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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화. < Chapter 37. Terran In Neo Rust - 1 >

- 스윽, 스윽, 스윽

높은 바 체어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스코바는 저 위에서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대패질 소리에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이봐, 그 위에 조용히 좀 시켜!”

"응?"

자신을 그저 ‘바텐더’라고 밝힌 이 바의 새로운 바텐더, 머리가 붉은 여자가 그 말에 반응했다.

“뭐야 손님,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시끄러워서 다른 손님들한테 방해되잖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빨간 머리! 저 슥슥 소리 때문에 술을 마실 수가 없잖아, 엉!?”

“그럼 나가.”

“뭐?”

“술값은 내놓고.”

“뭐? 악!"

그 다음 순간, 스코바는 알 수 없는 힘에 냅다 밀쳐져 문 밖으로 튕겨나갔다.

자신이 속옷 바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기탱천하여 그대로 돌격하려던 스코바는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튕겨 다시 흙바닥에 널브러졌다.

“뭐, 뭐야, 이거……."

“스코바, 네놈 저질렀군.”

옆을 지나가던 거리의 주민이 그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바텐더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지.”

“그냥 위에서 시끄럽게 하는 놈을 조용히 시키라는 거였는데!”

“그놈이 바텐더 이거야.”

손가락을 내밀어 저속하고도 직설적으로 둘의 관계를 알려주는 주민.

스코바는 그의 손가락을 부러트리고 싶다는 눈으로 째려보곤 쳇, 혀를 차며 몸을 털고 일어섰다.

“간만에 반반한 게 들어왔다 싶었는데.”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그게 우리 생존수칙 아닌가?”

“젠장, 지금 깨달았다고.”

헤리치가 죽고 빈 건물을 갑자기 차지하고 들어와 장사를 시작한 인간 여자 바텐더.

다들 의심스러워하면서도 모코우드의 호언장담을 듣고 반쯤 시험하는 느낌으로 그녀를 찾았고, 그녀가 내어준 칵테일은 지난 몇 년 간 그들의 몸에 차곡차곡 쌓여가던 불쾌한 세뇌 전파의 영향을 깔끔하게 해소시켜주었다.

헤리치의 자리를 차지했다든가, 그녀가 지나치게 태도가 건방지다는 데에서 오는 불만은 그녀가 내놓는 칵테일 하나로 깔끔하게 사라졌다.

네오러스트 뒷거리의 주민들은 이 새로운 주민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정체가 더할 나위 없이 수상했지만, 세뇌 전파를 뿜는 놈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잠깐, 나 아직 술을 다 못 마셨는데.”

“그 앞에서 싹싹 빌고 있으면 다시 들어가게 해줄 지도 모르지.”

“아니 이봐...... 정말?”

주민은 입을 다물곤 다만 클클 웃고 사라졌다.

스코바는 그 자리에 남아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술은 다 마시지 못했고, 몸에 쌓인 독기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어어어…… 이봐, 바텐더 양반? 으닷!”

결국 그는 돌아서서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문 전체에 그의 출입을 막으려는 듯 푸른 전류가 흘러 몸을 따갑게 했다.

헤리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의 칵테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을 때 감을 잡았어야 했는데.

상대는 그들이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을 지닌 이였다.

“하, 씁……."

스코바는 무척 깊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외쳤다.

“한 번만 봐주십쇼, 바텐더 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속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남자.

사실 요 며칠간 이 거리에서 그런 경우가 왕왕 일어나고 있었기에, 이제 굳이 그를 주목하는 이도 없었다.

- 스윽, 스윽, 스윽

“후, 이제 좀 조용해졌네.”

클레어는 바깥에서 남자가 무릎을 꿇은 것을 알았지만 저 시끄러운 녀석을 안으로 들이기는 싫었기에 잠시간 그대로 내버려두다 남은 칵테일을 어디 용기에라도 담아 던져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바텐더.”

쫓겨난 놈을 보고 손님들이 모두 예의바르게 교정된 가운데, 한 손님이 흥미롭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무얼 하는 중인 건가?”

“비밀.”

“이런,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구만.”

“칵테일이나 마셔둬. 우리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지 모르니까.”

클레어는 시크하게 대꾸하곤 세이커를 흔들었다.

한 갈래로 묶은 그녀의 뒷머리가 깡총깡총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의 뒷머리가 춤을 출 때마다 손님들의 고개도 무의식적으로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도 방어 준비는 확실히 해두라고.”

손님은 잔을 깔끔하게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 옆에 놓인 탄환 몇 개, 금속 몇 개, 그리고 잘 해석할 수 없는 기계 부품 몇 개가 바로 칵테일의 값이었다.

클레어가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것들을 한데 수거하는데, 손님이 보이지 않는 천장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보듯 아득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오늘 밤은 아마 지독할 거야.”

@@@

- 스윽, 스윽, 스윽

“오늘 밤이 지독할 거라고 했다고?”

강신혁은 대패질을 멈추곤 클레어에게 반문했다.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는 강신혁의 눈높이에 맞게 쪼그려 앉은 클레어가 그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손님들도 다른 날에 비해 몰렸거든? 슬슬 소문이 나서 몰려드는 건가 했는데 그것보단……."

클레어는 손님들로부터 들은 정보를 취합해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아무래도 이 세상, 정기적으로 무슨 습격 같은 게 있나본데? 로봇들이 오는 것 같지는 않고.”

“나름 번화가라고 꾸며놓은 도로조차 건물이 무너져 있는 걸 보고 대충 짐작은 했어.”

“그리고 여긴 그 비율이 극심하니까, 아무래도……."

“저마다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이거지.”

번화가의 주민들은 아마도 로봇의 보호를 받을 것이고, 이곳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도로의 뒷면에 뻔히 불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있는데 어째서 로봇들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소탕하려 들지 않는가.

그 이유도 어쩌면 오늘 밤에 있지 않을까, 강신혁은 추측했다.

“작업 진척도는 어때?”

“훌륭해. 방해하는 엘프들이 없으니까 이렇게 쾌적할 수가 없어.”

말을 내뱉은 직후 강신혁은 자신이 불필요한 말을 했음을 자각했다.

어쩐지, 클레어가 그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 엘프란 것들 예뻐?”

“아니 완전 별로야.”

“너무 대답이 바로 나오는데.”

“사실이라서 그래. 클레어랑 비교하면 오징어 수준이야.”

“흥? 흐응?”

클레어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강신혁의 뺨을 쿡쿡 찔렀지만 계속 이래서야 자신도 그 엘프란 것들처럼 강신혁을 방해하는 꼴이 아닌가 싶어 이내 그것을 그만두었다.

“옆에서 지켜봐도 되지?”

“영업은?”

“오늘은 일찍 끝났어. 다들 오늘 밤에 있을 그것 때문에 서둘러 돌아가는 느낌이었어.”

클레어는 아예 자리를 잡곤 가만히 강신혁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강신혁으로선 누군가 자신이 작업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도 익숙했기에, 그러라고 놔두고 하염없이 족쇄를 다듬었다.

- 스윽, 스윽, 스윽

때론 대패로 밀고, 못질도 하고, 금속 부품도 삽입했다.

작게 나눈 조각이라고 해도 그것 하나가 이 방의 절반만 한 크기. 작업은 대공사였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모해 수십 개로 나눈 조각 중 하나를 설계도대로 완성하고, 헤일로의 기운을 담은 극천신주를 꺼내어 그 안의 기운을 조금 나누어 담았다.

“좋아, 이걸로 하나 완성. ……클레어?”

"응?"

“계속 그러고 있었어?”

"응."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그때까지도 클레어는 가만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루하지도 않았던 것일까, 그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클레어가 생긋 웃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부르다.”

“뭐 먹었어?”

“아, 바깥에서 소리 나는 것 같아.”

노골적으로 화제를 전환하는 것이 꼭 관리자를 닮았다.

하지만 밖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강신혁도 부품을 인벤토리에 수납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틱, 티딕, 티디딕.

그런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이거 꼭 전기파리채로 모기 잡을 때 나는 소리 같은데.”

“그거다.”

둘은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 집 밖에 뭔가가 우글우글 몰려들어온 것을 볼 수 있었다.

피부가 부패했고, 몸 일부 혹은 전체가 기이하게 뒤틀렸고, 몸에 벌레가 꼬인 것이 빤히 보이는…… 움직이는 시체들이었다.

“이젠 좀비까지.”

“진짜 가지가지하는 세상이네.”

“사실 예상은 좀 했는데.”

클레어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원래 마족들이 나타나면 반드시 언데드가 따르거든. 마기에 오염되어 죽은 존재가 언데드로 재탄생하는 것도 본 적 있고.”

“혹시 저런 안전장치를 설치한 것도 그래서야?”

“그럴지도 모르겠다고는 생각했어.”

강신혁은 점점 더 몰려드는 좀비들을 보며 짧게 고민했다.

이대로 안에서 버텨야 할까, 아니면 나가서 쓸어버리는 게 좋을까?

아니, 아무리 보호막을 둘렀다고는 해도 이 집의 내구도는 그리 높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어째 우리 집으로 뭐가 더 많이 오는 것 같은데?”

“아아, 언데드들은 생명력이 넘쳐나는 존재를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우리처럼 강한 사람들.”

하긴 이 거리의 주민들도 제법 강해보이기는 했어도 그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니까.

이대로 있다가는 아마 집이 부서지리라.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자동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전체적으로 은색이 감도는 금속으로 제작된 권총이었는데, 권총의 양면에 푸른 금속 음각으로 빽빽하게 룬과 함께 그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크기는 강신혁의 큰 손에 딱 맞게 잡히는 정도. 그 서늘한 감촉을 확인하던 강신혁은 짧은 심호흡을 하고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티르소스 No.O - 포이보스]

[SSS랭크]

[특수능력 - 급탄, 광탄, 성탄, 가호]

*급탄 - 탄을 소지하고만 있으면 일일이 장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탄창에 탄이 장전된다. 탄환의 파괴력이 40% 강화된다.

*광탄 - 빛의 탄환. 바람에서 비롯된 진동의 힘으로 빛을 압축시켜 속도와 위력을 한층 끌어올리며, 반사 능력을 갖춘다. 실탄을 장전했을 경우, 소모 에너지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대신 능력의 효과가 반감된다.

*성탄 - 성스러운 탄환. 어둠과 부정한 모든 것에 대해 300%의 데미지를 주며, 부정한 존재를 추적해 공격한다. 실탄을 장전했을 경우, 소모 에너지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대신 능력의 효과가 반감된다.

*가호 - 강한 빛의 축복이 깃들어 사용자를 보호하며, 사용자가 다루는 빛의 능력을 강화시킨다.

[위대한 장인이 시리즈로 제작한 명품 권총의 감추어진 넘버링. 급탄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실탄을 장전하지 ‘않고’ 쓸 때에 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No.0으로 인정받았다. 극한의 빛을 추구하는 아티팩트로, 재료의 부족함 탓에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머무르게 되었다. 사용자 한정 각인을 찍었기에 주인 외의 인간은 사용할 수 없지만 주인의 손에 들리면 그 위력이 증가한다.]

포이보스, 태양신 아폴로의 빛의 신으로서의 이름이다.

라이트 마스터리를 높은 수준으로 취득하고 단련한 덕에 기념비적인 SSS랭크를 취득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면 그의 능력에 비해 재료가 다소 쳐졌던 탓에 SSS랭크밖에 얻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강신혁이 라이트 바실리스크의 부산물을 얻은 것은 이 이후의 일이었고, 뭣보다 아직 강신혁의 능력으로는 그 만한 재료를 다룰 수가 없으니까.

이 권총을 만들면서 감은 잡았으니, 나중에 보다 확실하게 만들어보는 수밖에.

“내 것보다 예쁜 것 같아.”

“미안, 모든 권총의 속성을 강조하면서 만들다 보니.”

“내가 쓸 수 없다는 점이 제일 분해……!”

포이보스는 장전을 하지 않고 쓸 때 가장 효력이 극대화되는 총.

하지만 설마하니 저런 좀비들을 대상으로 이 총의 진가를 드러낼 이유도 없다.

그는 총의 특수능력 ‘급탄’을 활성화해 순식간에 권총에 탄환을 채워 넣고는 클레어에게 손짓했다.

“그럼 지붕 위로 나가자.”

“뭐야, 이런 해치는 언제 만들었어!?”

“나중에 보니까 천장으로 쉽게 나가는 출구가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

3층 천장에 단단하게 제작된 여닫이문이 달려 있었다.

저것을 열면 쉽게 바로 옥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멕가이버!”

“일단 경계해, 혹시 지붕 위로도 올라왔을지 모르니까.”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무장을 전개했다.

강신혁이 선물해준 권총 하나, 자신이 직접 제작한 권총 하나,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사격을 준비하는 드론 두 개.

무장이 완벽한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해치를 열었다.

“……젠장.”

검은 안개로 뒤덮인 이계의 하늘, 그것을 지금은 다른 무언가가 뒤덮고 있었다.

시체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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