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164화 (164/345)

164화. < Chapter 30. 3차 해방 - 3 >

“올해 10월에 있을 예정이었던 학교 축제는 취소되었습니다.”

“지져스!”

“아 쌤 제발!”

“그것만 보고 개 같은 단체실습을 버텼는데!”

화요일 종례 시간.

시아라 베르트랑의 갑작스러운 선고는 학생들을 절망에 빠트렸다.

초인양성학교 중에서도 가장 성대한 축제를 여는 신영이 올해 축제를 취소했다고 하니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대신 전투교육강화 기간에 돌입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게이트 실습이 많아지게 될 겁니다.”

“게이트 실습이 많아지게 될 거라고요?”

“게이트? 체육관의 홀로그램이나 아티팩트를 이용한 가상 게이트 돌입이 아니라 진짜 게이트에 들어간다구요?”

방출형 게이트든 흡수형 게이트든 그것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위험부담이 존재한다.

학생들은 예비 초인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비.

자연히 학생들이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은 일반 초인과 용병의 게이트 진입에 비해 많은 사전준비를 필요로 했고, 최소한의 안전책도 강구해야 했다.

“쌤, 그거 혹시 요즘 너무 많이 늘어나서 용병들 손을 빌려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하급 게이트를 학생들에게 맡겨버린다는 얘기 아닌가요?”

파리 사태 이후로 마치 세상이 바뀐 것처럼 새로운 게이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세인들은 몬스터들이 본격적으로 인간의 영역을 축소시키려 전면전에 나섰다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고, 초인협회와 전투길드를 비롯한 무력단체 모두 여기에 전력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특히 세계1위 전투길드였던 뱅가드의 경우(신검 오주영의 죽음 이후 3위로 밀려났다.), 마스터를 잃고 실추된 권위를 되찾기 위해 새로운 길드마스터 데인 브룩의 지휘 아래 귀기어린 모습으로 게이트를 처부수고 다니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빠가 전투길드 마스턴데 요즘 게이트가 너무 늘어나서 몬스터 부산물 시장이 포화 상태라드라. 어지간히 빡세게 움직이지 않으면 적자라고.”

“아 그러면 등급 낮은 게이트들을 학생들한테 돌려서 손해를 덜 보려고 협회랑 각 길드가 학교에 압력을……."

“여러분, 학교는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학생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의 긍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평소 가상 게이트 실습이나 체력과 기술단련, 학생들 간의 대련 따위만 반복하느라 질려있던 학생들에겐 그리 나쁜 소식도 아니었다.

“그럼 혹시 선생님도 없이 들어가요?”

“모든 교사가 학생들에게 붙어 감독하기는 힘들지요. 이전 1학기 수업에서 경험했겠지만, 이번에도 각 길드로부터 초인 한 명씩 지원을 받아 감독 겸 보호로 동행하게 될 예정입니다.”

“차라리 그 인원으로 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더 공략이 빠르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구르…… 많은 게이트를 공략하게 될 겁니다.”

명불허전 세계최고의 초인 양성기관다운 선포였다.

“자세한 사항은 내일 전달받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당분간 필기와 실기 수업을 일주일 중 이틀에 집중해 끝내고, 나머지 사흘간은 게이트 실습을 실시하게 됩니다.”

“저희 보상금은 받아요?”

“게이트 공략에 따른 기본 보상이 조원 숫자에 맞춰 분배됩니다. 그 외에도 게이트 안에서 얻은 물품들은 공헌도에 따라 분배받을 수 있습니다.”

시아라 베르트랑이 눈을 반짝이며 선언했다.

“즉 정식 초인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는 겁니다.”

“오오오!”

아직 예비 전력에 지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정식 초인과 같은 대우라는 말이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물론 비상사태에 따른 갑작스러운 조치였지만, 게이트 실습이 능력자의 빠른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확고한 사실.

이번 실습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어쩌면 미래가 달라질지도 몰랐다.

“기회입니다. 세상에 여러분을 어필할 기회. 3학년들은 아마 여러분을 부러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 사실을 명심하고, 이번 기회에 최대한 얻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내세요.”

“실기랑 필기 수업도 다 제끼고 실습에만 매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건 안 될 말이죠. 가뜩이나 준비가 부족한 여러분을 게이트 공략에 내보내는 겁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틀간의 수업에 온 힘을 쏟아 부을 생각이세요.”

“그거 정말 기쁜 소식이네요……."

학생들은 정신적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시작될 무간지옥의 서막을 알리는 진혼곡에 불과했다.

@@@

시아라 베르트랑의 충격적인 선언에 학생들이 지옥문의 앞에 서게 된 종례가 끝나고.

사실 이미 신은혁이란 신분으로 게이트 공략을 하고 있던 데다 학교 수업에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된지 오래된 강신혁은 딱히 감흥을 느끼는 일도 없이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오늘이야말로 지난주부터 만들던 한 쌍의 장갑의 작업을 완료할 때였다.

“선배 있었어…… 뭐하는 거예요?”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 중앙에 선 이나희가 두 눈을 반개하고 양팔을 허공에 뻗은 채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뒤에서 이만우가 손녀를 깔끔하게 무시한 채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이 외려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 특성 연습.”

“매일 나랑 같이 질리게 하고 있잖아요.”

“제작 말고 전투.”

이나희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과연, 이번에 게이트 실습을 하게 되는 건 1학년뿐만이 아니니까.

그녀도 오늘 교사로부터 전투교육강화에 대한 얘기를 들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연습인데요?”

“특성을 순간적으로 발현하는 능력. 여러모로 고민해봤는데 역시 나 자신을 강화해서 직접 전투에 나서는 것보단 전투용 아티팩트를 강화하는 게 좋을 것 같거든? 그러면 문제되는 게 특성 발휘에 걸리는 시간이야.”

제작을 할 땐 특성을 발휘할 때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투상황에선 0.1초의 지연이 죽음을 불러오는 법.

지금 그녀는 그 지연을 없애려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좀 잘 되어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되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다 망했어.”

“왜 내 탓?”

“갑자기 시야에 들어오니까 집중이 안 되잖아.”

이나희가 괜히 성질을 내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이만우가 신문을 접고 강신혁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희랑 뭘 만들 거면 나한테도 알려주지, 무엇이기에 몰래 만들고 있었던 거냐.”

“그건 못 알려드려요.”

“흠, 뭐 대충 알겠다만.”

정말? 강신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내가 네가 처음 망치를 잡는 순간을 본 사람이다. 네가 만든 물건도 못 알아볼 정도로 형편없는 눈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말이지. ……솔직히 신은혁이라는 이름은 무척 안일했다고 생각한다만.”

그래, 정말 들켰다. 젠장!

“어디 가서 말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라. 묻고 싶은 건 무척 많다만…… 뭐, 됐다. 애썼다.”

“하하.”

이번에 그가 신은혁의 이름으로 국제초인랭킹 5위에 등극했음을 감안한다면, 이만우의 저런 반응이 얼마나 얌전한 것인지 알 수 있을 터다.

강신혁이 새삼 이만우에 담대함에 놀라 웃고 있자니 그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파리에서 나희를 지켜준 것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위험했을 거야.”

“저 없이도 잘 버티고 있었는데요 뭐.”

“큼, 그리고.”

이만우가 품에서 온갖 명함을 꺼내 테이블에 플레임 카드를 늘어놓듯 촤르륵 펼쳤다.

보아하니 이번 세계초인회의 때 강신혁이 받아온 카드도 제법 섞여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고 온 모양이더구나. 덕분에 얘기가 쉬웠다.”

“얘기가 쉬웠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원한다면 네가 만든 무구를 이들과 거래할 준비가 대충 끝났다는 말이다.”

“헐?”

세계 10위권 길드의 담당자 명함이 저 중에 여섯 개 정도 섞여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진짜란 말인가.

대형 길드는 괜히 대형 길드가 아니다. 구멍가게와 거래할 이들이 아니라는 얘기.

그런데 지금 이만우는 그런 이들과 거래를 틀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강신혁이 하루이틀 발품을 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걸 저리도 쉽게 얘기하다니.

“내 이름을 좀 썼다. 원래 길드 놈들은 전통과 역사를 좋아하지. 아직 내 이름값이 제법 먹힌단 얘기다.”

“선생님도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할 때는 망설이지 않으시네요.”

“중요한 건 네가 네 작품을 팔아먹기 위해 온갖 귀찮음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도 왕년에 한 번 해봐서 알지만 무척 귀찮거든. 자격증명이라는 단어, 참 번거로운 단어다.”

한때는 신영의 학생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 마음고생을 해야 했으니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잘 알 수 있었다.

강신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이만우가 말을 이었다.

“네가 야금술을 버리고 전투에만 매진하려는 것처럼 보였으면 얘기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오히려 이번 일 이후로 작업에 매진하는 것처럼 보인다기에 마음을 먹었지. 넌 지금까지처럼 마음이 가는 대로 원하는 걸 만들면 된다. 내가 적당한 상대를 골라 연결해주마.”

그러면 넌 그들에게, 순수하게 작품의 가치만으로 가격을 매겨 판매하면 되는 것이다.

이만우가 묵직한 말투로 그런 말을 하며 다시 명함들을 회수했다.

언뜻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세상일이 그렇게 돌아가기 쉽지가 않다.

아티팩트 장인으로서의 명성은 실력보다도 중요한 감이 있고, 강신혁은 비록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경연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루키’.

어른들은 그와 거래를 하기에 앞서 그를 얕잡아볼 가능성이 높고, 가격을 낮추려 작품을 폄하하려 들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만우는 그런 시선으로부터 강신혁을 지켜주는 방패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을 지켜주고, 아티팩트 장인으로서 단기간에 큰 명성과 확고한 권위를 얻을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것.

그것이 이만우가 강신혁의 실력을 확신한 순간부터 구상하고 있던 바였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아.’

그리고 강신혁은 그의 말을 들으며, 아이러니하게도 헤일로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가 뭐라고 했던가? 강신혁이 만들어낸 무구는 세상을 바꾸었다고 했다.

많은 몬스터가 탄생하는 계기를 낳았지만, 동시에 그보다 많은 몬스터를 멸절시켰다고도 했다.

그렇기에 그가 무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강신혁도 모루로서 세상을 바꾸고 인류를 지키는 방식에 충분히 공감하였고, 보다 적극적으로 야금술에 매진할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무구를 히어로 유니버스에만 판다면 정작 지구를 바꾸기란 요원한 일일 터였다.

‘지구는 내가 사는 세상이야. 지켜낼 것이라면 당연히 지구를 가장 먼저 지켜야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왜 여태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히어로 유니버스만이 진실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거기에만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의 납품처는 두 곳이다.

히어로 유니버스와 지구.

앞으로 그가 만들어내는 무구는 두 곳에서 거래될 것이다.

“선생님,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어떻게 생각하냐?”

“부탁드리고 싶어요. 많이 번거로우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감사하는 건 이쪽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됐다. 넌 열심히 만들기나 하면 된다.”

“네. 열심히 만들게요. 그중에 판매하고 싶은 것을 알려드릴 테니 그걸로 구매희망자와 접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맡겨둬라.”

이만우는 얘기를 마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만드는 장갑은 본인이 직접 사용하는 것이겠지? 그 다음 작품부터 시작할 생각이냐?”

“네? 아, 아뇨.”

강신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제 걸 만들었으니 다음엔 나희 선배 걸 만들어야죠.”

“어!?”

강신혁과 이만우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이나희가 갑작스런 얘기에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나 그 얘기 지금 처음 듣는데!?”

“선배는 아티팩트를 강화하는 능력을 얻었으면서 새로 만들 생각은 못했어요?”

“어, 그게…… 음……."

이나희는 얼굴을 붉히며 우물쭈물거리더니, 끝내 고개를 푹 숙여버리고 말았다.

요즘 작업이고 자시고 강신혁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통에 사고회로가 고장이 나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방금 강신혁의 발언 탓에 그 고장은 한층 심각해질 전망이었다.

“쯧쯧, 잘 꼬셔보라고 했더니 지가 넘어가서는 헤롱헤롱……."

“할아버지, 진짜 닥쳐.”

“그럼 가마. 잘 부탁한다.”

모든 설명을 마친 이만우가 쿨하게 떠나갔다.

강신혁이 이나희를 돌아보자,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방의 문을 열었다.

“뭐해? 네 장갑 완성하고 내 아티팩트도 만들어야지!”

“갑니다.”

강신혁은 입가의 미소를 미처 감추지 못하는 이나희의 뒤를 따라 공방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 드디어 강신혁의 새로운 실 장갑이 완성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