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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 Chapter 34. 모루의 은총 - 2 >

“그대는 불에 익숙하지? 불의 힘을 담기에 적합한 검을 하나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검이라.”

성 안에 만든 임시 공방.

강신혁은 여전히 부담스럽게 잘생긴 청년, 미랑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탁자 위에 손가락만을 뻗어 끼적이고 있었는데, 손톱 끝에만 얇게 발현된 불의 기운이 탁자를 그슬려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길고 튼튼한 검신을 갖춘 대검의 모습이었다.

“그래. 내 타고난 기운이 너무 강하여, 크흠……. 물론 진정으로 강한 이들에게 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나, 화기가 너무 강해 제대로 된 무기를 다루질 못해.”

‘‘으으음 그렇군요."

미랑이 말하길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늑대였다고 한다.

인간의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고 하는데, 그때까지는 아티팩트를 몸에 걸친 적조차 없다고.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나서부터 무기를 다루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방금 그가 말한 대로 그의 기운을 견딜 무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섬세하지. 그리고 서로의 간격이 좁아.”

서로의 간격이 좁다는 것은 아마도 현대화된 인간의 사회 형태를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한정된 구역에 바글바글 모여 살아가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스스로를 잘 억제하지 않으면, 많은 이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지. 그렇다고 인간의 모습을 취하기 위해 내 힘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나?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어째서 미랑이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싶어하는가, 그런 근본적인 의문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다만 홀로 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것을 이해하지 않고선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없을 듯했으니까.

미랑은 자신의 요구를 놓고 곰곰이 생각하는 강신혁을 앞에 두고 스스로가 바라는 것을 다음 한 문단으로 정리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은 지극히 날카로운 하나의 이빨이네. 무척 작아 목표한 것 이외의 대상을 괴롭히는 법이 없는, 하지만 치명적으로 날카로워 목표한 대상에게만은 확실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후…….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겠어요. 한 번 해보죠.”

“역시 모루라면 그렇게 대답해줄 줄 알았네!”

“하지만.”

강신혁은 자신의 손을 그에게로 내밀었다.

미랑이 아무 생각 없이 마주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확히 강신혁이 원한 그대로였다.

“좋아요, 이러고 잠깐 있어요. 영력으로 당신의 기본적인 사항을 조금 훑어볼 텐데, 저항하지 말아요.”

“오히려 영광이지.”

미랑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조금쯤 긴장했던 강신혁의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미랑은 영력을 강신혁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존재는 아니나, 스스로가 영력을 품고 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본능적으로 이용하는 정도는 되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영력을 다루는 이에게 무방비하게 자신을 내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이해하고 있을 터인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강신혁에게 손을 내밀다니.

- 회원님께서 히어로 유니버스의 아이돌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회원들은 회원님과 악수를 할 수 있다면 CD 1억장이라도 기꺼이 구매할 것입니다.

‘그 비유는 좀 싫은데요.’

- 회원님의 아티팩트를 얻기 위해서라면 CD 5억장까지도…….

‘제가 가수로 데뷔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겁니다.’

- 쳇.

다른 회원의 등 뒤에 숨어 자신의 야욕을 드러내는 관리자의 음모를 철저하게 분쇄한 후, 강신혁은 영력을 조금씩 미랑에게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굉장히 섬세하군.”

미랑이 감탄한 목소리를 냈다.

“영혼의 본질을, 이리도 쉽게 소분하여 조작하다니……. 내 것은 덩어리야. 그대로가 가장 강하며, 억지로 나누려 해도 영영 잃어버릴 뿐이야.”

“모두 다른 영력을 갖고 있으니까 당연한 거죠.”

“그런가, 이것이 장인의 영력인가…… 하지만 전사의 영력이기도 하군. 재미있어.”

미랑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감아버렸다.

정작 강신혁은 미랑에게서 전해져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이를 악물어야 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영력으로 상대에 대해 완벽히 분석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그는 두렵지 않게 된다.

영력을 제대로 다루게 되면서부터 강신혁은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완벽하게 자신을 내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근원의 깊이와 넓이 탓에 곤란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나와는 다른 근원을 지닌 존재. 그것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번역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근원이 다르다는 것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얘기도 되었다.

예를 들어 강신혁에게 있어 불꽃이란 열과 빛을 발하는 ‘현상’이며 뜨겁고도 따스한 이미지를 지닌 것이었고, 동시에 대장장이인 그 에게 있어서는 창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불꽃과 함께 했던 미랑에게 있어 불꽃이란 그의 몸이며, 그의 숨결이며, 동시에 적을 죽이는 무기였고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였다.

‘아……."

완벽하게 다르다. 이것을 어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이해하고, 하물며 앞으로 자신이 만들려는 물건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제아무리 영력으로 타인의 근원 안으로 잠수할 수 있어도,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을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강신혁은 새로이 깨달았다.

‘그래도.'

아예 처음 해본 경험은 아니니까.

강신혁이 처음으로 영력으로 소통한 대상은 다름 아닌 신살검.

신살검 또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신혁이 금속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가 빠져라 고민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신살검에서 자신이 동조할 수 있는 감정을 먼저 찾아냈으며, 그 다음으로 자신이 신살검과 함께할 수 있는 검무를 뽑아냈다.

이해란 상대와 자신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그마한 것이라도 하나씩 교집합을 찾아나가다 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영역에 대해서도 조금씩 깨달을 수 있게 될 터였다.

“고마워요.”

강신혁은 미랑과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그의 영혼이 발하는 빛에 집중하며 짧게 말했다.

“이번 제작은 제게 있어 무척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네요.”

“그건 내게도 마찬가지야.”

미랑 역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의 영력은 무척 따스하고 친밀해. 나의 비원에 가장 가까운 힘이야. 역시 그대를 찾아온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군.”

- .......

비록 미랑과 처음 친구과 된 것은 그의 전생에서였지만, 강신혁은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자신과 미랑이 앞뒤 잴 것 없이 친구로서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그의 근원에 대한 이해를 낳았다.

미랑이 품은 불꽃의 해석이 시작된 것이다.

- ……역시 수컷도 경계를 해야 할까요.

관리자가 뭐라고 또 쓸데없는 얘기를 한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무시했다.

@@@

당연하지만, 미랑을 이해하는 것이 하루로 끝나는 일은 아니었다.

무려 다섯 시간 동안 미랑의 손을 잡고 끙끙댄 끝에(지나가다가 열려있는 공방의 문으로 그 광경을 직관한 지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돌아갔지만 다행히도 강신혁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강신혁은 연장전을 선언했다.

“내일까지만 해보고, 그 다음날부터 바로 작업을 시작하죠.”

“얼마든지. 이 세상은 우리 세상보다 느리니까 오래 머물러도 부담이 없어.”

세상이 느리다는 것은 시간비율을 놓고 얘기하는 것이다.

지구의 15배로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 훨씬 빠르다는 것이 강신혁의 인식이었지만, 미랑의 기준은 여기서도 그와 달랐다.

그야 반대로 생각해보면 평범한 세상에서 시간이 하루 흐를 동안 이 세상은 보름을 꼬박 흘러야 같은 시간 축에 설 수 있으니, 느리다고 표현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닐지도.

“그렇구나. 그건 무척 길게 사는 이들의 기준이네요.”

“으음?”

“아뇨, 아무 것도 아녜요.”

시간의 흐름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짧게 사는 이들이다.

동물은 길어도 십여 년, 인간은 길어야 백 년.

그러니 시간의 흐름을 정면으로 맞이하며 ‘빠르다’는 인식을 품게 된다.

하지만 미랑은 무척 긴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기본적으로 인간조차 아니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몸으로, 눈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결국 그에게 있어 이 세상은 다른 세상에 비해 무척이나 느리게 걷는다는 감상밖에는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미랑.”

미랑에 대해, 인간에 대해 생각하던 강신혁은 자연스레 이 세계가 맞이할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었던 그는 결국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고는 미랑에게 말을 걸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얼마든지.”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계속 그 괴물들에게 노려지게 될까요?”

“그럴 리가. 요르문간드가 그런 낭비를 할 리가 없잖아.”

미랑은 무척이나 의외로운 얘기를 들었다는 투로 대꾸했다.

“이런 약해빠진 세상에 뭐 하러 그런 괴물들을 보내겠나. 그래서야 지속적으로 히어로 유니버스가 개입해 놈들의 전력을 줄일 기회를 주게 될 뿐이잖아.”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인간의 관점에서는 나올 수 없는 얘기였다.

아니, 앞으로는 강신혁도 이쪽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번엔 어째서…… 아.”

“그야 모루, 그대 때문이지. 그대는 모두가 원하는 존재니까.”

- 회원님께서는 모든 차원의 아이돌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히어로 유니버스의 아이돌이라면서요.”

- 그건 겸양 표현이었습니다. 부끄러워하는 회원님께 130,000HP 보너스!

어째서 강신혁의 얘기를 하면서 관리자가 겸양을 하는가.

강신혁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 때문이란 말인가.

애초에 망해가던 세상을 구하러 온 것인데 그 때문에 아주 확실하게 세상이 작살날 뻔했다니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는가.

그리고 거기서 한 술 더 떠,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때부턴 요르문간드가 굳이 여길 주시하지 않게 될 거라고?

- 저들이 회원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바로 통로를 연 것은 무척 의외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회원님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들도 굳이 이곳에 과잉전력을 보내는 짓은 하지 않겠지요.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맞춘 형태의 침략을 해오겠지.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나.”

“균형.”

“그럼, 균형. 우리 모두가 중시하는 것이지. 모루 그대도 그렇잖아. 어느 한 쪽이 무너지면 안 되니까.”

관리자의 말에 미랑이 덧대어 설명하며 씩 미소 지었다.

강신혁은 그 말에서 어딘가 못 미더운 구석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그 부분에 대해 더 캐물으려던 그때였다.

- 똑똑

"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문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창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작은 불꽃이었다.

"으음?”

미랑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반면 관리자는 이를 득득 갈았다.

- 설마 지원 요청을 이용해 잠입해왔을 줄이야!

“뭔데요? 왜 그러는데요?”

미랑이 앉아있는 것을 보면 적은 아닌 모양인데.

강신혁은 의아해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문으로 다가가니, 창백한 은청색의 불꽃…… 도깨비불이라 불러야 할 그것이 그를 발견하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일상적으로 영력을 두르고 있는 강신혁이기에 느낄 수 있었다.

불꽃에선 그에 대한 한없는 애정 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을 것 같은데. 그보다 이거 어디선가……."

- 쳇……!

“정말 치열한 기 싸움이군. 어차피 그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열어주시게, 모루.”

관리자의 메시지는 강신혁에게만 보내진 게 아니었는지 미랑도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쯤에서 강신혁은 대충 감이 왔다.

그가 창문을 열어주자, 도깨비불은 총총 날아 들어와 강신혁의 눈앞에서 멈추었다.

파박, 화려하게 불꽃이 타오른 직후 그 안에서 황금 자수가 놓인 검은 비단옷을 입은 여자, 츠쿠요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루!”

츠쿠요가 작정하고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에게선 언제나 남자를 견딜 수 없게 하는 매혹적인 향기가 났다.

“제가 만나러 왔답니다!”

강신혁은 이전 그녀에게 당했던 것을 떠올리며 움찔하면서도 순순히 그녀를 받아주었다.

그녀를 향한 그의 경계도는 최대치였으나 츠쿠요는 그것을 느끼며 오히려 더 즐거운 것처럼 웃었다.

마치 토끼를 노리는 사자의 웃음처럼 보였다.

“여전히 귀여우셔라.”

츠쿠요를 경계하느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강신혁을 대신해 미랑이 입을 열어 말했다.

“일이 다 끝날 때에 맞춰서 오다니 악취미도 정도가 있소, 츠쿠요.”

“그저 모루의 멋진 모습을 보기 위해 눈은 크게 뜨고, 걸음은 조금 늦추었을 뿐이랍니다.”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츠쿠요가 그제야 강신혁에게서 떨어졌다.

그녀의 손에 작은 자기병이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보다 배고프시지요, 모루? 술과 먹을 것을 가져왔으니 우리 재회를 기념하며 잔을 나눠요.”

“술인가, 좋군.”

“……어머나, 당신의 몫은 없는데요.”

미랑에게 냉정히 대꾸하면서도 빠르게 손을 튕겨 공방에 술상을 펴는 츠쿠요.

강신혁은 좌절하는 미랑과 부지런히 움직이는 츠쿠요의 모습을 보며 잠시 굳어있다가는, 이윽고 간신히 입을 열어 한 마디 했다.

"저 미성년자라서 술 못 마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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