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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 Chapter 34. 모루의 은총 - 4 >

깡! 깡! 깡!

공방 안에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금 강신혁은 미랑이 쓸 검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고작 이틀 정도로 미랑의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순수하게 그가 타고난 불꽃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 레지스트 파이어(SS+) 스킬의 숙련도가 성장합니다.

거대 늑대의 근원에 잠든 불꽃은 신비도로만 따지자면 최상위에 위치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니, 자연스럽게 레지스트 파이어 스킬의 숙련도도 성장했다.

바로 하루 전에 츠쿠요의 근원에 잠수하는 과정에서 스킬의 숙련도가 성장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지금은 SS+급 게이트에 와 있어. 그것도 침식형.

- 침식형……. 점점 많아지는구나. 이제 본격적인 전쟁일까요.

작업을 하며 언제나처럼 히어로 유니버스의 귓속말 시스템을 이용, 친구와 대화를 한다.

오늘의 대화 대상은 은아였다.

아니, 사실 절반 이상은 은아였다.

- 은아 님의 귓속말: 히어로 유니버스에서는 일상처럼 들어온 일들이니까.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어.

- 그건 그렇지만, 시기가 너무 공교로워서.

서로 있는 세상 사이에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보니 답변이 돌아오는 데에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어차피 작업을 하는 중이기에 그 정도 간격이 적절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응…… 상황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후배가 성장해줘서 다행이야.

- 은아 님의 귓속말 : 약했더라도 내가 늘 곁에 꼭 붙어서 지켜줬겠지만!

내가 빨리 성장해서 다행이다.

강신혁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쇠를 두들기는데, 은아의 메시지가 추가로 날아들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후배처럼 나도 한시라도 빨리 더 강해져야해.

- 은아 님의 귓속말 : 적어도 그 여자를 전기구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지 않으면…….

- ……응?

어째설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은아의 답변이 날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순간 영원처럼 느껴졌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이상한 여자들한테 시달리느라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참아, 내가 꼭 후배를 구해줄 테니까.

- 아니,  잠깐만. 이상한 여자?

- 은아 님의 귓속말 : 츠쿠요, 그 여자.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던 강신혁의 망치질이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그럴 지경이 아니었다.

분명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메시지여야 할 텐데, 어째 얼음공주라 불렸던 은아의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블리자드처럼 휘몰아치는 듯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자유게시판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고 있으니까. 덤으로 늑대 삼촌까지…….

늑대 삼촌이라는 건 아마도 미랑을 말하는 것이리라.

다행히 미랑과는 어릴 적부터 친했는지 그까지 경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 은아 님의 귓속말 : 그리고 물여우라는 년. 아니, 여자. 지금 간 세상에서 새로 나타난 회원이지? 걔도 수상해.

메시지니까 그냥 취소하고 다시 보냈으면 될 텐데 지울 틈도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나 보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후배는 아직 법적으로 엄연한 미성년인데 욕심을 내는 것들이 너무 많아. 내가 좀 더 강해져서 후배를 지켜주지 않으면…….

- 음…… 나 스스로도 잘 할 수 있으니까 안심해도 돼요.

- 은아 님의 귓속말 : 안 돼. 할부, 후배는 전생에서부터 이런 사람들과 연관되지 않고 살아와서 잘 모르나본데 세상엔 힘만 믿고 멋대로 살아온 인간들이 너무 많단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제 감정만 우선시해서 이쪽이 싫다는데도 밀어붙여 와.

자기소개려나?

하지만 실제로 강하게 밀어붙여오는 츠쿠요에게 입술을 빼앗긴 경험이 있었던 그이기에 반박을 할 수도 없었다.

물론 이 사실을 그대로 말해줬다간 은아가 츠쿠요에게 이길 가능성이 없는 도전을 할지도 몰랐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그러니까 이쪽이 더 강한 힘으로 지켜줘야 해. 그때까지 조금만 더 힘내. 지금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으니까.

- 힘내.

- 은아 님의 귓속말 : 기운 난다. 앞으로 100년 정도는 안 지칠 거야.

- 오버하기는.

- 은아 님의 귓속말 : 정말이야.

- 은아 님의 귓속말 : 내가 지켜줄 거야. 누구도 못 건드리게.

그러니까 무섭다고!

하지만 태클을 걸 수는 없다.

신은아를 대할 땐 사춘기의 청소년을 대하듯, 유리로 만든 공예품을 다루듯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든 신은아를 달래주며 대화를 마친 그에게 관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물어왔다.

- 처리할까요?

“아니, 그건 됐다니까요. 그보다 지금 자유게시판을 확인해보고 싶은데요.”

- 확인을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관리자가 만류를 하니 오히려 더 확인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신은아와의 대화를 마친 후 그는 곧장 히어로 유니버스의 자유게시판에 접속했다.

그러자 정말로 츠쿠요가 게시한 글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목은 이랬다.

[츠쿠요 - 아직 모루와 한 번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은 주목하세요.]

“이 여자 어그로 솜씨가 제법인데……."

본문에는 차마 읽기도 힘들 정도로 모루, 즉 강신혁에 대한 자랑과 과장된 묘사와 허위기록이 기술되어 있었다.

헤일로가 묘하게 으쓱대며 지금 모루가 자신의 세상에서 장기 퀘스트를 진행 중이라는 댓글을 단 것과 미랑이 자신도 그 세상에 함께 있다며 은근슬쩍 과시하는 댓글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 외에도 평소 모루의 작품을 좋아하는 회원들이 어째서 츠쿠요가 모루와 함께 있느냐는 불평을 늘어놓거나 자신의 의뢰는 받아주지 않는 거냐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고.

반면 아직 모루에 대해 잘 모르는 신입 회원들은 그 사람이 대체 누구냐며 웅성대고 있었다.

[물여우 - 모루 덕분에 각성한 신입 회원입니다. 선배님들께 가입인사 한 번 오지게 박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잘못된 지식을 주워듣고 온 신입도 한 명 거기 섞여 있었다.

[로키 - 모루 덕분에 각성했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도 대장장이냐? 그보다 모루 얘기만 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야누스는 어디 감?]

[폭풍공자- 요즘 안 보이더라. 뒈진 거 아냐?]

[로키 - 너보다 100배는 쎈 놈인데 뒈지긴 왜 뒈져. 차라리 요르문간드에 붙었으면 붙었지.]

[미양 - 야 신입, 그럼 지금 옆에 모루 있냐? 네가 모루한테 말 좀 해줘봐. 나만 모루 무기 없단 말이야. 나만 없어.]

[슈퍼울트라은하계주먹1짱 - 모루 할아방 지금 차원 퀘스트해? 나 장갑은 언제 만들어줘?]

[아스칼던 - 아니 이젠 모루가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까지 만들어?]

[물여우 -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의 능력 덕분에 제 개성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물여우, 밀리아는 그 이상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츠쿠요의 이어지는 메시지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츠쿠요 - 그것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지요. 다만 모루에게 은을 입었다고 분수도 모르고 착각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는 단지 너무나 상냥하고 너그러워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베풀어주고 있을 뿐, 그것이 결코 사랑은 아니니까.]

[미양 -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 댓글에 츠쿠요는 답글을 달지 않았다.

대신 다른 회원들이 명복을 비는 느낌의 답글들을 줄줄이 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밀리아가 댓글을 달았다.

무려 실시간 업그레이드였다!

[물여우 - 모루는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 세상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츠쿠요 - 부디 그러길 바라요.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등에 지고 있으니까요. 새로운 짐을 질 필요는 없어요.]

[은아 - 이 위로 제일 무거운 애 둘.]

[헤일로 - 하하, 모루를 제일 좋아하는 건 우리 은아지.]

[바텐더 - 그래서 그쪽에 같이 계시다고…….]

강신혁은 가장 최근에 달린 댓글을 보고 얼어붙었다.

아니, 하지만 그의 잘못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괜찮을 터였다.

그는 클레어에게 메시지를 보내둘까 고민하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찔리는 것이 없는데 괜히 메시지를 보내면 그녀가 더 불안해하지 않겠는가.

가뜩이나 츠쿠요가 강신혁에게 들이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다.

그러니 지금 말하는 것보다는 다음에 그녀와 대화를 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내는 것이 좋으리라.

“하, 진짜 쓸데없는 고민이네.”

- 하지만 아까보단 지금이 낫습니다, 회원님.

“그런가요.”

강신혁은 관리자의 메시지에 쓰게 웃었다.

지금이야 이런 연애사나 신경 쓰고 있지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는 확실히 망치도 제대로 두드리지 못할 만큼 심각한 상태였으니까.

- 괜찮습니다. 야누스 회원이 안전하다는 보증도 받지 않았습니까.

“받았죠.”

- 회원 간의 반목은 늘 있어왔던 일입니다. 더욱이 야누스 회원은 오래도록 히어로 유니버스를 지켜온 원로 회원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러니 과하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거겠죠.”

강신혁이 고민을 하고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아까 츠쿠요에게 야누스의 근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츠쿠요가 야누스를 찾아간 세상에서 그와 전투를 벌였다는 얘기였다.

- 어쩌면 단지 불여우가 재수 없어서 공격했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불여우는.......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이라도 하는 것인가 했는데 관리자는 제법 진지하게 츠쿠요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 덕에 강신혁의 기분은 완전히 가벼워졌다.

자신이 야누스와 싸울 것도 아니고, 그가 살아있다는 것만 알았으면 되었다.

언젠가는 다시 그와 친밀하게 귓속말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었다.

“그럼 이제 미랑에게 줄 검이나 마저 완성할까요.”

- 기대됩니다.

강신혁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가 두드리고 있는 금속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보다도 찬란하게 반짝이는 은색의 금속이었는데, 바로 미랑의 발톱이었다.

이전 전투를 치르던 중에 빠진 것을 보관해두고 있었다는데, 강신혁의 성장한 감정 스킬로도 미처 등급을 측정할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본래라면 그가 이 발톱을 가공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먼저 발톱의 주인인 미랑의 근원을 며칠에 걸쳐 영력으로 관찰하고 이해한 점, 거기에 이 발톱을 가공하는 데 쓸 불꽃을 미랑이 직접 만들어낸 점 두 가지가 더해져 어떻게든 가공할 수 있었다.

“신기한 불꽃이라니까. 포장해서 우리 세상으로 가져갈 수 없나?”

강신혁은 화덕에서 루비처럼 반짝이며 타오르는 늑대의 불꽃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미랑과 츠쿠요, 둘의 근원을 탐사하며 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얻은 지금이기에 알 수 있다.

이 불꽃은 반쯤 살아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그때 최적의 온도로 타오르는데, 심지어 그 안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짙은 마력과 영력은 담금질의 성과를 판이하게 바꾸어 놓았다.

특히나 같은 주인의 일부인 미랑의 발톱에 크게 반응하며, 강신혁이 망치질을 할 때마다 거기에 힘을 더해주는 것이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 한 번 부탁해보시지요.

“정말 될 것 같아서 무섭네요.”

깡! 깡! 깡!

그런 기적적인 경험 덕에 처음 걱정했던 것처럼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물론 영력을 다루는 강신혁의 능력이 아주 조금만 더 부족했더라도 무척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이걸 끝내고 나면 그 다음은 츠쿠요의 철선.’

그게 끝나면 이젠 오르드의 병사들이 쓸 무구들의 제작.

차원 퀘스트가 남은 기간 동안 대장일은 아주 신나게 하겠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다가, 강신혁은 문득 아까 히어로 유니버스의 자유 게시판에서 보았던 츠쿠요의 댓글이 생각났다.

그가 이미 많은 짐을 등에 지고 있으니, 새로운 짐을 지게 할 수는 없다는 댓글.

어쩌면 밀리아가 그것 때문에 자신의 눈치를 볼지도 모르겠다.

‘거절이라도 하면 내가 알아서 만들면 되니까.’

그렇지, 기왕 개인의뢰를 받아 만드는 것 아예 밀리아의 전용 무구까지 하나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강신혁이 미랑과 츠쿠요의 의뢰를 받은 것을 알고 그녀는 숨기려는 듯하면서도 부러운 기색을 미처 감추지 못했으니까.

‘좋아, 정했다. 만들자.’

야누스에 대한 걱정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밀어낸 강신혁은 밀리아의 전용 무구로 무엇을 만들어줄까 고민하며 열심히 망치를 두드렸다.

그의 이런 면모 탓에 밀리아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그는 아직 지나치게 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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