일부러 내가 말을 끊었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고 전투기능만으로 험난한 세상을 싸워나가는 안드로이드가 최고로 끓어오르는 거라구!”

클레어의 중2병이 또다시 발병한 모양이었다.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제 가자. 헤일로가 목이 빠지게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래. 그러면 여긴 잘 부탁해, 비타. 사람들한테 칵테일 나눠주는 거 주의하고.”

“네, 클레어 님.”

비타는 깊숙이 고개를 숙여 대꾸하고는, 바에서 평소 클레어가 그러하듯이 바 테이블 안쪽에 섰다.

그 모습이 정말로 클레어의 평소 모습과 비슷해, 강신혁은 그저 엄지를 세워주곤 뒤돌았다.

“그런데 신혁아, 방금 그랬잖아. 예쁜 여자를 보면 말을 붙여보고 싶다고.”

그의 뒤로 달라붙은 클레어가 그의 뺨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그런데?”

“아니야. 그냥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서.”

“그땐 클레어가 먼저 나한테 말을 붙였던 것 같은데.”

“응, 그랬지.”

"응. 응......?"

“아냐, 가자."

두 사람은 바에 비타와 대량의 칵테일을 남겨놓고 그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바를 찾아온 일반인들은 일전의 이블 안드로이드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바텐더의 모습에 또 큰 소란을 일으키게 되었지만, 그것까지는 그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