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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 Chapter 35. 신인왕의 2학기 - 1 >

- 회원님께서 현재 보유하고 계신 HP는 총 16억 5,478만 9950HP입니다.

실로 알찬 주말이었다.

강신혁은 관리자의 메시지를 보며 무척이나 뿌듯해졌다.

하지만 관리자는 그가 하는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인지 곧장 초를 쳤다.

- 재료를 수급하겠다고 거래 게시판을 털지 않으셨더라면 이보다 다섯 배는 남았을 겁니다.

“HP의 총량이 중요한 게 아녜요. 아니,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사용자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

물론 그것은 전생의 모루가 지니고 있던 신념이기도 했다.

키엘론에서 작업을 했던 지난 한 달 반이라는 기간 동안 동화율이 높아져 60%에 달한 지금은 강신혁에게서도 슬슬 그 고집이 드러나고 있었다.

“당장 츠쿠요와 미랑에게서는 재료를 받아서 물건을 만들었으니까. 다른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에게도 그 정도 수준은 못 되어도 버금가는 수준의 물건은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요.”

- 그 결과 회원님의 인기는 한층 더 상승하는 것이로군요. 잘 알겠습니다.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하지만 관리자의 말은 그리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여태까지는 강신혁도 히어로 유니버스의 [모루]라는 이름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았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영력이 듬뿍 담겨 있다고 해도, 영력을 알아볼 수 있는 회원들이나 그 가치를 알아볼 뿐이었으며 그것을 감안해도 무구 자체의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모루가 만든 것이기만 하면 환장하고 덤벼드는 츠쿠요와 은아를 비롯한 소수의 회원들끼리 소위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며 입찰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

그러나 그가 키엘론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모루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미랑과 츠쿠요가 자유게시판에서 오지게 자랑을 하고 다닌 덕도 있었지만) 모루를 잘 알고 있던 다른 고인물들도 본격적으로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로키 - 혈신강으로 맨든 할버드, 이건 정말 귀하군요…….]

[미양 - 아, 아…….]

[로키 - 아직도 모루 무구 안 산 흑우 없제?]

[미양 - 음머어어어어어! 로키 개새꺄, 넌 원래부터 모루 거 갖고 있었으면서 왜 하나 또 먹었는데! 난 없는데!]

[로키 - ㅋㅋ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구연ㅋㅋㅋ 울어봐, 좀 더 찰지게 울어봐ㅋㅋㅋㅋ]

[슈퍼 울트라은하계주먹1짱 - 아 성능 개쩌네! 할아방 나 진짜ㅜㅠ 빨리 만들어줘ㅠㅠ]

그가 만든 무구들은 금세 거래 게시판을 활활 불태웠고, 그 과정에서 모루를 모르고 있던 신입 회원들도 순수하게 무구의 능력만을 보고 덩달아 눈이 뒤집혀 덤벼들었다.

대장장이 모루로서 히어로 유니버스에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재인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호루스 - 아니 자게에 올라온 인증 실화? SSS-등급인데 성능이 이상하게 좋은데? 등급이랑 성능이 안 맞잖아!]

[헤일로 - 그게 바로 모루 무구의 특징이지.]

[가넷 - 허, 내가 알 수 없는 힘이 이 무구에 깃들어있어. 이걸 이 가격에 얻다니 운이 좋군……. 모루라고 했던가? 이렇게 강력한 무구를 만들어 내다니 정말 대단해.]

[은아 - 로키, 가넷…… 체크.]

[로키 - ? 무슨 체크냐?]

사실 근 한 달 히어로 유니버스를 뒤덮었던 열기를 생각한다면 16억이란 성과는 정말 적어보일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츠쿠요와 미랑의 무기를 만들고, 오르드 왕국을 지킬 병사들의 무기를 양산하며 밀리아에게 줄 선물을 만들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 만든 딱 두 점의 무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강신혁은 과거의 자신을 어느 정도 따라잡은 것 같아 조금 뿌듯하기도 한 반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에 아득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원대한 주제에 대한 생각보다는 훨씬 가까이에 있는 주제에 집중할 때였다.

“등교 때까지 아직 시간 좀 있죠?”

- 20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네.”

강신혁은 늘 보관해두고 있는 에너지바를 테이블 위로 쏟아내 그중 하나를 까서 물면서, 키엘론을 떠나오기 전 밀리아가 반쯤 강제로 자신에게 넘긴 물건을 살폈다.

그것은 물론 물의 보주였다.

[물의 보주]

[SS+랭크]

[특수능력 - 수신(水神), 수신(水身), 빙화(水花)]

*수신(水神) - 물을 다루는 신의 힘을 부여한다. 물을 만들어내고 조종할 수 있으며, 그 효과를 증폭시킨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내지 않은 물에 대해서는 효과가 50% 반감된다.

*수신(水身) - 물에 완벽한 내성을 얻으며, 얼음과 수증기에 대해서는 그 절반의 내성 효과를 얻는다. 물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빙화(水花) - 물을 얼음으로 바꾸어 조종한다. 얼음의 강도와 예기가 증폭된다.

[물의 신이 자신의 힘을 직접 담아 후손에게 건네준 물건. 그 후손들은 이 보주를 통해 피의 힘을 깨워냈다. 오랜 세월동안 후손들이 피를 각성하지 못하여 보주의 능력 또한 떨어졌으나, 최근에 각성한 강한 후손 덕에 그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

강신혁은 말을 잃고 묵묵히 새로운 에너지바의 포장을 뜯었다.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젠 슬슬 전통이 되어가는 보주 시리즈 특유의 ‘힘을 잃은’ 설정이 그대로 딸려와서?

아니다.

힘을 잃었다고 하는데도 능력이 너무 대단해서?

확실히 거기엔 놀라긴 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키엘론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음의 능력까지 있어서?

좌우지간 그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 물의 보주가 밀리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계속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냠…… 흠, 후손의 손에 들리지 않으면 힘을 잃는다는 것 같은데, 이거 설마 주기적으로 밀리아와 접촉해주지 않으면 힘 사라지는 거 아녜요……?”

- 물여우가 제법 머리를 쓴 것 같군요.

관리자가 침착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강신혁은 다섯 개째의 에너지바를 입에 물며 관리자의 메시지를 읽었다.

- 하지만 물여우답게 지능이 낮아 회원님께서 다루는 영력이 얼마나 굉장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듯합니다.

“우물우물……. 그건 뭐 그렇긴 하죠.”

영력은 근원과 접촉하고 강화하는 힘이다.

비록 물의 신이라는 존재의 피를 이은 자들만이 이 보주의 힘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 제약이 있다지만, 강신혁은 영력을 통해 보다 내밀하게 이 보주와 접촉하며 그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 가능했다.

실제로 그가 지니고 있는 다른 보주들도 적성과 관계없이 그와 밀접한 영력의 교류를 통해 조금씩 품은 힘이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원래 하자가 많았던 신풍의 보주는 그 성장세가 눈에 보일 정도.

여하튼 밀리아가 물의 보주를 어째서 강신혁에게 굳이굳이 건넸는지, 그 이유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밀리아가 직접 태도로 전하다 못해 귓속말 메시지까지 보내어 당부할 정도였으니까.

“제가 그녀를 거절하는 방식이 잘못됐나요?”

- 관리자가 냉정히 판단하건대, 그건 거절이 아닙니다. 희망을 지나치게 남겨주셨습니다.

관리자의 판단은 언제나 냉정하지 못하니 믿을 수가 없다.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빨리 다른 좋은 남자를 만나면 좋겠는데.”

- 회원님보다 좋은 남자는 온 우주를 통틀어 없습니다.

“이상한 부분에서 단언을 하시네요.”

강신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지막 에너지바를 먹어치우고는, 대충 머리를 감고 교복을 입었다.

그런데 그대로 등교하려던 때 날아든 문자가 그의 기분을 극적으로 전환시켜주었다.

[클레어 : 오늘 돌아가. 학교 끝나고 프론트라인으로 와.]

[나 : 알겠어.]

그대로 방을 나가려던 강신혁은 거울 앞을 지나치다 자신의 입 꼬리가 지나치게 올라간 것을 발견하고는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무던히도 고생을 해야 했다.

@@@

학교는 무척이나 떠들썩했다.

무엇으로 떠들썩했느냐면, 놀랍게도 강신혁과 백인하가 뱅가드의 엘리트 멤버인 안형주가 리타이어한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온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강신혁에게 그건 정말로 까마득한 과거의 일로 느껴졌지만, 놀랍게도 지구에선 그게 지난주에 일어난 금주, 아니 금 학기 최고로 핫한 토픽이었던 것이다!

“야 이제 그냥 백인하가 투왕하면 되는 거 아니냐?”

“알제 누님 무시하냐? 그분이라면 혼자서 S랭크 게이트 깰 수 있거든?”

“그보다 3학년들 졸업 앞두고 급속도로 쩌리되는 거 실화냐.”

“강신혁은 백인하한테 업혀가나?”

“업혀가는 거 아닌 것 같은데. 사진 속에 강신혁 멀쩡한 거 못 봄? 안형주는 떡이 되서 나왔는데.”

“안형주가 지켜줬으니까 무사한 거지.”

“그럼 네가 강신혁한테 시비 걸어봐. 가만히 있으면 네가 맞는 거고 그러다 네가 강신혁한테 얻어맞고 떡이 되면 내 말이 맞는 거임.”

학교가 고작 1학년생 둘에게 S랭크 게이트를 담당하라는 과제를 내린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들을 호위해야 할 초인이 뻗는 가운데 둘이 멀쩡하게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온 것은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강신혁과 백인하의 능력을 파악한 신영 교사진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고, 뱅가드에 있어서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굴욕이기도 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금세 잠잠해져주는 게 고마운 일이겠지만 아마도 당분간 이 사건은 신영을 떠나 초인업계 전체에서 다뤄질 터였다.

등굣길 내내 사방에서 강신혁을 보며 수군거리는 모습에 그는…… 조금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 고작 S급 게이트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회원님께서 히어로 유니버스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훌륭한 증거입니다.

“정말 새삼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요……."

“시뇩이 넌 왜 혼자 미래에 떨어진 원시인 같은 표정을 짓고 있냐?”

“기왕 그런 말을 할 거면 과거에 떨어진 미래인이라고 해라.”

강신혁은 자신에게 다가오며 그런 말을 하는 백인하의 머리에 뭔가를 던졌다.

속도 관련 최상위 특성을 지닌 백인하가 아니라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격.

하지만 백인하는 뛰어난 눈썰미로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잡아채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환호했다.

“시뇨기이이이!”

“그게 아니지, 다시.”

“시뇩님!”

백인하는 노골적으로 강신혁에게 굽실거렸다.

그가 백인하에게 던진 것은 신풍의 보주였다.

백인하와의 약속으로 인해 둘이 함께 있을 때, 그리고 강신혁이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 한해 신풍의 보주를 빌려준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

오늘과 내일은 학교에서 이론수업을 몰아서 하는 날이고, 백인하 정도의 능력이라면 수업 시간 동안 몰래 신풍의 보주를 만지작거리며 마나 수련을 한다고 선생에게 들키지는 않을 터다.

“시뇩님이라니…… 아니 시뇨기보다는 낫나.”

“실은 주말 동안도 빌리고 싶었는데.”

“그동안 쓸 일이 있었다니까.”

강신혁이 시크하게 대꾸하며 1교시 과목의 교과서를 펴는데, 원하던 것을 얻은 백인하가 어째선지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강신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니, 네가 빨리 성장하는 거야 이젠 별로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긴 한데.”

백인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이상하게 가끔씩 주말 지나고 보면 되게 엄청 분위기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네."

"다이나믹한 주말을 보내서 그래.”

"하……."

백인하가 입을 딱 벌리고 감탄했다.

설마 방금 한 말로 뭔가를 알아챘나? 강신혁이 덩달아 놀라며 눈썹을 치켜뜨는데, 백인하가 그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대며 주위에 안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클레어 누님 가슴 봤냐? 진짜 그거 뽕 아님?”

“나가 죽어.”

그 날 오후.

힘겨운 이론 수업 풀강을 소화한 강신혁은 이나희와 만나 마지막 마무리 작업을 한 후, 바이크에 올라 곧장 바 프론트라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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