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 Chapter 31. 액셀러레이터를 당기다. - 3 >
- 빛과 그림자는 함께 존재합니다. 강한 빛의 뒷면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지며, 그것은 감출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설마 흑영신주를 영핵으로 끼운 덕에 신살검의 소화가 끝난 거라고!?
이래서야 정말로 빛과 어둠 양면이 갖춰져 최강으로 보이지 않는가, 중2병에도 정도가 있지!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마음속으로라도 태클을 걸지 않고 견딜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강신혁이 무슨 생각을 하든, 흑영신주와의 결합으로 인해 어둠의 자극을 받고 빛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한 신살검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번쩍, 하며 그 모습을 바꾸었다.
- 신살검이 본래의 격을 일부 되찾아 SS-랭크로 진화합니다.
손잡이는 아주 조금 길어지고, 가드에는 새로운 장식이 생겨났으며, 검날은 보다 날카로워지며 검신의 길이가 제법 늘어났다.
이젠 바스타드 소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검의 크기가 커진 것이다.
- 새로운 특수능력 ‘성검’이 개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천박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부서지지 않는 빛을 머금은 그것은 찬란했고, 고귀했다.
소름끼치는 예기와 함께 따스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 그것을 보는 자를 매혹했다.
태초의 신살검이 머금고 있던 신성한 힘…… 지금 이 검은, 그 권능의 일부를 분명하게 되찾았다!
하지만 변화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검의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과 동시에, 영핵 결합으로 인한 변화도 찾아왔다.
- [흑영신주]와의 융합으로 인해 신살검이 본래 지니고 있지 않았던 가능성을 일시적으로 개화합니다. 신살검이 SS+랭크가 되었습니다. 검의 단단함과 예기가 증폭되며, 모든 특수능력의 위력이 극대화됩니다!
- 흑영신주의 특수능력 [흑영]을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특수능력 [영검]이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
[성검]과 [영검]이 융합되어 특수능력 [혼돈의 검]이 개방됩니다. [혼돈의 검]과 [살의제어], [수호]가 융합되어 특수능력 [여명]이 개방됩니다.
당최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자의 나열이 강신혁의 눈앞을 휙휙 지나가 그를 정신없게 했다.
신살검이 엑스칼리버를 소화시킨 결과 새로운 특수능력을 얻고, 거기에 흑영신주를 끼운 덕에 생겨난 특수능력과 합쳐져 새로운 특수능력이 생겨났는데, 또 그 특수능력이 원래 신살검에 있던 두 개의 특수능력과 결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특수능력이 되었다고…….
잘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엄청 강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강신혁은 곧장 그 특수능력의 정보를 확인했다.
[여명 - 어둠을 사르고 빛을 불러온다. 특성을 발현하게 될 경우 모든 스테이터스, 특수능력, 스킬의 힘을 쏟아 부어 여명의 일격을 연성한다. 모든 것을 벤다.]
“좋아, 바로 여명을 써서……."
- 능력이 부족하여 특수능력을 발현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발현하게 될 경우 죽음에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왜 개방했어!?
대충 능력을 훑어보고 곧장 특수능력을 발현하려던 강신혁은 다급히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우습게도 특수능력들이 모조리 여명에 흡수된 탓에 당장 그가 다룰 수 있는 신살검의 능력은 외려 떨어지기까지 했다!
‘역시 빼버리고 극천신주를 넣어야겠어.’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놈의 거대한 몸속에 파묻혀 실시간으로 영력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 때.
지금 상황이 여유롭게 특수능력이나 탐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극천신주가 과연 적의 힘을 빨아들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강신혁이 다룰 수 없는 흑영신주보다는…….
- 우우웅
그러나 강신혁이 흑영신주를 뽑아버리려는 그때였다.
흑영신주가 기이한 울음을 토해내며 스스로 특수능력을 발현했다.
[여명]이 아니라, 원래 흑영신주가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능력인 [흑영]을.
‘아, 이게 있었지.’
특수능력의 융합 메시지가 너무 요란한 나머지 강신혁도 잊어먹고 있었다.
그야 이 게이트의 보스였던 그림자의 근원을 강신혁이 힘을 보태 압축시키기까지 했으니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능력도 극천신주 못지않게 대단하리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원래 보유하고 있던 특성까지 포기할 만큼 대단하지는…….
- 그우오오오아아아아아아아아!
않을 것이라고, 강신혁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기기기기기기기긱!
맹렬히 회전하는 선풍기에 하드보드지가 끼었을 때처럼 짜증나고 거북한 소리가 났다.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이 섬뜩한 비명은, 당연히 혼돈의 침전물이 발하는 소리였다.
주위 모든 어둠을 신살검이…… 정확히 말하자면 신살검의 가드 부분 중앙의 구멍에 박힌 흑영신주가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극천신주의 능력인데.’
아니, 냉정히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극천신주는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여 저장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를 구성하고 있는 육신마저 빨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니 이것은 흑영신주의 능력이었다.
[흑영 - 그림자의 주인이 된다. 어둠 속에서 지극히 은밀해지며,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크게 상승한다. 어둠 속성의 모든 공격의 데미지를 반감시킨다. 모든 어둠을 흡수해 그림자에 저장하며, 그 양에 따라 영구적으로 능력이 상승한다.]
그 대상이 어둠이기만 하면 설령 의지를 갖고 있는 육신의 일부라 할지언정 가차 없이 빨아들이는 절대의 권능.
극천신주가 모든 계열의 에너지에 강한 간섭력을 지닌다면, 흑영신주는 오직 어둠에 한해서만 절대적인 권능을 행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나오고 싶어 했던 거냐.”
- 우우우웅!
그렇다면 어째서 섀도 엘레멘탈들을 상대할 땐 얌전히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이렇게 어둠을 빨아들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결정적인 순간까지 자신의 힘을 아껴두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자신의 주인이 된 자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이 전투가 끝난 후 녀석과 심층면담을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나중에 판단하는 걸로 하고.”
강신혁은 고개를 들었다. 초조감은 물러가고 자신감이 차올랐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방에서 그를 압박하고 들어왔던 적의 기운이 이제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놈이 자신의 몸에서 강신혁을 쫓아내려 발악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흡!”
그러나 강신혁이 순순히 물러나줄 필요가 있겠는가?
그는 발밑에 공기를 압축시켰다가 터트려, 자기 자신을 대포알 삼아 혼돈의 침전물 속으로 깊숙이 파묻혔다!
손에 들고 있는 신살검이 진공청소기처럼 사방의 어둠을 빨아들여 제 안에 가두며 길을 시원하게 트고 있었다.
- 구오오오오오오오!
아마도 강신혁이 혼돈의 침전물의 몸통 바깥에 있었다면, 놈이 강신혁을 상대하느라 이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놈에게는 온갖 특수능력과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몸의 성질을 바꾸어 대지를 통째로 짓누르는 메테오와 비슷한 몸통박치기 스킬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 우우우우웅!
그러나 이미 한 번 몸속에 가둔 적을 상대로 스킬을 쏘아낼 수는 없었다.
몸통이 워낙 거대한 나머지, 스스로의 몸에 공격을 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육신이 실시간으로 신살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본래 핵을 공격당하지 않으면 몸이 아무리 손상을 입어도 금세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기운을 빨리는 속도가 더 빨라 복원이 손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한편 강신혁도 그리 여유롭지는 않았다.
막상 능력이 전개되고 나자, 흑영신주가 어둠을 빨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핵을 찾아야 해.’
공기의 압축과 폭발이 반복되며 강신혁을 혼돈의 침전물 속으로 깊이, 또 깊이 밀어 넣었다.
강신혁은 어둠을 빨아들이는 흑영신주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활용했다.
마치 편지지 가득 채웠던 러브레터의 문구를 지우는 지우개처럼 혼돈의 침전물 속을 폭발적으로 날아다니며 어둠을 모조리 지우고 또 지웠다!
‘어딨냐. 네가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추고 있는 걸 밝혀.’
여태껏 상대했던 적들은 영혼을 다루는 방법이 능숙하지 않아, 영력으로 이렇게 긴 시간 접촉하고 있으면 약점이나 핵심 같은 것들을 읽어내는 것도 쉬웠다.
하지만 놈은 달랐다. 거대한 영력의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몸이다 보니 영력으로 놈을 해석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살검의 새로운 능력에 적이 위축된 지금은 한결 수월하게 놈을 탐색할 수 있었다.
영혼의 싸움이란 즉 정신의 싸움. 실시간으로 몸을 파 먹히며 당황하고 있는 놈의 정신에 균열이 생겨, 강신혁의 영력이 그 틈을 파고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건 처음이라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연습이 됐어.’
강신혁의 영력이 놈의 몸속을 질주했다.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린 놈이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강신혁이 몸을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며 어둠을 빨아들여대는 통에 제대로 방어에 집중하지 못해 결국 핵의 위치를 내주고 말았다.
‘찾았다.’
그 순간, 강신혁은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의 영력이 목적지를 찾은 순간 자연스럽게 윈드 마스터리가 그에 반응해, 그의 몸을 강하게 앞으로 떠민 것이다.
손에 들린 신살검을 똑바로 앞으로 내밀고, 그의 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그리 멋진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척 효율적이었고, 강력했다.
‘더 빠르게.’
압축된 바람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그를 쏘아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몸을 영력으로 이루어진 바람의 기류가 감싸고 보다 자연스럽게, 보다 빠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보조했다.
강신혁은 푸른 소 없이 혼자의 힘만으로 하늘을 나는 방법을 깨달았다.
‘더 강하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어둠을 빨아들이는 흑영신주의 능력에 슬슬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아까 가이아 시스템 메시지가 알려주었다.
‘라이트 마스터리.’
그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아직 B랭크밖에 안 되는 숙련도, 그리 강한 빛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딱 좋았다. 주위의 어둠이 아주 약간 위축되고, 손에 쥐고 있는 신살검에도 물론 조금의 영향이 미쳤다.
그러나 단순히 약화시키는 데에서 끝난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
적절한 자극을 받은 흑영신주는 그에 반발하듯이 더욱 강한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둠을 잡아먹지 못한 빛이 그림자의 힘을 늘려주고 있었다.
빛과 어둠의 속성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융화시킬 수 있을지, 강신혁은 짧은 깨달음을 얻었다. 마음 같아선 이걸 좀 더 연구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 회원님!
하지만 그때 날아든 관리자의 짧은 메시지가 강신혁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어느덧 눈앞에 거대한 검은 구체가 놓여 있었다.
아까 마주했던 그림자의 근원의 진체보다 오히려 조금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이 녀석도 흑영신주처럼 변하려고 하진 않겠죠.”
- 오히려 이것은 그림자의 근원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흡수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래서 대뜸 날 집어삼켰던 건가.”
하지만 그림자의 근원이 흑영신주가 되어, 그것이 신살검과 융합하여 어떤 힘을 낼지는 전혀 모르고 찾아온 모양이지.
강신혁은 히죽 웃고는, 너무 많은 힘을 발휘한 나머지 조금씩 비명을 지르는 흑영신주를 달래며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럼 오늘의 메인 디쉬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혼돈의 침전물의 핵이 일순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 안의 기운이 당장에라도 폭발하려는 것처럼 고조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 푸욱
강신혁은 아무 망설임 없이 그것에 신살검을 꽂아 넣었고, 세상을 집어삼킬 듯 부풀어 오른 기운은 모조리 신살검으로 쏟아졌다.
흑영신주가 음산한 빛을 발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마 녀석이 여태껏 먹어 치워온 어둠 중에서 가장 끝내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