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 Chapter 30. 3차 해방 - 2 >
[새로운 세상이 탄생해 마나의 싹이 발아하고, 인간들이 그것에 적응하면.]
[그 안에서 돌연변이라 부를 만한 존재들이 나타나지. 그래, 영감이 지금 머무르는 세상에서 흔히 초인이라 부르는 존재들이.]
[그렇게 되면? 그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파장에 반응한 마나의 바다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따라서 태어나게 되는 거야. 몬스터라고 불리는 생명이.]
[그 원리 따윈 알 길이 없지. 단지 우리가 자라나면 저쪽에서도 그에 대비되는 무엇인가가 자라난다는 것만이 명확한 진실이야.]
[그래, 불리한 싸움이지. 턱 없이 불리한 싸움이야.]
[만약 영감이 없었다면 진즉에 모든 것이 끝났겠지.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시게, 모루. 자네가 얼마나 많은 몬스터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건, 자네가 만든 무구로 인해 죽어나가는 몬스터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을 테니까.]
[농담이 아닐세. 자네는 이 우주의 탄생 이래, 가장 효과적으로 인류와 몬스터의 균형을 조절하고 있는 사람이야.]
[자, 그러니 이제 자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겠지?]
[거래 게시판을 주시하고 있는 이가 비단 츠쿠요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젠 깨달았으리라 믿네.]
모루 위에 섬뜩한 빛을 발하는 붉은 금속이 놓여 있었다.
이번에 SS-급 게이트에서 맞서 싸웠던 난쟁이들이 남긴 전리품, 바로 놈들의 손톱이었다.
난쟁이들의 거의 유일한 공격수단이었는데, 영력을 뿜어내 조사해본 결과 아무래도 이 손톱이 다양한 연장으로 활용되는 모양이었다.
땅을 파고 다지거나, 뭔가를 섞거나, 꿰뚫거나, 세공하거나…… 아무튼 난쟁이들의 모든 능력이 집약되어 있는 소울 웨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 내가 살면서 봐왔던 소재 중 최상급이야……."
다양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은 곧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
소재를 살피던 이나희가 감격하여 중얼거리자, 강신혁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로 놀라면 SSS급 몬스터들 소재를 보면 기절하겠네.”
“보여줘!”
“그건 인간적으로 아직 우리 능력으로 못 다루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킵해두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하자 이나희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데 그 모습에 강신혁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것을 눈치 챈 이나희가 어라? 하고 눈을 빛냈다.
“방금 그거 뭐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
“흠?”
이나희가 괜히 도톰한 입술을 뻐끔거리며 강신혁을 도발했다.
강신혁은 그녀의 입술을 확 붙잡아 위아래로 흔들고 주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집게로 붉은 손톱을 잡았다.
“작업이나 하죠.”
"쳇."
특성이 진화했지만 이나희와의 공동작업은 이전과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우선 강신혁이 금속을 녹이고 틀을 잡아 굳혀 기본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면, 여기에 그녀가 자신의 마나를 심는다.
그리고 강신혁이 쇠를 두드리고 담금질하는 사이, 그의 작업을 관찰하며 자신이 심어둔 마나를 바탕으로 마법의 문자, ‘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전처럼 동적이지는 않은 듯도 보이지만, 실시간으로 마나를 가공하는 수고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인챈트랑 비슷하네.”
“하지만 내게 요구되는 게 늘어났어. 최적의 효과를 내기 위해선, 상대를 그만큼 철저하게 분석해야 해.”
“원하는 속성을 골라서 부여하던 인챈트와는 다르다는 뜻인가요.”
강신혁은 망치질을 이어가며 붉은 금속에 담긴 이나희의 마나가 실시간으로 형태를 갖추고 변화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강신혁이 무구에 담는 뜻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추어 움직이는 듯한 움직임.
말하자면 그것은 본질을 탐색하는 것이므로, 역시 이 능력은 영력과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강신혁의 영력은 본질을 이해하고는 본질 그 자체를 강화하는 데에(덤으로 그의 특성도 이쪽에 가까웠다.)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이나희의 특성은 본질을 이해하고, 거기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려 한다는 점.
그것은 매우 큰 차이점이었다.
‘확실히, 지분을 주장할 만한 능력이기는 하네.’
이나희의 능력은 강신혁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챈트까지만 해도 솔직히 자신의 능력과 완전한 조화를 이룰지 자신이 없었다.
어떤 작품은 그녀의 능력이 더해지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조차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근본적인 영역에서부터 함께 자라나 작품의 완성과 함께 개화하는 룬에는 분명 고유의 가치가 있다.
상생.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의 효과를 낳는 물건이다.
이건 정말로 대단하다.
적어도 영력을 다루는 대장장이인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인챈터보다도 훨씬 도움이 된다.
“대단해요, 나희 선배. 감탄했어요.”
“으응, 기쁘긴 하지만 솔직히 미묘해. 사용하기에 더 까다로워졌단 말이야.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는 써먹기도 어려워.”
이나희는 강신혁의 솔직한 감탄사를 들으며 기뻐하는 듯하면서도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녀의 특성에 대해 모종의 확신을 품은 강신혁은 망치질을 잠시 멈추었다.
모루 위에 놓인 쇳덩어리는 어느덧 붉은 장갑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신은혁의 모습으로 다룰 무장, 바로 실을 뿜어내는 장갑이다.
놀랍게도 그는 이 붉은 금속을 얇은 판으로 만들어 이어붙이는 것으로 손에 착용하고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금속 장갑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실크 장갑으로 보이는데, 만져보면 단단하고 차가운 질감이 느껴지는 신비로운 장갑.
실로 놀랄 만한 기술이지만 이젠 그의 야금술도 A+랭크. 슬슬 전국구를 칭해도 될 수준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가공할 수 있었다.
“왜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게?”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었다.
하지만 평소 강신혁이 작업을 시작하면 밤이 될 때까지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멈추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나희도 고개를 갸웃했다.
- 회원님?
‘확인해보는 게 좋겠어요.’
이나희에게 강신혁이 작업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선배, 손 내놔 봐요.”
“소, 손!? 나 안 씻었는데?”
“됐으니까 줘 봐요.”
헛소리를 하는 이나희의 손을 낚아챘다.
당황하여 버둥거리면서도 손을 먼저 놓을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나희의 손을 단단히 붙들고 자신의 영력을 흘려 넣었다.
“어때요, 느껴지는 거 없어요?”
“느, 느껴지는 거? 어……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 굳이 그 방법을 택하셔야 했을까요, 회원님?
강신혁이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이나희가 다급히 덧붙였다.
“크고 따뜻한? 그런 느낌?”
"......."
강신혁은 조용히 이나희의 손을 놓았다.
“작업이나 계속하죠.”
“어!? 아 뭔데? 방금 뭔데!?”
“괜히 뭔가 미안하네요.”
“그러니까 뭔데!?”
잘못 짚었나? 하지만 그녀의 특성은 분명 영력과 관련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어쩌면 그녀의 말마따나 진화를 한 번 더 하게 되면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차피 동업을 하기로 약속까지 했다. 강신혁은 앞으로 그녀의 특성을 주시하며 영력에 대해 힌트를 줄 만한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끼어들기로 다짐했다.
“야, 멋대로 갑자기 그러는 거 좀 아니지 않냐?”
“멋대로 키스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 어때요.”
“그건! 그건, 야 그냥 인챈트고……."
“그 인챈트 살면서 몇 번 해봤어요.”
“하, 한 번.”
강신혁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괜히 욱해선 대꾸했다.
“진짜 한 번이거든! 내가 아무하고나 키스하고 다니는 가벼운 애로 보여?”
“키스가 아니라 인챈트라면서?”
“아……."
이나희가 조용히 침몰했다.
강신혁은 승리를 기뻐할 생각도 않고 작업을 재개했다.
너덜너덜해진 이나희가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힘없이 근처 의자에 걸터앉으며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달팽이처럼 연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통과 찬스.”
"응?"
“통과 찬스 쓸게요……!”
“아, 네.”
통과 찬스가 사용되었다.
둘은 다시 묵묵히 작업을 시작했다.
강신혁이 망치를 두드리고, 이나희가 마력을 발한다.
강신혁은 금세 다시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통과 찬스를 주장한 본인인 이나희는 계속 강신혁을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죽일까요?
‘그러니까 왜 그렇게 공격적이냐고요. 조만간 히어로 유니버스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비록 지금은 반응이 없었지만 강신혁은 이나희에게 영력 개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영력을 다룬다면 히어로 유니버스에 들어올 자격이 입증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나희가 조금만 더 운이 좋다면, 죽어라 노력한다면, 어쩌면 몇 년 안에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으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 그래서 더더욱 회원님과의 접점이 늘어나기 전에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으니까 진정해요.’
강신혁은 관리자와 살벌한 잡담을 나누면서도 손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장갑의 표면을 정중하게 갈아내고, 마감재로 난쟁이의 마석 가루를 더한다.
마지막 가공을 더한다.
다섯 개의 손가락 끝부분에 아주 작은 구멍을 뚫어, 송곳으로 깔끔하게 다듬는다.
‘실을 분사하는 건 이 부분…….'
실을 뿜어내는 장갑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실샘을 재료로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들려는 장갑의 능력에 비해 그가 소지하고 있던 재료들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저번에 실샘을 재료로 실을 뿜어내는 장갑을 만들면서 이젠 굳이 실샘을 직접 사용하지 않아도 그 구조를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붙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금속실은 용량에 한계가 있고, 베놈 프린세스 스파이더의 실은 너무 약해. 그렇다면 뭐가 제일 좋을까.’
바로 그의 영력이다.
물론 영혼독이 없었더라면 강신혁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으니까.
공격성은 충분하다. 남은 것은 영력을 구체적인 공격수단으로 빚어내는 것뿐.
즉 이 장갑은 자신의 영력에 물리력을 더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만약 이 장갑을 착용하더라도, 그 효용을 잘 파악할 수는 없으리라.
“나희 선배, 잘 따라오고 있어요?”
“응. 여전히 실의 재료가 뭔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머진 어떻게든.”
“선배가 아까 깨달아줬으면 작업이 훨씬 편했을 텐데.”
“뭐?”
“아니, 됐어요. 통과하기로 했었지.”
“큭!?"
이나희가 장갑에 더하는 것은 속도다.
장갑을 착용하는 것만으로 강신혁을 보다 빠르게 만들고, 실을 보다 빠르게 분사할 수 있게 만든다.
강신혁이 실을 다뤄가며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그녀이기에 이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후."
그렇게 거의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강신혁은 돌연 작품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정신을 팔린 듯 그에게 집중하고 있던 이나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왜? 설마 망친 거야? 그렇게 잘 되고 있었는데?”
“아뇨, 나머지 한 짝을 만들어야죠. 이번엔 두 장갑을 통일할 생각이라서.”
“그렇구나……."
“나머지 작업은 내일 하죠. 시간 괜찮죠?”
"으, 응."
이나희는 여전히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게 왜 어색해질 만한 짓을 한단 말인가. 강신혁은 픽 웃곤 망치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럼 가볼게요. 선배 주말에도 시간 괜찮죠?”
“완전 괜찮은데?”
“그럼 주말에도 작업하는 걸로.”
"......."
이나희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강신혁은 수고하셨다는 말을 건네곤 퇴실했으나, 이나희는 그 후로도 당분간 동아리방에 남아 홀로 부들거리고 있어야 했다.
이나희의 완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