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 Chapter 37. Terran In Neo Rust - 3 >
이블 안드로이드.
그것은 언데드 코어가 세 개로 합쳐져 핵을 형성하고, 무수한 시체들의 살점과 뼈와 근육, 거기에 이 세상의 도처에 널린 기계부품들이 하나로 합쳐진 결과 탄생한 이레귤러였다.
“저, 저런 건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데……!”
“저 인간들이 너무 날뛰어서 그런 거라고. 젠장, 이제 어떡해야 하지?”
“그럼 직접 가서 따지든가!”
총구만을 밖으로 내민 채 바깥 상황을 관찰하던 거리의 주민들은 이블 안드로이드를 보고 침음을 흘렸다.
1미터 70센티미터를 조금 넘는 크기의 육신.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엔 지나치게 연약해 보이는 몸집, 우유색의 피부와 여성성을 드러내는 몸.
그것은 심지어 겉으로 보기엔 인간과 똑같아보였다. 그렇다. 며칠 전 갑작스레 찾아와 거리에서 살기 시작한 저 두 명의 인간들과.
“그래도 저건 여태까지 나타난 괴물들과 비교하면 제법 얌전하지 않나? 곱상하니 보기는 좋네.”
“긍정적 마음가짐이 보기 좋구만. 예쁜 여자한테 죽으면 죽을 때 좀 덜 아픈가 보지?”
“헉,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보다도 아직 다른 곳에 살아있는 좀비가 있다고! 제, 젠장. 뚫린다!”
주민들이 공통의 채널로 맞춰두고 사용하는 무전기에서 여러 사람들의 헛소리나 신음, 비명 따위가 구분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강신혁과 클레어를 거리에 받아들인 것 같았어도 이 무전기까지 내어주진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칵테일은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그녀의 인성을 온전히 증명해주지는 않으니까.
“똑바로 저들을 향해 가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
다만 그들과 처음으로 만났던 이, 모코우드만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것을 살폈다.
처음엔 발가벗은 모습으로 나타났던 여성형 괴물은, 지금은 어느덧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캣슈트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재질이 단순한 라텍스가 아니리라는 점은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저런 옷도 순식간에 만들어냈는데 무기라도 그럴 수 없겠는가.
“저건 진짜로 위험해……."
모코우드는 약하지만, 그렇기에 강자를 판단하는 능력만은 제법 자신이 있었다.
그런 자신이 보기에 저 괴물은 여태까지 이 거리에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진짜배기였다.
수십 년 전 대전쟁의 중심부에서, 뒤틀린 어머니 가이아의 정수를 담아낸 [일곱 가지]쯤은 되어야 저 괴물에 대적할 수 있으리라.
언데드 코어 셋이 뭉친 정도가 아니다. 저것엔 분명 가이아의 힘이 들어가 있다!
그렇지 않고선 저렇게 언데드도 기계도 아닌 몸을 가질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
“이봐, 저 괴물 손이."
그렇게 달려가던 중 괴물의 한 팔이 돌연 형태를 잃고 재구축되었다.
드러난 것은 총구, 아니 포구.
자신의 팔을 포신으로 삼고 손을 포구로 만들어낸 괴물이 그것을 들어 강신혁과 클레어를 조준하고…….
- 콰아아아앙!
검은 에너지의 포탄을 쏘아냈다.
- 우우우웅
굉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것을 본 모두가 강신혁과 클레어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먼지구름이 흩어지고 드러난 모습은 그 반대였다.
어째선지 포를 쏘아낸 괴물이 그 자리에 엎어져 있었던 것이다.
포탄이 발사되는 순간 강신혁이 쏘아낸 빛의 탄환이 그것을 요격해, 터트린 탓이었다.
“어때.”
이블 안드로이드가 손을 변형시키는 순간부터 요격 준비를 하고 있던 강신혁은 성공을 확인하곤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클레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엄지를 세웠다.
“우리 맥가이버 동체시력 좀 봐.”
“오늘의 베스트 샷 인정?”
“인정. 가라 강신혁, 너로 정했다!”
“시뇩시뇩!”
클레어와 다소 장난스런 대화를 마친 강신혁이 지붕에서 뛰어올랐다.
자리에서 가까스로 일어선 괴물이 강신혁의 급격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재차 허공으로 포탄을 쏘아냈으나 그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하며 괴물에게 접근했다.
“하!”
눈에 서로의 모습이 담길 만큼 가까이 다가간 그때 강신혁의 권총이 몇 번인가 불을 뿜었다.
하지만 괴물 역시 바보가 아니라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그가 권총을 쏘는 순간 잽싸게 옆으로 몸을 던져 탄환을 피해냈다.
그러나 모든 부정한 존재를 추적하는 성탄의 능력을 얕본 결과는 처참했다.
피하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90도로 꺾인 총탄이 일제히 괴물의 전신에 박혀든 것이다.
그 안에 깃든 성스러운 빛의 힘이 일제히 터져 그것의 내부를 공격했다.
이블 안드로이드는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완성된 몬스터였으나, 냉정히 말하면 이젠 강신혁의 수준이 그것보다 조금 더 높았다. 즉 놈의 방어력으로 강신혁의 공격력을 버텨내기 힘들다는 얘기다.
[......!]
그것은 비명소리 대신 라디오가 지직거리는 듯한 소음을 내며 괴로워했다.
그러더니 대뜸 팔을 휘둘렀는데, 그것이 길고 날카로운 낫으로 변형되어 강신혁을 반으로 토막 내려 들었다.
어느덧 강신혁의 손에 들린 신살검이 그것을 정면에서 받아내며 불똥을 튀겼다.
[......!?!!]
칼날이 맞부딪히는 순간, 터미네이…… 아니, 이블 안드로이드가 스매시를 얻어맞은 위습처럼 격하게 반응했다.
왜 아니겠는가.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신살검에도 [성검]이라는 특수능력이 붙어있어 언데드를 상대하기엔 최적인 것이다!
“만만한 게 없지?”
[!!!!]
적이 알아듣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꼰대 같은 한 마디로 도발 선제를 날리며 후속으로 검을 휘두르는 강신혁.
이블 안드로이드는 팔뿐만 아니라 겨드랑이 사이로 끝이 날카로운 원뿔 형태의 금속 못을 쏘아내며 그것을 막아내려 애썼으나 그가 휘두르는 검의 궤적이 그 모든 것을 걷어내며 깔끔하게 괴물의 팔을 절단했다.
[----!]
요즘 워낙 다른 무기만 휘둘러서 그렇지, 강신혁이 가장 많이 다뤄온 무기는 다른 무엇도 아닌 검.
그리고 신살검무는 신살검무로 펼칠 때 가장 강력하다.
반면 그의 검을 상대하는 이블 안드로이드에게 갖추어진 것은 타고난 높은 등급에 맞는 신체능력 뿐.
정말로 가이아 시스템의 분체와 연결되기라도 한 것인지 굉장히 풍부한 정보량을 바탕으로 매 순간 최적의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문제는 그 최적이 결코 강신혁이 그려내는 궤적을 쫓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흡!"
[!!]
강신혁은 한 손으로 신살검을 휘두르며 남은 한 손에 들린 권총을 연거푸 거침없이 쏘아냈다.
총과 검으로 동시에 적을 공격한다는 것은 한 손으로 피아노를 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서로의 동선에 영향을 주면 자칫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신혁의 황룡투는 그 말도 안 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검을 휘두르며 적의 움직임을 자신의 의도대로 유도하기 위해 탄환을 쏘아내고, 탄환을 원하는 부위에 꽂아 넣기 위해 검으로 적의 중심균형을 비틀리게 만들었다.
[!!!]
“핫!”
빛 속성을 품은 검과 총에서 넘실넘실 흘러나오는 빛의 마력.
검의 궤적과 탄환의 궤도가 단 한 번도 맞물리지 않고 연속되며 허공에 무수한 빛의 선을 그려냈다.
[......!!]
이블 안드로이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가도 가끔씩 발악적으로 신체를 변형시켜 포탄을 쏘아내거나, 끊임없이 회전하는 톱니칼날로 강신혁의 몸통을 갈라버리려 들었지만 그 모두가 사전에 차단되었다.
황룡투는 모든 전투에서 강신혁을 유리하게 만든다. 적의 공격을 감지하고 차단하는 것 정도는 기본이었다. 설령 황룡투보다 등급이 높은 스킬이라 해도 이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터였다.
검으로 공격하고 총으로 방어하거나, 검을 요새 삼아 버티며 총으로 격퇴한다. 두 무기를 동시에 다루며 자유로운 공수 전환을 이뤄내는 그의 모습은 실로 경이로웠다.
“아 맞다, 쟤 기사학과였지……."
혹여나 강신혁이 위험해지면 그를 도와줄 생각으로 이블 안드로이드를 조준하고 있던 클레어는 그 모습을 보며 뒤늦게 강신혁에게 저런 점도 있었지, 하고 깨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강신혁이 좋은 무기를 스스로 만들어내 유리한 전투를 펼치는 템빨 전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신영에 입학했을 때의 그는 썩어빠진 하드웨어를 갖고도 오직 경이로운 소프트웨어빨로 버티던 진정한 컨빨이었던 것이다.
“뭐지? 왜 다 가졌지? 심지어 나까지 가졌잖아.”
역시 인생 두 번 사는 놈은 달라, 군대 두 번 가는 것과 맞먹는 업적이지.
클레어는 혼자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녀는 강신혁의 중2병 냄새가 나는 제작자로서의 면모를 더욱 사랑했지만, 저렇게 멋지게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내가 남자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혀.”
결론은 자화자찬이었다. 그녀는 괜히 뿌듯한 표정으로 강신혁의 활약을 녹화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 크게 외쳤다.
“생포해줘!”
“얘를!?”
한창 이블 안드로이드를 몰아붙이던 강신혁은 기겁하여 외치면서도 당장 검에 담긴 살기를 조금 줄였다.
그를 상대하고 있는 이블 안드로이드는 만신창이였다.
본래 재생기능이 있는지 그가 신체 일부를 절단할 때마다 주위의 좀비들과 사방에 널린 기계부품을 끌어들여 재생하고는 있었는데,
당연히도 그럴 때마다 몸의 퀄리티가 조금씩 저하되고 있었다.
[!!!]
“코어를 부술 때까지 몸을 쑤시려고 했는데, 생포가 되면……."
이블 안드로이드가 휘두르는 검을(신살검과 똑같이 생긴 검을 만들어 휘두르고 있었지만 당연히 성능은 확연히 달랐다.) 손쉽게 부순 후, 그는 돌연 검을 콱, 놈의 복부에 찔러 넣었다.
[----!!!]
“좋아, 해보자고.”
이어서 총탄을 연거푸 쏘아내 이블 안드로이드의 몸통에 박아 넣었다.
한순간에 과도한 빛의 힘이 집중되며 이블 안드로이드의 재생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울 만큼 떨어졌다.
직후, 강신혁은 권총을 인벤토리에 수납해버리고 양손을 활짝 펼쳤다.
양손 끝에서 뻗어 나온 열 가닥의 영사가 이블 안드로이드를 순식간에 칭칭 감싸버렸다.
[!!]
이블 안드로이드는 뭔가가 자신을 속박하자 당황하여 비장의 수단을 발동했다.
바로 자신의 전신으로 칼날을 솟구치게 해 그것을 끊어내려는 것!
하지만 영혼의 힘이 담기지 않은 칼날로는 영사에 접촉조차 할 수가 없다. 괴물이 영사를 끊어내려면 영혼의 힘을 다루는 강신혁의 본체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가장 빠를 터였다.
[!!!!]
“그런데 이걸 생포해서 대체 뭘 하려는 걸까.”
- 분석이겠지요.
관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 이 터미…… 안드로이드와 연결된 가이아 시스템의 분체를 역으로 해킹하려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하다고요?”
- 가능할 겁니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 중에서 가장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
어지간해선 강신혁이 아닌 다른 회원을 칭찬하지 않는 관리자가 그렇게 얘기할 정도라니.
강신혁은 소울 커넥터를 통해 영혼독을 흘려 넣는 것으로 이블 안드로이드의 저항을 잠잠하게 만들며 관리자에게 확인했다.
“관리자님은 막 혈연관계 그런 거 없죠?”
- 회원님의 우주를 초월하는 코미디 센스에 감탄한 관리자의 300,000HP 보너스!
“또 시작이지, 또 시작이야.”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발악하던 이블 안드로이드가 몸을 축 늘어트렸다.
[.......]
그와 동시에 뭐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여전히 주파수가 맞춰지지 않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같아 강신혁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 가이아 시스템의 분체가 직접 연결을 끊은 겁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선수를 쳤군요.
“아하."
- 방금 이블 안드로이드를 통해 전한 메시지는 I’ll be back…….
“거짓말 치지 마요.”
강신혁은 얌전해진 이블 안드로이드를 영사로 잡아당기며 복귀했다.
거리의 모든 주민은 그 뒷모습을 보며, 다시는 바텐더에게 껄떡대지 말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