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 Chapter 35. 신인왕의 2학기 - 3 >
[티르소스 No.4 - 제피로스]
[SS+랭크]
[특수능력 - 급탄, 풍탄, 가속, 가호]
*급탄 - 탄을 소지하고만 있으면 일일이 장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탄창에 탄이 장전된다. 탄환의 파괴력이 30% 강화된다.
*풍탄 - 바람의 탄환. 바람의 마력으로 탄환의 위력과 속도를 강화하며, 진동의 힘으로 착탄한 주위에 강한 충격파를 발생시킨다.
*가속 - 바람의 마력으로 사용자를 가속시킨다. 탄환의 속도도 가속된다.
*가호 - 강한 바람의 축복이 깃들어 사용자를 보호하며, 사용자가 다루는 바람의 능력을 강화시킨다.
[위대한 장인이 시리즈로 제작한 명품 권총의 네 번째 넘버링. 강한 바람과 진동의 힘을 담아낸 아티팩트로, 사용자 한정 각인을 찍었기에 주인 외의 인간은 사용할 수 없지만 주인의 손에 들리면 그 위력이 증가한다.]
"......."
화요일 방과 후, 백인하는 강신혁에게 받은 권총을 손에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거 뭐임?”
“티르소스는 주신 바쿠스가 들고 다니는 솔방울 지팡이를 이르는 말이지. 그리고 제피로스는 서풍의 신이니, 즉 이것이 바람의 힘을 충실하게 담아낸 아티팩트라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 왜 하이랭커들이 덤벼들 만한 보물이 내 손에 들려있는 거냐고!”
“좋은 말이다. 마스크드 바커스에 입단한 걸 환영한다, 제군.”
강신혁은 그 말과 함께 특별히 자신이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구입한, 콧대부터 시작해 얼굴 윗부분만을 가리는 민무늬의 반쪽 가면을 내밀었다.
정체를 감추고 활동하고 싶을 때 착용하는 위장 능력을 지닌 아티팩트. 무려 1천2백만 HP!(물론 그는 VIP 특별가로 750만 HP에 구입했다.)
“뭔데, 이거 받으면 뭐 해야 되는 건데? 마스크드 바커스는 그때 그? 너 말고는 미녀만 득실거리는 그?”
“우린 각국의 이해관계를 초월해, 오직 인류의 평화와 클레어의 자기만족을 위해 소집된 집단이다. 주로 겉멋 부리기, 불법적인 게이트 대처와 관련된 활동을 하지.”
실은 중2병을 아직 버리지 못한 강신혁도 은근히 만족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다.
“네 여자친구 비위 맞춰주기 활동이냐!”
“이 새끼 똑똑한데……?”
그러나 백인하는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그가 내미는 두 가지 물건을 받아들었다.
그의 능력을 크게 성장시켜주는 계기가 된 신풍의 보주를 빌리는 조건으로 반쯤 노예계약을 맺다시피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강신혁의 제안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스크드 바커스는 즉흥적으로 결정된 중2병 집단 모임이지만 그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쟁쟁했다.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백인하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
……솔직히 까놓고 말해 다른 모든 걸 포기하더라도 신풍의 보주와 방금 강신혁이 내민 아티팩트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을 한참 넘어섰다.
“결정적으로 알제 누님도 나희 누님도 예쁘잖아. 사내로서 받지 않을 수 없다!”
“너 입 밖으로 다 나온다.”
강신혁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그러나 백인하는 여전히 뻔뻔한 낯짝으로 그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넌 확실히 클레어 누님이랑 붙은 거지? 내가 그 둘 꼬셔도 뭐라 안 할 거지?”
“두 사람이 널 어떻게 생각할지는 둘째 치고 내가 너한테 뭐라 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데, 애초에 진짜로 꼬실 생각은 있냐?”
이 녀석의 가벼움은 만들어낸 가벼움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그러나 강신혁이 조금 진지해지려는 찰나 백인하가 그에게 고개를 들이밀며 그의 생각을 깨부수었다.
“누님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내 눈을 봐라.”
“응, 꺼져.”
줄 거 줬으니 이제 이 녀석에게 볼 일은 없다.
강신혁은 클레어에게 ‘신 멤버 확보 완료’라는 문자를 보내고는 녀석과 헤어져 비룡기사단이 활동하는 학교의 뒷숲, 블랙우드에 위치한 훈련소로 향했다.
어제 이나희와 작업을 마친 후 그녀의 권총은 직접 전달했으니 이제 엘레노어에게 전달해줄 것이 남았다.
“어, 신혁이 왔다!”
“잡아!”
“어, 어? 뭐야, 뭐야!”
그러나 그가 블랙우드 훈련소에 도착했을 때, 밖에서 제각기 병장기를 휘두르고 있던 단원들이 그를 발견하자마자 무기를 내던지고 우르르 몰려왔다.
강신혁이 당황하는 사이 단원들이 그를 짊어졌다. 혼란 와중에 그의 엉덩이를 만진 선배의 얼굴은 확실히 기억해두었다.
"S급 게이트 클리어한 거 축하파티 해야지!”
“어제는 왜 안 왔어? 우리 어제부터 다 준비하고 너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 우리의 신인왕 후배님, 신영을 완전히 뒤집어놓으셨다!”
그렇게 짐짝처럼 들려 이동하고 보니 이전 바베큐 파티를 했던 바로 그 뜰이었다.
강신혁이 왔다는 연락을 받은 것인지 도우진이 저 뒤 창고에서 화로를 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강신혁을 들고 오던 선배들이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말했다.
“우리 우진이가 고기를 되게 잘 구워.”
“아주 좋은 애야.”
“선배님들, 솔직히 말해봐요. 여기 바베큐 파티하러 모이는 거죠.”
건수만 생기면 바로 축하파티를 하는 게 회식 좋아하는 부장님 못지않은 인간들이지 않은가.
그러나 강신혁의 저항도 무의미하게 선배들은 그를 상석에 앉은 엘레노어 옆자리에 앉혀놓고서야 물러나주었다.
“왜 여긴데?”
“부단장 석이야.”
“아, 그랬지. 나 부단장이지.”
이제 와서 안 먹겠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먹을 것 좋아하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신혁이기에 별 수 없이 얌전히 앉아있으려니, 엘레노어가 작게 웃으며 그녀들을 지원해주었다.
“요즘 다들 지쳐있고든. 그런데 네가 뉴스에 나오면서 비룡도 덩달아 기가 살았오.”
“그건…… 확실히 그렇겠네요.”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신영의 학생들은 그저 공부와 단련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4차 대역류가 발생하는 것을 시작으로 파리에 요르문간드 측의 역대급 공습이 가해지고, 그 이후로 게이트 발생률이 증가하면서 아직 실전에 나설 자격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까지 차출되게 되었으니.
이제 막 첫 주가 지났을 뿐이지만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게 쌓인 상태였다.
어쩌면 강신혁과 백인하가 게이트에서 활약했다는 얘기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도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일지도 몰랐다.
특히나 강신혁은 비룡기사단의 부단장임을 드러내는 배지를 달고 미디어를 탔으니 비룡기사단의 면면이 그를 보며 자긍심을 느끼고 활력을 얻기에 충분했다.
“여러모로 귀찮게 됐네요.”
“정체를 숨기고 움직이는 게, 더 취향에 맞아?”
장난스럽게 물어오는 엘레노어에게 강신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하이랭커들 여기저기 끌려 다니면서 고생하는 거 보면 확실히 좀.”
“지금 익숙해죠. 언젠가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테니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엘레노어의 무시무시한 점이다.
그러나 강신혁이 뭐라 대꾸하려던 때 옆에서 끼어든 카렌이 그의 입에 다 구워진 고기를 밀어 넣었다.
“자자, 많이 먹어! 이거 다 먹어치우기 전까지는 네 방에 못 가!”
“으븝!?”
“와, 단장님 말고는 관심도 안 주던 애가 신혁이는 챙겨주는 거 봐.”
“헛, 혹시?”
“그런 거 아니거든요?”
선배들의 관심에 잔뜩 화를 내며 대꾸하는 카렌의 모습을 보건대 아무래도 아직 이전 정체를 감추었던 일에 화를 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괜히 그녀를 달래려고 해봤자 역효과가 날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강신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고기를 씹었다.
‘그러고 보면 카렌도 마스크 쓰고 활동한 적 있었는데…… 아냐, 역시 얘 몫은 만들지 말자.’
강신혁은 선배들이 바베큐 파티를 하며 신나게 떠드는 사이, 엘레노어에게 몰래 그녀 몫의 권총을 전해두었다.
“이고, 뭐야?”
“마스크드 바커스로 활동할 때 전용 무기요. 찌르기라는 선배의 능력을 잘 살릴 수 있게 만들었어요.”
“총……? 내 능력을 살린다고……?”
고개를 갸웃하며 권총을 받아든 엘레노어는 아티팩트의 정보를 열람해보더니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야 그럴 것이다. 그것도 SS+랭크니까.
참고로 티르소스 시리즈는 넘버 링에 따라 능력이 제각각이지만, 전부 SS+랭크로 완성되었다.
강신혁의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 이런고 못 받아.”
“앞으로 마스크드 바커스로 활동할 때 얻는 몬스터 부산물을 양보해준다는 조건이라면 어때요.”
“그래도 내가 너무 이득이야.”
“받아둬요. 다들 받았으니까.”
“……나희도?”
강신혁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녀는 순식간에 침착해져선 권총을 자신의 품에 넣었다.
“이걸로 강한 적들 많이 죽여서 보답해줄게. 많이많이 죽일 고야.”
어째 태도가 순식간에 달라진 것 같지만 강신혁은 굳이 그 부분에 대해선 지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거면 됐어요. 안 그래도 조만간 팀원 소집이 한 번 있을 거거든요.”
“아……."
강신혁의 두 번째 신분인 신은혁은 공식적으로 국제초인랭킹 5위로 인정받았다.
물론 그가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 신분을 감추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예 활동을 하지 않으면 썩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 치킨을 뜯으며 클레어, 신은아와 논의한 끝에 마스크드 바커스의 이름으로 협회로부터 의뢰를 받아 일을 진행하는 식으로 정리가 된 것이다.
사실상 클레어와 신은혁의 신분은 가면을 써도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두 하이랭커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증명은 될 것이고, 겸사겸사 나머지 멤버의 능력도 과시하며 그들의 인지도를 높여놓는다.
정식으로 신분을 드러내든 드러내지 않든, 집단으로서 움직이며 명성을 높이는 것이 그들에게도 결코 나쁜 얘기는 아닐 터였다.
“그렇게 되면 선배도 좀 더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고요. 선배는 학교라는 틀에 갇혀있기엔 너무 강하잖아요.”
"으, 응......."
엘레노어는 너무 자신을 감추고만 살아왔다.
그나마 이번 투왕전에서는 제법 힘을 발휘했지만, 이전에 그녀와 같은 전장에 서 본 경험이 있는 강신혁은 그것조차 그녀가 자제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영국 왕실이라는 짐을 벗어던지고 보다 자유롭게 날뛸 필요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이는 그녀일지도 모른다.
“고마워. 잘…… 쓸게. 총술, 연습 도와줄래?”
“기본 정도라면요.”
강신혁에게 뒤지지 않는 수련광인데다 뭔가를 찔러 관통시키는 데에 특화되어있는 그녀의 능력이라면 권총 사격술 정도는 금세 익힐 것이다.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자, 엘레노어는 배시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먹고 와이번들 보러 가. 다들 기다료.”
“알겠어요.”
“와이번들한테도 가면을 씌우묜......."
“아니 그건 무리지.”
한편 단원들은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단지 둘이 붙어있는 것만 보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카렌도 무척 예쁘긴 하지만 역시……."
“역시 저 둘이란 말이지.”
고기를 와구와구 퍼먹던 카렌이 그들을 노골적으로 째렸지만 선배들은 타고난 안면신공으로 그것을 무시했다.
“단장님 재주도 좋으셔.”
“졸업하고 비룡기사단 멤버 모아놓고 공개 결혼식 같은 거 하나?”
“그만해, 더글러스 페인 전 단장이 대검 들고 쫓아올 거야.”
“그걸 쫓아와봤자…… 읍읍!”
아직 비룡기사단 내부에 남아있는 전 단장 파의 단원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방금 말한 선배의 입에 고기를 꽉꽉 채워 넣었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얘기가 나오고 있었지만, 이것도 강신혁과 관련이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들은 얘긴데 이나희 걔도 신혁이를 노린다 하더라고.”
“켁, 작년 인기투표 1위?”
“올해는 학교축제 취소되는 바람에 학생들끼리 몰래 투표한다는데, 1학년에 별 인재가 없으니 또 이나희가 해먹겠네.”
“아니지, 올해는 우리 엘레노어 단장이 한 건 해줄 거라 믿어.”
인기투표 1위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누가 도우진이랑 고기 굽는 역을 바꿔줬으면 좋겠는데.
강신혁은 고기를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자신이 나서서 바꿔줄 생각은 물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신인왕의 2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