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 Chapter 35. 신인왕의 2학기 - 4 >
수요일, 안형주는 멀쩡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강신혁을 보자마자 제 손에 들고 있던 차트를 넘기며 말했다.
“이게 지금 넘겨줄 수 있는 재산 목록이다.”
“문자로 보냈으면 됐는데.”
“내가 이런 건 서류로 확실히 하는 사람이라.”
슬쩍 훑어보니 마석이 가장 많았고 뱅가드의 주식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이거 팔아도 되는 거예요?”
“너한테 팔았다고 하면 다들 납득해줄 거야.”
“과연 뱅가드야, 밑작업도 이렇게 세련되게 하잖아. 백양도 보고 배워라.”
“우린 뭐 미리 안 줘. 가족이 된 다음에 퍼주지.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지 않지."
"큭......!"
길드마스터를 최악의 형태로 잃고 요즘 주가가 위험한 뱅가드의 엘리트 초인과 뱅가드의 약세를 기회삼아 한층 도약중인 백양 길드의 후계자가 눈싸움을 하는 사이, 강신혁은 차트를 팔락팔락 넘기며 망막에 그것을 새겼다.
사실 그가 마석의 가치를 알면 얼마나 알고 주식은 또 어떻게 알겠는가.
이럴 땐 그를 대신해 그것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계산해줄 이가 있었다.
- 회원님을 얕잡아봤거나, 재산이 정말로 없는 거지임에 분명합니다. 지구에서 열린 경매 기준으로 가장 싸게 팔린 것으로 계산해 봐도 A+급에 겨우 미칠까 말까 한 수준의 자산이군요.
바로 관리자다.
“이 정도면 A+급도 아슬아슬하겠는데요. 절 너무 우습게보시는 거 아녜요?”
그리고 강신혁은 그것을 마치 자신이 한눈에 보고 파악한 양 유세를 부리며 안형주를 압박했다.
그러자 안형주는 놀라워하면서도, 다음 순간에는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너라고 매번 SS급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닐 거 아냐. 그런 건 한 사람의 일생에 한 번 나오는 것도 기적이라고. 이것도 네 미래를 봐서 나름 투자한다고 한 건데……."
“야, 백인하 보여줘라.”
“하."
백인하가 거드름을 떨며 푸르스름한 금속각인이 박힌 자신의 권총, 제피로스를 꺼냈다.
주인이 있는 아티팩트는 정보 열람을 설정할 수 있는데, 그는 그것을 이름과 랭크만 읽을 수 있게 설정했다.
“SS+!?”
소울 커넥터보다 오히려 한 단계 높은 랭크의 아티팩트가 나타나자 안형주는 거의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물론 소울 커넥터도 제피로스도 상당히 특별한 재료들이 사용된 물건이니만큼 확실히 매번 SS급을 찍어낼 수는 없을 거라는 안형주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안형주 씨가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대단한 게 나올 걸요. 투자하는 금액에 따라서.”
“큭, 기둥뿌리라도 뽑아올 테니 기다려!”
“아니, 오늘은 일단 게이트 실습 가야죠.”
실습 첫날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자신의 자격을 증명한 강신혁과 백인하에겐 기본적으로 A급 이상의 게이트가 배정되었다.
사실상 그들을 이미 학생이 아닌 정식 초인, 그것도 상위 5% 이내의 초인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A급 게이트 정도는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그대로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감독역인 안형주가 정말로 감독만 해도 될 만큼 빠르게 게이트를 공략했다.
“다음은 방출형을 한 번 겪어보고 싶네요.”
“하, 이거 쏘는 게 의외로 어렵네.”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을 순식간에 깔끔하게 달성하고 다음 실습 조건에 대해 제의하는 강신혁, 그 옆에서 권총을 쏘는 연습을 하고 있는 백인하.
“너 사격 안 배웠냐?”
“시뇩아, 좀 가르쳐줘."
“자세만 잡아줄게.”
참고로 탄은 초인 전용 무구 브랜드 미스틱에서 나온 마석가루 함유 특제 .550 매그넘탄을 쓰는데, 강신혁은 탄의 구조를 분석해 조만간 탄환도 자신이 만들어낼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백인하는 강신혁에게 자세를 교정 받고 목표물을 설정해 한 방 쏴보더니, 순식간에 목표물에 착탄하고 충격파를 일으켜 산산이 부숴버리는 것을 보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진심 죽이는데……."
“나도 한 번만 써보면 안 될까?”
“아저씨는 방패수면서 무슨 총을 들겠다고. 다음 게이트는 권총만 들고 깬다, 내가.”
“게임하냐?”
그러나 처음 겪었던 S급 게이트의 이레귤러화, 요르문간드의 습격 같은 사건이 빈번히 일어날 리도 없고, 그들은 두 번째 주에 배정된 모든 게이트를 놀라우리만치 아무 일도 없이 클리어했다.
신영은 학생들에게 배정되는 게이트의 클리어 성공 여부나 클리어까지 걸리는 시간 등등을 꼼꼼히 체크해 게시하고 스틱에도 수시로 문자를 날리며 학생들의 경쟁심을 유도했는데, 물론 여기서도 그들이 2학년을 제치고 1등이었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불만을 경쟁심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건가.”
- 효과는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능력자들이 강해지기엔 지금과 같은 환경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태까지가 너무 느긋했다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관리자 님.”
- 관리자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한 회원님께 110,000 HP 보너스!
하긴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들에게 여태까지의 지구의 상황에 대해 늘어놓으면 ‘싸울 능력이 있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나 하고 있다고?’,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몇 년씩이나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고?’ 등등 경악하는 회원들이 많았으니, 관리자의 말도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회원 중에는 ‘징집을 안 한다고!’하며 경악하는 이까지 있었으니.
강신혁은 그 회원에게 친절히 지구에서는 초인이 되면 군면제가 된다고 약을 올려줬다.
……물론 초인은 국가적, 세계적 비상사태에 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하므로 별 의미는 없는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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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다들 준비는 됐지?”
“야 근데 이 망토 뭐냐, 혹시 전에 수거한 섀도 이터의 그림자 조각으로 만든 거임?”
“와, 돈지랄……."
“어쩐지 촉감이 좋더라니.”
한편 마스크드 바커스의 활동도 재개했다.
신 멤버로 백인하를 영입한 그들은 하나같이 마스크와 섀도 이터의 그림자 조각으로 만든 망토를 두르고, 허리춤에는 권총 한 자루씩을 매달고 서울의 밤거리를 활보하며 갑작스레 나타난 이레귤러 게이트를 소탕했다.
마법요원으로 클레어와 이나희가, 근접요원으로는 강신혁과 엘레노어가.
백인하는 특유의 빠른 기동력으로 보조를 담당했다.
비정규 멤버인 신은아는 함께 활동을 할 수 있을 때에만 나타나 권총을 쏘다 돌아갔는데, 그녀의 막대한 마력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는 데에만 집중해 설계된 권총의 탄은 한 발 한 발이 너무 강력해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사태는 종결될 지경이었다.
연금술사와 인형사(죽음의 인형사는 너무 길었기에 대부분 이 약칭으로 신은혁을 칭하기 시작했다.)가 이끄는 마스크드 바커스라는 소수정예 집단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었다.
두 사람의 무력만 해도 상당한 수준인데, 그들과 함께 다니는 다른 세 명도 수준급이고 가끔씩 나타나는 다른 한 명은 아예 상상을 불허하는 수준이었으니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사실 연금술사, 인형사와 동시에 친분을 갖고 있는 신은아가 이 마지막 멤버가 아니냐는 의혹은 계속 나오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세계랭킹 1위가 마스크를 쓰고 권총이나 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마스크드 바커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주목하는 집단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젠 외국에까지 와달라는 게시글도 있네. 앞으로 더 바빠지겠어.”
오늘도 제법 거창하게 활약한 마스크드 바커스의 멤버들은 신영의 로열 클래스 기숙사에 있는 강신혁의 방에 모여 뒷풀이로 치킨을 뜯고 있었다.
얼굴을 드러내고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그 어떤 초인보다도 귀찮아하는 주제에 마스크를 쓰고 이레귤러 게이트에 대처하는 활동은 누구보다 기꺼이 하고 있는 클레어는 치킨에는 눈도 주지 않고 인터넷 기사를 뒤적이며 그들이 가장 예쁘게 찍힌 사진을 찾고 있었다.
강신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클레어의 모습에 작게 웃곤 말했다.
“바빠지는 건 좋은데, 이거 보수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어라, 신혁이 몰랐어? 한 건 할 때마다 협회에서 보상 수령하고 있는데?”
강신혁이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짓자 클레어가 까르륵 웃곤 그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모아서 우리 데이트에 쓰려고.”
대체 어떤 데이트를 하려고 게이트 클리어 보수를 비축하고 있단 말인가!
강신혁이 기대감에 가슴을 부풀리고 있자니 반대편에 앉아있던 백인하가 귀신같이 그것을 알아듣곤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아, 보스가 공금 횡령한다! 저랑도 데이트해주세요!”
“백인하 네 몫은 원래부터 없어.”
“쿨럭.”
클레어 대신 강신혁이 싸늘하게 대꾸해 백인하를 침묵시켰다.
“언니……."
“횡룡……."
“쿡, 프흡.”
나머지 여성멤버들의 시선이 덩달아 날카로워지자 클레어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기껏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데 돈을 당당하게 나눠줄 수 없어서 내가 다 모아두고 있었을 뿐이야.”
“언니, 정말 컨셉 철저하시네요.”
“데이트……."
이나희가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쉬는 반면 엘레노어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강신혁은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방금 클레어가 강신혁은 자신의 것이라며 이 둘에게 어필을 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무, 무서워.’
이나희와 엘레노어가 클레어와 기싸움을 하는 장면을 정면에서 지켜보고 있을 깜냥이 없었던 강신혁은 얌전히 치킨이나 뜯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귓속말이 날아들었다.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모루, 슬슬 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 가야죠. 이번 주말에 갈게요.
- 헤일로 님의 귓속말 : 그래, 앞으로 수십 년 정도면 끝이 날 듯 하구만.
- 그렇게까지 안 걸릴 거라니까요.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퀘스트도 남아있었지, 참.
강신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하다가 문득 야누스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새로운 신살검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던 그는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언젠간 만날 수 있겠지.’
동화율이 높아질수록 점점 전생에 알고 지내던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 각별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클레어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쯤 그는 전생의 모루와 보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여기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신혁아?”
그가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클레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괜찮아?”
“응. 그냥 저쪽 일 때문에.”
“아하."
강신혁은 클레어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대꾸하며 작게 웃었다.
그러자 클레어는 조금 안심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불만이 더욱 높아졌다.
“아, 나 갈래.”
“난 안 갈래. 이 두 사람, 이대로 놔두기 시로.”
"......!"
“엘레노어 누님, 저 녀석은 놔두고 우리끼리 2차 어때요!”
“너 혼자 가.”
“넵.”
축제가 없는 10월이 그렇게 지나가고, 11월이 왔다.
신은혁의 세계랭킹이 4위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