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 Chapter 31. 액셀러레이터를 당기다. - 1 >
- 회원님, 경계하세요. 침식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지금 이대로 홍대 거리로 침식이 일어나면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닐 텐데.”
한국에 한해 말한다면 대역류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밀집도가 높은 지역의 게이트는 한층 엄격한 관리를 받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그 점을 감안한다면, 신영이 강신혁과 백인하를 이 게이트에 밀어 넣은 것은 제법 위험한 도전이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능력을 얼추 감안하고 있었기에 이번 실습을 감행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 아닙니다, 회원님. 이 게이트가 지구를 침식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강신혁은 관리자에게 반문하며 숲을 헤쳐 나갔다.
분명 성벽에서 뛰어내려 숲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째 까마득하게 먼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관리자가 답을 내놓았다.
- 외계가 이 게이트를 침식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림자의 근원의 이상 변이에 반응한 듯합니다.
“그런 게 가능해!?”
- 일반적인 게이트는 불가능합니다. 이레귤러 게이트로 변이했다는 증거겠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레귤러 게이트로 변이하자마자 즉각적인 침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회원님을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들?”
- 회원님도 알고 계시는 자들입니다.
관리자는 짧게 끊어 말하더니, 이어 단호하게 선언했다.
- 침식의 여파로 게이트가 점점 확장되고 있습니다. 회원님, 일행과 합류하고 싶으시다면 바이크를 꺼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쯧......!"
푸른 소는 굉장히 특징적으로 생긴 바이크이고, 강신혁이 파리에서 신은혁의 모습으로 그것을 타고 날뛴 탓에 몇 번 미디어 매체에서도 언급되었다.
즉 그것은 이미 신은혁이 소지한 바이크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여기서 그것을 꺼내들면 안형주에게 정체를 들킬 수 있겠지만…….
“그것보단 사람 목숨이 중요하니까.”
고뇌는 0.1초보다 짧았다.
강신혁은 곧장 푸른 소를 꺼내어 올라타고는 영핵에 신풍의 보주를 끼웠다.
“전속력!”
- 우우우웅!
푸른 소도 강신혁의 마음을 읽어낸 것인지 최대마력을 발휘해 하늘로 솟구쳤다.
강신혁의 품에서 흑영신주가 노골적으로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과 같은 자아를 가진 물건을 만나게 되어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신혁은 녀석을 신경써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저거, 뭐야……?”
나무로 빽빽한 숲을 단숨에 솟구치고 하늘로 비상한 지금에서야 비로소, 게이트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침범당하고 있어.”
- 우웅…….
하늘 위로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원래도 이 게이트의 환경은 밤이었지만 그것과는 종류가 다른 어둠이었다.
빛을 찢어발기는 어둠이었다.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한없이 무거우면서,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어둠.
- 외계입니다. 지표를 정확히 잡아낼 수 없군요. 세계 전체가 옮겨오지는 않겠지만 가만히 있다간 정말로 일행과 멀리 떨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서두르죠.”
그 어둠 속으로부터 튀어나오는 섀도 이터와 비슷한, 그러나 비교도 안 되게 섬뜩한 무언가들의 시선을 느끼며 강신혁은 액셀을 당겼다.
신풍의 보주와 융합한 푸른 소가 전속력으로 허공을 내달렸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 푸른 뇌전과 황금의 바람이 뒤로 쭉 늘어지며 잔상을 남겼다.
- 회원님이 선보이는 멋진 레이스에 감탄한 관리자의 50,000HP 보너스!
“다행히 매번 10만 포인트씩 주는 건 아니네요. 그래도 너무 많아졌지만.”
- 하지만 정말로 빨라지셨습니다. 50,000HP 보너스!
“그러니까 이제 두 번에 나눠 주겠다 이거지……."
푸른 소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신풍의 보주도 많이 회복되었고, 뭣보다 그것을 운전하는 강신혁의 능력이 성장했다.
황룡투기가 푸른 소의 내장엔진을 강화하고, 영력으로 근원을 자극한다.
바로 조금 전에 치렀던 전투 덕분일까, 황룡투기와 영력을 동시에 운용하는 강신혁의 센스는 이제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신혁아!”
그러니 제아무리 게이트의 침식과 동시에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어도, 그것을 뛰어넘는 속도로 목표했던 성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바이크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그런지, 안형주는 강신혁이 바이크를 성벽 위에 세우고 나서야 간신히 그를 인식했다.
“바이크는 대체 어디서…… 엇, 그 바이크 혹시……?”
“얘기는 나중에.”
- 뀨뀻!
강신혁은 푸른 소를 인벤토리에 넣고 성벽에 착지했다.
성벽과의 동화를 풀어버린 오닉스가 잔뜩 쫄아버린 모습으로 강신혁에게 달려와 안겨들었다.
녀석을 토닥여주며 힐끗 주위를 둘러보니, 성벽의 일부가 세상을 잠식하고 있는 어둠에 아주 조금씩 먹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젠 당최 거리감도 제대로 잡히질 않는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공간이 얼마나 넓은 것인지, 저 어둠이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디까지 기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숲에서 뭔가 하는 것 같긴 했는데, 그 직후 갑자기 하늘이 이상해졌어. 섀도 이터들이 사라진 건 좋지만 지금은 다른 뭔가가……."
- 샤아아아
그 다른 뭔가가, 지금 하늘에서 그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같이도 보였고, 검은 빗줄기처럼도 보였다.
저것들에 비하면 그래도 섀도 이터는 형체가 뚜렷한 편이었구나.
강신혁은 그것을 절감하며 신살검을 치켜들었다.
- 게이트 환경 변화에 의해 ‘어둠이 기어드는 성벽(S)’이 ‘어둠에 잠식된 모형정원(SS)’으로 변이합니다!
- 섀도 이터보다 한층 순수한 속성의 몬스터인 ‘섀도 엘레멘탈’입니다. 그림자의 근원이 자체적으로 몬스터로 변이를 일으킬 때 나타나는 몬스터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SS랭크 상당의 힘을 갖추고 있어 이전처럼 쉽게 죽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이아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관리자가 강신혁에게 경고했다.
백인하와 안형주 역시 가이아 시스템의 메시지만은 똑똑히 들었으리라. 저마다 혀를 차며 전투 준비를 했다.
안형주는 탱커인 듯 커다란 방패에 자신을 숨기고 있었고, 백인하는 언제나의 부츠에 더해 양손에 하나씩 단검을 쥐고 있었다.
아마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것치고는 제법 폼이 그럴싸했다.
- 샤아아아아!
개중 가장 가늘고 길다란 빗줄기가 강신혁을 향해 쏟아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신살검에 영력을 흘리며 그것을 베었다.
하지만 끝맛이 살짝 부족했다. 한 방에 적을 죽였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적의 형태를 명확히 잡을 수 없어 급소를 베어내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영혼독까지 흘렸으니…….'
- 샤아아악!
강신혁의 머리카락보다도 가느다란 모습으로 내리꽂혔던 적은 다음 순간 팝콘처럼 허공에서 크게 확장되며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나, 비록 한 방에 죽지는 않았어도 영혼독은 확실하게 효과가 있는 모양.
그렇다면 망설일 것이 없다! 그는 신살검을 일단 바닥에 박아 넣고 다급히 양손을 펼쳤다.
소울 커넥터로 흘러든 영력이 열 가닥의 영혼의 실로 화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역시 신은혁이었잖아!”
“조용히 해봐요, 좀!”
영사에 곁들이는 것은 숙련도 S-랭크의 윈드 마스터리.
그가 벤어낸 실은 뼈대가 되고, 그것을 휘감는 바람은 육신이 된다.
강신혁이 만들어낸 바람을 타고 뻗어나간 영혼독이 그들 일행을 노리고 덮쳐오는 그림자의 비에 맞섰다.
- 샤아아아!
- 키이이이이이!
무수히 쏟아지는 빗줄기를 걷어내는 강신혁의 공격은 우습게도 커다란 우산을 펼치는 것처럼도 보였다.
열 가닥의 살을 기둥으로 삼고 퍼져나간 바람이 우산처럼 막을 형성해 빗줄기를 튕겨내는 것.
다만 그 일제공격에 당한 섀도 엘레멘탈들은 형체를 일그러트린 채 바닥에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었다.
“뭐해? 죽여!”
“그, 그래야지!”
“좋아, 간다!”
강신혁이 보여준 놀라운 광경에 아연해있던 백인하와 안형주는 그의 날카로운 외침에 제정신을 찾곤, 기력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섀도 엘레멘탈들을 향해 공격을 쏟아냈다.
안형주는 방패를 들고 무식하게 돌격해 한 마리씩 죽이는 반면, 백인하는 바닥을 박차며 양발 끝에 푸른 마나의 결정을 형성해 가까운 놈부터 차례대로 한 방씩 걷어차 죽였다.
빛의 구슬의 폭발이 잔상을 남기며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이, 마치 성벽을 도화지로 삼아 별자리를 그려내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빨라……!”
“아저씨가 느린 거거든?”
영혼을 직접 타격하는 강신혁의 공격만 한 위력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마력을 불어넣은 공격이면 적에게 최소한의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영혼독에 당해 실시간으로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적의 마무리를 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얘기다.
“시뇩아, 이 새끼들한테 공격 더럽게 안 먹히던데 어떻게 한 거임?”
“그림자를 베라.”
“개새끼야.”
구라를 치진 않았는데.
강신혁이 새로 만들어낸 장갑에서 뿜어져 나오는 실은 영사(靈絲)이며 영사(影絲).
즉 영혼의 실이면서 동시에 그림자의 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림자로 이루어진 이놈들을 공격하기에는 찰떡이었다.
그림자를 타고 기어오는 놈들을, 그림자 속까지 침투하는 실이 찔러 죽인다.
미리 약속을 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전개였다.
- 샤아아아아악!
- 샤아아아!
강신혁은 현란하게 양손을 휘둘러 그들에게 접근해오는 섀도 엘레멘탈들을 한 번에 수십, 수백 마리씩 쳐내고 찌르고 갈라내며 만족스레 중얼거렸다.
“여러모로 하드 카운터란 말이지.”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그림자는 결국 빛의 반대편에 생기는 것.
이 작은 게이트에선 지금 얼마 없는 빛마저 집어삼켜지고 있는데, 결국 빛이 모두 사라지게 되면 그림자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그림자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 빛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많으니까요. 회원님이 살고 있는 지구 또한 그중 일부입니다. ‘어둠이 기어드는 성벽’과 같은 게이트는 그래서 다양한 세상에 나타납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스케일이 큰 얘기가 되네요.”
- 하지만 발상은 좋습니다. 저들에게 빛이 약점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물론 저들 역시 그것을 알기에 빛을 집어삼키려 달려드는 것입니다만.
‘으음.’
- 이번 기회에 회원님도 빛으로 공격하는 수단을 갖추시는 게 좋겠습니다. 빛에는 신성이 있어 언데드를 상대로도, 마족을 상대로도 유효하니 최우선적으로 얻어야 하는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백인하!”
“엉!?”
강신혁은 관리자의 말을 듣곤, 열 개의 실 가닥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백인하에게 말을 걸었다.
백인하는 강신혁이 만들어낸 그림자의 공백지대를 중심으로 지금도 빠르게 움직이며 섀도 엘레멘탈들에게 마무리 타격을 가하고 있었는데, 슬슬 녀석도 섀도 엘레멘탈에게 적응한 것인지 부정형의 몸체에 확실하게 공격을 꽂아넣고 있었다.
“너 빛으로 공격하는 수단 같은 건 없냐?”
“난 빛처럼 빠른 거지 빛나는 게 아니거든.”
“그럼 어쩔 수 없나.”
이러기는 싫었는데. 강신혁은 눈을 질끈 감고 관리자에게 물었다.
‘관리자님이 말하는 건 그러니까, 라이트 마스터리 같은 거죠?’
- 바로 그렇습니다!
관리자의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강신혁은 어쩌면 관리자가 자신에게 보너스를 퍼부어주는 것은 다 이런 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강렬한 기시감이 든다. 관리자가 그에게 레지스트 포이즌을 추천했던 때가 생각이나 견딜 수가 없다.
- 회원님은 본래 불과의 친화도가 턱없이 높지만, 그런 만큼 불과 일부 속성을 공유하는 빛과의 친화도도 높으신 편입니다. 더불어 이번에 신살검에 흡수시킨 엑스칼리버의 근원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빛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셨으니, 라이트 마스터리를 익힐 조건은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 그럼 차라리 파이어 마스터리를.’
- 파이어 마스터리는 나중에 익히셔도 충분합니다. 라이트 마스터리를 익히시면 앞으로 제작하고 다룰 수 있는 병기의 계열도 늘어납니다!
‘……계열?’
- 바로 빔 병기입니다.
‘제가 살 수 있는 제일 좋은 걸로 사죠.’
빔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강신혁은 반사적으로 즉답하고 말았다.
- 라이트 마스터리(SS)의 스킬 스톤을 35억HP에 구매합니다. VIP 특별할인가 21억 4,500만 HP로 구매 성공했습니다!
중2병의 발작을 억제하지 못한 대가로 전 재산이 털렸다.
오히려 3차 해방이 진행되면서 받은 20억 HP 외에 그가 1억 4,500만 HP를 벌어두고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울 정도다!
아니 물론 속성을 다루는 스킬이 비싸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고, 하물며 희귀도 SS급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35억 HP를 21억 4,500만 HP까지 깎아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전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비싼 거면 사기 전에 한 번은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SS등급 스킬은 매물로 잘 풀리지 않는데, 얼마 전에 가입한 머저리…… 실례, 회원이 적정 판매가보다 턱 없이 낮은 가격에 덜컥 매물로 올려놓았습니다. 관리자 권한으로 감춰두고 있지 않았더라면 다른 회원에게 털렸을 겁니다.
‘그 발언은 관리자로서 여러 가지로 문제 있는 것 아닌가요?’
아무튼 이미 사버린 스킬 스톤을 어찌할 것인가.
그는 한 번 영사를 강하게 뿜어내 영혼독을 스팀처럼 강하게 분사하고는 샵 인벤토리에서 스킬 스톤을 꺼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