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159화 (159/345)

159화. < Chapter 29. 교차하며 가속하다. - 4 >

“어떻게......."

나탄 보댕은 강신혁을 올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대체 어떻게 SS-급 게이트에서 살아나왔지……?”

“쟤 대사 만화책이랑 소설에서 5만 번은 본 것 같아…….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강신혁은 자신이 마스크를 제대로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아무 의미도 없는 거 아냐? 바로 알아보는데.”

“나희가 널 불러서 그래. 이미 특정되어버리면 시각정보를 조금 감추는 정도로는 의미가 없어지니까.”

“그럼 전부 나희 선배 탓이네.”

강신혁은 일단 허공에 푸른 소를 정지시켰다. 클레어가 폴짝 뛰어내려 이나희와 카렌을 감싸고 있는 방벽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이거 위에서 덮치면 어쩌려고 이러고 있어?”

“자동으로 움직여서 다 막아요, 언니. 이거 대박.”

“들었지, 신혁아? 여기 신경 쓰지 말고 화끈하게 해.”

“오우케이. 그리고 지분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합시다, 선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게 안 되네……."

강신혁은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대낫을 꺼내 장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양손에서 투명한 실 가닥이 흘러나와 허공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영혼독을 각성하고 영력을 다루는 데 더욱 능숙해진 덕일까, 두 손으로 다른 무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동시에 영력과 윈드 마스터리로 실을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까 SSS급 게이트 안에서 시험해본 것인데, 초월 포션의 효과가 끝난 지금도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게이트에서 도망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허세 따윈 내게 통하지 않아. 노란 원숭이 주제에……!”

나탄 보댕이 윽박지르듯 외치자 몬스터의 포위망이 일시에 그를 향해 좁혀져왔다. 강신혁은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대낫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직후, 나탄 보댕은 땅에 손을 짚으며 가장 자신 있는 대지 마법 ‘그라운드 웨이브’를 발현시켰다.

대지를 일순 파도가 이는 바다처럼 출렁이게 만드는 마법으로, 일대에 영향을 미치는 고급마법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무슨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하면…….

“방해다, 알제!”

“칫!”

바로 지금 땅에 있는 이들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하는 것. 특히나 창에 무게를 싣고 돌격하는 랜서는 멋대로 출렁이는 땅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지금 엘레노어는 자신의 신장의 족히 몇 배에 이르는 거창을 들고 있던 터, 갑작스럽고 거세게 몰아붙이는 대지의 파동을 버티지 못하고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죽어! 그라운드 스피어!”

비록 지성과 감성이 맛이 가긴 했지만 나탄 보댕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자는 아니었다.

SS-급 게이트를 돌파한 강신혁과 하이랭커인 클레어보다는 자신과의 전투로 확실하게 체력이 소모되어 있는 엘레노어를 먼저 처리하는 게 낫겠다는 계산을 하고, 강신혁을 공격하는 척 블러프를 넣고 곧장 엘레노어를 공격한 것이다.

다만 놈이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강신혁의 실은 놈의 마법이 발동하는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훗!”

“깍!?"

강신혁은 그라운드 웨이브가 발동한 순간 실을 쏘아냈다. 그라운드 스피어가 발동해 엘레노어의 발끝에서 수십 개의 창이 솟아오르려 할 땐 이미 그녀를 붙잡아 회수, 자신이 탄 바이크 위에 앉혀놓고 있었다.

“그럼!”

그리곤 자신은 안장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나탄 보댕은 그가 엘레노어를 끌어들인 수단을 경계해 빠르게 실드를 발현했지만 강신혁이 노린 것은 그가 아니었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열 가닥의 실이 나탄 보댕 주위의 몬스터들 틈으로 퍼져나갔다.

영혼독을 발현할 수 있게 된 지금이라면 실을 조종해 몬스터들의 목을 자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지만, 한 마리 한 마리 일일이 목을 베어내려면 만만치 않게 힘이 소모될 터였다.

그래서 강신혁은 실로 놈들을 전부 휘감아, 끌어당겼다. 물론 열 가닥의 실만으로는 불가능한 일. 거기에 S-랭크의 윈드 마스터리가 더해지면, 뼈대에 근육이 더해진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수월하게 일대의 몬스터를 잡아당길 수 있었다.

- 꾸오오오오오!?

- 날 놔줘 , 날 놔줘!

- 우, 움직일 수가……!

“핫!”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의 한 점으로 끌어당겨지는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지만, 강신혁이 황룡투기를 머금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대낫을 교차로 휘둘러 끌어들인 놈들을 일제히 베어 죽이는 것은 그보다 더한 가관이었다.

“신혁이 저게 하고 싶었구나. 멋져.”

클레어는 그 광경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영상은 물론 촬영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카렌이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일부러라도 무시했다.

“흐아아아압!”

“엇, 뭣!?”

그러나 격전의 방점을 찍은 것은 다름 아닌 엘레노어였다. 강신혁이 보여주는 신위에 넋을 잃은 나탄 보댕을 노리고 푸른 소에 탄 채 돌진한 것!

보다 정확히는 푸른 소가 멋대로 나탄 보댕을 향해 돌진하자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나탄 보댕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뭣, 지……!”

지원을 청하려도 나탄 보댕을 지켜줄 몬스터는 대부분 강신혁의 낫에 베여 죽었다.

나탄 보댕은 다급히 자신의 특성을 발동시키는 것과 함께 실드에 최대한 힘을 쏟았지만, 안타깝게도 푸른 소는 영력으로 움직이는 바이크였다.

엘레노어는 마력을 다루는 만큼 창에 담긴 기세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미 그것이 이나희의 진화한 특성에 의해 필요 이상으로 강화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력이 남아도는 수준.

“흐으으아아아아아압!”

얼떨결에 바이크에 탄 채 랜스차징을 하게 된 엘레노어는 자신의 당황을 감추려는 듯 소리를 높이며 특성을 발현, 자신의 창끝에 힘을 집중시켰다.

나탄 보댕의 특성 따위에 흔들리지 않게끔 강인하고 날카롭게 의지를 가다듬어, 그것을 강신혁이 만들어주고 이나희가 강화해준 이 창에 그대로 실었다!

“카학!”

방어막은 단숨에 뚫렸다. 나탄 보댕이 착용하고 있던 아티팩트들의 방호 효과를 모조리 관통한 거창은 나탄 보댕의 심장까지 확실하게 꿰뚫어 터트렸다. 과연 게 볼그라는 이름에 걸맞은 위력이었다.

“신혁!”

거창을 휘둘러 끝에 꽂혀있던 사망자를 바닥에 털어낸 엘레노어가 강신혁의 이름을 억울하게 외쳤다.

“갑자기 움직이니까 놀랐잖아!”

“아니 원래 선배가 거의 다 잡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대로 선배한테 막타를 양보하려고 했죠. 선배라면 푸른 소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으리라 믿었거든요.”

“믿어쏘......?”

분노를 토해내려던 엘레노어의 기세가 급격히 위축되었다. 어깨를 늘어트리고 입을 오물거리는 것이 무척 귀여웠다.

“그롷다며냐 모…… 고마오……."

“우리 전하 발음이 갑자기 심하게 새시는데. 원래 저 정도는 아니셨는데.”

“조금 당황한다고 외국어 능력이 떨어지다니 엘리는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겠어.”

방벽 안에서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고 있던 카렌과 이나희가 엘레노어의 말을 가혹하게 채점해 낙제를 주었다.

한편 강신혁은 상황이 끝났다고 안심하지 않고 주위를 예민하게 살피고 있었는데, 역시나 지하에서 뭔가가 솟구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착.’

그는 냅다 그로잉 사이드를 내던졌다.

황룡투기와 영력을 쏟아 부은 대낫이 허공을 가르고, 여전히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엘레노어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 대지에 꽂히며 굉음을 냈다.

“어, 아……?”

강신혁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라 위축되었던 엘레노어는 옆을 돌아보고 간신히 깨달았다.

지하에서 입을 벌리고 솟구친 거대한 몸통의 벌레가, 토막 난 나탄 보댕의 사체를 반쯤 삼킨 채 강신혁의 대낫에 베여 피를 뿜어내고 있는 것을.

“선배, 마무리.”

"응!"

엘레노어는 다급히 벌레의 머리통에 거창을 찔러 넣었다.

모름지기 훌륭한 랜서라면 영거리에서도 최대일격의 창을 쏘아낼 수 있어야 하는 법. 자신의 작은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큰 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엘레노어의 능력은 명불허전이었다.

- 끼이이이이이!

“질긴 놈이.”

엘레노어의 창에 완벽히 관통당하고도 몸을 비틀거리며 지하로 도망치려던 벌레의 몸통에 강신혁이 차례로 수십 개의 못과 단검을 쏘아내 명중시켰다.

벌레는 몸을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갑자기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전신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무리 봐도 날붙이로 공격당한 것과는 다른 원인으로 죽은 것이 분명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독?”

“새로운 스킬이에요.”

강신혁이 바닥에 착지할 즈음엔 방금 죽은 벌레의 사체와 함께 놈의 몸통에 박힌 무기들도 자동으로 인벤토리에 회수되었다. 벌레가 반쯤 삼켜서 그런가, 부득이 나탄 보댕의 사체도 인벤토리 안에 같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조사도…… 나중에 한다. 지금은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일단 두 분 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그 두 분이라는 게 누구누구 말하는 거야, 신혁아?”

“아, 그래. 셋 다.”

투정을 부리는 카렌을 적당히 달래준 강신혁은 주위를 둘러보며 더 덤벼드는 몬스터가 없나 확인했다. 땅 아래에는 없고, 지상에는 …… 대부분 다른 초인들이 상대하고 있었다.

그나마 하늘 위에 그들을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몬스터들이 있지만, 지금 당장 그들을 공격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일단 상황종료.”

“아, 그래…… 아아. 이렇게 되네.”

강신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 개의 방벽을 해제, 원래의 냄비뚜껑으로 되돌린 이나희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버린 일대를 둘러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젠 환각 마법을 발동해도 안 될 만큼 주위가 망가져 있었다. 그나마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주춧돌만 간신히 살아남아 굴러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나탄 보댕 개새끼, 결국 여기까지 이렇게 깔끔하게 다 부숴놓고 가는구나.”

“아, 음…… 미안해요, 선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강신혁의 빠른 사죄에 이나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최대한 신경써준 거 알아. 그 스토커 새끼가 잘못이지.”

게다가, 하고 그녀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깔끔하게 밀어버리고 새 기분으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몰라. 이 자리에 세우는 건 엄마아빠의 상점이 아니라 너와 나의 상점이니까.”

“……그 표현 조금 오해의 여지가 있네?”

가만히 상황을 관조하던 클레어가 그때가 되어 끼어들었다.

“그렇게 비교하면 마치 너희가 결혼이라도 할 것 같잖니. 그냥 선후배 사이일 뿐인데 말이야.”

“네? 언니도 참…… 그냥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늘어놓은 것뿐인걸요. 저랑 후배 둘이서 여기에 상점 세우기로 했어요. 상젤리제 거리에 임대료 공짜로 들어오는 거니까 후배도 개이득이고?”

이나희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녀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 밝게 웃으며 강신혁을 돌아보았다.

“그보다 역시 무사했네. 내 인챈트 효과 있었지?”

“……선배 혹시 나 많이 싫어해요?”

“아니? 그 인챈트는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못 걸지. 나도 처음 걸어봤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네.”

이쯤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들 전부가 인챈트가 무엇인지 대충 눈치를 챘다.

카렌은 입술을 삐죽였고 엘레노어는 험악하게 인상을 썼지만, 클레어는 미소를 지었다. 강신혁은 순간 일류라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신혁아, 나랑 둘만 남았을 때 그 인챈트가 뭐였는지 자세히 알려줘.”

“어, 응…… 알았어. 미안.”

강신혁을 대하는 클레어의 태도, 클레어를 대하는 강신혁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번엔 이나희도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제가 알려드릴게요, 언니.”

“아냐, 신혁이한테 직접 들을게. 나도 흥미 있거든.”

“나희, 나는 나희한테 자세히 듣고 싶어. 성희롱 관련 법률과 어떻게 연관이 있을지 궁금하니까.”

이상하네, 아무도 능력을 쓰고 있지 않은데 이상하게 눈앞에서 전율적인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만 같다.

강신혁은 이럴 때 그의 마음을 달래주는 유일한 구원자인 관리자를 찾았으나 관리자의 답은 없었다.

그래…… 분명 괴인이 나타난 그 순간부터 계속, 관리자의 메시지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