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Chapter 30. 3차 해방 - 1 >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한 신영의 학생들은 다행히 누구 한 명 죽거나 다치는 일 없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요르문간드의 공습 탓에 거의 열흘에 가까운 기간을 외국에 머물렀던 탓인지 주위 사람들이 모두 한국어로 말하는 것을 조금 생소하게 느끼면서도, 강신혁은 어김없이 그 다음날부터 학교에 정상적으로 등교했다.
“진짜 SS급 몬스터랑 싸웠어? 진짜?”
“야 레드슈즈 실제로 보면 어때? TV로 보는 것보다 예뻐?”
“강신혁 너 이나희 선배랑 웰케 사이 좋냐? TV로 중계 나오는 거 다 봤는데.”
일행이 화려한 파리의 밤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목숨을 걸고 파리를 공습한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는 동안 기숙사에 처박혀 있어야 했던 같은 반 학생들은 그들이 등교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선 괴롭혀댔다.
특히 강신혁을.
“알제 선배랑 이나희 선배랑 나란히 팔짱끼고 있는 거 사진 찍혔는데.”
“뭐임? 몰래카메라임? 몰래카메라라고 말해, 빨리. 안 말하면 운다. 지금 운다!”
“시가지에서 백인하만 쏙 빼놓고 모여서 싸우는 것도 보이던데.”
“연금술사랑은 무슨 관계야?”
“백인하만 쏙 빼놓고……."
아니, 이 녀석들 파리에서 있었던 요르문간드의 공습보다도 연애 얘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단 말인가!
강신혁은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을 내쉬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건 우리 학교 사람이 아니니까 괜한 헛소문 퍼트리지 마라.”
“오오, 딱 잘라 말하는데. 하지만 본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괜한 헛소문 퍼트리지 말라고 방금 말한 참인데!?”
아무리 파리에서 초대형 사태가 일어났어도 그게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런지 학생들의 실감은 비교적 옅은 모양이다.
어쩌면 바로 얼마 전에 한국 서울에서 일어났던 4차 대역류 탓에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동요를 하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조회 시간입니다. 모두 정숙.”
마침 좋은 타이밍에 시아라 베르트랑이 교실에 들어와 교탁을 탁탁 두드렸다.
그녀의 마나를 담은 특이한 울림이 퍼져나가 학생들을 일제히 그 자리에 멈추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극에 굶주리고 있는 사춘기 학생들을 얕보고 있었다.
“아, 쌤! 파리 얘기 해주세요!”
“강신혁이랑 이나희 선배랑 데이트했다는 거 진짜예요?”
“신은아 랭킹 1위 됐잖아요, SSS급 게이트가 진짜 나타난 거예요?”
“와, 신은아가 세계랭킹 1위야?”
“넌 그것도 몰랐냐? 오주영 죽었단 얘긴 들었냐?”
시아라 베르트랑은 벌떼같이 달려드는 학생들의 모습에 재차 교탁을 두드렸다.
이번엔 조금 진동이 강했다. 학생들이 모조리 머리를 붙잡는 모습에 그녀는 후우, 한숨을 내쉬곤 짧게 말했다.
“보도된 내용이 전부 사실입니다. 나머진 스스로 알아내도록 하세요. 아, 그리고…… 강신혁 학생과 이나희 학생이 데이트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나희 학생이 강신혁 학생에게 키스를 하는 건 확인했습니다.”
"......."
교실에 아주 잠깐, 정적이 흘렀다.
강신혁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자신을 배신하다니!
아니, 생각해보면 그녀는 처음부터 강신혁과 이나희를 붙여놓으려고 했었지……! 하지만 설마 이렇게 유치한 수단까지 구사하다니!
그러나 그가 당황하며 부정도 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는 것을 본 학생들은 이내 시아라 베르트랑의 말이 사실이라는 사실을 알아 차렸고, 직후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내 첫사랑이었는데!”
“일단 죽여.”
“야, 저거 죽여!”
“빠루 갖고 와, 빠루!”
강신혁은 그날 처음으로 신영에서 이나희의 인기가 폭발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야 작년도 인기투표 1위를 자랑하는 혼혈 미소녀였으니 냉정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좀 있다 실습 때 덤벼라, 실습 때.”
“오케이, 오늘 실습 집단전술.”
“다구리가 합법이라고? 크크 좋다, 뒤졌다.”
“다구리는 전술에 포함이 안 될 텐데!”
@@@
이전엔 신영의 수업을 따라가기 버겁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다.
실기에선 주위 학생들에게 치이며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자신의 특성에 분노했고.
실기 수업으로 생긴 구멍을 어떻게든 메꿔보려 미친 듯이 필기에 몰두했다.
그랬으니 학교 수업이 즐거울 리가 있겠는가?
그저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 그래, 초인 자격증을 얻기 위한 발판.
- 회원님, 기분이 조금 나아지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체육대회가 끝났을 즈음부터겠지, 신영은 자신에게 있어 제법 즐거운 장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야누스의 실종, 헤일로에게서 들은 이 세계의 진실의 단면…… 그로 인해 무거워졌던 마음도 같은 반 학생들과 투닥거리는 사이 아주 조금은 가벼워졌다.
강신혁은 그것을 느끼며 입가에 미약한 미소를 머금곤 대꾸했다.
“네, 정말요. 저 녀석들과 평생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조금 중2병이었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예요.”
- 꼭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소통해야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맞는 말이네요. 고마워요, 관리자님.”
- 회원님께선 관리자를 잘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이렇게 회원님께 감사인사를 받으면 관리자는 보너스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30.000HP 보너스!
“요즘 보너스가 너무 큰 것 같단 생각이 사라지질 않는단 말이죠. 특히 어떤 시점 이후로……."
- 40,000HP 보너스!
“얼버무릴 목적으로 보너스를 주지 말아요.”
강신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관리자가 접촉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영력이라도 뻗어내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렇지, 대강의 행동 원리는 알 수 있다.
시아라 베르트랑이 강신혁과 이나희가 잘 되도록 해보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리자는 꼭…….
“뭐, 지금은 됐나.”
지금 시간은 방과 후.
오후에 있었던 집단전술 시간에 자신에게 전술의 파편도 없이 죽일 기세로 덤벼들던 급우들을 모두 때려눕힌 덕분에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개운했다.
학교 내에 워낙 많은 소문이 퍼져 있어 어딜 가든 그를 주시하는 시선이 끊이질 않았지만, 강신혁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똑바로 걸었다.
- 동아리실로 가십니까?
“네. 그런 말을 들었으니.”
헤일로와 나눈 대화는 제법 심오하고 길기도 했지만, 요약하자면 결론은 하나였다.
강신혁의 진정한 능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라도, 쇠를 두드리라는 것이다.
물론 강신혁이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단지 이쪽 일이 바쁘게 돌아가면서, 요르문간드에 대항해 무기를 들 일이 많았다 보니 전투능력을 성장시킬 기회가 많았을 뿐.
아무튼 이젠 얼추 정리가 됐고, 강신혁 스스로 다양한 차원퀘스트에 도전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의 ‘최소한의 무력’ 또한 확보가 되었다.
그렇다면 헤일로의 말대로 모루를 두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모루, 다음 무구는 아직인가요? 혹 몸이라도 아픈 것인가요?
그래, 마침 며칠 전부터 다시 츠쿠요의 재촉이 시작되기도 했으니까.
- 안 그래도 오늘부터 만들려고 해요.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어머나, 우리의 마음이 통하고 있었군요!
다시 말하지만 츠쿠요는 며칠 전부터 하루에 한 번 꼴로 그에게 귓속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통하기는 개뿔, 이라고 대꾸해줄 수도 있겠지만…… 강신혁은 그러지 않았다.
- 츠쿠요?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그렇게 저를 부르시면, 저는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 모루, 왜 부르시나요?
강신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그는 츠쿠요에게 모종의 의문을 품고 있었다.
헤일로나 야누스와 같은 히어로 유니버스의 기존 회원들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그녀.
그러나 그녀에게선 모종의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경계하게 되는 무언가를 그녀는 갖고 있다.
전생의 모루도 츠쿠요를 특이한 처자라고 생각하며, 내심으로는 경계하고 있었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이라고 모두 착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도 그녀를 통해 실감한 적도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요르문간드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큰 실례겠지.’
지금 당장 드러난 정보만 놓고 따지면, 그녀는 단순히 모루가 만든 무기 중 음습한 느낌을 주는 무기를 좋아하는 변태일 뿐이다.
……이런 판단도 제법 실례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 그…… 야누스가 실종되었다는 얘기를 알고 있나요?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후우, 모처럼 모루가 먼저 제 이름을 불러주셨는데 기껏 튀어나온 화제가 그 재미없는 사람의 얘기라니. 저는 무척 실망했답니다.
- 미안해요. 하지만…… 혹시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을까 해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어쩔 수 없지요. 모루는 옛날부터 야누스에게 신경을 많이 썼으니까. 모루의 물건을 놓고 저와 가장 많은 경쟁을 했던 것도…… 핫, 즉 지금이라면 제가 독점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그럴 리가.
강신혁이 물건을 만들어 히어로 유니버스 거래 게시판에 내놓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신은아가 SSS급 게이트에서 해치운 몬스터들의 HP를 차곡차곡 끌어모아 대기를 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사실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답니다. 애초에 그 사람과 저는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있었고…… 또 언제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하지만 모루의 부탁이라면 얘기가 다르지요. 제 소중한 머리카락을 걸고서라도 야누스를 찾아내겠어요.
- 어…… 진짜?
강신혁은 이중의 의미로 놀랐다.
첫째는 츠쿠요가 정말로 야누스의 행방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
이것은 그녀가 요르문간드와 깊은 관계가 없거나, 혹은 야누스의 실종이 요르문간드와 관련이 없다는 얘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는 순수하게, 츠쿠요가 자신을 위해서 야누스를 찾는 데 협조해주겠다는 데에 놀란 것이었다.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너무해라, 모루에 대한 제 사랑을 그렇게나 열렬히 고했는데, 아직까지 당신은 저의 진심을 몰라주고 계신단 말인가요.
- 어, 아니…… 그건 알아요,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당신이 괴로워하시는데 제가 어찌 가만히 있겠어요.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저는 지금 당장 모든 수를 써서 그를 찾을 테니, 모루는 안심하고 기다려주세요. 설마 그 야누스가 죽을 리도 없고, 히어로 유니버스의 권한이 닿지 않는 차원에 짱박혀 있는 것이겠지요.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어머. 방금 메시지, 모루에게 도착했나요?
- 네.
잠시 답이 없더니, 다음 순간 츠쿠요가 무척 기뻐하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권한이 해금되고 있군요! 예전이었더라면 이런 메시지는 보낼 수도 없었을 텐데!
- 츠쿠요 님의 귓속말 : 기뻐라, 정말 기뻐라…… 후후, 이제 우리가 함께할 수 있게 되는 날도 곧
거의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게 아닌가 싶던 메시지가 중간에 차단되었다.
- 이쯤이면 회원님의 용건은 전달되었겠지요.
"......."
- 불여우에게는 이 정도도 아깝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야누스 회원을 찾는다면 안심할수 있습니다. 회원님도 더는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런가요…… 히어로 유니버스의 권한이 닿지 않는 차원에까지, 그녀의 능력이.”
그것인즉 요르문간드의 영역에까지 츠쿠요의 능력이 닿는다는 얘기가 되는데.
역시나 츠쿠요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기엔 아직 강신혁의 역량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 괜찮습니다, 회원님. 지금은 헤일로 회원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
- 곧, 모두 회원님의 손으로 해결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러길 바라야죠.”
강신혁은 짧은 한숨을 불어내곤 동아리실로 향했다.
많은 것이 변화한 가을, 10월이 다가오는 방과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