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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 Chapter 30. 3차 해방 - 5 >

그 검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신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이 사용하던 가공의 검.

거기에 무수한 사람의 바람이나 집념 따위가 깃들어, 인간을 위한 검으로 새로이 탄생한 것이다.

그 검은 실체로 존재하지 않았으나, 인간의 마력을 빌어 실체화될 수 있었다.

검의 소유자가 된 이는 스스로를 선택 받은 인간으로, 전설 속 영웅의 현신으로,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 여겼다.

최강의 검.

최강의 인간.

최강의 존재.

그 착각 속에 계속 빠져있을 수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 끝까지 인류의 아군으로 남았으리라.

- 최강? 웃기는 이야기를.

그 여자가 그에게 진실을 깨닫게 하지만 않았더라면.

- 네가 만들어내는 그 검은 그럴 듯한 가짜일 뿐이야.

- 가짜……?

- 모든 특성은 전부 어딘가에 있던 것들을 정교하게 짜집기한 가짜에 불과하지. 아아, 그래. 몬스터들과 마찬가지야.

- 하, 헛소리.

- 짐작은 하고 있지 않아? 너와 우리,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관계…… 지나치게 정교하잖아? 마치 누가 그렇게 되도록 의도한 것처럼.

엑스칼리버의 주인은 적을 베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의 검기로는 적을 넘을 수 없었으니까.

지구의 인간들을 한참 초월하는 무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겠지, 지구의 초인전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절망적인 벽과, 그는 일찍도 조우하고 말았던 것이다.

- 너의 검은 지구의 수많은 신화에서 조금씩 따온 전승에, 과거 이 우주에 실제로 존재했던 ‘가장 위대한 장인’의 손길을 아주 조금 더해 완성한 물건이야.

물론 그것조차 카피일 따름이지만.

빛의 주인을 무릎 꿇려 의지를 꺾어버린 후, 그 여자는 재밌다는 듯 깔깔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 그러니까 네가 아무리 마력을 늘려도 결코 최강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야. 가짜가 진짜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 괴물 주제에!

- 몬스터와 너의 차이점은 단 하나, 입장뿐이야. 나머지는 모두 동일하지. 마치 거울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꼴이야.

- ……내가 그런 말 따위에 흔들릴 것 같나? 네놈들을 모조리 베고, 인류를 지켜낸다.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여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 하긴 우리도 꼭 너일 필요는 없으니까. 검 중에선 네가 갖고 있는 것이 최고지만, 창은 다른 후보가 있더라고. 걔로 하면 되니까.

- 큭!

그는 자신을 다른 누군가로 대체가능한 소모품 따위로 취급하는 여자의 말에 재차 발악했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그를 꺾었다.

그는, 흔들리는 빛의 주인은 여자의 앞에 무릎 꿇고 결국 궁금증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 뭘…… 한다는 거지?

- 진짜를 뛰어넘는 실험.

- 여태까지 실컷, 가짜로는 진짜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했으면서?

- 그래, 여태까지 줄곧 그래왔어. 그래서 질려. 이제 이런 건 그만두고 싶어. 빌어먹을 히어로 유니버스를 쳐부수고,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없는 혼돈의 세상을 열 거야.

그러기 위해선 가짜가 진짜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거울을 부수고 그 너머의 진짜를 모조리 무너트릴 수 있는 최초의 도미노 한 패가.

- 그래서 가짜 중에서 제일 우수한 가짜를 골랐어. 그게 너야, 기뻐해.

- 히어로 유니버스…… 는 뭐지?

- 네가 우리에게 온다면 가르쳐주지. 아마 많이 놀랄 거야. 스스로 가장 잘난 줄 알고 있던 네가, 실은 ‘진짜’의 기준에 한참 미달한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남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수긍하지 않았으나, 충돌은 한 번이 아니었다.

남자는 진즉 자신의 성장한계가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있었고, 앞으로 더 나아갈 길이 있다는 여자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모두가 그를 선한 사람으로, 구원자로 알고 있었지만 실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최강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 진짜를 뛰어넘는다고.

- 그래, 물론.

여자는 쾌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모루를 뛰어넘는 거야.

자신의 손에 들린 가짜의 원본이 되는 ‘진짜’를 만들어내는 이.

남자는 그 존재에 증오를 느꼈다.

도플갱어를 마주한 인간의 심정이 그럴 것인가?

- 그래, 함께하지.

남자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덧붙였다.

- 대신 그놈은 꼭 내가 죽이도록 도와줘.

- 누구를, 모루를?

- 그래.

여자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온 우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남자를, 네가.

- 그래.

- 그래!

여자는 즐거워하며 답했다.

-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봐. 자리는 만들어줄 테니까, 마음껏 날뛰어보자고.

- 지금부터는 인류의 배신자인가.

남자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검을 들어올렸다.

여자가 말한 가짜의 힘이 담긴 그의 애검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그 안에 남자의 추악한 얼굴을 비추었다.

- 그것도 최강의 수식으로는 나쁘지 않아.

@@@

- ‘엑스칼리버 - 마룡의 송곳니’를 완벽하게 먹어치운 신살검이 힘을 일부 되찾으며,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개성이 강한 무구의 힘을 완벽히 소화하기까지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오주영의 특성이 온전히 담긴 검을 신살검에 먹인 순간, 강신혁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흐릿한 기억을 읽어냈다.

어째서 오주영이 인류를 배신했던 것인지, 그리 궁금하지 않았던 정보에 대해서 대충 알 수 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몬스터가 가짜라는 건 이전 헤일로에게 들었던 얘기로 얼추 짐작할 수 있겠는데…… 특성도 마찬가지로 가짜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리야?”

이건 순서가 역이지 않은가? 인간들이 먼저 특성을 각성했기에 그런 특출난 인간들의 복제본, 몬스터들이 탄생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관리자님, 특성이란 대체 뭐죠? 오주영은 자신의 특성이 진짜를 카피한 가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요.”

- 흥미로운 얘기로군요, 하지만.

관리자는 드물게도 딱 잘라 말했다.

- 애초에 진짜니 가짜니 구분을 나누는 것부터 몬스터만의 어리석은 착각입니다.

“그런, 가요."

-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는 이 우주에서도 몇 명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중에 한 분은 회원님이시죠.

"......."

- 그렇다면 그 외의 나머지를 모조리 가짜라고 부를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모두 진짜입니다. 하물며 어느 행성에든 나타나는 고블린도, 모조리 진짜인 것입니다.

아마도 관리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설까, 강신혁은 오주영의 특성에 다른 비밀이 감추어져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요르문간드의 동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며, 동시에 어쩌면 전생의 그인 모루, 나아가 지금의 그와도 관련되어 있을 지 몰랐다…….

“네가 그 검을 전부 소화하면 조금은 알게 될까?”

- 우우우웅

오랜만에 식사를 하게 된 신살검이 그의 부름에 조용히 울었다.

그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피식 웃곤 자리에 앉아 숫돌과 수건을 꺼냈다.

녀석의 비위를 맞춰주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오주영의 기억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이상한 기억들 탓에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졌을 뿐이었다.

- 뀨?

“그래, 너도 소화에는 시간이 걸리겠지. 자라.”

- 뀨!

평소였으면 아무리 많은 식사를 해도 부족하다며 쓰레기 창고를 휩쓸었을 오닉스이건만 아무리 녀석이라도 그런 대단한 아티팩트를 집어삼키고도 더 식사를 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 뀨우…….

녀석은 신살검을 손질하기 시작하는 강신혁의 머리 위로 끙차끙차 기어 올라가, 얌전히 잠에 들었다.

하필이면 자리를 잡아도 거기냐며 강신혁은 조금 투덜거렸지만, 이내 신살검을 깔끔하게 손질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평소였으면 그를 괴롭히는 일들 때문에 작업능률이 떨어졌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오늘 작업의 결과로 동화율이 오른 덕일지도 몰랐다.

‘점점 애늙은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살짝 슬프지만.’

하지만 클레어는 성숙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괜찮겠지.

강신혁은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결국 강신혁은 신살검을 비롯해 자신의 모든 무장을 한 번씩 쓰다듬어주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

“안녕하세요, 뱅가드의 5팀 소속 안형주입니다. 두 분의 교육을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음날, 강신혁과 백인하는 한 명의 젊은 남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강신혁과 백인하의 게이트 실습 감독을 담당할 사람이라는 모양이었다.

“뭐야, 시뇨기.”

백인하는 안형주가 그들의 담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눈을 부릅뜨며 강신혁에게 따졌다.

“이 타이밍엔 우리 클레어 누님이 와야 될 타이밍 아니냐!?”

“왜 신은아 선배도 아니고 클레어 얘기를 하냐?”

“그야 뇌제는 이번에 국제초인랭킹 1위가 되기도 했고 저번에 한 번 왔었으니까 이번엔 못 오리라고 생각했지!”

“그러니까 왜 클레어가.”

“그게 흐름상 타당하잖아!”

강신혁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하며 자신에게 들이대는 쓸데없이 잘생긴 백인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그런 둘을 안형주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강신혁 군이 초인협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혹시 연금술사와도 친분이 있으신가요?”

“아, 그래도 선생으로 오신 건데 반말하셔도 돼요. 네, 뭐. 제가 야금술을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지원을 조금 받고 있습니다.”

“연금술사의 지원 말입니까……."

안형주는 지나치게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강신혁이 반말로 해도 된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의바른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강신혁은 신은아가 직접 나서 스카웃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학생이고, 이젠 거기에 연금술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으니까.

“……어라? 뇌제와 연금술사와 인연을 갖고 있는 젊은 남자…… 죽음의 인형사?”

그렇지, 슬슬 그 둘의 관계성을 사람들이 짐작할 때도 됐지.

하지만. 강신혁은 쓰게 웃으며 자기자신을 가리켜보였다.

“제가요?”

“아니, 역시 그럴 리가 없겠죠.”

안형주는 강신혁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야 강신혁은 백인하와 함께 초인양성학교 중 제일이라는 신영에서도 규격 외로 꼽히는 신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신인일 뿐이었으니까.

한편 죽음의 인형사 신은혁은 어떤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게이트로 손꼽히게 될 이번 SSS급 게이트에서 멀쩡히 생환하는 것으로 모자라 혁혁한 공을 세우고 급기야는 국제초인랭킹 5위에 오른 초신성이 아닌가!

아무리 초인사회가 나이보다는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라고 해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 대단한 뇌제조차 신영 1년생일 땐 랭커가 되지 못했으니까!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강신혁 군을 깔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지금 이대로만 발전하면, 언젠가 죽음의 인형사만큼 대단한 초인이 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어요.”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그래서 왜 아저씨가 우리 담당이에요?”

백인하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형주는 아직 20대였지만, 앞머리가 조금 까졌다. 아저씨라는 말은 그에게 크리티컬 히트였다.

“그, 그건…… 다른 신입생과 함께 실습을 진행하기엔 지나치게 강한 두 사람을 일단 한데 묶어놓은 것은 좋지만, 아무 사람이나 감독으로 붙여놓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죠.”

“흠?"

“다행히도 두 학생은 각각 초인협회와 백양 길드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백인하는 공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백양의 후원을 받고 있는 수준으로 스스로를 설명하게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는 뱅가드죠. 실력도 되고, 두 사람에게 헛수작을 부릴 일도 없습니다. 제가 두 학생의 담당으로 발탁된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디 가요? 오늘부터 바로 가는 거죠?”

“그렇죠. 바로 갑니다. 실력증명 테스트도…… 뭐 생략하죠.”

이번 게이트 실습을 앞두고 원래는 상당한 양의 사전준비를 거쳐야 했지만 안형주는 젊은 피답게 쓸데없는 과정을 생략할 줄 알았다.

“우리는 S급 게이트로 갑니다. 지금 바로 갑니다.”

“......응?”

강신혁은 자신이 들은 말을 의심하여 그에게 다시 확인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신영의 맞춤식 교육은 다소 지나치게 발전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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