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 Chapter 33. 이면과 닿다. - 2 >
광산은 도시를 나와 도보로 대략 두 시간 정도 걸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강신혁이 베푼 식량이나 성벽 건축, 대규모 밭의 개간까지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은 병사들은 광산으로 안내해줬으면 한다는 강신혁의 말에 먼저 자원해서 나섰지만, 그것과 무서운 건 별개였는지 광산으로 가는 길 내내 잔뜩 쫄아 있었다.
다만 그들의 걱정과 달리 광산으로 가는 길에는 습격을 받지 않았다.
일대의 땅지옥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을 뿐더러, 활동 중인 땅지옥은 4교시가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는 중고딩처럼 무서운 기세로 도시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쟤네 원래 저래?”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움직이는 겁니다. 이전엔 저렇게까지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돌연변이 놈들이 나타나고부터……."
“공격성이 늘어났다는 얘기구나.”
“그렇습니다. 그러니 광산에서도…… 꿀꺽, 조심하셔야 합니다.”
병사들이 생각하고 있는 광산은 현세의 지옥 그 자체였다.
그나마 강신혁이 함께 있으니 광산에 들어가겠다는 말도 감히 꺼낼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저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강신혁은 애초에 싸울 생각도 없고 싸워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부터가 광산입니다. 정체를 숨기고 있는 땅지옥이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그러네, 저기.”
광산 입구에 들어서자 슬쩍 강신혁의 눈치를 보며 뒤로 빠지고 싶어하는 병사들.
그러나 강신혁은 그들에게만 보이도록 한쪽 벽면을 가리키며 나직이 말했다.
“저기 공격해.”
“네?”
“눈치 채니까 큰 목소리 내지 말고.”
눈치 없는 병사들에게 작게 주의를 주며 강신혁이 재차 벽의 특정한 부분을 가리켜보였다.
영력의 양과 질이 크게 성장한 지금, 그는 굳이 영력을 퍼트릴 것도 없이 생명체의 위치나 그것이 품고 있는 힘의 정도를 파악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땅지옥이 제아무리 감쪽같이 숨어있다고 한들, 강신혁의 눈에는 놈이 훤히 보이는 것이다.
“저기 공격하라고. 나는 직접 힘을 쓸 수 없으니까 땅지옥 위치를 알려줄게.”
강신혁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정체를 감춘 땅지옥을 발견해내지 못해 인류 전체가 멸망의 위기까지 몰렸었던 이들에게는 이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신의 사도.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던 병사들도, 강신혁이 벽을 가리킨 채 더 말을 않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끝내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강신혁의 눈에 황금의 스크래치가 내달리고, 병사들의 육신과 무기에는 힘이 넘쳐흘렀다.
“이럴 수가……!?”
“지, 지금이다. 공격해!”
강신혁이 전날 목책을 지키던 병사들을 강화시켜주었다는 얘기는 그들도 들어 알고 있었다.
병사들은 혹여나 힘이 빠져나갈까 몸에 힘을 잔뜩 주고 강신혁이 가리킨 벽면에 창과 칼을 찔러 넣었다!
- 캬하악!
그러자 정말로 벽면에서 갑자기 땅지옥이 튀어나왔다!
놈은 괴성을 내지르며 발악했지만 이미 병사들이 기습적으로 데미지를 입혀놓은 탓에 힘이 많이 빠져 있었고, 병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을 다급히 마무리했다.
“굉장합니다, 모루 님!”
“정말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땅지옥의 위치를 읽어내시다니……."
병사들의 환호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강신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런 식으로 알려줄 테니까 이제부턴 무서워하지 말고 따라와. 오늘 안에 광산 안의 땅지옥을 모두 정리한다.”
"……예?”
“버프도 계속해서 걸어줄 테니까 안심해. 하지만 내가 직접 칼을 들게 되는 상황이 오게 만들지는 마. 굉장히 중요한 일이야.”
“아…… 알겠습니다.”
까딱하면 개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이미 강신혁을 신의 사도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병사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사도께서 금기를 범하면 재앙이 닥쳐온다!’ 정도로 알아서 해석하고 있었다.
뭐 따지고 보면 비슷한 셈이다. 강신혁은 땅지옥의 사체에서 쓸 만한 부분을 회수한 후 병사들을 이끌고 광산 안쪽으로 나아갔다.
- 끼이이이익!
- 캬하아아아아아아!
- 쿠에엑!
- 꾸왁!
광산에는 땅지옥이 많았다.
정말로 많았다.
온 세상의 땅지옥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았다.
“허억, 허어억……."
“이, 이제 무리입니다. 우린 이곳에서 죽을 거야……!”
“아니야, 너흰 할 수 있어.”
강신혁은 그들에게 포션을 나누어주며(스테이터스 포션은 무리지만 체력 회복 포션 정도는 얼마든지 나누어줄 수 있었다.) 기력을 북돋워주었다
수호황룡의 특성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남아도는 황룡투기까지 그들에게 전달해주니, 지친 병사들의 육신이 회복되고 그것을 넘어 보다 강건해지기까지 했다.
- 이들에게는 거의 축복이나 다름없는 일이군요. 기연이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어느덧 제 존재가 다른 이에게 기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된 건가요. 그건 기쁜 일인데.’
직접 힘을 쓰는 게 안 된다기에 이런 식으로 돌아가려던 것뿐인데 말이다.
병사들은 쉼 없이 전투가 이어지는 이 상황에 반쯤 넋을 놓고 있었지만, 강한 적들과 끊임없이 싸워 이기고 수호황룡과 황룡투기의 세례를 받은 끝에 자신들이 크게 성장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오늘 있었던 일을 크게 감사하게 될 터였다.
“음, 이 정도면 대충 정리된 것 같네.”
결국 강신혁은 자신이 장담했던 대로 그날 중으로 광산 안에 있던 모든 땅지옥을 처리했다.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낸 병사들은 새하얗게 불타 쓰러졌고, 강신혁은 땅지옥이 모두 사라지고 은은한 푸른빛으로 빛나는 광맥만이 남은 주위를 둘러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그 직후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곡괭이를 하나 만들어왔어야 하는 건데 내가……."
- 자신의 어리석음에 후회하는 회원님의 귀여운 모습에 감동한 관리자의 130,000HP 보너스!
“보너스는 고맙지만 좀 화나네요.”
- 50,000HP 보너스!
좋아하는 것인지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관리자의 메시지에 강신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밭을 갈 때도 그냥 낫으로 해치우면서 귀찮으니까 일 늘리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원흉이었다.
결국 광산에서도 일을 낫으로 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모르겠다, 까짓 거 낫으로 하지 뭐.”
그렇게 황혼의 수확자의 두 손에 재차 대낫이 들렸다.
낫으로 채광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정신이 나갔느냐며 비웃겠지만 낫으로 밭을 가는 것도 정신이 나간 짓이긴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것도 영력과 황룡투기가 있다면 미친 짓이 아니게 될 터!
“스으으읍…… 하!”
강신혁이 두 대낫을 미친 듯이 휘둘러 벽면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사방에 돌가루가 튀어 휘날리고 불순물이 섞인 광석이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그는 원드 마스터리를 활용, 돌가루가 쓸데없이 휘날리지 않게 모아 처리하는 고단수의 수법을 발휘하고 있었다.
두 개의 대낫을 끊임없이 휘두르면서 한편으로는 돌가루가 날리지 않게 모아 정리하고, 또 광석들은 다른 쪽에 분류하기까지!
겉으로 보고 있으면 굉장히 바보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터무니없는 테크닉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쪽은 끝났으니 다음으로 갈까.”
- 다음 구역에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낫을 휘둘러 5분 안에 채광을 끝내신다면 관리자의 특별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우리 관리자 님이 지구에서 아주 나쁜 문명을 배우셨네요.”
오랜만에 혼자만의 특등석에서 강신혁을 감상하게 된 관리자는 제법 신이 난 모양이었다.
강신혁은 관리자의 시도를 분쇄하는 대신 기꺼이 요청을 들어주었고, 관리자는 약속한 대로 대량의 HP를 보너스로 안겨주었다.
광산까지 들어와 땅지옥을 전멸시키기까지는 족히 열 시간 가까이가 걸렸는데, 두 개의 대낫을 들고 설치며 수 톤 어치의 광물을 캐내는 데에는 고작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으음, 인벤토리를 추가 구매해야겠는데요.”
- 한 칸 당 500만 HP입니다.
“보너스를 받으면 뭐하냐.”
인벤토리는 구매하면 구매할수록 비싸지는 품목.
하지만 그간 쌓인 HP로 어떻게든 다섯 칸의 인벤토리를 추가 구입, 총 스무 칸의 인벤토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한 칸 당 보관할 수 있는 화물의 양은 대략 200킬로그램.
강신혁은 들어가는 만큼은 전부 인벤토리에 밀어 넣고, 남은 것들은 병사들에게 떠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그중 일부는 오르드 왕국을 위해 쓰일 터, 그들도 억울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어떻게 이만한 양을 캐내신 겁니까?”
“아직까지 이 광산에 이렇게나 많은 브레나이트가 잠들어 있었다니.”
강신혁이 채광을 하는 내내 뻗어있던 병사들은 결과물을 보며 경악했다.
그중 세계멸망 이전부터 오르드의 병사였던 이들은 불순물이 섞인 원석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청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브레나이트를 보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자, 그럼 갑시다.”
일행은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튼튼한 자루를 구입해 남는 원석을 모조리 때려 넣고 광산을 나왔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기분 좋게 귀가하려는 그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저 하늘에 저거 보여요?”
“보, 보입니다.”
“시커먼 구멍이…… 왕국의 하늘에……."
강신혁은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노을 지는 하늘.
그 한가운데 뻥 뚫린 커다란 검은 구멍에서, 아주 무식하게 커다란 ‘무언가’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관리자님.”
절로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직접 싸우지만 않으면 들킬 일은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 관리자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저들은 원래부터 이 세계를 주시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관리자의 그 말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 백인하, 안형주와 함께 들어갔던 던전에서도 분명 이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대체 왜 저러는 거야.”
- 그건 바로 회원님께서 전 우주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계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기분 탓인지 관리자의 목소리는 조금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도 들렸다.
하지만 강신혁은 관리자에게 맞추어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늦었으면 더 신경 쓸 것도 없지, 젠장!”
강신혁은 들고 있던 보따리를 내팽개치고 인벤토리에서 푸른 소를 불러냈다.
그리고 오닉스를 함께 불러내 병사들에게로 패스했다.
- 뀨웃!?
“오닉스, 넌 이 병사들을 보호해가며 천천히 도시로 복귀할 것. 너희, 이 고슴도치가 너희 합친 것보다 강하니까 말 잘 들어.”
“그, 그럼 모루 님께서는!?”
“뻔히 알면서 뭘 물어. 먼저 간다!”
푸른 소가 거세게 발진했다.
어찌나 빠르게 내달리는지 방전한 스파크가 꼬리를 길게 늘이며 푸른 잔상처럼 반짝였다.
‘뭐가 저렇게 커, 젠장.’
목표물에 가까워질수록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늘의 구멍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존재는 여태껏 강신혁이 마주했던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거대했다.
인지를 지나치게 초월한 나머지 거리감이 헷갈릴 정도였다.
- 이 작은 세계에서, 본인의 원래 크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리자가 나지막이 설명해주었다. 강신혁은 절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들어낸 벨트가 성벽의 크기로 커지거나, 신살검이 신의 거검으로 화하는 것처럼, 저 몬스터 역시 본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감안해도 원래 놈은 터무니없이 클 것이다.
신살검을 거검으로 만들어도 놈과 비교하면 젓가락처럼 보일 듯했으니까.
그나마 이쑤시개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 꾸오오오? 꾸오?
녹색 빛을 발하는 크리스탈을 볏처럼 머리에 달고 나타난 그 몬스터가, 구멍 밖으로 거대한 머리만을 내밀고 이상하게 울었다.
지상에 있는 왕국의 주민들은 그것을 보며 벌벌 떨고 있을 뿐.
저들의 힘으로는 결코 저것에 대처할 수 없다.
강신혁은 속도를 더 내며 먼저 신살검을 던졌다.
허공에서 그의 영력을 받아들여 삽시간에 거대화한 신살검이, 강신혁이 만들어낸 영력의 바람을 휘감고 똑바로 돌진해 놈의 눈에 꽂혔다!
- 꾸오오오!
허나 놈이 장난스레 울어 젖힌 다음 순간에는, 본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힘없이 튕겨날 따름이었다.
- 던지는 정도로는 놈의 방어막을 뚫을 수 없습니다. 회원님이 직접 쥐고 휘두르셔야 데미지를 입힐 수 있습니다!
“미치겠네 진짜.”
관리자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강신혁도 잘 알고 있었다.
즉 그도 저 괴물처럼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렷다.
“울트라맨은 유행이 지났는데……."
아니지, 이제 슬슬 리부트되고 있으니까 오히려 그 인기에 편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신혁은 놈의 눈에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튕겨난 신살검을 축소시켜 다시 잡아채며, 슬슬 각오를 다졌다.
-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회원님.
서서히 구멍 밖으로 몸을 빼내고 있는(머리통은 닭과 비슷한 주제에 몸통은 뱀처럼 가늘고 길었다.) 거대 괴수를 향해 돌진하는 강신혁에게, 관리자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얘기를 꺼냈다.
- 저쪽에서 먼저 간섭을 해온 이상, 히어로 유니버스에서도 제대로 나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더는 가릴 것이 없습니다.
“......응?”
- 지원 요청을 넣었습니다. 미랑 님께서 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
지원 요청? 수락?
강신혁의 눈이 크게 뜨인 다음 순간, 관리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 3분입니다, 회원님. 3분만 버티시면 됩니다.
“……어쩜.”
강신혁은 직경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초거대 괴수를 눈앞에 두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타임 리미트까지 울트라맨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