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Chapter 30. 3차 해방 - 7 >
- 샤아악!
- 샤앗, 크샤샷!
성벽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한 강신혁을 향해 섀도 이터들이 무수히 몰려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갑자기 성벽이 독을 바른 가시 성벽으로 바뀌어 쩔쩔 매던 통에 먹음직스러운 기운을 품은 놈이 홀로 바깥으로 튀어나온 꼴이었으니.
‘실을 쓸까? 아니.’
실을 쓰게 되면 숨기고 있는 신분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은 둘째 치고, 한 가지 무기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은 명색이 모든 무기를 다루는 황룡투의 주인으로서 너무 안일한 짓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신살검을 가만히 놔두고 있었던 탓에 어제 엑스칼리버를 먹이기 전까지 녀석이 제법 삐져 있었던 상태이기도 했고. 더구나 어제 신살검에 엑스칼리버를 먹이며 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라, 그도 그것을 직접 몸으로 재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연 신검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능숙한 몸짓으로 검을 다루던 오주영, 그 오주영의 검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고 반격하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을 들고 있던 여자.
그 여자가……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인다.
분명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일 텐데.
그 존재감이나 그녀가 휘두르던 검이 어딘가, 그래, 어딘가.
“직접 해보면 알겠지.”
황룡투를 가지고 있는 그는 이젠 어지간한 스킬을 보아도 그 요체를 깨닫고 스스로의 움직임에 반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전엔 높은 경지의 움직임을 보고 해석해내도 정작 그것을 실제로 옮겨낼 신체 스테이터스가 부족했는데, 지금은 아티팩트 빨이 있다곤 해도 모든 신체 스테이터스가 SS랭크대에 진입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오히려 시간만 많이 주어진다면 개량까지 해낼 자신도 있었다.
"후......."
섀도 이터들이 그의 전신에 들러붙어 그의 영력과 육신을 갉아먹으려는 그때.
강신혁은 왼손으로 신살검을 뽑아 쥐고는 가볍게 심호흡했다.
황룡투기가 황금의 빛을 발하며 그의 혈관을 타고 질주한다.
그의 근원으로부터 퍼올린 영력이 그 위를 부드럽게 덮어 그 효용을 끌어올리며, 검신 끝에 맺혀 치명적으로 빛났다.
황룡의 힘이 맺힌 강신혁의 두 눈에 섬뜩한 스크래치가 새겨진 다음 순간.
“흡!"
그는 검을 휘둘러 눈앞을 덮쳐드는 놈들을 차례차례 베어내기 시작했다.
- 크악!?
- 도, 독이다.
신살검에는 강신혁의 영력이 듬뿍 흐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영혼독으로 화했다.
그리고 섀도 이터는 영체인만큼 영혼을 직접 타격하는 영혼독과는 상성이 가히 최악이었다.
그러니 검이 스치기만 해도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흡……!”
당장 몸에 달라붙는 놈들을 털어낸 강신혁은 검을 고쳐 쥐고는 어제 보았던 검의 움직임과 완벽히 같은 궤적을 그려냈다.
오주영의 검을 막아내던 그 간결한 움직임, 뒤를 잇는 깔끔한 가로베기로 오주영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그 궤적.
그것을 신살검에 담아낸 순간, 강신혁의 주위로 몰려들던 섀도 이터들이 일제히 베여 소멸했다.
섀도 이터들이 남긴 조각들이 자동루팅 기능으로 인해 인벤토리로 속속들이 회수되었다.
- 키, 키이익…….
- 우리 존재를 건드리는 검. 저 자는 위험하다.
- 위험해, 아버지가 위험해.
섀도 이터들은 강신혁이 자신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위축되어 물러났다.
간단한 베기 한 번으로 적 전체를 물러나게 만드는 것.
이만하면 그 여자의 움직임의 요체를 가져오는 데에 반쯤은 성공했다고 봐야 할 터였다.
“좋아, 조금 감이 오네.”
강신혁이 만족스럽게 중얼거리며 묻은 것은 없지만 괜히 기분 상 신살검을 허공에 한 번 털어내는데, 의외로운 메시지가 그의 망막을 간질였다.
- ‘엑스칼리버 - 마룡의 송곳니’에 관한 이해도 높은 동작을 선보이는 것으로 인해 신살검의 소화 속도가 빨라집니다.
- 동기화가 미약하게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48.7%
"응?"
엑스칼리버의 근원을 건드려서일까, 소화 속도가 빨라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동화율까지 가속되었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뿐 아니라 검을 분석하는 과정이 섞여있었기 때문일까?
정확히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땡잡았다.
‘이 숲에서 완전 소화를 시키는 걸 목표로 하자.’
가능하면 동화율 50% 달성까지 이뤄보고 싶지만 그건 역시 도둑놈 심보일까.
사냥감이라면 지천에 널려있다. 강신혁은 슬금슬금 물러나는 섀도 이터들을 보며 사나운 미소를 짓곤, 놈들을 향해 과감하게 덤벼들었다!
- 도망쳐라!
- 우리 혼을 녹이는 인간이다!
“어딜 도망가!”
- 야수 같은 회원님께 15,000HP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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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기화가 미약하게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48.8%
관리자의 메시지를 배경으로 삼아 강신혁은 섀도 이터 학살극을 개시했다.
물론 진짜 목적은 놈들을 자극해 근원이 있는 위치를 알아내는 것.
그러나 성벽 너머에는 침엽수들이 잔뜩 자라난 기분 나쁜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대부분의 섀도 이터들이 그 숲에서 뛰쳐나오는 상황에 근원의 위치를 명확히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 ‘엑스칼리버 - 마룡의 송곳니’에 관한 이해도 높은 동작을 선보이는 것으로 인해 신살검의 소화 속도가 빨라집니다.
- 동기화가 미약하게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49.1%
“이 자식들 영체라서 그런지 움직임이 빠르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극적인 위력보다도, 검의 사정거리를 최대로 늘려줄 기술이 필요하다.
강신혁에게 그런 스킬은 없지만, 대신 이런 상황에 쓰기에 적합한 보물이 있었다.
바로 신풍의 보주였다!
- [신풍의 보주]와의 융합으로 인해, 신살검이 본디 지닌 격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되찾습니다. 신살검이 SS-랭크가 되었습니다. 검의 단단함과 예기가 증폭되며, 모든 특수능력의 위력이 증폭됩니다!
- 신풍의 보주의 특수능력 [회복]과 [재생]을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특수능력 [바람의 칼날]이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
신풍의 보주는, 누누이 말하지만, 아직 기운을 회복하고 있는 물건이다.
강신혁의 영력이 제법 늘어나고서부턴 매일 자신에게 남는 영력을 신풍의 보주에 부어가며 회복을 돕고 있었지만 아직 전체적인 회복도로 따지면 50%를 조금 밑도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극천신주를 끼웠을 때처럼 극적인 능력은 보여줄 수 없지만, 지금의 강신혁에겐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바람의 칼날!”
신풍의 보주를 끼워 전체적으로 황금빛을 띠게 된 신살검의 검신이 돌연 수십 미터 이상 쭉 뻗어났다.
금속이 길어진 것이 아니다. 신풍의 보주가 뿜어낸 바람으로 이루어진 바람의 칼날이 돋아난 것이다.
이대로 휘둘러도 충분히 강력하지만 진짜는 이 정도가 아니다.
무려 이 바람의 칼날에는 영력을 증폭시켜주는 효과까지 딸려 있었던 것이다!
‘이만하면 정말 SS급 아티팩트라고 해도 되지.’
SS급이라고 말하기도 미안하다.
강신혁은 훗, 웃음을 흘리며 검을 가볍게 가로로 그었다.
전방 수십 미터를 영혼독을 품은 영력의 칼이 훑고 지나가며 그 범위 안에 있던 모든 섀도 이터를 쓸어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시야를 막던 우중충한 침엽수들도 한방에 쓸려나가며 단숨에 눈앞이 밝아졌다.
- ‘엑스칼리버 - 마룡의 송곳니’에 관한 이해도 높은 동작을 선보이는 것으로 인해 신살검의 소화 속도가 빨라집니다.
- 동기화가 미약하게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49.3%
강신혁은 순식간에 텅 빈 전방으로 달려 나가며 씩 웃었다.
“극천신주보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드네.”
- 10,000HP 보너스!
아무래도 관리자 역시 동감인 모양이었다.
- 아버지가 위험해.
- 하지만 우리가 살아나려면.
- 도망쳐, 어쨌든 지금은……!
섀도 이터들은 급기야 어둠 속 그림자에 숨어 모습을 감추고 도주하기 시작했지만, 영혼을 베어낼 수 있는 강신혁 앞에선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흡!”
섀도 이터들이 숨은 그림자에 신살검을 꽂고, 검신을 통해 바람을 폭발시켰다.
영혼독을 품은 바람이 일대의 지면과 그림자를 함께 헤집으며 놈들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혔다.
감히 단언컨대, 영혼독과 바람의 조합은 가히 사기라고 할 수 있었다.
- 동기화가 미약하게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49.4%
“몸이 가벼워.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 그 말에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회원님?
“보스 소환 주문이요. 그런데 아직 안 보이네요.”
아직 영력은 남아돈다. 강신혁은 눈에 보이는 섀도 이터 무리와 나무를 모조리 바람의 칼날로 베어버리며 어둠이 잠식한 숲 속 깊숙이,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던 와중 드디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건가.’
섀도 이터들이 기운을 감추는 방법이 워낙 능숙해 놈들에게 익숙해지는 데에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놈들과 싸우며 계속 영력으로 접촉을 거듭하다 보니 놈들의 습성, 움직이는 고유의 방법, 나아가 놈들의 기억의 일부까지도 조금씩 강신혁에게로 흘러들어왔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니 슬슬 강신혁의 머릿속에도 이 숲의 지도와 놈들의 행동양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갈까. 부산물도 이만하면 많이 확보했고 동화율도 49.6%까지 올랐으니. 근원을 해치울 즈음이면 엑스칼리버 소화는 물론이고 3차 해방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겠어.’
강신혁은 신풍의 보주를 회수했다.
섀도 이터들이 일컫는 근원이라는 것은 거대한 암흑 에너지의 덩어리.
그것을 상대하고자 한다면, 신풍의 보주보다는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극천신주 쪽이 더 좋을 것이다.
- 흠?
그때 관리자가 애매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 숲 안에서 풍겨오는 기운이 관리자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어떤 식으로 다르죠?”
- 섀도 이터들의 근원, 그 성능이 관리자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명 이레귤러 게이트는 아닙니다만…… 어쩌면 앞으로의 상황 여부에 따라 게이트의 클리어 목표가 변화, 즉 부분적인 이레귤러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네요.”
안 그래도 섀도 이터만으로는 심심했던 터다.
S+급, 인심 좀 써서 SS-급까지는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라.
강신혁은 그렇게 대꾸를 하면서도 일단 황룡투기를 한층 끌어올려 전신을 덮었다.
힘과 민첩, 체력의 중급 스테이터스 포션도 사두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최대로 올려줄 수 있는 랭크가 SS랭크까지.
힘은 제한에 걸려 한 단계밖에 상승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저런 의미에서 3차 해방이 절실했다.
‘그래도 포션을 모조리 복용한 상태에서 다시 소울 커넥터의 효과를 받아 SS+랭크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어. 클레어의 초월 포션을 빌리지 않고도 이 정도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 감사해야겠지.’
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강신혁은 자신을 이끄는 근원의 기운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근처에 보이는 섀도 이터들을 가볍게 칼로 찔러 죽이며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시야에 방해가 되는 나무를 베어낸 다음 순간 강신혁은 눈앞이 막막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눈치를 채고 보면, 그것은 그저 검고 거대한 덩어리였다.
너무 검은 나머지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이 감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 들켰다! 아버지 들켰다!
- 보호해!
섀도 이터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던 것은 역시나 이 근원이었다.
여태껏 어디에 숨어 있던 것인지, 섀도 이터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강신혁을 물어뜯었다.
설령 하이랭커라고 해도 그림자를 타고 기어와 자신의 목을 깨무는 섀도 이터의 무리를 상대로 초연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강신혁은 놈들에게 일부러 저항하지 않았다.
단지 전신을 덮고 있는 황룡투기 위로 거센 영력의 흐름을 다시 만들어낼 뿐이었다.
강한 물리력을 지닌 괴물이었다면 힘들었겠지만, 섀도 이터를 상대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크엑!
- 도, 독이다!
- 구에에에에엑!
근원을 지키고자 죽음의 각오로 강신혁을 덮쳤던 섀도 이터들이 마치 살충제에 얻어맞은 파리처럼 비틀거리며 떨어져나갔다.
강신혁의 전신을 덮은 영력, 그 안에서 발현된 영혼독을 뜯어먹으려 했으니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영혼독(SSS)]스킬의 숙련도가 성장합니다.
짤막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숙련도 랭크가 올랐다는 얘기도 아니고, 그냥 숙련도가 조금 올랐다는 메시지였다.
강신혁은 거기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SSS랭크의 스킬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부터 숙련도 올리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여태까지 실컷 써왔음에도 이제야 간신히 숙련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나타날 정도라니 .
‘초기랭크로 S+랭크를 받은 건 정말 다행이었구나.’
강신혁은 자신에게 전혀 위해를 끼치지 못하는 섀도 이터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에 지금도 섀도 이터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대한 암흑의 근원이 있었다.
- 준비하세요, 회원님 이레귤러화가 진행됩니다.
관리자의 메시지에 강신혁이 검자루를 쥐고 자세를 취했다.
놈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몰라도, 일단 검격을 한 방 먹일 생각이었다.
그 다음 순간 근원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신혁은 그것을 보며 검을 놓아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