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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 Chapter 29. 교차하며 가속하다. - 3 >

게이트 침식이 해제되고 프랑스 초인협회 본부 건물이 있던 폐허 위로 떨어져 내린 강신혁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푸른 소를 꺼냈다. 그대로 클레어를 찾으러 달려갈 기세였지만 다행히도 그 전에 클레어가 직접 그를 찾아왔다.

“신…… 은혁아!”

“누나!”

클레어의 안전을 확인한 강신혁이 안도하여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데, 클레어가 다짜고짜 그를 끌어안았다. 게이트 안에서든 밖에서든 격전을 치렀을 텐데도 그녀에게선 매혹적인 향기가 났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 강신혁은 그녀를 마주 안아주며 상냥한 말투로 답했다.

“언제나처럼 누나가 준 포션 덕분이었어요. 저랑 궁합이 워낙 좋아서.”

“그런 말로 점수 따려고 해도 이미 만점이라 안 돼.”

클레어의 사랑스러운 말에 강신혁이 무심코 웃음을 터트리는데, 뒤에서 무시무시한 기척이 다가와 클레어를 밀어냈다. 당연히 신은아였다.

“반칙!”

“은아 너도 저번에 했잖아. 그러니까 이걸로 무승부야.”

“그, 그건 너무 기뻐서 무심코……."

“나도 마찬가지거든? 엄청 안도했고 엄청 기뻤거든?”

신은아와 클레어의 유치한 말다툼은 실시간으로 요르문간드의 공습을 받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실로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강신혁, 신은아와 함께 SSS급 게이트에서 해방된 이들은 그것을 보며 한국의 삼각관계 보도가 사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니, 나도 안전해. 우리 뜨거운 포옹을……."

“넌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난장판에 한 발 걸치고 싶었던 주노 발렌타인은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강신혁의 실력을 모르고 있었다면 어떻게 더 개겨볼 여지가 있었겠지만 바로 방금 게이트 안에서 그에게 압도되었던 엑스트라 중 하나였던 그로선 무리였다. 강신혁이 의도적으로 그의 앞에서 실력을 과시한 면도 있었다.

“세기의 스캔들이네. 붉은 머리의 연금술사에 떠오르는 신예 랭커, 거기에 더해…… 새로운 랭킹 1위까지 한꺼번에 묶었으니.”

누군가 슬쩍 흘린 말에 모든 하이랭커가 암묵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신은아를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SSS급의 몬스터 다수, 거기에 더해 하이랭커들로서도 감히 바닥을 잴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던 괴인을 동시에 상대하던 신은아의 위용을.

거기에 신은혁이라는 남자는 또 어떤가. 올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급부상하더니, 급기야는 초대받지도 않은 오늘 이 자리에서 신은아 버금가는 활약을 하며 끝내 오주영의 목을 베어내기까지 했다.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은가. 한국을 초인사회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던 뱅가드, 그 뱅가드를 이끌었던 세계랭킹 1위의 초인이 인류를 배신하고 몬스터들의 편으로 붙더니, 그를 같은 나라의 초인들이 단죄하고 요르문간드를 몰아낸 것이다.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그래. 조금의 진통을 견뎌낸다면, 앞으론 한국의 지위가 더 높아질지도 몰라.”

초인협회의 힘이 강하면 나라 전체의 힘이 강해진다. 그리고 신은아와 신은혁은 모두 협회 소속. 뱅가드의 힘은 약화될지 몰라도 초인협회가 뒤를 받쳐주면 결국 한국은 다시 더 높이 부상할 터였다.

“아, 시……!”

그때였다. 강신혁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백인하가 난입해온 것이다. 그나마 그의 이름을 끝까지 부르지 않은 것만은 다행이었다.

“백인하, 정신 차렸냐.”

“야, 나도 그래도 제법 괜찮은 부분까지 버텼거든? 상당히 활약했거든?”

“응, 난 SSS급 게이트 깨고 옴.”

“망할……."

클레어와 백인하를 비롯해 상태가 멀쩡한 초인들은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 최대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잔해에 파묻힌 사람들을 구조하는 작업을 진행중이었던 것.

“그런데 까다로워. 빌어먹을 구조물들이 안티매직이 걸려있어서 마력으로는 치우기가 힘들거든.”

“대체 뭘 위한 안티매직이냐.”

“내 말이.”

세계 최고의 마력 내구도를 자랑하는 재질로 지어진 것이 이번엔 독이 되었다. 특성의 효과마저 반감시키는 강력한 성질을 띠고 있는 만큼 잔해들을 치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됐으니까 다들 협력해! 파리 전체보다 이 잔해 밑에 깔린 사람들이 더 중요해!”

“정말 잔혹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었기에 결국 초인들은 전부 잔해를 치우는 막노동에 동원되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주위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해치우기도 했다.

“음, 혹시 여기 금속도 포함되어 있나?”

“내가 알기로 적어도 50% 이상은 금속이야.”

“그럼 잘 됐네요. 오닉스, 나와.”

강신혁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오닉스를 불렀다. 녀석은 요즘 아예 쓰레기 창고에서 살고 있었는데, 강신혁이 부르자 아공간 너머로 빼꼼이 고개를 내밀며 뀨? 하고 작게 울었다.

“오늘은 저 건물 잔해 안에 있는 금속들을 골라 먹는 게 일이야.”

- 뀨우……..

맨날 이런 일로만 부르냐고 투덜거리는 오닉스. 하지만 오늘 전투 중에 오닉스를 불렀더라면, 아무리 녀석이 쓰레기 창고의 합금 쓰레기를 먹고 강해졌다고 해도 3분도 안 되어 리타이어했으리라. 강신혁은 살짝 싫어하는 기색의 오닉스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너 줄 검도 하나 챙겨놨는데.”

- 뀨!?

너무 속물적이어서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강신혁은 눈을 반짝이는 녀석을 높이 쌓여 있는 건물 잔해로 내던졌다. 어떻게 수련했는지 모를 높은 수준의 은신을 발동한 오닉스는 다른 누구에게 들키는 일도 없이 성공적으로 작업장에 투입되었다.

“대체 어떻게……? 순간적으로 나조차 놓쳤는데……."

그 광경을 지켜본 클레어가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했지만 그것만은 강신혁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 해설해줄 방법이 없다.

“금속들이 사라지면 작업도 한층 수월해지겠지.”

“그래, 뭐 없는 것보단 낫겠다만……."

아직 오닉스의 위용을 잘 모르는 백인하는 애매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꾸할 뿐이었다. 강신혁은 자신도 잔해를 치우는 것을 거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다 말고 뭔가를 깨닫곤 고개를 갸웃했다.

“나희 선배랑 엘레노어 선배는?”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주위에 없었는데?”

“뭐?”

설마 요르문간드에게 당한 것은…… 아니, 그럴 리가. 자신이 둘을, 카렌까지 포함하면 셋을 직접 탈출시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설마 이 근처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대피한 걸까? 혹시나 해서 스틱을 꺼내니 아니나 다를까 카렌이 한참 전에 남긴 메시지가 있었다. 이나희의 상점으로 향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아니 대체 왜…… 끙, 그럴 만한가.”

그리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언제나 이성적으로만 행동할 수는 없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푸른 소를 꺼내 안장에 걸터앉았다.

“다녀올게요. 백인하, 오닉스 좀 지켜줘.”

“어, 응……."

“같이 가자.”

클레어가 자연스럽게 그의 뒤에 걸터앉았다.

“어차피 난 마법직이라 이 현장에는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차라리 싸우러 가는 게 낫지.”

“그럼 나도.”

“은아 넌 힘도 세잖아, 어디서 누굴 속이려고.”

“그윽……."

구출작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신은아는 거짓말을 하고 둘에게 따라붙을 만큼 무책임하지 못했다. 그녀는 강신혁의 배에 양팔을 두르며 슬며시 웃는 클레어를 보곤 이를 악물었다.

“헉, 뇌제가 졌다.”

“결국 연금술사가 차지했나봐.”

“하긴 나도 연금술사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 헉!”

그리고 구출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강신혁 일행에게 신경을 쓰고 있던 초인들은 강신혁이 클레어를 태우고 바이크를 출발시키는 모습을 보며 수군거리다가 신은아의 싸늘한 시선을 받고는 입을 다물었다. 다 바보들뿐이었다.

“정말 많이 안 다쳤어?”

파리의 밤하늘을 달리는 바이크, 푸른 소. 그 위에 둘만 남게 되자, 클레어는 유니폼이 갈기갈기 찢어져 살갗이 훤히 드러난 강신혁의 가슴팍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물었다.

그녀의 손끝이 피부 위를 움직일 때마다 묘하게 간지러운 듯한, 오슬오슬한 감각이 그를 덮쳤다.

강신혁은 전방에 거미줄을 펼쳐 그들을 덮쳐오는 몬스터 무리를 잡아내며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 대꾸했다.

“다쳤는데 누나가 준 포션으로 완쾌했어요. 진짜예요. 만지고 있으니까 알잖아요, 흉터도 안 남은 거.”

“진짜 많이 아팠겠다……."

“그야 아프긴 했지만.”

그 대신 클레어가 이렇게 쓰다듬어주고 있으니 득을 본 셈이 아닐까, 강신혁은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그를 쓰다듬는 클레어의 손길에서 묘한 열기를 느꼈다. 그러나 그가 뭐라 말하려던 그때 클레어가 얌전히 손을 뗐다.

“보상은 여기까지.”

“자각 있었구나. 누나 참 나쁜 사람이네.”

“지금은 참아, 지금은…… 응?”

푸른 소에 자아가 첨부되어 있지 않았으면 강신혁은 몬스터들과 다중추돌사고를 일으켰을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꼴사납게 되묻지 않은 것은 그의 모든 자제력을 동원한 덕이었다.

그가 애써 전방에 시선을 집중하는데, 클레어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기뻤어, 아까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에 와줬을 때. 아니면 혹시 난 은아의 덤이었니?”

“아뇨, 그럴 리가 없잖아요. 누나가 걱정됐어요. 누가 더 강하거나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누나가 걱정이 되서.”

“응…… 역시 그렇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그에게 기대는 클레어. 그녀의 표정을 선명히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 강신혁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렸다.

“자신감 쩌네요. 맞는 말이긴 한데.”

“나도 그랬거든. 나도 네가 걱정이 되서 어쩔 수가 없었거든……."

클레어가 그의 배에 두른 팔을 꼭 끌어당겨 그를 뒤에서 안았다. 아마도 아까 신은아에게 방해받은 몫을 지금 해소하는 것이리라.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간 가만히 있었다. 지금은 바이크가 빨리 달리는 것을 방해하는 몬스터들의 존재가 조금은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있잖아.”

“네."

“이제 누나라는 말 그만하자? 말도 편하게 하는 게 좋겠어.”

무슨 의미일까, 강신혁은 뒤를 돌아보며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간신히 대답했다.

"응."

“좋아, 후훗.”

뒤에서 끌어안는 힘이 한층 강렬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소설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떠올린 다음 순간에는, 애석하게도 그들은 상젤리제 거리, 이나희의 아버지가 물려받은 상점 근처에 도달해있었다.

“엇!?”

그곳에는 여태 좋았던 무드를 다 깨놓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희 선배…… 마도왕!?”

“신혁!? 클레어 언니까지……!”

이미 다 무너져버린 상점의 폐허 정중앙. 무척이나 거대한 네 개의 방벽이 이나희와 카렌을 둘러싸고 있었고, 엘레노어는 이전 강신혁이 만들어준 것에 비해 분명히 더욱 거대한 랜스를 들고 신영에서 탈주한 마도왕 나탄 보댕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거 대체 뭔 상황이야!?”

“야, 후배!”

네 개의 방벽에 빈틈없이 보호받고 있던 이나희는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나도 특성진화했으니까 우리 사업 지분은 5대5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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