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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자마자 VIP-175화 (175/345)

175화.  < Chapter 31. 액셀러레이터를 당기다. - 6 >

깡! 깡! 깡!

좁은 공방 안에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깡! 깡! 깡!

대장장이는 날짜를 잊고 쇠를 두드렸다.

깡! 깡! 깡!

아니, 잊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할배, 조금 진지한 얘기해도 되나?

- 네놈이? 벌써 웃기는구나.

하지만 어느 날, 새로 사귄 친구가 그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일상에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할배가 만드는 무구로 스스로를 무장하면 그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지 않아?

까아아앙!

망치에 조금 많은 힘이 실리고 말았다.

대장장이는 한순간에 망쳐버린 작업물을 미련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는, 한숨을 쉬며 그것을 그대로 화로에 던져 넣었다.

- 네놈의 시답잖은 소리에 물건을 하나 망쳤구나.

망쳤다고는 해도 이미 그것은 하나의 완전한 아티팩트였다.

대장장이는 완성된 아티팩트를 녹여, 그 능력을 온전히 살려낸 다른 아티팩트를 만들 셈이었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할배가 망쳤다는 말을 한다고 내가 믿을 것 같아? 당장 그걸 들고 나가 싸워도 혼자 도시 하나는 되찾을 수 있을 텐데.

- 되찾으면?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 다음은 나라지.

- 나라를 되찾으면?

대장장이는 자신이 녹인 아티팩트에 여러 가지 재료를 더해 새로운 합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재료들이 대장장이의 뜻에 따라 조화로이 섞이는 모습이란 하나의 마법과도 같았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 다음은 세상이야, 모루 할배.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이라면 다들 이 정도는 해치웠다고.

- 그래서 뭐가 남지?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뭐가 남느냐니, 할배. 온전한 세상이 통째로 남지.

- 온전하지 않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응?

-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 하나 남지 않았는데 뭐가 온전하단 말이냐.

많은 금속이 섞여 하나가 되어, 그 끝에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는 합금이 완성되었다.

대장장이는 히어로 유니버스의 특별 상품으로 금속을 순식간에 굳히고 식혀 주괴로 만들고는, 집게로 그것을 집어 올리며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러니 세상을 구하는 일은 네게 맡기마.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래…….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래. 맡겨둬, 할배.

대장장이는 다시 망치를 내려쳤다.

깡! 깡! 깡!

좁디좁은 공방에는, 오늘도 망치질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모루 할배가 싫다 해도 내가 모조리 구원해줄 테니까.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내 적은 나 뿐이라 이거야.

- 오냐, 기대하마.

하지만, 결국 끝까지.

소중한 친구는 대장장이를 구원해주지 못했다.

@@@

- 오늘의 로그인 보너스로 룰렛 코인 2매를 얻었습니다!

3차 해방을 겪은 다음날 아침, 병원 침대에서 일어난 강신혁을 반기는 문구는 언제나처럼 로그인 보너스의 알림이었다.

다만 그 내용이 조금 특별했다. 룰렛 코인이 무려 2매였으니까.

그렇다면 VIP 권한을 완전히 되찾고 나면 어찌되는 것인지 지금부터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미처 안 돌리고 쌓아둔 것이 5매 있으니까 이걸로 7매.’

물론 20매를 모아 강화 룰렛을 돌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이상 평범한 룰렛을 돌릴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관리자가 언질까지 준 이상, 그 강화 룰렛에서는 또 다른 히어로 유니버스의 신기능이 튀어나올 것이 분명했다.

‘후우…….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은 회복되네.’

3차 해방은 좋은 것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많은 혜택과 함께, 전생의 자신이 꽁꽁 감춰두고 있던 깊숙한 기억마저 차례대로 끄집어내고 있었으니까.

더욱 좋지 않은 점은 자신이 그런 어두운 기억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억지로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최근에는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 과장되고 밝게 사고하고 행동하려 하고 있었지만, 이젠 슬슬 그것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중2병이 다시 발병한 건 진짜지만.

- 똑똑

강신혁이 옷을 갈아입으며 어떤 빔 병기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던 그때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바지를 끌어올려 잠그고 셔츠를 후딱 걸친 후 문을 열자 그곳에 나타난 것은 어째선지 신은아였다.

- 쳇.

“은아 선배?”

“잘 잤어?”

“잘 자긴 했는데…… 무슨 일이에요?”

“빼내주러 왔어. 밖은 여전히 조금 난리야.”

왜인가 했더니 모두 어제의 보도 탓이라는 모양이었다.

하긴 뱅가드 길드원 한 명과 학생 두 명이 같이 들어가서 뱅가드 길드원은 실신한 채로 나왔는데 학생들은 멀쩡하니 매스컴이 관심을 갖지 않을 리 없다.

강신혁과 백인하가 병원 안에 갇혀 있던 것은 물론 마기의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과도한 매스컴의 노출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 사정을 알게 된 신은아가 협회를 대표해 강신혁을 구출하러 온 것.

“응, 나갈 준비는 된 것 같네. 가자, 이동마법을 구사할 거야.”

“그럼 인하는?”

“백양이 알아서 하겠지.”

강신혁은 일단 백인하도 챙겨가자는 주장을 해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백인하에게 [테이크아웃당해서 먼저 감]이라고 짧게 문자를 보내고 스틱을 품에 넣었다.

그 직후부터 스틱이 맹렬하게 진동을 시작했지만, 그는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신은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그럼 등교할 수 있는 거죠?”

“오늘 등교일 아니잖아?”

“아, 그러고 보니.”

대 게이트 범람의 시대가 찾아오고, 예비초인을 잔뜩 데리고 있는 신영도 당분간 교육방침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 중 이틀에 이론수업을 몰아넣고, 나머지 사흘은 게이트 실습.

학생을 실질적인 초인 인력으로 부려먹는 셈이지만 일단은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는 데다 금전적인 보상도 받을 수 있고, 학생들 외에 정식 초인도 반드시 한 명 이상 참가하는 것이 정해져 있었기에 어찌 보면 큰 기회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신영의 다른 학생들은 지금 실습이겠네.”

“응. 하지만 네 팀은 지금 활동불능 상태니까.”

안형주가 의식을 찾긴 했지만 바로 오늘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마 내일도 무리일 테니, 이번 주는 통째로 날아가는 셈이다.

“과연.”

“그러니까 나랑 데이트해.”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하고 씁쓸하게 웃으며 신은아가 손을 튕겼다.

다음 순간 그들은 클레어가 운영하는 바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아, 생각보다 빨리 왔네?”

“1분마다 한 개씩 톡 보낸 주제에.”

“클레어?”

“안녕, 신혁아.”

아침 시간인데 왜 바에 나와 있나 했더니, 클레어는 평소 입고 다니는 옷 위에 롱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티팩트로 보였다.

전투용 아티팩트 말이다.

“……어디 싸우러 가?”

“나 하이랭커거든? 한국에서 계속 버티고 있으려면 이것저것 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미국에서 주기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든가. 오늘도 일정이 잡혀있어.”

“오늘!?”

“뭘 그렇게 놀라.”

“후배도 방금 몸으로 느꼈잖아?”

설마 병실을 나와 곧장 이곳으로 이동한 신은아의 이동마법을 말하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 그건 그래도 같은 서울 내에서 이동한 정도였고.

강신혁이 의심어린 표정을 짓자 신은아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엔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몇 번 왕복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

“완전히 움직이는 전략 병기가 됐잖아……."

“왜 이래, 얘 국제초인랭킹 1위야.”

그러고 보니 그랬다.

강신혁은 갑자기 신은아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부터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더더욱 부담스러웠다.

"클레어가 출발하기 전에 후배를 보고 가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어. 한국으로 와서부터 한 번도 못 만났잖아."

“그랬죠. 만나지 못한 건 은아 선배도 마찬가지지만.”

“응. 나도 보고 싶었어.”

자연스럽게 자신의 얘기를 끼워 넣는 부분이 실로 약삭빠르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의 어필을 하느라 바빠 강신혁과 클레어 사이의 분위기가 미묘하다는 것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못 만나면 이번 주 내내 못 볼 것 같았거든. 그래서 조금 억지를 부렸어.”

“괜찮아. 나도 보고 싶었거든.”

“헤, 그럴 줄 알았어.”

두 사람은 평소처럼 대화를 하면서도 미묘하게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마주보게 되면 둘이 헤어지기 직전에 있었던 일을 지나치게 의식할 것 같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서로 의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둘 다 그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충동적으로 키스를 해버리긴 했는데 얘 아직 미성년자잖아. 리미터 풀려버리면 안 되는데…… 안 돼, 얼굴 보면 또 키스하고 싶어질 것 같아.’

강신혁보다 자신의 리미터가 풀리는 쪽이 위험하다.

클레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강신혁은 클레어를 본 순간엔 조금 당황했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잘 다녀와. 선물 준비해놓고 기다릴게.”

“선물?"

“제법 놀랄걸.”

강신혁이 장난스레 웃으며 하는 말에 클레어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선물이라니, 이 타이밍에. 센스가 있지 않은가.

그래, 리미터가 풀리려면 풀리라지.

서로 좋아하는 거니까 뭔짓을 하든 범죄가 아니잖아?

“기대해도 돼?”

“물론."

완전히 글러먹은 결론이었지만 다행히도 강신혁과 신은아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선물? 나는?”

“그야 당연히 은아 선배 것도 있죠.”

강신혁은 자신의 순발력을 극한에 가깝게 발휘하여 신은아에게 자연스러운 대꾸를 했다.

그 와중에 클레어에게만 보이도록 윙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물…… 후배가 주는 선물……!"

“그래, 우리 은아 알기 쉬워서 참 좋네. 그럼 빨리 가자.”

클레어는 강신혁이 보내는 사인에 쿡 웃어버리고는 신은아를 재촉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돌아서며 말했다.

“아 맞다, 오늘 가게는 맡길게.”

“엥, 진짜?”

“응. 어차피 학교로 돌아가도 귀찮을 거 아냐? 여기에 그냥 있어도 되고 심심하면 장사해도 되고.”

“미성년자한테 바를 맡기다니.”

“미성년자? 우리 신은혁 씨는 성인이잖아?”

그러니 아무 문제도 없다고 클레어가 깔깔 웃으며 하는 말에 신은아마저 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다녀올게.”

“다녀와요.”

작별인사를 하며 가볍게 안아주었더니 신은아는 그대로 승천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클레어는 신은아 몰래 기어이 강신혁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서야 물러났다.

신은아가 여전히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로 손가락을 튕겼고, 곧 두 사람은 강신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대로 미국까지 갔으려나?”

비로소 홀로 남은 강신혁은 자신 혼자 머무르기엔 다소 넓다 싶은 바를 둘러보며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바 안에 있을 때는 항상 클레어가, 굉장히 높은 확률로 신은아도 함께 있었으니 적적함이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 회원님, 방금 말씀입니다만.

두 사람의 빈 자리를 느끼면서도 일단 가게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려던 때, 관리자가 그를 불렀다.

“네?”

- 본처 앞에서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는 남자 같았습니다.

"......."

공감하는 바가 있었기에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강신혁.

관리자가 그런 강신혁을 추궁했다.

-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시면 될 것을.

“관리자님, 은아 선배는…… 은아는 정신적 케어가 필요한 아이에요. 겉으론 다 컸어도, 아직 아이에요. 요즘 조금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봤자 사춘기 정도죠.”

- 의외로 냉정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계시는군요.

“오래 봐왔으니까.”

결국 강신혁은 관리자에게 자신의 속내를 조금 드러내기로 했다.

그의 말에서 조금씩 묻어나는 모루의 향기를, 아마도 관리자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클레어도 저도 은아랑 가장 가까운 사이고요. 그런데 지금 상황에 제가 클레어와 반쯤 사귀는 상태라고 솔직히 얘기하면 은아가 느끼는 소외감은 장난이 아닐 거예요.”

- 비단 소외감만은 아니겠죠.

“관리자님도 알고 있잖아요!?”

- 그래도 미끼를 너무 주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관리자가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 저 불여우는 방금 회원님이 말씀하신 선물이란 한 마디로 이미 회원님과 언덕 위에 정원이 딸린 예쁜 집을 짓고 커다란 개를 기르며 아이 셋을 낳아 기르는 생활까지 꿈꾸기 시작했을 겁니다.

"......."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무겁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요즘 신은아의 행동을 보면 마냥 착각이라고 부정하는 것도 힘들었다.

-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특별가에 제공하는 복대가 있습니다만, 구입하시겠습니까?

“아뇨! ……일단 장바구니에만 넣어주세요.”

- 장바구니 기능을 떠올리시다니, 벌써 거기까지 기억이 돌아오셨군요! 30,000HP 보너스!

“그것 참 눈물 나게 고맙네요.”

참고로 그날 바 프론트라인의 영업은 대성황이었다.

국제초인랭킹 5위의 초인이 친히 칵테일을 타준다는 얘기가 SNS를 타고 퍼진 덕분이었다.

대신 클레어와 신은혁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기사가 또 각종 매체에 대범람했는데, 강신혁은 혹시 이것도 클레어가 노렸던 바가 아닐까 생각하며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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