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 Chapter 37. Terran In Neo Rust - 2 >
- 쿠와아아악!
- 탕!
하늘에서 떨어지던 와중 자신을 발견하고 입을 쩍 벌리며 괴성을 내지르는 좀비를 향해, 강신혁은 주저 없이 탄환을 한 발 발사했다.
그것은 실탄이었지만 반감된 광탄, 성탄의 효과를 받아 쏜 지점부터 목표지점에 이르기까지 한 줄기 빛의 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목표물을 맞혔다.
좀비는 탄환에 담긴 빛의 힘을 이겨내지 못해 그대로 산화했으나, 탄환은 그 순간 다른 곳을 향해 튕겼다. 광탄이 지닌 반사의 효과였다.
그리고 그것이 반사된 지점은 떨어져 내리고 있던 다른 시체.
이것은 탄환이 부정한 존재를 추적하도록 하는 성탄의 효과였다.
- 카악!
- 카아아악!
놀랍게도 탄환은 두 번째의 좀비를 마찬가지로 산화시킨 후 다시 한 번 허공에서 튕겨 나와 다른 좀비를 꿰뚫었다.
그러고도 몇 번 더 허공에서 지그재그 빛의 선을 그리며 좀비들을 격살한 후에야 힘을 잃고 떨어졌다.
돌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은 것도 아니고, 탄환 한 발 쏘아 일곱의 좀비를 소탕한 것!
“언제 봐도 멋져……! 최고야!”
강신혁의 뒤를 이어 올라온 클레어가 해치를 닫으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특수능력을 조화시키겠다고 고생 좀 했지.”
“보통은 하려고 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지.”
본래 광탄의 효과는 착탄한 탄환을 다른 곳으로 반사시키는 것뿐이다.
물론 이것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사실 이 능력 자체만 놓고 보면 불안정한 구석이 있었다. 어디로 반사될지 모르는 만큼 아군에게도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한 존재를 추적하는 성탄의 효과가 반사된 탄환에도 바르게 적용되면서, 이 총으로 쏘아낸 탄환은 대상이 부정한 존재인 한 몇 번이고 튕겨나며 반복적으로 공격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몬스터는 부정한 존재고.’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대상으로는 모두 추적의 효과를 띠고 있으나, 대상이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추적이 정확해진다.
좀비를 한꺼번에 일곱 마리나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비슷한 이유이리라.
“나머지 하나는 안 꺼내?”
“그건 언데드 상대로는 조금.”
"쳇."
그녀는 강신혁이 쌍권총을 쏘는 것을 좋아했다.
쌍권총은 중2병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노 발렌타인에게도 처음엔 그가 쌍권총을 쓴다는 이유로 다소 친근하게 대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아니, 확실하다. 아무리 그놈이 염치가 없더라도 처음부터 그렇게 싸늘하게 대하는 여자한테 마구 들이대지는 않았으리라.
- 탕, 탕!
강신혁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좀비들을 향해 총탄을 몇 발인가 더 쏘아냈다.
빛을 머금은 .550 매그넘탄은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번개처럼 이리저리 난반사하며 수십 마리의 좀비의 몸통을 터트렸다.
한편 클레어는 본격적으로 드론을 풀어, 건물 밑에서 그들을 노리고 기어 올라오는 좀비들을 사격했다.
“와, 엄청 기어 올라오네. 꼭 아이돌 콘서트 무대 위로 올라오려는 극성팬들 같아.”
“그만둬, 아이돌 팬들은 모두 매너를 지킬 줄 아는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두 사람은 농담을 나누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움직여 좀비들을 사격했다.
그들이 있는 일대에만 1초에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쏟아지고 있었으니, 이들이 한때는 전부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었음을 가정하면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사태인지 알만 했다.
좀비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그리 높지는 않았는데, 제일 강한 놈도 기껏해야 C랭크 수준이었고 약한 놈들은 광탄이 지나가며 그린 빛의 궤적에 닿기만 해도 스러지는 F랭크 미만이었다.
“약하네.”
“이 이상 강했으면 이 근처 주민들이 여태껏 살아남지 못했을걸?”
클레어의 말이 맞다. 강신혁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부패한 시체의 파편들을 막아내기 위해 자신과 클레어의 주변에 신살검의 수호 능력으로 방어막을 펼치며 그러네, 하고 동의했다.
“만약 이게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하면 여기에 놈들을 상대할 간단한 진지라도 구축해둬야겠어.”
“지붕은 꼭 부탁해. 썩은 피 냄새가 머리에 배는 것 같아. 오늘은 아직 탕에 들어가지 않아 망정이지.”
대충 적의 수준을 파악한 클레어는 두 개의 드론을 더 꺼내어 총 네 개의 드론을 지붕의 네 귀퉁이로 날려 보냈다.
각각 수천 발 이상씩 연속으로 쏘아낼 수 있는 드론들이 그들의 집으로 몰려오는 좀비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위는 좀 어때?”
“우리만큼 쏟아지지는 않아. 굉장히 국한된 장마 시즌이네.”
주위에도 물론 시체의 비가 내리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밀도가 희박하다.
강신혁과 클레어가 있는 곳이 5라고 하면 다른 곳은 1.
심지어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놈들 중에서도 절반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여오고 있었다.
언데드가 생명력이 넘치는 인간을 좋아한다더니, 이 거리의 주민들에게는 고맙게도 강신혁 일행이 그들을 대신해 어그로를 끌어주는 탱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저들이 걱정하던 것처럼 큰 문제는 없겠네.”
“응…… 혹시 모르니까 시체는 소각해둘까?”
클레어는 품에서 붉은 포션병 비슷한 것을 꺼내 지붕 아래로 던졌다.
그러자 단숨에 화르르륵! 보랏빛의 불꽃이 집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타올랐다.
영력으로 측정해보니 파괴력도 상당한 수준이었고, 집 근처에 떨어져 내린 좀비 시체들을 양식 삼아 더욱 크게 타오르면서도 일정 범위 바깥으로는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마법적인 성질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바텐더 특제 소이 수류탄이야.”
놀란 표정을 짓는 강신혁을 보며 클레어가 품에서 두 개째의 소이 수류탄을 들고는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과연 연금술사다. 그녀와 알고 지낸지 고작 반년 된 강신혁으로선 미처 알 수 없는 것이 끝없이 튀어나온다.
……다만 다루는 무구들이 어째 연금술사보다는 화약 냄새 진하게 나는 최첨단 기갑용병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집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과는 충돌하지 않는 성능이겠네?”
타오르는 불꽃이 이 건물에는 이상하리만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보고, 보호막도 수류탄도 클레어가 만든 물품인 만큼 합리적인 추론을 해보는 강신혁.
그런데 이상하게도 클레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그를 쿡 찌르며 요구했다.
“방금 했던 말 다시 한 번 해봐.”
“보호막하고 불꽃이 충돌하지 않는 거, 그렇게 되도록 설정해둔 거 아냐?”
“그게 아니라…… 으음, 됐어.”
클레어의 못마땅한 반응에 강신혁은 금세 그 이유를 깨달았다.
“클레어, 혹시 우리 집이라는 부분에 꽂혔어?”
“읏, 아……!”
클레어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가 무척이나 붉어졌다.
그녀는 괜히 그의 어깨를 콩콩 두드리며 화를 냈다.
“너, 그렇게 자꾸 누나 놀리면 아주 혼나.”
“언젠 누나라고 부르지 말라더니?”
연상은 이래서 비겁하다니까.
물론 그런 부분도 좋지만!
“……아, 하늘에서 더 큰 거 떨어지네.”
“애들한테 화투패 돌리는 에스델 수녀님처럼 말을 자꾸…… 어?”
클레어에게 속아주는 셈 고개를 든 강신혁의 눈에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큰 것이 보였다.
그건 시체가 아니고, 그냥 검은 무언가의 덩어리였다.
“저건 좀 심각해. 부술 수 있겠어?”
강신혁은 짧은 총성으로 대꾸했다.
쏘아내는 그 순간 지상과 하늘을 잇는 빛의 선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간 광탄이 목표물에 명중, 탄환에 담긴 힘을 일시에 폭발시켜 그것을 깔끔하게 지워냈다.
-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3,000,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로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4,500,000HP를 얻었습니다!
“튕기지 않네, 제법 강력했나봐.”
“나 방금 HP 보너스 들어왔어.”
“아아, 응. 저게 내가 생각한 그거라면 아마 그럴 거야.”
HP 보너스는 아무 몬스터나 잡는다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 개체의 힘으로 발버둥을 쳐도 국소적인 피해에 그칠 뿐인 잡졸이 아닌, 명백하게 사회 체제나 다수의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몬스터를 잡았을 때에 한해 들어오는 것.
요르문간드에 속한 몬스터를 잡으면 대개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것도 랜덤 요소가 있다.
“저게 뭔데? 언데드는 별로 안 상대해봐서 몰라.”
“지구에서는 이전에 언데드 대역류가 발생한 이후 전세계적으로 방비를 철저히 해놔서 언데드가 좀 덜 나타나는 편이거든……. 저건 아마, 언데드 코어야.”
코어, 핵심.
저 안에서 무언가 강한 괴물이 깨어나든, 저것이 좀비들을 끌어당겨 무언가를 만들든, 그러한 종류의 괴물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쉈으니까 괜찮겠지.”
“저게 여기에만 떨어졌다면 말이야."
"......."
강신혁은 클레어의 말을 듣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주위 건물의 창문 틈 사이로 눈만 빼꼼이 내밀고 그들을 훔쳐보고 있는 이웃 주민들이었다.
그들은 강신혁과 클레어가 다루고 있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조잡한 병기를 들고 그들의 집에 다가오는 좀비들을 사격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잡철이나 어디서 본 듯한 기계 부품이었다.
즉 이 도시에 굴러다니는 폐품을 조합해 대충 만든 무기로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어쩐지 칵테일 대금으로 그런 폐품들을 내밀더라니. 자선사업한다 생각하고 일단 모아두긴 했는데.”
“나중에 나한테 줘. 모르긴 몰라도 저거 자선사업으로 끝나진 않을걸.”
멀리서 보기에도 총기의 구성은 무척 조잡해보였다.
저것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은, 이 거리의 주민들이 모두 천재 설계자이거나 그들에게 폐품으로 제작한 총기와 탄환을 정기적으로 제공해주는 전문 제작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폐품으로 보이는 기계부품 자체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아, 역시나.”
기계부품으로 만든 총기의 위력을 확인할 겸 그가 조금 더 주위 사람들의 싸우는 모습을 둘러보는데, 귓가로 클레어의 혀를 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는 지점을 보니 그곳에 무려 세 개의 코어가 뭉쳐있는 것이 보였다.
강신혁은 곧장 그것을 사격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셋으로 뭉친 코어 주위로 검은 반투명한 보호막이 떠올라 탄환을 막아냈다.
“네가 하나를 파괴한 순간 일대의 코어들이 서로 달라붙은 거야. 아무래도 네트워크가 있는 것 같네.”
“네트워크란 말이지……."
그 말을 듣고 이 도시를 지배하는 모니터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바보이리라.
강신혁은 그 말이 나온 김에 바람의 힘을 빌어 살짝 공중에 떠올랐다.
지금 도시의 번화가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살필 요량이었는데, 시체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부터 안개가 너무 짙게 끼어 시야가 방해되는 탓에 완벽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명백히 이 거리보다는 좀비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제된 재앙인가.”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선 공포가 가장 좋은 방법이야.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이아 시스템의 분체라는 것도 상당히 뒤틀린 녀석이네.”
그는 클레어가 코웃음을 치며 하는 말에 나직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저 코어로부터 무엇이 탄생하느냐.
아무래도 그가 예상했던 패턴 중 후자였던지, 사방의 좀비들이 코어로 이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시험 삼아 탄환을 몇 번 더 써보았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극천신주라도 박힌 것처럼 에너지를 변형시켜 빨아들이는 것처럼도 보였다.
성탄이 품고 있는 빛 에너지에 손상을 입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는 시점에서, 같은 수준의 공격은 무의미해졌다.
강신혁이 탄창을 비우고 순수한 성탄으로 공격해볼까 고민하는 찰나 옆에서 클레어가 말했다.
“예전에 언데드 코어를 상대해봐서 잘 알아. 생성 도중엔 방어막이 극도로 단단해져 상대하기가 어려워. 오히려 에너지를 마구 흡수하기까지 하거든. 차라리 완성을 기다리자.”
“아, 흔한 패턴이지.”
사실 지금도 상황엔 여유가 있는 편. 기를 쓰고 당장 코어를 파괴하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둘은 대신 주변의 좀비들을 깔끔하게 불태워버리는 것으로 적의 의도를 방해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넓은 거리의 좀비를 둘이 완전히 정리하는 것도 무리였고, 결국 세 개의 코어가 합쳐져 완성된 대형 코어는 좀비들을 마구 끌어들여가며 그 자리에서 점차 압축되어가고 있었다.
“클레어 씨, 저 안에서 무슨 언데드가 튀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강신혁 씨. 코어 하나가 좀비 백 마리를 집어삼켜 플레시 골렘이 되는 경우를 본적은 있는데요. 얘가 A랭크 정도였지 아마.”
“하지만 압축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해.”
“응......?”
그때 클레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코어가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강신혁도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는데, 코어의 중심부에서 강한 마기의 파장이 퍼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귓가에 순간적으로 강한 이명이 울렸는데, 직후 그것이 차단되며 관리자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 이런, 방금 가이아 시스템의 분체가 회원님께 접촉해오려 했습니다.
“뭐래요?”
- 이블 안드로이드라고 합니다.
“뭐가?”
- 저 안에서 태어나는 것 말입니다. 아무래도 원래 가이아 시스템이 보스의 출몰을 경고해주는 것을 따라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것 참 친절하네요.”
끝내 주위 모든 것을 빨아들인 구체가 인간 하나 크기로까지 줄어들었다.
검은 빛이 사라지자, 그 안에서 잿빛의 안광을 흘리는 나신의 여성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고개를 들어 강신혁과 클레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곤,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크게 흔들며 그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나 여기 진짜 맘에 들어.”
클레어가 그것을 보며 무심코 본심을 흘렸다.
강신혁도 어린 시절 TV로 봤던 명작 영화를 떠올리며 묵묵히 그녀에게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