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 Chapter 35. 신인왕의 2학기 - 2 >
강신혁은 바 프론트라인의 정문을 열었다.
기분 좋게 울리는 도어벨.
카운터 앞에 클레어가 나와 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는 우선 바 내부를 휙휙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 묻는다.
“은아 선배 있어?”
“없어없어.”
클레어가 킥킥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고개가 흔들릴 때마다 포니테일로 묶어 내린 붉은 머리가닥이 좌우로 총총 뛰는 것이 귀여웠다.
그래도 안심하지 못한 강신혁이 재차 물었다.
“어떻게 없어?”
“랭킹 1위잖아, 일 끝나고 매번 바에 올 여유가 나는 게 이상한 거라니까?”
“클레어도 하이랭커잖아.”
“그렇게 치면 우리 은혁 씨는 랭킹 5위잖아.”
“그야 그렇긴 하지.”
비록 이번에 미국에 끌려갔다오긴 했지만 클레어는 기본적으로 전선에 나서지 않는 초인.
이번에 한 번 다녀왔으니 앞으로 당분간은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게 가능한 것은 그녀가 주기적으로 포션을 비롯한 물품을 각국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초인랭킹 5위로 인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신은혁과는 다르다.
“그 덕에 은아 선배를 더 고생시키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뭐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은아만 찾는 거야? 은아한테 연락해?”
무심코 흘러나온 말에 클레어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강신혁은 그녀가 입술을 삐죽이는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클레어가 보고 싶었어. 나한테는 더 길었으니까.”
“아핫, 좋아. ……어, 그러니까, 조금 주책 같긴 한데.”
그의 솔직한 고백에 무심코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인 클레어가, 볼을 긁적이며 부끄러워하다가는 덧붙였다.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단번에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지만, 그리 나쁜 어색함은 아니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조금 더 그 생소한 감정을 맛보고 있었지만 이내 강신혁이 먼저 정상으로 돌아왔다.
“선물 있어.”
“맞다, 선물. 기대 잔뜩 시켜놓고, 별로면 삐질 거야.”
하긴 미국에 가기 전부터 선언하고 있었으니.
그는 반짝이는 클레어의 눈망울에 피식 웃곤 그녀에게 줄 선물을 꺼냈다.
그의 품에서 나온 것은 바로 권총 한 자루였다.
여성이 들기에는 다소 큰 사이즈였지만 권총의 표면에 새겨진 복잡한 인챈트며 장식된 마석이 엔티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단순히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성질의 영력이 응축된 권총은 마주하는 적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위용마저 갖고 있었다.
옆면에는 클레어의 풀 네임이 멋진 필기체로 적혀 있었는데, 그것도 이나희의 인챈트 중 하나였다.
주인의 손에 들렸을 때 강화되는 대신 타인은 다루지 못하게 하는 한정 인챈트였다.
"엥."
하지만 그 퍼펙트한 권총을 바라보는 클레어의 눈빛은 어째선지 떨떠름했다.
강신혁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척 기세 좋게 선물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클레어 전용으로 내가 직접 만든 권총이야. 클레어는 주 무장이 총기류잖아? 클레어의 능력으로 변형도 시킬 수 있게 했어. 권총에서 소총으로 변하는 기능은 기본이고, 허공에 부유하며 자체적으로 보유한 영력으로 적을 추격해 자동으로 저격하는 엄호 모드 기능도 있어.”
“그건 조금 궁금하네.”
조금도 로맨틱하지 않은 선물에 심장이 차갑게 식은 와중에도 변신 기능이라는 말에는 자동으로 귀가 쫑긋거리는 자신의 본능이 클레어는 조금 원망스러웠다.
“사실 이건 시리즈로 만든 거야. 나중에 가면을 쓰고 다 같이 활동할 때 공통되는 무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헐, 너 천재야?”
또다시 긍정적인 추임새를 넣고 말았다!
본인이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저마다 능력은 다르지만 같은 형식의 무기를 다루는 전대라니.
“그래도……."
클레어는 선물이 마음에 안 들지만 동시에 너무 마음에 드는 오묘한 심정이 되어 권총을 매만졌다.
강신혁은 그 즈음에서 그녀만을 위한 두 번째 선물을 내놓기로 했다.
“바텐더 복장으로 갈아입고 올게.”
“응? 오늘 영업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런 게 있어.”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클레어는 여전히 기묘한 표정으로 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가 바 테이블 너머로 넘어가자 클레어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강신혁이 크흠,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그럼 손님, 바텐더 케이의 시그니쳐 칵테일을 기대해주세요. 손님만을 위한 칵테일입니다.”
“시그니쳐……? 네 오리지널이야?”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 그녀에게 가볍게 웃어주곤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베이스는 평범한 진이었지만, 다른 재료가 심상치 않은 것들이었다.
“이거 다 다른 차원 물건 아냐?”
“응, 상품으론 못 팔지.”
타 차원의 리큐르도 있었고, 타 차원의 과일로 만든 시럽도 있었다.
결정타는 바로 알이었다.
계란보다는 작고 메추리알보다는 큰 알을 깨서 노른자는 따로 빼고 흰자만 세이커에 흘려 넣는 모습을 보며 클레어가 퍼뜩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핑크 레이디?”
“영감을 얻긴 했지.”
핑크 레이디라는 칵테일에는 크림과 계란 흰자가 들어가 그 맛을 부드럽게 해준다.
하지만 강신혁이 깬 알은 계란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까놓고 말하면 키엘론의 조류가 품는 알.
그 맛은 계란과 비슷하면서도 확실하게 다르다.
특히 술과 어울리게 되면 각별함이 더해졌다.
그는 처음 이 술을 마신 지크와 미랑의 반응을 떠올리며 세이커를 잘 흔들어, 미리 차갑게 식힌 칵테일글라스에 술을 따라냈다.
클레어의 머리, 눈 색과 같은 정열적인 붉은 색의 칵테일이었다.
“흰자를 섞었는데도 색이 되게 자극적이네.”
“하지만 맛은 부드러울 거야.”
마치 클레어 같아, 라는 말을 무심코 덧붙일 뻔했다가 자제했다.
그러나 클레어는 이미 그것만으로 대충 눈치를 챈 듯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강신혁이 글라스를 그녀 쪽으로 밀어주자, 그녀는 조심스레 물어왔다.
“칵테일 이름은 뭐야?”
“클레어.”
“뭐야 그거, 너무 뻔하잖아.”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입가가 흐물흐물 늘어져 있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칵테일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바텐더인 그녀에게도 제법 특별한 경험이었다.
핑크 레이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부분도 센스가 있다.
그 칵테일은 당시 동명의 연극에서 연기한 여배우에게 바쳐진 칵테일이니까.
“마셔가면서 만든 거야?”
“친구 도움을 조금 받았어. 미랑.”
“아, 그 아저씨가 도와주러 왔었다고 했지.”
“츠쿠요한테는 말하지도 않았어.”
“그랬으면 아주 혼났어.”
권총과 달리 이번엔 합격점인 모양이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잔을 들어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잔에 담겨 영롱한 붉은 빛을 발하는 술을 음미하듯 천천히 조금씩 마셨다.
그러다 중간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어떻게든 멈추는 일 없이 끝까지 마셨다.
“한 번에 마시지 않아도 되는데.”
“이거 맛있어……! 맛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너무한 말을 하네! 열심히 연구했는데.”
강신혁이 퉁명스레 하는 말에 클레어가 웃음을 흘리곤, 바 테이블 너머로 몸을 내밀어 그를 껴안았다.
“고마워, 감동했어.”
“나야말로, 좋아해줘서 고마워.”
“어떻게 이런 선물을 가져올 생각을 했어? 최고야.”
그냥 자신이 아는 클레어라면 이걸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입 밖으로 내뱉자니 조금 부끄러워져서, 그는 괜히 딴청을 피웠다.
그녀도 그 마음을 알아차린 듯 더욱 짙게 웃으며 그를 꽉 껴안았다.
쿵, 가슴이 크게 내려앉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다.
“키스하고 싶어.”
자신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온 말에 클레어가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신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으, 은아가언제 올지 몰라서 안 돼.”
사실 그건 변명일 뿐이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커져가는 감정.
거기에 그대로 몸을 내맡기면, 끝까지 질주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그녀를 제어하고 있었다.
여느 때의 동생 같은 느낌이라면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지금은 조금 힘들었다.
그가 타 준 칵테일에서는 그가 얼마나 클레어에게 관심이 많은지, 그녀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져왔으니까.
그 마음을 마셨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한 번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
“응…… 그럼 한 번만.”
그녀의 망설임도 결국은 강신혁이 클레어 자신보다 연하인데다 미성년자이기에 나오는 것.
그 탓에 그를 대할 때면 약간의 죄의식 같은 감정을 느끼며 주춤하면서도, 강신혁 본인이 용서해주면 자신도 고삐를 풀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금처럼.
“아......."
둘이 짧은 순간 이어졌다가 떨어졌다.
누군가의 입에서 아쉬움이 담긴 한숨이 토해졌다.
“한 번 끝, 났는데."
“그럼 한 번만 더.”
"응."
결국 키스는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다행한 것은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전에 클레어의 품에서 뭔가 진동하는 바람에 그녀가 제정신을 차렸다는 것이다.
“은아 온다.”
"응?"
“가게에 마력탐지 아티팩트 설치했었거든. 이제 곧 올 거야.”
은아가 온다는 말에 강신혁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키스하는 장면을 들키기라도 했다간 최소 한 명은 죽는다.
그리고 그건 클레어가 될 확률이 가장 높았다.
두 사람은 신속하게 떨어져 서로에게 서로의 흔적이 남지 않았는가를 확인했다.
“만화 같은 데 보면 립스틱 묻고 그러던데.”
“이건 안 묻는 거야.”
강신혁이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기 전 도어벨이 울렸다.
평소 신은아는, 텔레포트로 바로 가게 안으로 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가게 밖으로 텔레포트를 해 문을 여는 매너를 발휘한다.
물론 그러지 않고 바로 안에 나타날 때도 있지만, 그럴 땐 정말로 급하거나 화가 났다는 뜻이다.
“나 왔어.”
“어서 와요, 은아 선배.”
“후배……!”
지친 얼굴로 가게 안으로 들어온 신은아는 강신혁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화사한 웃음을 되찾았다.
그 변화가 얼마나 극심했으면 마치 꽃봉오리에서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빨리감기한 듯했다.
“클레어가 불렀어?”
“방금 불렀어. 우리 복귀 파티해야지.”
“요란하긴, 난 어차피 내일도 일인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신은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다가와 바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았다.
“후배, 나 선물 줘.”
“짠."
강신혁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품에서 신은아의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꺼냈다.
신은아는 와아아,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받아 품에 안았다.
그 모습이 꼭 산타로 분장한 부모님에게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 같았다.
“할부지 선물이다……!”
“또 할부지라고 하네.”
“아, 너무 기뻐서 어릴 적 버릇이 나왔나 봐.”
신은아는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강신혁은 그 성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줄까 하다가, 그녀가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당분간은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간 권총을 만끽한 신은아는 문득 강신혁이 바텐더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곤 말했다.
“후배가 타 주는 칵테일 마시고 싶어.”
“타줄게요. 뭐가 좋아요?”
“오리지널은 없어?”
“아직 어려워서.”
“그럼 달콤한거.”
“오케이. 조금만 기다려요.”
강신혁이 그렇게 답하고 칵테일을 타기 시작하는데, 문득 신은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후배, 혹시 술 마셨어?”
"응?"
“아주 조금이지만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는데.”
그 순간 옆의 클레어가 눈에 띄게 움찔하는 것을, 다행히도 신은아는 눈치 채지 못했다.
“착각이겠죠. 저 미성년자잖아요.”
“그런가?”
신은아는 그럼 그렇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헤죽 웃었다.
강신혁은 양심이 콕콕 찔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세이커를 흔드는 손에서는 힘을 빼지 않았다.
그는 어느덧 완벽한 프로 바텐더가 되어 있었다.
- 역시 아침드라마 느낌이 나는군요. 회원님의 포커페이스에 감탄한 관리자의 200,000HP 보너스!
‘이런 이상한 걸로 역대급 보너스 주지 마요!’
- 300,000HP 보너스!
결국 강신혁은 그 날 저녁에만 관리자로부터 무려 100만 HP를 넘는 보너스를 받아야만 했다.
파티의 안주는 물론 치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