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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 Chapter 28. 당신은 알고 있어요 - 8 >

- 저 인간이 바닥에 구멍을 내고 있어!

- 막아. 저것들은 나중에 이용해야 한다고 여왕께서 말씀하셨는데!

게이트의 침식이 이루어져 완성된 공간은 본래 프랑스 초인협회 본부의 14층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었다.

중앙부에 게이트가 있고, 여기서 측정불가 랭크의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 신은아가 더해진 탑 랭커 전원과 대치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다른 SSS급의 몬스터들이 빙 둘러싸고 공격을 가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단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은 게이트 전체에 울려 퍼지는 진동과 고함, 몬스터의 비명 소리로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 귀찮은 인간이!

- 자꾸 이상한 걸 쏜다!

“빌어먹을, 더럽게 단단한 것들이!”

듣자하니 이곳에도 아까 강신혁이 있었던 SS-급 게이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불규칙적인 몬스터 소환으로 인간들이 큰 낭패를 볼 뻔 했다는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그때 마침 신은아가 나서서 그것들을 한꺼번에 정리했다고.

그 후 자연스럽게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 탑 랭커들과 신은아가 그것과 대치하게 되고, 몬스터들에게 맞서 싸울 능력이 부족한 하이랭커들은 일반인들을 감싸는 형태로 군데군데 뭉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버티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은아와 떨어지게 된 클레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난 것이 강신혁이었다. 뭐, 그가 도착하기 전까지 주노 발렌타인이 아주 조금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일단 인정하기로 했다.

“쯧, 강화를 시켜줬는데도 약하네. 당신 정말 13위 맞아?”

“저것들이! 단단한 거라고!”

강신혁의 투덜거림에 주노 발렌타인이 악을 쓰며 외쳤다. 그러나 그도 속으로는 강신혁의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스크래치가 내달렸다는 생각이 든 다음 순간 자신이 쥐고 있던 쌍권총에 황금의 기운이 어리더니, 딱히 마력의 변화는 감지하지 못했음에도 그 순간부터 자신의 공격이 족히 3할 이상은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 자신이 여럿의 SSS급 몬스터를 상대로 선전할 수 있는 것도 강신혁의 버프 덕분이었다.

‘어마어마한 버프 능력이잖아. 만약 이게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동시에 부여 가능한 거라면, 다른 버퍼랑 겹치지 않는다면…… 게다가 게이트의 강제이탈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그렇고, 전투능력도 갖추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자식 대체 뭐지? ……설마 나의 클레어와 사귀는 사이는 아니겠지?’

주노 발렌타인이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두 손은 정신없이 움직여가며 끊임없이 총을 쏘아내는 사이, 강신혁은 그가 만들어내는 길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며 사방으로 거미줄을 날려댔다.

영혼독을 잔뜩 머금은 거미줄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수십 번 이상 교차되며 견고한 방벽을 만들어내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아내는 모습이란 실로 경이적이었다.

그 안에 섞인 번개거미줄은 영력으로 인해 한계를 넘어 강화되어, 독과 번개 이중의 속성으로 위협적인 기세를 뿜어냈다.

- 크악!?

- 뚫어, 바보같…… 큭!

SSS급의 몬스터들이 강신혁이 만들어낸 거미줄 방벽을 뚫지 못하고 막히는 모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주노 발렌타인이 허겁지겁 뒤를 따르며 몬스터들을 견제하는 사이 그는 민간인을 확보, 바닥을 뚫고 던져 넣었다.

“밖으로 나가면 연금술사의 말을 따를 것.”

“신은혁이라고 했던가, 자네 대체 어떻우와아아아악!”

물론 한 명 한 명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겠지만 강신혁에게 그런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영혼독으로 게이트에 구멍을 뚫고 그들을 밀어 넣을 뿐.

“당신들은 날 도와줘.”

“게이트 강제진입과 이탈 능력이라니 앞으로 한국은 난리 나겠는데.”

“이봐, 빨리 민간인들 내보내고 우리도 활약해야지!”

13층과 달리 14층에 있는 하이랭커들은 클레어와 같은 지극히 극소수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50위권 내의 괴물들 뿐. 그들은 그대로 강신혁의 곁에 합류, 한데 뭉쳐 괴물들을 상대하며 강신혁이 보다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배신자는 봄버걸 뿐인가?”

“서로를 경계해. 두 명이서 움직이라고.”

탑 랭커의 배신으로 언제든 내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었지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강신혁의 등장으로 폭발할 것 같던 분위기가 수습된 덕에 사람들이 다시 뭉칠 수 있게 되었다.

봄버걸은 역시 강신혁이 나타나자마자 처리했어야 한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어떻게든 그가 행동을 마치기 전에 민간인들을 죽여 버리려 마력변질을 시도했지만 무리였다.

이미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그녀의 근원을 파악한 강신혁이 그녀가 마력을 발하는 순간 모조리 영혼독으로 녹여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거 괴물이야! 저걸 일단 죽여야 한다니까, 너희 다 움직여! 움직이라구!”

어린 소녀처럼 땍땍거리며 바닥을 구르는 봄버걸. 정작 본인은 강신혁이 두려웠는지 처음의 충돌 이후로 몬스터들 틈에 쏙 들어가 숨어 있는 모습이 얄미웠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 몬스터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 예상외로 적이 강해. 특히 저 여자, 우리 움직임을 막는다.

- 역시 인간들은 무능해. 전부 우리에게 맡기고 사라지면 좋을 텐데.

몬스터들은 전부 제각각의 생김새를 갖고 있었지만 덩치는 공통적으로 3미터 언저리였다.

몸은 붉고 검었으며, 외피는 용의 비늘과 벌레의 외피를 섞어놓은 듯 약간 도톰하고 번들거리는 갑각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혀도, 팔도, 비정상적으로 길었으며 하나같이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덤으로 하이랭커들의 눈으로도 쫓기 힘들만큼 빠르고 강했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대부분 마법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

바꿔 말하면 놈들에게 붙잡히는 순간 죽음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으로, 하이랭커들 역시 놈들에게 접근하려고는 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공격을 퍼부어 다가오지 못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이걸로 끝.”

“고맙습니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빨리 나가라고.”

마지막으로 신영의 학교장 신윤학을 아주 조금의 사심을 담아 구멍에 던져 넣고 돌아서니, 자신을 중심으로 뭉친 하이랭커들이 몬스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빌어처먹게 단단해. 도저히 뚫릴 생각을 안 한다고.”

“만약 이런 게이트가 하나만 더 열린다면 그땐 이 세상은 끝장이야.”

“이봐, 엑스칼리버! 언제까지 시간을 끌 셈이냐!”

민간인들을 모두 내보내는 데는 성공했다. 바깥에는 클레어가 있으니 그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자신들도 도망을 칠까? 그랬다간 이 게이트가 끝내 현실에 완전히 침식되어, 이 끔찍한 괴물들이 지구상에 풀려나게 될 뿐이었다.

다른 방법은 보스 몬스터를 끝장내는 것. 보스 몬스터를 죽이면 게이트가 붕괴되어 자연히 일반 몬스터도 소멸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어떻게. SSS급 몬스터 한 마리도 죽이질 못해 이렇게 쩔쩔매고 있는데.

하이랭커들의 우울이 강신혁에게도 전염되려 하던 그때였다.

- 바텐더 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때 날아든 관리자의 메시지에 강신혁은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사실 그녀라면 이렇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긴 했었다. 거침없이 게이트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 대한 믿음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연금술사 특제 초월 포션(SS)을 얻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포션 하나로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한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품에 클레어가 보내준 포션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 바깥은 어때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다들 괜찮아. 수상한 사람도 없고. 하지만 파리는 난리가 났어. 신혁이 넌 어때, 무사해? 괜찮아?

- 이제 보스만 잡으면 돼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아무리 내 포션이 효과가 좋아도 무리는 하면 안 돼. 너랑 은아를 살리는 것만 생각해…… 아.

- 왜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건물 무너진다.

그 말을 끝으로 클레어의 메시지가 끊어졌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시스템 덕에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은 알아도 걱정이 되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빨리 마무리하고 나가는 수밖에.”

강신혁은 포션을 단숨에 들이켰다. 경이로운 메시지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 치명상 이하의 모든 상처가 완쾌됩니다. 포션에 포함된 영력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여 효과가 증폭되었습니다. 모든 상처와 상태이상이 완쾌되며, 남은 치유력이 당분간 육신에 감돌며 당신을 보호합니다!

- 일시적으로(10분) 모든 스테이터스가 두 단계 상승합니다. 포션에 포함된 영력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여 효과가 증폭되었습니다. 일시적으로(20분) 모든 스테이터스가 세 단계 상승합니다! 영력이 추가로 한 단계 상승합니다!

- 본인의 영력으로 포션에 담긴 영력의 한계 그 이상을 끌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포션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포션의 효과가 유지되는 시간 동안 모든 스킬의 ‘희귀도’와 ‘숙련도’가 한 단계씩 오르며 특성의 힘이 강화됩니다!

강신혁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인간의 전신에 황금빛이 깃들었다.

“엇!?”

“뭐야, 이거…… 설마.”

“더 강해졌어……?”

강신혁을 제외하고 정확히 22인. 하이랭커에 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초인이 아닌 용병으로서 활동하는 남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50위권 내의 하이랭커였는데, 그런 그들이 극명한 변화를 느낄 만큼 몸에 ‘부스트’가 걸린 것이다.

“오래 갈지는 몰라. 일단 보스 몬스터까지 일직선으로 길을 뚫지.”

“설마 당신이?”

“강화능력을 갖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있는데 설마 정말로…… 이건 대체 몇 명까지? 아니,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달려! 이것들 다 부숴버려!”

마치 강신혁이 처음으로 게이트 안에 들어왔을 때처럼 극적인 분위기의 반전이었다.

물론 그의 버프가 얼마나 오래 갈지도 모르고, 버프를 받았다 해서 SSS급 몬스터를 수월히 죽일 수 있게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강해졌고, 가능성을 얻었다. 초인들이 목숨을 걸고 날뛰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다.

“기다려라!”

“봄버걸 개년 내가 직접 찢어 죽여주마!”

“뭐야, 뭔데!”

- 저 기운, 확실히.

- 일단 방해가 되는 것들을 다 죽여!

소강상태가 끝나고 본격적인 격돌이 이루어졌다. 총이며 칼, 창, 망치, 혹은 황금으로 물든 스태프를 든 초인들이 일제히 스킬을 쏟아내며 몰아붙이니 그 단단한 갑각을 자랑하던 몬스터 놈들도 신음을 내지르며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 빨리 마무리해!

- 뜸을 들이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몬스터들은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물론 일일이 놈들의 말을 귀기울여 듣거나 반박하려는 사람 따윈 없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후배, 나한테 와줘.

그때 이번엔 은아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나한테? 설마 저 SSS급 몬스터들이 수십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격전의 중심지를 말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녀가 이유 없이 자신을 부를 리도 없다. 강신혁은 무려 네 단계나 증폭되어 SSS급으로 강화된 자신의 영력을 믿고 일직선으로 거미줄을 쏘아냈다.

아까까진 영혼독을 활용해 몬스터들의 공격을 튕겨내거나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면, 등급이 높아진 그의 영력에 영혼독까지 곁들여지니 일직선으로 몬스터를 꿰뚫는 것이 가능했다.

- 끄아아아아악!?

- 내 영혼이, 영혼이 파먹힌다!

- 영력……! 이건 영력이다!

영혼독의 본질을 파악하고 영력을 입에 담다니, 과연 SSS급 몬스터쯤 되면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인가. 하지만 알 바 아니었다.

강신혁은 나중 일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자신이 거미줄을 쏘아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소중한 버퍼인 강신혁을 지키는 진형으로 몬스터들과 대치하고 있던 하이랭커들은 절로 경악성을 토했다.

“저 자식 뭐해!”

“보스랑 싸우려는 거 아냐!? 아니, 근데 진짜 강하기는 한데! 여태까지 저렇게 안 강하지 않았어?”

“포션! 포션을 마시는 걸 봤어!”

“한 병 마신다고 저렇게 강해지는 포션이 있으면 나도 좀 가지고 싶다, 젠장!”

목숨을 도외시하고 몸을 내던진 강신혁의 도약은 실로 굉장했다.

날아드는 모든 공격을 거미줄로 받아쳐내고 동시에 길을 뚫으며 전방으로 영혼독을 폭사, SSS급 몬스터 한 마리를 깔끔하게 녹여버리며 순식간에 신은아의 곁에 착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왔어요.”

“……정말 왔어.”

신은아는 안도한 듯, 기특한 듯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급히 그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옆에는 신검이라 불리는 현 세계랭킹 1위, 오주영을 시작으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섯 명의 남자가 늘어서 있었다.

더욱이 그 뒤로는 오주영이 직접 이끄는 뱅가드 길드의, 하이랭커로만 구성된 결사대 또한 있었다.

“말도 안 되게 대단한 루키잖아.”

“지금 단계에서 이미 우리 탑 랭커를 뛰어넘는 것 아냐?”

“후배.”

신은아 역시 과거 그로마스에서 보았던 때처럼 전신으로 강대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반면 그녀와 대치하고 있는 적은 놀랍게도 인간형의 작은 몸에, 몬스터들이 몸에 두르고 있는 듯한 검은 갑각질의 갑옷을 두르고 있었는데, 강신혁은 놈에게서 지극히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 설마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가 매끄러운 미성으로 말했다.

- 반갑습니다, 모루. 아니면.

강신혁은 그의 갑옷을 보고 낯빛을 굳혔다. 그가 뿜어내는 영력보다도,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이 더욱 익숙했다.

-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까요.

남자가 그렇게 말한 순간.

신검 오주영이 강신혁을 찔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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