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 Chapter 37. Terran In Neo Rust - 4 >
“짠, 클레어와 함께하는 즐거운 안드로이드 해부 시간!”
얼마나 기대가 되었으면 클레어는 강신혁이 생포해온 적을 받아들자마자 옥상 위에서 자리를 펼치고 작업에 돌입했다.
강신혁은 마침 하늘에서 떨어지던 언데드 하나를 총으로 쏘아 폭사시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클레어, 아직 전투 안 끝났어.”
“그래서 내가 라디오로라도 중계해주려고.”
“그것 참 눈물 나게 고마워라.”
강신혁은 자신이 짊어지고 온 이블 안드로이드를 클레어에게 맡겨놓고, 자신은 이블 안드로이드가 제압당한 후 더욱 거세게 날뛰기 시작한 좀비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물론 클레어도 드론의 자율기동기능을 활성화시켜 언데드를 청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밤이 깊으니 안 그래도 어두웠던 하늘에 더욱 짙은 안개가 깔리며 좀비들 중 일부가 구울로 진화하는 사태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탄환 한 발에 죽던 것이 두 발에 죽는 수준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구울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잔뜩 긴장하며 쓰레기 같은 총을 움켜쥐고 있던 거리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나설 것도 없이 강신혁이 홀로 거리의 모든 언데드를 정리해버리는 것을 보며 한숨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 단단한 구울의 피부를 대체 어떻게 저렇게 쉽게 관통하는 거지?”
“우리가 가진 쓰레기 융합총으로 잡으려면 대체 얼마나 걸릴지 알 수도 없는데……."
“아까 그 언데드는 결국 어떻게 된 거지? 죽인 것 같지는 않던데.”
“제기랄, 대체 어떻게 된 연놈들이야?”
언데드가 쏟아져 내리는 밤, 시체비의 밤, 혹은 안개의 밤.
평소였다면 이때 구울이 나타나는 것부터가 특급 경보를 울릴 사태다.
심지어 아까는 언데드 코어마저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게 하나 떨어진 시점에서 이미 거리의 주민들은 집을 버리고 도시를 벗어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텐더의 기둥서방(이라고 추측되었던 남자)이 대뜸 그것을 요격해 터트리더니.
심지어는 세 개의 언데드 코어가 융합하여 주변의 모든 언데드를 끌어들여 만들어낸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언데드를, 마력으로든 신체능력으로든 가뿐히 농락한 끝에 사로잡아버리지 않았는가.
"구울은…… 마력만 보면 A급을 조금 넘는 수준인가. 그런데 왜 한 발로 해결이 안 된 건지 모르겠네요. 어떻게 A급 잡졸이 SSS급 무기를 버텨?”
바로 그 기둥서방 강신혁은 남들이 알았다간 기겁할 소리를 태연히 내뱉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 평범한 구울이 아닙니다. 저들은 그저 언데드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구울의 피부에 미세금속입자가 포함되어 있더군요.
뭐,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블 안드로이드도 단순한 언데드가 아니지 않았는가.
이 언데드의 비를 애초에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이 내린 것이라면, 좀비와 구울 또한 평범한 언데드가 아닌 것이 당연했다.
“단순히 마력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얘기군요.”
- 회원님의 경악스러운 판단력에 감탄한 관리자의 150,000HP 보너스!
강신혁이 관리자의 메시지에 대충 장단을 맞춰주며 언데드들을 쓸어버리는 사이, 클레어는 콧노래를 부르며 안드로이드를 해부하고 있었다.
“일단 까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신혁아, 이 영사라는 거 나도 조종할 수 있어?”
“수술보조 필요해?”
“그냥 내용물이 쏟아지지만 않게 해줘.”
“오케이, 그 정도야.”
이블 안드로이드는 자아가 깔끔하게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어가 몸에 칼을 댈 때마다 움찔거렸다.
그러나 클레어는 그 반응을 깔끔하게 씹으며 작업을 이어갔다.
솔직히 보고 있기에 썩 유쾌한 장면은 아니라서, 강신혁은 괜히 언데드 토벌에 집중하는 척했다.
“와, 안에서 썩은 살점 막 흘러나오는 거 봐. 겉으로 보기에만 멀쩡했지 안에는 상한 것들 집어넣었네. 이것들은 볼 것도 없네. 폐기.”
“더블킬, 트리플킬……."
“우와아아아, 이게 완충재 겸 마나보충제였구나. 가만, 그러면 핵심이 되는 부위는…… 아, 장기 터졌다. 이것도 폐기.”
“쿼드라킬, 펜타킬!”
적을 반으로 갈라 죽일 때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 강신혁이지만 시체 해부쇼를 라이브 중계로 듣는 건 얘기가 조금 다르다.
그의 그런 반응을 즐기는지 일부러 적나라한 표현을 해가며 작업을 이어가는 클레어.
클레어가 찾는 핵심이라는 것이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누구인가. 히어로 유니버스 탄생 이래 최고의 재능을 지닌 연금술사가 아니던가.
“이거다.”
“찾았어?”
“생각보다 구조가 단순하네. 생체조직을 어떻게 구성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의 나머지 부분은 언데드 코어에 모조리 때려 넣은 거였어.”
“조심해. 시스템 해킹이 뭔지는 몰라도 우리가 쉽게 건드려도 될 만한 건 아닌 것 같으니까.”
“걱정을 마셔.”
클레어가 본래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있기는 하지만 없는 얘기는 하지 않을 뿐더러 지금은 관리자도 그녀를 챙겨주고 있는 것 같았으니, 강신혁은 그녀를 믿고 전투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서서히 안개가 흩어지고, 새벽하늘에 미처 죽지 못한 태양이 떠올랐다.
시체비가 그쳤다.
“됐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클레어가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녀를 끌어안고 같이 만세를 부르고 싶었지만 강신혁은 초월적인 인내심으로 그것을 참아내곤 질문했다.
“뭔데. 진짜 가이아 시스템 분체를 해킹한 거야?”
“아니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아. 잽싸게 연결을 끊어놓는 바람에 이쪽에서 접근하기는 힘드네. 대신 정보가 많이 들어왔어.”
"대체 무슨 정보가 있었기에 그렇게 환호성을 지르는데?”
아마도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클레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지금은 도저히 못 볼 꼴이 되어버린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꿈틀대고 있는 이블 안드로이드를 가리키며 선언했다.
“얘 되살리는 방법.”
"......."
지가 해부해놓고 거기서 얻은 정보로 되살리겠다고?
이걸 전문용어로 병 주고 약 준다고 하지 않던가?
당연히 그냥 되살리겠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고…… 강신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설마 언데드를 만드는 방법?”
“언데드 요소는 빼자. 차라리 골렘을 만든다고 생각해.”
“골렘 말이지.”
“무척 현대적이고, 굉장히 인간적이고, 동시에 매우 판타지 스러운, 대유기생명체콘택트용휴머노이드인터페이……."
“네네. 안드로이드 말이지, 안드로이드.”
얼마나 어려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방금 이 녀석은 엄밀히 말하면 실패작이 아닌가?
기술이 없어 만들지 못한 것이든 시간이 부족해 만들지 않은 것이든 어쨌든 오염된 가이아 시스템도 완성시키지 못한 것을 지금 그녀가 만들어내겠다고 하는 것이다.
“내부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칠 생각이야. 도와줄래?”
“내 작업 끝나고 남는 시간동안만이라도 괜찮다면.”
“그거면 충분해! 사랑해!”
전투가 잘 끝난 겸 괜찮은 수확을 거둔 겸 해서 두 사람은 잠시 부둥켜안고 스킨십을 즐겼다.
요즘 불이 한 번 붙으면 그를 놓아줄 줄을 모르는 클레어였으나, 곧 둘이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깨닫고는 진정했다.
둘은 아직 지붕 위로 나와 있었고, 전투가 끝나고도 강신혁과 클레어를 주시하던 거리의 주민들이 그들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것을 모조리 훔쳐보고 있었으니까.
다만 진도를 더 빼는 것을 관두었다는 것이지, 그녀는 딱히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들을 훔쳐보던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줄 정도로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다.
“뭐 어때, 감출 일도 아니고.”
“그럼 자랑할 일인가? 아, 나한텐 자랑할 일 맞긴 한데.”
“마음이 맞네, 나도 그래. 흐히.”
클레어는 과감한 짓을 하는 대신 그의 등에 덥석 매달려 양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흐뭇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무거워?”
“뭐가? 내 등에 솜털이라도 앉았나?”
“음, 90점!”
“안전벨트는 매셨습니까?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마님.”
“좋아, 5점 더 줬다. 출발!”
클레어가 허공에 뜬 두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즐겁게 외쳤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업은 채 아래로 내려갔고, 해치가 닫히고 나자 주민들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옥상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인간들은 원래 다 저러나? 다 저렇게 요란하게 구애를 하느냔 말이야.”
“그래도 구경 잘했잖아. 아주 화끈하구만.”
“쳇, 나도 저 남자 마음에 들었는데……."
“동성간 교미로 애를 낳을 수 있는 건 너희 종족밖에 없잖아, 리갈.”
“전투도 끝났는데 왜 무전기로 잡담을 지껄이고 지랄이야? 죽은 놈 있으면 보고나 해.”
“뒈졌는데 어떻게 보고를 하나? 저 인간들이 다 끌어가준 덕분에 이쪽 구간은 한 명도 없다.”
“누구 아까 좀비들한테 정문 뚫린 집이나 좀 살펴보고 오지.”
“내가 가지, 그럼.”
무전이 잠시 끊어졌다가, 모두 처리됐다는 보고가 각 구역에서 나왔다.
“오염은?”
“언데드 물량이 터무니없었는데, 그 칵테일을 마셔둔 덕에 아주 멀쩡하군.”
“코어가 떨어지던 순간에 괜히 외부인을 들였다고 후회한 놈이 누구더라.”
“무사히 잘 끝났으니 됐다 그래!”
“사실 그쪽이 아닌가 좀 의심했는데…… 이젠 죽으나 사나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어.”
“막말로 의심하면 어쩔 거야, 우린 저치들한테 손끝 하나 못 댈 텐데.”
“들어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다들. 난 이제 끊는다!”
"......."
하나둘 무전이 끊어지고, 스코바는 부여잡고 있던 융합총(기계부품을 마구잡이로 합쳐 만들어낸 총을 부르는 말이었다.)을 옆에 내려 놓고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진짜 연인이네.”
아니, 가장 놀란 부분은 거기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판에 그렇게 찐한 스킨십을 보여주는데 인상에 남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다만 마음은 편했다. 둘 다 스코바와는 사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저들의 사고도 행동도 그와는 다른 영역에 있다. 저쪽에서 그들에게 간섭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가 저쪽에 간섭할 수는 없다.
“저 둘이 네오러스트를 바꿀 수 있을까……."
나직이 그렇게 중얼거리던 스코바는 스스로 핫, 코웃음을 치곤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것으로 안개의 밤이 끝났다.
물론 이것으로 끝이 날 리 없다. 아마도 모든 자유의지를 품은 인간이 전멸할 때까지 안개의 밤은 몇 번이고 계속되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 새벽에는, 오늘도 저 태양과 같이 죽지 못했음에 개탄하며 모두 잠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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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밤이 순조로이 종식되고, 강신혁과 클레어는 다시 이세계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강신혁은 쉬지 않고 족쇄를 제작하고, 클레어는 손님들에게 칵테일을 팔고, 그 외의 시간에는 안드로이드 개조 작업에 매진했다.
그 많은 언데드를 쓸어버리며 오파츠에 가까운 성능을 갖춘 기계부품도 인벤토리로 원 없이 수거했는데, 그 덕에 안드로이드 제작에 탄력이 붙었다.
“족쇄가 만들어질 즈음엔 얼추 완성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블 안드로이드는 시체 썩은 살로 내장을 채웠잖아. 클레어는 그 부분 어떻게 해결할 셈이야?”
“실은 히어로 유니버스 거래 게시판에 이런 매물이 나와 있는데……."
“우아아아아……."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로부터 두 달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 사이 안개의 밤이 세 번 더 찾아왔다.
그러나 언데드 코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은 이제 없었다.
강신혁은 거인을 봉할 족쇄를 완성했고.
클레어 또한 안드로이드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