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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화. < Chapter 32. 새로운 차원 퀘스트 - 5 >

깡! 깡! 깡!

성 안에 만든 임시 공방에 쇠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쟁이들의 손톱을 녹여 만든 붉은 금속 덩어리가 한 번 망치를 두드릴 때마다 그 형태를 바꾸어가고 있었다.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그래서 그 사이에 또 다른 세상에 간 거야?

- 응. 클레어가 돌아올 때까지는 나도 돌아갈 거야.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늦으면 나한테 혼나.

-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님.

깡! 깡! 깡!

실시간으로 체력과 영력을 엄청나게 소모하고 있었지만, 클레어에게서 조금 먼 간격으로 날아드는 메시지가 포션을 대신해 그를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거기 예쁜 애 있어?

- 클레어보다 예쁜 사람은 없어.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 지금 내 입술 겁나 촉촉한데 이걸 못 보여주네. 거긴 어떤데?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몰라.

- 몰라?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응.

깡! 깡! 깡!

그녀를 조금 더 찔러볼까.

아니 애초에 지금 우리는 어떤 관계인 거지?

이전에 비하면 훨씬 좋은 관계가 됐지만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하고는 있지만 나이차이가 나는 것도 엄연히 문제가 되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녀로부터 추가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누구 땜에 요즘,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질 않아서.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보고 싶어.

깡! 깡! 깡!

강신혁은 잠시 대꾸 없이 쇠를 두들기다가, 이윽고 자신을 진정시킨 후 짧게 답했다.

- 나도.

자신이 부질없는 고민을 했었다는 것을 깨닫고 강신혁은 조금 머쓱해졌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지만, 기력은 완벽하게 충전되었다.

신은아한테선 매일 3시간 간격으로 보고 싶다는 메시지가 날아오는데, 어째서 클레어의 것은 이렇게 파괴력이 다른 건지.

물론 그 이유는 스스로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좋아.”

깡! 깡! 깡!

입에 힘을 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입가가 흐물흐물 늘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빨리 그녀와 만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눈앞의 물건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신혁은 기합을 넣어 쇠를 두들겼다.

뚜렷한 그의 의지가 담긴 망치는 정성과 애툿함을 담아 영력을 재료 전체로 퍼트렸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마음이 금속을, 아니 공방을 가득 채웠다.

만약 지금 이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이가 있다면 누구라도 강신혁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그런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그는 자신의 영력이 색을 바꾸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작업에만 매진했다.

깡! 깡! 깡!

무아지경에 빠져 얼마나 더 망치를 두드렸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는 원래의 붉은색에 비하면 조금 연한…… 그렇지, 핑크빛으로도 보이는 금속질의 벨트가 놓여있었다.

- 우주에 영향을 끼치는 아티팩트에는 대부분 어떠한 종류의 강렬한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경지에 이른 대장장이의 애정이 영력으로 치환되어 깃든 결과, 근원에 특별한 힘이 잠재된 아티팩트 [수호의 의지(SS)]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 야금술 스킬의 숙련도가 S랭크로 성장합니다. 체력이 SS-랭크로 성장합니다.

- 불과의 친화력이 크게 높아져, [레지스트 파이어(S)] 스킬의 희귀도가 성장하여 [레지스트 파이어(SS+)]가 되었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S랭크로 성장합니다.

- 동기화가 크게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53.5%

"......."

이나희의 조력 없이, SS-랭크의 소재만을 가지고 SS랭크의 아티팩트를 또 만들어냈다.

오직 그의 능력으로 얻어낸 소재만으로, 거기에 그의 능력만이 더해져 온전한 SS랭크의 아티팩트를 만들어내었다는 데에는 실로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아티팩트가 완성되는 순간 나타난 메시지가 그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혹시 실수했나?”

- 본인이 알게 된다면 폭소하겠군요.

“절대 비밀이죠.”

벌써부터 이걸 보고 웃음을 터트리는 클레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행이다, 이걸 여기 두고 갈 거라서.

강신혁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방금 완성시킨 아티팩트, 금속 벨트의 정보를 확인했다.

[수호의 의지]

[SS 랭크]

[특수능력 - 수호, 재생, 서광(鳴光)]

*수호 - 주인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주인을 보호하는 영력의 방어막을 생성한다.

*재생 - 주인과 스스로를 꾸준히 원 상태로 회복시킨다.

*서광 -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축적한다. 다른 특수능력의 발현에 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잉여 에너지는 랜덤한 이로운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말은 낯부끄럽긴 하지만, 사랑의 힘이란 실로 굉장하다고 강신혁은 생각했다.

“이건 내가 착용하고 다니고 싶을 정돈데.”

- 라이트 마스터리를 익힌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군요. 조언이 어긋나지 않았음에 안도한 관리자의 80,000HP 보너스!

관리자의 말은 아마도 수호의 의지의 세 번째 특수능력, 서광을 보고 나온 것이리라.

강신혁이 보기에도 확실히 그러했다. 설마 태양광 발전을 아티팩트 하나 만든 것으로 실현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여기에 설치하고 떠나기엔 지나치게 아까울 정도의 명품이 완성되고 만 것이다.

“으…… 이런 거 또 만들어낼 수 있겠죠.”

- 물론입니다. 더욱이 회원님께는 신살검의 수호 능력도 있으니까요.

관리자의 말이 맞았다.

탐스러운 효과만 붙어있긴 하지만 그중 하나는 이미 신살검에 딸린 능력.

나머지 두 개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능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 이 아티팩트의 옵션이 적용된다면, 이 나라에 있어서는 정말 큰 도움이 되어줄 터였다.

‘사실 내가 착용하려는 것보다는 클레어한테 이걸 선물해주고 싶었던 거지만.’

관리자한테 그걸 솔직히 말하기도 부끄러웠기에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클레어에게는 이번에 따로 줄 선물도 있는데다, 실력이 늘어난 후에 더 좋은 재료로 이보다 좋은 능력의 방어구를 선물해주면 되겠지.

강신혁은 고개를 저어 그녀에 관한 생각을 털어내고는 벨트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럼 해볼까.’

우선은 라이트 마스터리를 발동, 황룡투기를 순수한 빛의 에너지로 치환해 벨트에 주입했다.

숙련도 B랭크밖에 안 되는 만큼 아직은 전환이 그리 능숙하지 못했지만 이번 차원 퀘스트를 받은 이유 가운데 라이트 마스터리에 능숙해지는 것도 목표 중 하나였던 만큼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그 작업을 반복했다.

- 라이트 마스터리(SS)의 숙련도가 성장합니다.

과연 희귀도가 높은 스킬답게 그리 쉽게 숙련도가 성장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황룡투기의 절반 이상을 벨트에 담았을 즈음에야 간신히 인심 쓰듯이 메시지가 하나 나타날 뿐이었다.

‘그러면 이제.’

강신혁은 벨트를 들고 공방을 나섰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 중 한 명이 벨트를 보고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혹시 폐하께 드릴 선물입니까?”

“지크 불러줘.”

“지크 경에게!?”

또 쓸데없는 오해가 생겨난 것 같은데.

하지만 강신혁이 말릴 틈도 없이 병사가 달려가고 말았다.

강신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난 지크에게 도시를 방어하고 있는 목책으로부터 병사들을 일제히 물릴 것을 당부했다.

“그런 짓을 했다간 땅지옥이 도시 안으로 금세 침투해올 거다.”

“아주 짧은 순간이면 돼. 걱정 말고 물려.”

지크는 여전히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밀리아를 찾으려 하자, 지크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뜯어말렸다.

“젠장, 폐하로 협박을 하다니. 그래, 알겠다. 네가 존속시킨 왕국이니 멸망시키는 것도 네 마음대로 해라.”

강신혁은 지크가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도시를 빙 두르고 있는 목책으로부터 물러나도록 하는 동안, 손에 들린 벨트를 허공으로 있는 힘껏 던져 올렸다.

SS랭크(소울 커넥터의 효과로 인해 한 단계 상승한 상태)에 달하는 힘으로 내던져진 벨트는 순식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이까지 치솟았으나, 다시 떨어지지는 않았다.

강신혁이 윈드 마스터리를 발동해 허공에서 그것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잘 위치를 잡고.”

성벽은 성을 중심으로 둘러야 하는 법.

원격에서 윈드 마스터리를 통해 벨트의 위치를 조종한 강신혁은, 손가락을 튕겨 벨트에 원격으로 조금의 영력을 가해 자극했다.

무려 SS랭크로 완성된 아티팩트라면, 분명 그 ‘격’은 세상의 법칙을 뛰어넘어 오롯이 드러날 수 있을 터였다!

“헉!”

“하, 하늘을 봐, 거대한 원형의 벽이……!”

역시나.

강신혁은 삽시간에 거대화되어 왕국 전체에 일그러진 그림자를 드리우는 벨트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따져보면 원래 무너지지 않는 성벽으로서 명성이 높았던 히로익 실드보다도 높은 랭크로 완성된 물건인 것이다.

전성기 모루의 실력을 온전히 발휘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금 강신혁이 낼 수 있는 최선의 노력(거기에 예상치 못했던 감정까지)이 들어간 물건이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모루, 저건!?”

“병사들 다 물렸지? 간다!”

원형의 성벽이 천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경악하여 엎드리거나 신의 이름을 부르짖거나 공포하여 내달리거나 하며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강신혁은 그저 성벽의 위치를 미세조정하는 것을 반복하며 그것을 꾸준히 하강시킬 뿐이었다.

성과 도시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혹시라도 틈이 생기지 않도록, 원래 계산했던 위치에 정확히 들어맞도록 내리꽂는 것.

꼭 테트리스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모루, 저대로라면 목책이 모두 무너질 거다!”

“무너져도 돼, 앞으론 이게 이 나라를 지킬 성벽이 되어줄 거니까.”

“하, 하지만 저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사라지지 않아.”

아마도 지크는 전날 강신혁이 히로익 실드를 아무렇지 않게 수거했던 광경을 떠올리는 모양이었지만, 강신혁을 비난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인을 잃고 버려져 있던 불쌍한 아이를 주인이 다시 거두어간 것이고, 지금 이것은 곤란에 빠진 왕국 주민들을 위해 강신혁이 기꺼이 만들어 내어준 것이니까.

벨트에 담긴 그의 의지가 흐트러지지 않는 한, 전과 같은 비극도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부탁한다.’

강신혁은 영력으로 이어진 벨트에게 나지막이 기원하고, 지크로부터 모든 목책에서 인간들이 물러났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혹여라도 바깥에 있는 땅지옥 놈들이 목책을 부수고 들어오기 전에…… 과감하게, 벨트를 지상에 착륙시켰다.

- 콰아아아아아앙

원형의 벨트가 성과 도시를 완벽하게 감싸는 형태로 지상에 내려앉은 순간, 일대에 묵직한 진동이 내달렸다.

- 성공이군요.

관리자가 말하지 않아도 강신혁 역시 직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벨트가 완벽하게 도시를 ‘감싸는’ 순간 주위 공기가 확연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되네.”

대기 중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마나 입자를 영력으로 관찰하며,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생명이 자라날 에너지를 거의 대부분 소진하고 메말랐던 땅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생기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이것은 수호의 의지의 두 번째 옵션, 재생의 효과일 터이다.

벨트와 그 착용자가 되는 주인을 꾸준히 회복시켜주는 능력.

놀랍게도 벨트는 그 내부의 권역이 되는 일대를 모조리 회복시켜주기 시작한 것이다.

- 헤일로 님께서 이것을 알게 되시면 부러워하시겠군요.

“그 세계에서는 제가 만든 아티팩트가 오히려 작아지지나 않으면 다행일걸요.”

이런 무지막지한 일이 가능한 것도 그나마 이 세계의 격이 낮기 때문이다.

마치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가져온 수학 숙제를 풀어주며 으스대는 중학생과도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강신혁은 자신을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지크에게 말했다.

“다음은 밭이야. 농작물을 키울 밭으로 적당한 지역을 골라줬으면 좋겠는데.”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대형 낫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낫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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